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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 게산기가 1972년에 출시한 소형 전자계산기 카시오 미니

 

카시오계산기, 아니 일본의 전자계산기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으로 '카시오 미니'라는 소형 전자게산기가 있습니다. 1972년에 나온 이 제품은 당시 폭발적으로 히트한 인기제품으로, 전자계산기의 소형화를 단숨에 이끌어낸 획기적인 제품입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디자인이나 크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때건 간에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카시오 미니의 개발자이자 현재 카시오 계산기의 대표 이사 부사장인 가시오 유키오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볼링장에서 태어난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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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 계산기 대표 이사 부사장 가시오 유키오씨

 

카시오 미니의 발매 당시 판매 문구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전자 게신기'였습니다. 카시오 미니 이전의 계산기는 크기가 큰 설치형 업무용 기기였습니다. 가격도 아무리 싸봤자 3만엔 대 후반. 1명이 1대를 갖고 있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손바닥 정도 크기에 가격이 12800엔이었던 카시오 미니는 정말 혁신적인 제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카시오 미니의 아이디어는 당시 젊은이에게 큰 인기였던 볼링장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볼링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일대 붐을 일으켜, 저도 자주 볼링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디지털로 점수를 계산해 주는 기계는 없었고, 자신이 직접 계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종이에 숫자를 쓰고 있었지만 그게 번거로워서 볼링장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계산기가 필요하다는 게 첫 번째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때는 반도체의 기술 발전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전자 계산기 전쟁'이라 야유당할 정도로 다양한 제조사가 모여 전자 계산기를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히타치나 도시바, 마쓰시타(파나소닉) 등의 대형 가전기기 기업들은 물론, 캐논이나 리코등 사무기기 메이커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간 전자계산기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극비리에 계획을 진행

 

지금까지의 전자 계산기와는 완전히 다른 크기나 구조 때문에 분명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형화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전자 계산기라면 8자리 계산이 주류였지만, 그 걸 위해서는 LSI(집적 회로)를 2개 탑재해야 했으며, 본체의 크기가 커지게 됩니다. 소형화를 위해 처음에는 8자리의 반인 4자리도 생각했지만, 당시의 주류에서는 크게 벗어나는 셈입니다. 거기에 99만 엔까지 계산할 수 있는 6자리로 만들었습니다. 1개의 LSI에서 6자리의 계산을 하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그 결과 소수점 이하의 계산을 빼버리는 것 같은 결단도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원래 볼링장의 계산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으니, 그렇게 자리수가 많은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기능 뿐만 아니라 키보드의 소형화에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 전자 계산기의 키보드는 1개 1개의 버튼이 독립된 자석식 리드 스위치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걸로 손바닥 크기의 전자 계산기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1장은 판 패널 스위치를 써서 스위치의 크기를 줄였고, 제조 비용도 기존의 1/20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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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 미니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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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판 패널 스위치를 써서 스위치 크기를 소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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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리 숫자를 표시하는 형광 표시관

 

가시오씨는 이 구조와 설계를 당시 설계 부문 담당자에게 알렸고, 의뢰를 받은 담당자는 호텔에 1주일동안 머무르면서 이 기능을 검증했다고 합니다. 사실 카시오 미니의 프로젝트는 가시오씨가 거의 단독으로 진행한 것인 만큼, 진행은 극비리에 이뤄졌던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전자 계산기 전쟁'이라 할 만큼 많은 제조사가 난립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는 전자 계산기를 만드는 회사가 많았고, 그 회사들은 같은 제조사의 반도체를 썼습니다. 어떤 제조사가 새 제품을 만들려고 반도체 제조사에 발주를 내면, 반도체 제조사가 '아, 저 곳은 어떤 새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구나'라는 게 곧 알려지고 맙니다. 그대로 다른 계산기 제조사에게도 알려지게 됐지요.'

 

그래서 가시오씨는 묘책을 짜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에 발주를 할 때, 전자 계산기가 아니라 카운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전자 계산기라면, 덩치가 크고 8자리 계산이 당연했지만, 카시오 미니는 6자리 계산에 크기도 작았으니 반도체 제조사도 믿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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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를 염두에 두고 붙인 스트랩과 질감. 카메라와 같은 디자인입니다.

 

카시오 미니는 작은 크기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높게 평가받는 물건입니다. 휴대성을 배려한 스트랩에 더해 고급스러운 마무리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카메라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원한다고 가시오씨 스스로가 잘 알고 지내는 디자이너에게 부탁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보면 표면 질감이나 스트랩의 모양이 당시의 카메라와 같은 분위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인 가즈오씨가 뒤를 받쳐줌

 

내부 설계가 완성되고 디자인도 결정됐습니다. 남은 건 제품화인데 가시오씨는 '이게 정말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출시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다고 합니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라지만 계산 자리 수를 기존 계산기의 절반으로 줄인 것이나, 소수점 이하의 계산을 빼버린 것은 당시 전자 계산기의 상식을 벗어난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을 날려버리고 등을 밀어 준 인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시오 유키오씨의 형인 현 카시오 사장, 가시오 가즈오씨였습니다. 가즈오씨는 '이건 굉장한 제품이다. 무조건 팔린다! 지금이라도 착수하면 전자 계신기 시장이 변한다'라고 말하면서 당시 한 달 생산 능력이 1만 대였던 공장에 한 달 10만 대라는 파격적인 발주를 넣었습니다.

 

또 영업 전략에도 주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업무용으로 다뤄졌던 전자 계산기의 판매 루트를 전국 문구점까지 넓히고, 지금까지 전자 계산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젊은 층에 접근하는 데 성공, 총 천만 대의 판매를 기록한 대 히트 제품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유키오씨는 당시를 되돌아보며  '형을 비롯해 영업이나 광고팀이 카시오 미니를 크게 도와줬다. 형은 처음부터 천만 대를 팔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고 말하며, 카시오 미니의 성공은 형과 가족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형제 4명의 재능을 살려 성장을 계속한 카시오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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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 계산기의 창업자인 가시오 다다오씨(앞줄 왼쪽, 장남)을 포함한 4명의 형제가 회사를 세웠습니다.

 

사실 가족이 힘을 합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 것은 카시오 미니가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시오 계산기의 창립자인 가시오 다다오씨는 유키오씨의 큰형으로, 카시오 계산기는 4명의 남자 형제가 키운 회사입니다.

 

장남인 다다오씨가 독립해 창립한 카시오 제작소는 현미경 부품이나 톱니바퀴 등을 만드는 작은 하청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둘째 도시오씨는 기술자로 체신성 도쿄 체신국(현재의 NTT)에서 전신시설의 부설이나 정비를 하고 있었지만 형을 돕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가시오 제작소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차남인 도시오씨는 발상력이 뛰어난 발명가 기질이 있어, 담배를 숨길 수 있는 반지 모양의 파이프, '반지 파이프'를 고안해 냈습니다. 이걸 쓰면 일을 하면서 담배를 끝까지 필 수 있다는 제품이었는데, 이 제품으로 조금씩 이익을 냈다고 합니다.

 

회사의 운명을 바꾼 건 1949년에 긴자에서 열린 비즈니스쇼에서 외국제 전동 계산기를 본 것입니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되던 것은 손으로 핸들을 돌려서 톱니바퀴를 옮기는 수동식 계산기였는데, 도시오씨가 본 전동 계산기는 모터로 톱니바퀴를 돌린 것입니다. 도시오씨는 이 제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개발에 몰두합니다.

 

셋째인 가즈오씨, 막내인 유키오씨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두 형이 일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가시오 제작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가시오 유키오씨는 '둘째 형 도시오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릴레이 계산기를 발명했습니다. 저도 설계에 합류해 훌륭한 제품의 실용화를 향해 필사적으로 대응했지요'라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릴레이 계산기는 당시로서 획기적인 릴레이(계전기)를 사용한 계산기입니다. 이걸로 회로 설계를 대폭 개량해 소형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의 전자 계산기와 같은 숫자 패드를 사용하는 등, 모든 부분에서 독창적인 제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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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의 히무라 제작소에 전시된 릴레이 계산기 카시오 14-B형. 카시오 계산기 창업 시 출시한 릴레이 계산기 카시오 14-A형을 개량한 모델로, 기술 계산용으로 높은 평가를 얻은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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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숫자 패드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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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자인 가시오 도시오씨의 초상. 좌우명은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발명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낸다'

 

또, 네명의 형제가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업의 성공에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맏형 다다오는 나이가 크게 차이나기도 해서, 형이라기보다는 부모같은 존재였습니다. 높은 인격을 갖췄으면서 효자이기도 했고, 형제를 생각하는 게 각별한 상냔한 형이었습니다. 릴레이 계산기를 발명한 둘째 형 도시오는 진짜 제대로 된 발명가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형 가즈오는 뛰어난 영업사원으로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유키오씨는 원래 설계를 배우고 있었던 경력을 살려, 도시오씨가 발명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계 설계나 가공 기술로 사업에 공헌했습니다. 물론 카시오 미니의 개발도 큰 업적입니다.

 

'운이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들지 않았어도 어차피 누군가가 저 크기의 전자 계산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언제 만드느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족하면 그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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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 미니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미니어처 복각판(왼쪽). 카시오 게산기의 전자 계산기를 산 사람을 대상으로 12월 31일까지 선물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볼링장에서 점수 계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카시오 미니. 가시오 유키오 씨에게 '실제 볼링에서 써 보았느냐'는 질문을 하자 가시오씨는 '카시오 미니가 완성됐을 때는 볼링 인기도 수그러들었다'라며 웃었습니다.

 

볼링의 인기는 사라졌지만 카시오 미니에서 시작한 카시오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탑재한 제품을 잇달아 발표하며 분야를 시계, 전자사전으로 넓히면서도 회사명에 붙어있는 계산기, 즉 전자 계산기의 개발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전 세계에서 전자 계산기를 판매 중이며, 지금까지 총 10억 대의 계산기를 팔았습니다.

 

마지막으로, 1959년의 릴레이 계산기, 1972년의 카시오 미니,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시오 계산기가 업계 1위를 게속 지키고 있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위기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족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그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가 사용하는 보이스 레코더나 핸드폰에 흥미를 보였고, 카시오 직원이 최신 전자 게산기를 설명할 때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82세라는 고령이지만 아직도 새 제품에 흥미를 게속 가지고,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인다는 자세가 카시오 계산기의 진수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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