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 3세대 256GB를 2년 가까이 써오고 있었고 주 용도는 흑백 드로잉, 그런데 약간의 채색을 곁들인 정도, 자기 전에 누워서 유튜브 보는 용도로 씁니다. 그외의 컨텐츠 소모는 아이패드 미니 5세대로 쏠쏠하게 하고 있었고요. 드로잉은 거의 클립 스튜디오를 사용했습니다. PC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했던 프로그램이고, 인터페이스도 포토샵이나 그림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는 앱이지요. 아이패드/안드로이드용은 구독제로 바뀌었다는 문제만 빼고 말이죠.
아무튼 잘 쓰고는 있었고 정말 만족스러웠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사람 마음도 변하기 마련. 일단 클립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파일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파일 사이즈도 거기에 따라 커지다 보니 (10000x10000px 이상) 작업물에 따라 clip 파일로 20~70MB, PNG로 내보내놓고 보니 137MB(...) 짜리 덩어리가 나온 적도 있는데, 그건 큰 작업을 할 수록 부하가 슬슬 느껴지는 정도가 됐다는 겁니다. 무거운 그림 하나를 작업하면 저장할 때, 이미지를 돌릴 때 슬금슬금 버벅대는 게 보이고 비슷한 규모의 그림을 하나 더 띄워놓고 있으면 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요... 특히 작업 도중에 잠깐 설정을 만지거나 홈 화면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만 했는데도 앱이 뻗는 무서운 경험을 해보니 슬금슬금 기변의 욕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서 쓰는 PC의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했던 것도 나름 이유가 되더군요. 특히 그래픽카드 너 말야.
마지막으로 이전에 쓰던 Zbook X2 G4가 돈값을 못 했다는 것도 고민의 허들을 치워버리게 만드는 계기였습니다. 340만 원짜리 쿼드로 M620 달린 인텔 2 in 1... 이 가격만 아니라면 뭐든 질러도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고로 내놓으려고 패널의 상태를 보니 제가 어지간히 혹사를 시키긴 했나 봅니다. 손바닥이 닿았던 부분에 아주 일곱 빛깔로 픽셀이... 밝은 데선 잘 안 보이고 블랙에서만 엄청나게 눈에 띄는군요.
쿠팡이고 11번가고 뭐고 다 필요없고 공홈에서 주문했습니다.
철이 없었죠... 한 달 정도는 기다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게..
6월 1일엔 결국 조급증이 발동해서 퇴근시간에 윌리스에 갔다옵니다.
편-안
순전히 16GB 램 때문에 지른 게 맞습니다. 2TB는 정말 뇌절 같군요... 공홈 주문은 바로 취소.
이렇게 보니 혹사시킨 티가 더더욱 나는군요. 저 종이질감 필름은 패드 살 때 바로 부착했던 겁니다. 하도 써서 맨들맨들해질 정도로 딱 좋게 길이 들었는데 말이지요...
사전설명이 이렇게 긴 이유는 이제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뭐 아무튼 5세대입니다. 공홈에서 주문한 폴리오만 도착해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었다는 사정이 있군요.
생긴 것도 거의 똑같아서 설정까지 그대로 이전 기기에서 가져오면 정말 새로 샀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여러 앱에서 아직 장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iPadOS 15가 올라와야 전반적인 앱들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질 것 같군요. 당분간은 이것저것 제약이 걸린 상태로 써야 할 듯.
주로 쓰는 클립 스튜디오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기변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불러오기도 빨라졌고, 저장속도도 확실히 빨라졌고, 작업 중인 그림을 요리조리 돌리고 그래도 버벅거리는 게 없어요. 물론 A12/A14 계열의 아이패드 프로에서의 작업도 여전히 매우 쾌적하기 때문에 조급증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급합니다. 앱에 할당할 수 있는 램의 크기가 아직 5GB라고 해도 3세대에 장착된 램은 4GB였으니 좋은 딜이었다고 봅니다. 저는 조급하니까요.
라이다를 사용한 측정 기능도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애초에 없는 것보단 가끔 생각날 때 써볼 만한 거라면 괜찮달까.
nPlayer, SMB로 데스크톱 PC에 저장된 8K/60fps 영상을 재생했을 경우 처음 불러올 때 혹은 다른 시간대로 이동시켰을 때 잠깐 버벅거리는 것을 빼면 프로 3보다 훨씬 재생이 잘 됐습니다. 그냥 틀어놓고 보면 문제 없는 정도. 다만 nPlayer에서 하드웨어 디코딩을 하지 못했다는 점(앱 내부의 코덱 문제인지 M1이 지원을 못 하는 건지는 모르겠음), 프로 5세대는 와이파이 6 규격이라는 등등의 변수가 있긴 합니다.
대충 써본 결과로는 이 정도입니다. 사실 제 사용범위에서 이것 이상의 활동이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전체적인 인상은 제목대로 KTX 같은 물건입니다. 매우 빠른데 정해진 위치로만 갈 수 있다는 느낌. 물론 OS가 제공하는 제한 안에서만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이렇게 쾌적한 물건이 없겠지요. 다들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요.
사실 M1의 태생 자체가 어디서 갑자기 떨어지거나 한 칩셋도 아닌 기존의 태블릿용 하이엔드 칩셋의 연장선이었지만 맥북, 맥 미니, 아이맥 등등 애플의 모든 컴퓨터 라인업을 차지하다 보니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 WWDC 후기들을 보니 애플은 아이패드에 대한 태도를 최소한 당분간은 그대로 가져가려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못하는 것보단 똥고집 피우면서 안 한다는 느낌이라서 괘씸하단 말이지요... 뭐 현재까지 모든 기기들을 M1 단일 칩셋으로 통합한 건 대량생산에 유리하다는 거고 그만큼 마진에도 영향을 주겠죠? 마진 쿡이라면 분명히 염두에 둔 행보라고 봅니다.
결론은 참을 수 없으면 128GB 모델을 사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참을 수 있습니다. 저는 못 참았지만.
저 같아도 최근에 2TB에 가까운 용량의 비디오 영상을 색보정까지하며 만지다보니 예전에 쓰던 맥북프로 15 2017 고급형에서 작년초에 바꾼 맥북프로 16 고급형 CTO 램 32GB 비디오램 8GB의 머신으로 거침 없이 밀어 붙히며 작업하는 손맛(?)이 무척 좋아 재미 있게 만들어봤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