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자공학과 학생들의 자소서에 공통적으로 적히는 내용이 있져. 자소설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난 어린시절부터 전자기기를 좋아했으며... 어쩌고저쩌고... 그렇기에 나를 뽑아달라....' ... 무튼,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전자공학과를 지망하고 위대한 전자공학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 손으로 유명 대학 전자공학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깡이 대단한 건 맞습니다.
예... 근데 그 중에서도 꼭 진짜를 넘어 유별난 놈들이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놈에 아마 본인도 해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 이유가 있어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썰들이...
1. 때는 2008년...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MP3 CD가 왜 CD-DA보다 우월한지를 한참 설명함. 'CD-DA는 무손실 신호를 담기 때문에 용량이 크지만 MP3 CD는 파일을 넣을 수 있기에 용량이 작고 제목 표시도 된다' 가 본인의 주장이었음... 그에 대한 대답은 '차라리 CD 여러 장보다 MP3 하나가 크기가 작으니 갖고 다니기에는 더 좋다' 였음.. ㅡㅡ
2. 2005년 강원도 강릉 소재의 'ㅎ' 어린이집에 차량을 타고 등원했었는데... 차는 이스타나 스틱이고 카오디오는 파나소닉제 일본향 제품으로써 CD 트랙이 우측에 표시되는 게 너무 신기했음. 그리고 나서 '왜 저 오디오만 트랙 인디케이터 위치가 타사 제품과 다를까?' 를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음. 당시에는 카오디오 헤드유닛 일본 직수입이 활발했어서 그런것...
3. 200X년... 에버랜드에 갔음.. 사파리월드라는 곳을 처음 가봤음.. 커다란 사자와 호랑이가 버스 유리창 앞에서 어떤 고기든 단칼에 썰어버릴 수 있는 자신의 송곳니를 뽐내며 으르렁댈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디오 시스템밖에 없었음. 모두가 호랑이에 눈이 돌아가 있을 때 나는 일행의 틈을 빠져나와 운전석 쪽으로 몸을 틀었음. 결국 오디오 구경실컷하고나옴개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모델은 Alpine 9853이었는데, 내가 가정용으로 잠깐 쓰던것과 동일함..
4. 2006년... 케이블카를 타러감. 케이블카에 방송장비가 달려있고 한 아재가 방송을 담당했었는데, 그 방송장비가 궁금해진 나는 아재한테 이것저것 물어봄. 마이크가 어디 달려있고 소리는 어디서 나냐고 ... 그 착했던 아재는 이런저런 궁금증이 참 많았던 6살 아이를 잘 어르곷달래면서 나의 궁굼증을 해결해줌. 결국 보라는 풍경은 안 보고 방송장비만 구경하다 나옴. 나중에 엄빠가 괜히 왔다고 구박 많이함
5. 자동차에 탈때마다 네비게이션, 계기판만 뚫어져라 쳐다봄. 가끔씩 조작하는 사람을 주시하듯 살펴봤음. 화면이 달린 헤드유낫이 너무 신기했었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왜 버스는 RPM이 "40" 까지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그때는 정보검색 능력이 떨어져서 해답을 찾을 수 없었음... 엄마가 제발 그런거좀 그만 관심있어하라고 통곡하며 애원함.
아무튼 기억이 나는건 여기까지인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전자장비를 좋아하는 것 =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로 인식되어,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게 좀 남아있는데요. 그래도 많이 극복했습니다.
물론 그때 좋아하던 걸 아직도 좋아하고 있으며, 더 심화된 지식들을 배워서 취미생활의 일부로써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닌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