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스 미니 PC ExpertCenter PN64 입니다. 국내에 출시된지 2주 쯤된 따끈따끈한 신제품입니다. 인텔 12세대 엘더레이크 CPU 탑재.
저는 i7-12700H 베어본 제품을 구입했습니다. 오픈마켓가 88만원.
아수스 제품은 이것이 5번째 구입인데, AS는 처음 받아봤습니다. 평소에 전자기기를 워낙 많이 질러보는지라 AS 받는건 무덤덤하지만, 이 제품으로 AS를 받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레전드를 찍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아주 사소했습니다. 메뉴얼에 따르면 이 제품에는 M.2 SSD 방열용 써멀패드가 붙어있는데, 써멀패드 위에는 플라스틱 필름이 붙어있으니 반드시 떼어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제품에는 이 플라스틱 필름이 없었습니다.
이게 사용에 영향을 크게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 제품이 하자가 있는 것인지 메뉴얼이 잘못된 것인지는 궁금하지요.
반면 두 번째 문제는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M.2 SSD 슬롯 고정 나사가 누락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M.2 고정 나사는 메인보드 측에서 규격을 정합니다.
나머지 구성품이 완벽해도 한 개에 100원도 안 할 이 나사가 없으면 SSD를 결합할 수 없고 조립은 중단됩니다.
그리하여 AS를 받기 위해 다음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이때만 해도 이런 비범한 여정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품의 시리얼 넘버를 불러준 뒤 말한 요구사항은 두 가지였습니다.
1. M.2 고정 나사가 누락되어 있으니 나사를 보내달라.
2. 써멀 패드에 대한 메뉴얼의 설명과 내 제품의 상태가 다르다. 메뉴얼의 설명이 맞는건지 확인해 달라.
상담원의 답변은
AS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영수증 사진과 시리얼 넘버가 붙어있는 제품의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줘야 한다.
였습니다.
.............
보통 다른 기업들은 이런 자잘한 구성품의 누락이나 하자는 제품 구입만 확인되면 애지간하면 대체품을 즉시 발송해 주죠. 그런데 고작 나사 한 개 보내주고 메뉴얼 내용을 확인해 주는데 영수증 사진과 제품 사진까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메일을 보내려면 밤에 퇴근해서 집에서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먼저 보내주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1차 빡침을 참고 저녁에 사진을 보냈고, 계속 조립 중단 상태를 놔둘 수는 없어서 다른 PC에서 M.2 고정 나사를 빼다가 끼우고 조립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문자를 받았는데 문자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나사가 누락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구성품 전체, 그리고 M.2슬롯에 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써멀패드 건도, 제품의 써멀패드 부분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어야 확인이 가능하다
.......
나사가 정말로 누락되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요구한 것입니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 황당한 답변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재답변은 규정상 어쩔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돌부처랑 대화하는 느낌입니다.
이후 재차 받은 문자에서는, 구성품 전체를 확인할 수 없는 사진을 보낼 수 없으면, 대신 메인보드 사진을 보내고 나사 구입 절차로 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사를 구입하기 위해서도 메인보드 사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각해 볼수록 황당합니다. 그 구성품과 제품 내부 상태 사진을 들여다 보는 것이 나사 하나 보내주는데 피할 수 없는 절차라는 것이 말입니다. 메뉴얼의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데에 사진을 요구한 것은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제 제품의 상태를 봐야지만 메뉴얼의 의미가 해석 가능한 걸까요. (양자역학의 메뉴얼인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100원짜리 나사와 메뉴얼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조립된 PC를 다시 해체하고 구성품을 모아 사진을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이런 병맛나는 서비스센터도 있구나 하고 그냥 사비로 나사 하나 구한 뒤 때려치시겠습니까. 저는 그냥 후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주섬주섬 사진을 모아 보낸 그 다음에는 "이제 니놈이 도둑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들을 모아서 보내라." 라는 답변을 받을 것 같애서요. 저에게 이번 AS는 다른 AS 경험들과 달리 걸린 시간이 문제였던 것도 아니고, 결과가 문제였던 것도 아닌, 유도리가 1g도 없는 괴랄한 절차로 인해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본 제품에 대한 리뷰는 조만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