주문 후 넉 달의 기다림 끝에 사운드바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주가 지났군요. 전에는 셋톱박스로 못 봤던 TV 프로그램만 챙겨 보다가, 사운드바를 들이면서 넷플릭스로 접점이 넓어졌습니다. 소리의 깊이감, 전달력, 음색이 TV 스피커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았거든요.
무던하고 예스럽게만 들리던 <미스터트롯>이 내 채널 돌림을 막아낼 줄이야. 트로트가 이토록 신명 나고 심금을 울리는 음악 장르였나 싶은 생각에 잠깁니다. 킬링타임으로 즐기는 <분노의 질주 : 홉스 앤 쇼>, 두 주먹 꽉 쥐게 하는 액션 스릴러 <제이슨 본> 은 또 어떻고요. 돌비 애트모스가 안 되는 TV라도 사운드바의 힘을 빌려 거실을 쉽게 장악합니다. 광고 수수료 대행업으로 돈 독이 오른 유튜브와 영 다른 세계관이군요.
사운드코어 인피니 프로는 지난해 1월 출시된 인피니(Infini)의 윗급 모델입니다. 출력을 20W 보태고, 서라운드와 돌비 애트모스(HDMI ARC 연결 시)를 더하고, 전용 리모트 앱(펌웨어 업데이트 포함)과 연결 호환성을 두루 갖춰 사용 편의성을 보완했죠. 정가는 299,000원인데, 펀딩가로 19만 5천 원을 제시하며 10억원의 모금 기록을 올리기도 했고요. 펀딩 마감 직후 코로나19에 따른 물량 수급 차질로 앤커코리아에서 리워드 배송에 애를 먹기는 했습니다. 중국의 심천 공장이 폐쇄됐다가 늦게나마 가동을 시작했거든요.
이탈 없이 잘 버틴 덕에 제품을 4월 말에 받았습니다. 무지 박스 안에 제품 박스, 그 안에 완충 포장과 주요 구성품을 채운 식입니다. 본체랑 설명서, HDMI 케이블, 리모컨, AAA 건전지, 벽걸이 키트, 나사가 들어있어요. 조립 품질과 표면 마감은 대체로 무난합니다. 눈에 띄는 단차 없이 기능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합니다. 각 스피커 유닛은 트위터와 미드레인지를 양측 전방으로, 안쪽 서브우퍼를 위로, 베이스 리플렉스를 뒤쪽 양옆으로 빼 뒀군요. 평상에 눕힌 형태보다는 벽걸이로 세워 쓰는 형태에 최적화된 모습입니다.
연결 후 설정법은 간편합니다. TV가 HDMI ARC 기능을 지원하는 경우, 사운드바와 TV의 HDMI ARC 전용 단자(일반적으로 HDMI 1번이 ARC 겸용)를 HDMI 케이블로 이어주고 TV설정 메뉴에서 ARC 기능을 켜주면 됩니다. TV 내장 스피커는 그대로 두면 하울링(노래방 에코)이 일어나니 꺼 주셔야 하고, 사운드바 음량은 셋톱 박스 리모컨의 음량 조절 버튼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HDMI ARC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셋톱박스와 사운드바를 옵티컬 케이블(별도 구매 필요)로 이어주면 됩니다. 가상 돌비 5.1 채널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거든요. 음색이나 전달력은 HDMI ARC보다 옵티컬로 바로 들으니 명확하게 잘 들리더군요. TV를 경유해 두 번 거쳐 듣는 것과 단 한 번의 연결로 듣는 차이랄까. 영상과 음성의 싱크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주변기기를 다수 물려 쓰는 환경이라면 HDMI ARC가 유리합니다.
아쉬운 점은 리모컨 수신부 위치, 불명확한 음량 조절 단계가 되겠군요. 벽걸이로 세워 두는 사운드바라면 저 위치가 맞을 수 있는데, TV와 같은 평상에 눕혀 두는 사운드바에선 보내고 받는 신호 감지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요. 수신부가 위에 있어서 리모컨 조작 시 팔을 들어서 손목을 살짝 밑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뭔가 인체공학스럽지 못한 자세로군요.
음량 조절은 30단계에 불과합니다. 10~20W 급의 TV 스피커가 50~100단계로 꽤 세밀한 걸 보면, 단계 수는 2배로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블루투스로 노트북과 사운드바를 연결해 리모컨으로 누르니 소리가 3칸씩 껑충하는 게 보이는군요. 7단계 베이스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스 온-오프만 되는 인피니보다는 좋아진 게 맞지만, 인피니 프로는 그 급에서 노는 제품이 아니잖아요? 애매한 소리 조절을 스마트폰의 전용 앱으로 대신한 느낌입니다.
들려주는 소리 자체는 좋습니다. 30만 원의 값어치 그 이상이랄까요. 베이스 7단계로 잡아도 소리 뭉개짐을 느끼기 어렵고, 3m 앞에서 듣는 목소리, 총소리, 빗소리, 악기 소리를 자기주장 강한 사람처럼 또렷하게 잘 드러냅니다. 영화 감상할 때는 영화 모드로, 뉴스 볼 때는 대화 모드, 그 밖의 드라마, 음악 프로, 예능, 다큐와 같은 장르의 TV 프로그램은 음악 모드로 맞추고 소리를 들으면 더욱 조화로운 소리를 전합니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듣는 유튜브 뮤직도 대체로 괜찮습니다. 고음 해상력이 선명해서 현악기와 피아노가 어우러진 음악이나 아이유의 <가을 아침>처럼 또렷한 목소리 위주의 말고 고운 노래를 위주로 듣는 걸 추천드립니다. 다음 곡 재생 시 1초 고스트(묵음) 현상이 가끔 나타나지만, 셋톱 박스에서 채널 돌리는 수준의 반응 지연으로 판단됩니다. 유튜브 채널이나 카카오 TV 등의 플랫폼 시청도 딱히 문제는 없군요.
인피니 프로의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은 넷플릭스입니다. <익스트랙션> 등의 긴박한 액션에서 소리 재현이 특히 잘 돼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3인칭 관찰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어 넘어가는 소리의 흐름만으로 온 거실의 분위기를 휘어잡습니다. TV가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했다면 더 좋았을 뻔했군요. 이 외에도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제이슨 본>과 같은 시니컬 액션물에서 특히 긴장감 넘치는 소리를 전합니다.
TV는 해를 거듭하며 많은 변화를 동반했습니다. 더 커지고, 더 얇아지고, 더 선명하고, 더 미려하고 깊은 색감으로 인간의 눈을 사로잡고 있지요. 그에 반해 TV 자체의 스피커는 아직 극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접점이 넓어진 지금의 콘텐츠 환경에선 풍부하고 또렷하게 전달되는 소리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한데 말이죠.
사운드바를 더하면 허전했던 소리의 존재감을 꽉 채워줍니다. 정확하고 잘 들리는 대화, 온갖 ASMR을 뚜렷하게 잘 드러냅니다. 예전처럼 스피커 여러 대를 깔고 배선을 나눌 필요가 없어요. 디지털 신호만으로 음향 감독보다 섬세한 최적의 사운드를 연출해내니까요. 셋톱박스, 심지어는 갤럭시 S10마저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잖아요?
앤커의 사운드코어 인피니 프로는 최신의 음향 기술에 잘 대응된 스피커바입니다. 돌비 애트모스는 물론, 4K 패스스루를 지원해서 4K HDR 및 돌비 비전 콘텐츠 감상에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30만 원 안팎에서 이들을 모두 지원하는 스피커바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기능 편의성은 정가 35만 원에 판매 중인 야마하 YAS-109보다는 부족합니다. YAS-109는 와이파이(2.4G)로 무선 연결이 되거든요. 스포티파이, 아마존 뮤직 스트리밍도 되고, AI 음성 제어 기능인 아마존 알렉사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DTS 버추얼 X로 돌비 애트모스와 유사한 가상 서라운드를 지원하며, 브랜드 인지도 역시 앤커보다 야마하가 꽤 우위에 서 있죠.
인피니 프로가 경쟁 제품 대비 내세울 장점은 뭘까요? 가격입니다(정가 29.9만 원). 연결성이 다소 제한을 두고 있지만, 소리 재현력 하나는 충실하거든요. 저야 국내 펀딩 특별가 19.5만 원에 샀으니 가성비는 단연 으뜸이라 부를만합니다. 라인업이 튼튼하지 않을 뿐, 만듦새나 제품 완성도는 괜찮습니다. 사운드바로 입력된 음성을 다른 블루투스 기기로 보내는 기능(한밤중 TV 시청 시 필요)과 데이터 손실 걱정 없는 Wi-Fi 다이렉트를 더했다면 구매력이 더 좋지 않을까 싶군요. 7년째 거실을 차지 중인 TV(LG 55LW6900-NA)나 바꿔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