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아직 겨울인 3월에 예비군이라니! 야상을 안 챙겨가서 얼어 죽을뻔 하다니!

 

...는 넘어가고. 오늘 있었던 일 중 인상적인 순서대로.

 

 

4위.

 

이동네의 요충지인 여고 앞을 지키고 있으려니(정확히는 한 5개 학교가 몰려있는 곳이지만) 왠 아줌마가 딸을 질질 끌고 가더라구요.

 

진지를 구축하고 지키고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니까 옆으로 좀 비켜섰는데 그 아줌마 왈 "아저씨들 예비군 훈련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하니 "말 안듣는 얘좀 잡아가세요!" 라고. 저 분은 예비군에 설마 공권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3위.

 

향방작계 훈련이라 함은 예비군들이 자기 동네를 지키는 향토 방위 작전 계획을 훈련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는 예비군이 훈련 중 동네를 이동하다가 자기 학원에 다니던 애가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걸 마주칠 수도 있지요.

 

따라서 "야 너 학원 왜 안왔어!" (아이스크림을 츄릅츄릅하며) "선생님 이거 드실래요?" 하며 약올리는 대사가 오가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옆에 있던 동대장님이 한마디 하시더라구요. "이것들아 이게 바로 니들의 미래다. 얼마 안 남았어"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평소엔 눈꼼만큼도 없던 애향심이 조금이나마 생길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2위.

 

4위의 위치에서 시간이 왜 안가나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어린이집 끝나고 애를 바래다 주는 한 무리가 등장했습니다.

 

딱 봐도 매우 개구질것 같은 남자애가 한명 있었는데, 다른 애들이 멀리서 수근수근하며 저거 진짜 총인가 전쟁났나 이러는 것과 달리.

 

가까이 붙어서 아저씨들 뭐해요? 진짜 총이에요? 하면서 총의 개머리판을 쓰담쓰담. 데리고 가던 아줌마가 질겁해서 애를 질질 끌고 갔어요.

 

...저 녀석은 나중에 커서 훌륭한 밀덕이 될 소질이 있어 보이는데...

 

 

1위.

 

예비군 집결지가 모 공원입니다. 허나 공원이라 말하긴 좀 민망할 정도로 크기가 작지요. 놀이기구가 몇개 있으니까 놀이터에 가까운 수준.

 

그리하여 공원의 주 이용객은 그네나 시소나 미끄럼틀을 타러 온 애들인데. 한켠에 예비군들이 M16 들고 서 있으니 분위기가 참 그렇겠죠?

 

그래서 그런진 모르겠으나 귀차니즘에 쩐 예비군들을 향해 왠 팔다리 가느다랗고 얼굴 하얗고 작은 유치원생 남자애가 애타게 외치더라구요.

 

"아저씨들 왜 놀이터에서 총 쏠려고 그러세요 ㅠㅠ"

 

...이런 애가 있으니 제가 늙어 죽기 전에 대한민국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나와도 결코 이상하진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