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0_3800_t.jpg

 

지인의 소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이드와인더 X4 키보드를 저렴한 가격에 사용해 왔어요. 게임할 때 쓰기 좋게 매크로 기능 키가 있고 LED 백라이트 기능이 있어서 밤에도 편하게 썼는데 2년 반이 흐르니 자주 사용하는 키캡이 보기 흉하게 벗겨졌지요. 그래서 어떤 키보드를 살까 오픈 마켓에서 검색하던 찰나, 이왕이면 튼튼하면서 오래가고 타이핑하기 좋은 걸로 사야겠다 싶어 기계식 키보드로 골랐어요.

 

독일의 체리(Cherry) 사에서 나온 G80-3800 이란 모델인데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는 가격이 8만원 대라 비교적 저렴하고 널리 쓰이는 MX 스위치를 체리에서 직접 만든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서 구매하게 됐어요.

 

뭐, 게임은 예전처럼 많이 하지 않고 글 쓰는 걸 더 좋아해서 청축으로 선택했지요. 키를 누르는 압력의 크기와 소음의 정도에 따라 갈축과 적축, 흑축으로 된 같은 제품도 있었지만 글자 입력이 물 흐르듯 시원하게 넘어간다는 청축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네 가지 타입 중에 소음이 가장 심하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직접 느껴 보고 싶었으니까요.


 

g80_3800_1.jpg

 

우선은 이렇게 주문한 키보드가 왔으니 제품을 뜯어 봐야겠네요. 에어캡을 이중으로 뻑뻑하게 두른 포장이라 키보드 상자는 손상 없이 무난하게 잘 도착했는데.


 

g80_3800_2.jpg

 

에어캡을 뜯고 보니 회색 키캡과 키캡을 분리할 수 있는 리무버, 전자파 차단 스티커가 들어있었네요. 단순히 키보드랑 품질 보증서 정도만 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것들은 구매 시 번들로 챙겨 주는 모양이에요.


 

g80_3800_3.jpg

 

상자 뒷면엔 청축을 포함한 네 가지 타입의 동작 특성을 영문으로 적고 그 위엔 한글로 간단하게 제품을 특징을 표시했네요. 봉인 씰을 떼고 상자를 열면 아래 사진처럼 비닐 포장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g80_3800_4.jpg

 

g80_3800_5.jpg

 

상자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은 품질 보증 및 사용 설명서와 G80-3800 본체가 전부네요. 인터페이스는 USB 전용이라 PS/2 젠더가 같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워낙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라 쓰는 데 문제는 없을 거에요. 케이블 길이는 약 1.8m 내외 이면서 케이블 굵기는 기존에 쓰던 사이드와인더 X4 키보드만큼 적당히 굵어서 피복이 노출되거나 단선이 되는 일도 없을 거구요.


 

g80_3800_6.jpg

 

키캡의 글자나 문구는 모두 레이저 방식으로 인쇄돼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어서 몇 개월 혹은 몇 년 쓰다 금방 지워질 가능성은 낮은데 휘발성 용제로 제품을 세척하면 안 된다고 사용 설명서에 나와 있으니 이것만 주의하면 되겠네요. 그래도 세척은 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체리 코리아 홈페이지를 통해 소모품 대리점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관련 홈페이지로 접속해 고급 키스킨을 주문해서 사용해도 괜찮아요.


 

 

g80_3800_8.jpg

 

키보드 아랫면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네요. 좌우 측면에 고무 재질로 된 받침과 음료나 물 등을 자판에 쏟을 것을 대비해 방수 구멍이 만들어져 있고 키보드 높이를 조절하는 지지대는 작지만 단단해서 타이핑에 따라 키보드의 좌우 높이가 맞지 않아 뒤뚱거리거나 오랜 시간 사용해도 뒤틀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g80_3800_9.jpg

 

그리고 기계식 키보드는 두꺼운 철판과 판 스프링을 비롯한 부품들이 사용돼 대체로 1kg를 넘는 제품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G80-3800은 780g 밖에 되지 않네요. 제가 쓰던 멤브레인 방식의 사이드와인더 X4보다 200g 이나 더 가벼운데 멤브레인 키보드처럼 두께를 얇게 뜨고 구조를 좀 더 간단하게 만들어서 무게를 줄이지 않았나 싶어요. 무게를 이 정도로 줄였어도 키보드를 격하게 다루지 않는 이상은 타이핑 하는 중에 키보드가 옆으로 움직이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 다루거나 기존에 쓰던 사용자들에겐 반가운 특징이지요.


 

g80_3800_10.jpg

 

기계식 키보드를 다루면서 자주 사용하던 키는 임의로 다른 키로 바꾸고 싶다거나 청소가 필요할 땐 번들로 들어있는 리무버로 간편하게 뽑을 수 있어요. 틈 사이를 눌러 고리에 걸리게 박은 다음 위로 한 번에 들어내면 그대로 뽑혀 올라오니까요. 키캡을 끼울 때는 사면이 많이 보이는 부분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면 끝이에요.


 

g80_3800_11.jpg

g80_3800_12.jpg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키캡을 들어내고 끼우면 윗 사진처럼 맞출 수 있어요. 컨트롤 키와 알트 키 2세트, 방향키와 WASD키, 좌우 시프트 키를 포함한 구성이라 사용자 입맛에 따라 키캡을 둘 수 있을 정도에요. 좀 더 다양한 키캡을 원한다면 키스킨 구매 시와 동일한 방법으로 대리점 홈페이지를 통해 구매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청축 타입으로 골라 본 G80-3800의 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했는데 짧은 타이핑 동영상을 담아봤어요. 고무판을 플라스틱으로 통통 두들기는 멤브레인 키보드와는 달리 누를 때마다 딸깍거리는 청축의 소리와 누르고 나서 스프링으로 알맞게 튀어 오르는 반발력을 느낄 수 있었지요. 청축이라 키를 누르는 압력의 크기도 상당히 작아서 부담 없이 두들기는 사용자에겐 딱 이네요.


 

물론 모두가 잠든 밤에 집안에서 이걸 두들긴다면 이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볼멘소리를 들을 순 있겠지만요. 제가 써 본 느낌으론 생각보다는 그렇게 소음이 심하진 않고 통통거리는 멤브레인 키보드보다 소리가 크지만 맑아서 오히려 듣기 좋다고 해야 할까요? 높이도 낮은 데다 역시 청축이라 그런지 손목에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네요.


 

g80_3800_14.jpg

 

비록 체리의 G80-3800이 기계식 키보드 중엔 저가형 제품이라 무한 입력 기능을 지원하거나 매크로 기능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저처럼 오랫동안 멤브레인 키보드를 사용하다 기계식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고 써 볼 사용자라면 만족을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다른 건 다 빼고 106 키보드를 기준으로 설계한 제품이라 겉모습부터 거부감이 들지는 않으니까요. 담백한 기계식 키보드의 멋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체리가 만든 G80-3800을 한 번 두들겨 보는 건 어떨까요?

 

 

작성자 : 야르딘
kjh16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