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엡손이란 브랜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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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현 스와시의 세이코 엡손 본사

 

1975년 6월 12일에 일본 信州精器는 EPSON이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40주년이 됐지요. 이 브랜드는 제품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이름이 됐으며 인후 인수 합병에 따라 세이코 엡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지금도 전세계 140개 나라에서 엡손 브랜드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지요.

 

 

EPSON의 의미: EP-101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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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브랜드 제정을 기념삼아 공장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사진 중앙이 당시 엡손 사장이었던 나카무라. 허나 이 나무는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엡손이란 브랜드가 유명하지만 이 브랜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1968년 9월에 출시를 시작한 소형 경량 디지털 프린터인 EP-101이 그 주인공입니다. EP-101은 엡손의 첫 프린터로 전자식 탁상 계산기용 프린터로 개발한 것이며 한때는 전세계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 누적 판매수 144만대를 기록한 전설적인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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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EP-101의 아이들(SON)이 세상이 많이 퍼지라는 의미로 만든 게 EPSON입니다.

 

허나 당시엔 반발이 많았다네요. 어감이 이상하다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대기업인 엑슨과 비슷하다, 미국의 설사약 중에 비슷한 이름의 약이 있다, 영국의 더비 이름과 비슷하다, SON이 들어가면 SONY는 어떡하느냐까지.

 

사실 엡손 브랜드를 정한 이후 정보 기기 분야로 진출을 모색하던 미국 엑슨이 상표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으로 분쟁을 하거나 여기에 매각하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엑슨이 정보 기기 분야 진출을 단념하면서 없던 일이 됐지만.

 

 

과장 회의에서 결정된 엡손 브랜드

 

엡손 브랜드는 위에서 정해 아래로 통보한 게 아니며 사내 공모를 통해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당시 프린터 사업을 담당하던 제품 사업 부장을 비롯한 약 15 명이 참석한 과장 회의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별도의 브랜드를 필요로 하는 제품은 없었습니다. 브랜드의 유래가 된 미니 프린터 EP-101도 전자식 탁상 계산기에 포함된 것이라 브랜드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주력 사업이었던 시계 제조도 모회사인 스와 정공을 통해 핫토리 시계에 납품하는 하청 회사인지라 여기서도 자사 브랜드는 필요 없었습니다.

 

이때 유일하게 브랜드가 필요했던 이유는 외국에서 상담을 할 때 신슈세이기라는 회사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거나 기억하기 어렵다고 지적받은 것 정도일 겁니다.

 

여기에는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사실 엡손 브랜드가 일본에서 정식 발표된 것이 1975 년 6월인데 미국 법인인 Epson America Inc.가 설립 된 것이 1975 년 4월. 일본에서 발표되기 전에 미국 법인의 이름으로 엡손 브랜드가 쓰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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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의 로고

 

 

꿈같은 제품을 계속 만들자는 의미를 담다

 

브랜드가 불필요한 제품을 가진 회사가 왜 브랜드를 도입한 것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자사 브랜드 제품을 통한 사업 전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과장 회의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브랜드가 지닌 컨셉으로 1961 년에 신슈 정밀 기기를 설립하고 약 5년이 지난 지금, EP-101을 출시하면서 배운 것을 계속 활용하고 싶고, 앞으로의 새로운 수요를 파악하고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있어 최적의 브랜드를 제정하고 싶다는 목표를 삼아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음이 좋은 브랜드가 후보로 나와도 목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가운데 나온 것이 넵슨이었는데, 이 이름을 제안한 건 당시 차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으며 이후 세이코 엡손의 전무 이사를 맡은 치치하시 미쯔였습니다. 높은 인기를 누린 EP의 아이들이란 의미를 가진 브랜드에 회의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합니다.

 

여기에 대해 당시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EP-101의 아이들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EP-101에서 실현한 꿈같은 제품을 계속해서 만드는 브랜드라는 것, 단순한 EP의 아이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꿈과 같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이코 엡손의 우스이 미노루 사장은 "세상의 여러 문제를 새로운 기술로 해결하고 꿈을 실현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회사의 기본 자세를 밝히는데, 엡손이란 브랜드에도 그런 자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엡손 브랜드를 가장 먼저 사용한 제품은 1977년 6월의 회계 법인용 컴퓨터인 EPSON EX-1로 브랜드가 정해지고 2년이 지난 후에 나온 것입니다.

 

 

꿈같은 제품, EP-101이란?

 

그럼 엡손 브랜드의 발단인 EP-101은 어떤 제품일까요? EP-101은 이 회사의 첫 프린터이자 세계 최초의 소형 경량 디지털 프린터라고 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당시 다른 제조사에서 출시한 프린터는 무게가 10kg 이상이고 체적도 30L 이상의 거대한 것이었지요. 이에 비해 EP-101은 164 × 135 × 102mm로 크기를 대폭 줄였으며 무게는 2.5kg로 한손으로 움반할 수 있었습니다. 또 기존의 프린터는 구동 전압이 100V지만 EP-101은 17V로 구동할 수 있었으며, 소비 전력은 대기 상태에서 150mA, 최대 부하 인쇄에도 410mA로 약 1/2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형, 경량, 저전력은 세이코 엡손의 기술에 따른 것입니다. 21자리 인쇄를 실현한 EP-101은 1자리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티리거 전자석, 트리거 레머, 해머 레버로 줄였는데, 여기에는 시계 제조에서 축적한 정밀 가공 기술이 쓰였습니다. 또 소형 모터에는 시계의 크리스탈 모터 기술을 으용해 전력을 절감했습니다. 이런 간단한 구조는 5백만번의 인쇄 수명을 실현해 안정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전자식 탁상 계산기에서 계산한 결과를 빠르게 인쇄하고, 장소를 차지하지 않고 설치 가능한 EP-101은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혁명적인 제품이었으며, 출시 후 반응은 예상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그때는 주판 대신 전자식 탁상 계산기가 사무실에 도입되던 시기여서 전자식 탁상 계산기의 제조 업체와 계측기 제조사에서 상담이 쏟아져, 처음에는 한달 2천대 생산으로 시작했으나 이걸론 물량을 맞출 수 없어 현재 엡손 다이렉트의 본사가있는 무라이 사업장으로 생산을 이관해 한달 2만대 생산으로 확대, 또 나가노현에 새로 공장을 만들어 한달 3만대 생산 체제로 확충, 마지막엔 6만대 규모를 달성하고 수출도 늘렸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15개의 전자식 탁상 계산기 제조 업체가 있었으며 이들을 모두 합한 월 생산량은 1만대였습니다. 그걸 크게 넘어서는 물량을 출시했다는 것만 봐도 EP-101이 얼마나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다.

 

EP라는 이름은 전자 프린터를 뜻하는 Electric Printer에서 유래된 것이나, EP-101은 트리거 전자석에 전기를 흘려보내 트리거 레버가 작동, 이것이 해머 레버를 밀어 인쇄 드럼 위의 리본을 두드려 인쇄하는 구조니 전자 프린터보다는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프린터라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EP-101의 101은 나중에 전무 이사를 맡게 되는 아이자와가 평소 즐겨 읽던 유럽의 음악을 소개한 책의 제목이 101곡집이라서 그렇다네요. 원래대로라면 첫 제품엔 100이란 번호를 붙여야 하는데 대신 101이라고 붙인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프린터 사업의 시작. 프린팅 타이머

 

엡손 브랜드의 시작에는 EP-101이 있습니다. 그럼 이 회사 프린터의 시작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좀 더 옛날 이야기를 봅시다.

 

시계를 주로 만들던 세이코 그룹이 프린터를 처음으로 개발한 건 1964 년 도쿄 올림픽에서 채택된 프린팅 타이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링팅 타이머는 스포츠 경기용 전자 기록 시스템으로 시간 측정 기구(타임 카운터)와 인쇄기구를 통합한 것으로, 시작 안내, 전광판, 사진 판독 장치와 연동해 시작부터 끝까지의 기록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제품이며, 이 기록의 인쇄도 동시에 수행하는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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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 정공에서 개발한 프린팅 타이머 V형 모델

 

타임 카운터에는 고정밀 크리스탈 시계를 채용해 수정 발진기의 시간 신호에 따라 시작하면 기계식 카운터가 회전, 목표에 도달하거나 한바퀴를 돌면 전자 해머가 작동해 인쇄 기구가 1/100초만에 내장된 롤 페이퍼에 한자리 숫자를 기록하는 구조입니다. 이 인쇄된 점을 이용해 1/1000초까지 볼 수 있지요. 도쿄 올림픽에선 15대의 프린팅 타이머를 육상 경기에 사용, 올림픽 사상 최초로 시간 측정에 대한 클레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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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프린팅 타이머의 개발은 신슈의 모회사인 스와 정공과 세이코 등의 3개 회사로 3종류의 프린팅 타이머가 개발됐습니다. 이후 회사들이 공동 개발하기도 했고 도쿄 올림픽의 공식 기기로 체택된 건 세이코 크리스탈 크로노미터 QC-951입니다.

 

신슈가 프린팅 타이머 개발을 직접 시작한 건 도쿄 올림픽이 폐막된 후인 1965년이며 이때 V형 모델을 내놓습니다. 스와 정공이 위주로 개발하고 신슈의 일부 기술자가 참가해 소형, 경령, 저전력화를 실현, 프린팅 타이머의 활용 범위를 넓혔습니다.

 

가장 먼저 V형 모델이 쓰인 건 1966년 2월에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개최된 제21  국민 체육 대회 동계 대회 스키 경기로, 산악 지대에서 열리는 스키 경기를 측정해야 하는데 휴대하기 편리하고 설치 장소를 차지하지 않으며, 전력 환경도 배려하기에 V형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6년 12월에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안게임에서도 쓰여, 12월에도 30도를 넘는 더운 곳에서도 잘 작동했습니다.

 

추운 곳과 더운 곳에서도 모두 작동하는 프린팅 타이머를 개발했고, 이것은 신슈의 프린터 개발로 발전해 현재 세이코 엡손의 프린터 사업으로 연결됐습니다. 이렇게 보면 도쿄 올림픽에서 사용된 프린팅 타이머는 세이코 엡손 프린터 사업의 기본 개념이며, 이를 계승해 만든 프린팅 타이머는 세이코 엡손 프린터 사업의 기술 원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개발 완료 후 출시까지 3년이 걸리다

 

프린팅 타이머 V 형이 1965년에 개발되고 EP-101이 출시되는 1968년 9월까지는 약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허나 당시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EP-101의 기본 기술은 1965년에 거의 확립되어 바로 출시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허나 3년 동안 시장 조사를 반복했고, 그 결과 3년이 지난 후에야 출시됐다고 합니다.

 

당시 개발팀은 EP-101의 기술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용화 프린터의 첫 개발이며 먼저 제조한 후 판매하고, 기존의 탁상 계산기 제조 업체가 새로운 기술을 지닌 제품을 출시하지 않을까 위기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감을 갖게 된 데엔 시계 사업에서의 경험이 있습니다.

 

1956년에 출시된 기계식 시계 세이코 마블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미국 BULOVA의 전자 시계가 갑작스럽게 등장합니다. 1960년에 출시된 이 전자 시계는 음차 기술을 손목 시계에 사용해 하루 2초의 오차에 그치는 정확성을 실현해, 예상치 못했던 기술의 등장으로 기계식 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위기감이 업계에 퍼지게 됩니다.

 

특히 세이코 그룹은 차세댸 시계로 수정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완성까진 아직 시간이 걸리다보니,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회사의 존폐 위기를 느낄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존에 경험이 많은 시계 업계에서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술으 등장으로 시장이 크게 변화하는 경험이 있다보니, 새로운 분야인 프린터 사업을 시작할 때는 훨씬 신중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고, 결과적으론 처음 기술을 그대로 사용한 만큼 3년 동안의 기회를 잃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이 온전히 손해만 본건 아닙니다. 하나는 3년 동안 EP-101에 탑재한 기술의 특허 등록을 마친 것, 그리고 그동안 전자식 탁상 계산기 시장이 성숙하기 시작한 점도 이후 EP-101의 보급에 긍정적인 요소가 됐습니다. 또 그동안 후속작을 개발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놓칠 수 없습니다.

 

이 회사는 EP-101을 출시하면서 이미 후속작의 개발에 착수, 경쟁 업체가 등장하자 EP-101의 절반 가격으로 후속 제품을 출시해 경쟁사를 압도했습니다. 이후 1호 제품의 개발과 동시에 후속 제품을 개발에 착수하는 건 세이코 엡손의 고전적인 수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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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브랜드 최초의 제품인 회계 사무소를 위한 컴퓨터 EPSON EX-1

 

 

 

2. 엡손의 정체성을 이어온 프린터, 그렇지 못했던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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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제품이 된 PC용 프린터 MP-80

 

 

MP-80부터 본격화 한 PC 용 프린터 사업


세이코 엡손의 가장 큰 기둥은 프린터 사업입니다. 엡손 브랜드의 발단이 된 미니 프린터 EP-101의 성공을 바탕으로 개인 컴퓨터용 프린터 개발에 착수, 1979년에는 엡손 최초의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TP-80를, 1980년엔 후속작인 PC용 프린터 MP-80을 출시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프린터 사업으로 이어집니다.

 

엡손이 PC용 프린터를 출시하기 직전인 1978년에는 히타치 제작소에서 베이직 마스터를, 샤프에서 MZ-80을 출시하면서 PC라는 이름이 일반화됐습니다. 1979년에는 NEC에서 PC-8001이 등장해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막 펼쳐지려 하던 때입니다.

 

세이코 엡손은 PC가 등장하면서 개인 사용자가 이용하는 컴퓨터의 시대가 펼쳐질 것에 대비, 개인을 위한 프린터를 만드는 데 도전했습니다. 당시 PC 주변기기는 컴퓨터 제조사의 순정 제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프린터도 마찬가지였지만, 엡손은 써드파티 시장이 존재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 분야에 진출한 것입니다.

 

상품화를 할 때는 프린터 사용 환경을 철저하게 검증해, 그것을 바탕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고려해서 개인 사용자와 기업 사용자의 편리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를 곳곳에 넣었습니다. 더욱 커진 하모니카 방식의 인쇄 리본의 채으로 리본 교체 빈도를 줄이거나, 급지 문제를 줄이기 위해 모터를 추가하는 건 사용자의 편리성을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출시 이듬해인 1981년에 일본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히트 제품에 올라선 MP-80는 용도에 따라 3가지 모델이 나왔습니다. 타입 1은 비즈니스용 프린터, 타입 2는 개인을 위한 고해상도 슈퍼비트 이미지 프린터, 타입3는 차세대 프린터 명령의 표준인 ESC/P를 처음으로 탑재한 다기능 모델이었습니다.

 

이처럼 기업용부터 개인용까지 다양한 사용자를 지원하는 제품 전략이 이 제품의 히트를 뒷받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작고 가볍다는 점을 내세워 섹시 프린터라고 불리는 등 큰 인기를 기록했습니다. 주문 생산이 늦다보니 비행기를 전세내서 운송한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MP-80의 히트는 프린터는 엡손이란 이미지를 세움과 동시에, 정보 기기 분야의 종합 제조사를 목표로 하는 기반을 구축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 그 이상으로 경영에 큰 도움이 준 것이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판매망의 정비나 공장에 자동 조립 라인을 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네요. 엡손 브랜드를 쓰는 자사 제품을 추진하는 토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기원을 이룬 제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힘겨운 시작이었던 잉크젯 프린터


하지만 현재의 세이코 엡손 프린터 사업에서 주축을 담당하는 잉크젯 프린터의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엡손의 첫 잉크젯 프린터인 IP-130K는 1984년에 발매한 흑백 프린터입니다. 멀티 노즐 잉크젯 프린터가 없던 시절, 피에조 방식을 이용한 프린트 헤드를 도입해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100V의 전압으로 구동하는 회로 때문에 덩치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가격이 10만엔이 채 안됐는데 IP-130K는 49만엔으로 매우 비싸 결코 대중적인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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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의 첫 잉크젯 프린터인 IP-130K

 

또 같은 1984년에 미국 휴렛 팩커드가 레이저젯을 출시하면서 사무실에 레이저 프린터가 보급됐습니다. 같은 잉크젯 방식을 사용한 캐논은 구조가 간단하고 비용 절감에 유리한 열 방식을 도입해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와 비교할만한 저렴한 제품을 출시하다보니, 가격이 비싼 압전 방식의 세이코 엡손은 경쟁이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엡손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시장이 줄어드는 한편, 레이저 프린터에 뒤처지고 잉크젯 프린터에서도 타개책을 찾을수 없어 세이코 엡손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프린터 사업에 종사하던 세이코 엡손의 우스이 미노루 사장은 "세이코 엡손 그 자체가 무너지는게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지만 세이코 엡손이 프린터 제조사로서 주도권을 찾기 위해선 레이저 프린터와 감열 방식의 잉크젯 프린터를 뒤따르는 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이런 강한 위기감 속에서 세이코 엡손에게 남은 방법은 피에조 잉크젯 기술로 활로를 찾는 것 뿐이었지요.

 

 

우연이 낳은 마이크로 피에조 성공의 씨앗


시행 착오를 거듭하면서 엡손이 도달한 결론은 피에조 소자 자체의 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하게 해결됐지요. 필립스가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구동용 액츄에이터로 제안했던 소자를 잉크젯 프린터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 자리에 마침 우스이 사장이 우연히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조금 바꾸면 우리 용도에 적합하며 훨씬 낮은 구동 전압으로 높은 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말할 수없는 행복감이 생겨났음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라는군요.

 

샘플을 테스트한 결과 30V의 전압에서 1μm의 변형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소자를 채용한 새로운 구조의 헤드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걸로 잉크 방울을 정확하게 날리는 위력을 낼 뿐만 아니라, 전압을 낮춰 구동 회로와 프린터 본체의 크기를 줄여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확신이 섰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레이저 프린ㄴ터와 열전사 잉크젯 프린터에 맞설 기술을 확립하고 경쟁선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엡손은 이 기술을 MACH라 부르며 이것을 탑재한 첫 제품인 흑백 잉크젯 프린터 MJ-500을 1993년 3월에 출시했는데, 가격도 74800엔으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IP-130K이 출시되고 무려 9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반격은 유효했지요. 1994년 6월에는 컬러 잉크젯 프린터 MJ-700V2C를 출시, 세계 최초로 1인치 크기에 720x720개의 점을 인쇄하는 720dpi의 고품질 인쇄를 실현, 큰 인기를 누리면서 전 세계에 30만대를 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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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720dpi를 실현한 MJ-700V2C"


또한 1995년 6월에는 Colorio 브랜드를 처음으로 쓴 MJ-500C / 800C를 출시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사진 화질을 크게 발전시킨 PM-700C를 출시했는데, 시안과 라이트 마젠타를 더한 6색 잉클로 그레인을 줄인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표현에 성공, 높은 화질을 구현했습니다. 이로서 사진 인쇄=컬러리오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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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오는 Color에 입출력을 의미하는 Input과 Output의 머리글자를 합친 것입니다.


 

EP 모델의 부활. 프린터가 달라지다


2008년 9월에는 세이코 엡손 잉크젯 복합기의 신제품으로 EP-801A가 출시됐습니다. 이 EP 모델은 지금까지도 출시되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엡손의 초기 모델인 EP-101이 엡손 브랜드의 원형이니까 그 모델군을 부활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EP-101의 EP는 Electric Printer가 어원이지만 지금의 EP는 Epson Printer가 어원이라는 점은 다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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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번호를 부활시켜 프린터 사업의 원점으로 돌아온 EP-801A

 

그럼 왜 이 시점에 EP를 부활시킨 것일까요. 그건 하나의 반성에서 시작됩니다. 돌이켜보면 EP-101과 MP-80 같은 제품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이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경우 생산 방법까지 개발해냈으며 판로도 스스로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제품을 목표로 한다는 높은 뜻이 있었지요. 그것은 세이코 엡손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EP-801A를 출시하기 전까지 엡손의 프린터 사업은 결코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 내역을 보면 인쇄 속도와 인쇄 품질이나 부가 기능 등의 기술을 개선하는데 집착하고, 프린터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가치를 제안하는 것이 소흘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용자는 안중에도 없이 기능 경쟁에만 몰두하게 됐지요. 그래서 EP 시리즈를 다시 만들면서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는 원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실제 환경에서 프린터는 1년에 한두어번 사용하고 평소에는 치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쓸려고 꺼냈을 때 잉크 카트리지가 막혀서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지요. 실제로 일본에서 잉크 카트리지의 평균 1년 소비량은 6개. 6색 카트리지의 경우 1년에 한번씩 바꾸는 수준입니다. 즉 1년에 한번 쓰고 바꾼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엡손은 이를 위해 디자인을 바꾸고 케이스를 소형화, 항상 거실에 둘 수 있는 프린터를 개발하는 걸 답으로 내놓았습니다. 또 헤드 튜브에 잉크를 발송하는 오프 캐리지 방식을 채용해 잉크가 막히는 문제도 개선했습니다. 여기에 맞춰 Colorio의 브랜드 정의도 바꿔 단순한 사진 프린터가 아니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를 목표로 하게 됩니다.


이후 세이코 엡손은 일본 프린터 시장에서 점유율을 탈환하기 시작합니다. EP-101 시절부터 쌓아온 정신을 살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EP 시리즈로의 회귀는 엡손의 기본 사상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PSON 브랜드의 첫 제품은 회계용 컴퓨터


세이코 엡손은 오랫동안 컴퓨터 사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사실 1975년에 나온 엡손 브랜드를 처음으로 쓴 제품도 프린터가 아닌 컴퓨터였지요. 엡손은 1977년에 회계 사무소를 위한 컴퓨터인 EPSON EX-1을 출시했는데 이것이 엡손 브랜드 최초의 제품입니다. 그리고 이 상품화를 계기로 엡손은 컴퓨터 사업에 뛰어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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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SON 브랜드의 첫 제품인 EX-1'


EX-I는 CPU에 인텔의 8080 8비트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20KB의 메모리와 8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두개 탑재했습니다. 또 기존의 오피스용 컴퓨터에서 약점으로 지적됐던 출력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시리얼 프린터보다 선명한 인쇄 품질과 빠른 인쇄가 가능한 독자적인 라인 프린터 M-2610을 표준 탑재한 것이 특징입니다.


OS부터 개발 환경까지 모두 직접 개발했으며, 응용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는 회계 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실제 작업에서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는 데 노력했다네요.


이 때의 경험은 이후 의료 분야의 사무 처리 전용 컴퓨터, 주요소 전용 컴퓨터 등 특정 업종을 위한 특화형 컴퓨터 사업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화제를 모은 PC-98 호환기종 사업과 지금까지도 엡손 다이렉트로 계속되는 PC 사업, 세이코 엡손이 계속 진행하는 회계 법인과 기업 회계 소프트웨어 사업의 시점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은 HC-20


처음으로 전세계에서 주목을 받은 엡손의 컴퓨터는 1982년에 출시된 휴대용 컴퓨터 HC-2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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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은 HC-20


 290x215x44mm의 A4 종이 정도의 크기, 1.6kg의 무게에 액정 디스플레이, 키보드, 프린터, 외부 저장 장치인 카세트 테이프와 RS-232C 포트를 표준 장착한 휴대용 컴퓨터로서 음성 커플러를 사용하면 네트워크 연결이 가능합니다. 또 내장 니켈 카드뮬 배터리로 약 50시간의 무선 사용도 가능하지요.


모바일 PC의 선구자에 해당되는 제품이며 세이코 엡손이 지닌 소형 경량 기술을 전세계에 알리는 게기가 된 제품이기도 합니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컴퓨터 제 4의 혁명이 되는 제품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반도체와 프린터, 액정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자사의 첨단 핵심 기술, 고밀도 실장 기술, 기계 기술을 결집해 만든 세계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로서, 수직 통합합에 집착하는 세이코 엡손의 정신이 하나가 된 제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PC-98 호환 기종은 당연한 선택?


한편 일본에서는 1987년 3월에 최초의 PC-98 호환 기종인 PC-286 시리즈가 나와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 노트북 시장에서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의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 것이 NEC의 PC-9800 시리즈인데요. 98이라고 불렸던 이 제품은 NEC의 독자적인 MS-DOS와 윈도우를 사용해 PC-9800 시리즈 용으로 개발된 응용 프로그램은 다른 회사에서 작동하지 않아 독점이라 할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98이 일본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 주목한 엡손은 PC-9800 시리즈의 응용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98 호환 기종을 상품화했습니다. 유럽/미국에서는 세계 표준이 된 IBM PC/AT 호환 컴퓨터가 널리 판매되고 있어 엡손도 미국에서는 IBM PC/AT 호환 기종을 출시했으나, 일본에서 PC 사업을 추진하면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98의 호환 기종을 출시한 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97년에 엡손은 '소프트웨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케치프라이즈를 사용하면서 98 호환 컴퓨터 시장에 진입했으나, 이후 게속된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NEC와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소송 문제가 발생


1987년 3월 13일, 세이코 엡손은 PC-9800 시리즈의 응용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최초의 98 호환 기종인 PC-286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PC-286은 모델 1부터 4까지의 4가지 제품을 준비했는데, 하위 모델인 모델 1은 하드디스크가 없으며 378,000엔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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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했지만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PC-286 Model 4


하지만 이에 대해 NEC는 "BIOS 및 ROM 부분에 비슷한 점이 많다"며 그해 4월 7일, 도쿄 지방 법원에 생산 및 판매 금지 소송을 제기하고 저작권 문제로 끌어 나갔습니다. 결국 세이코 엡손은 이 제품의 출시를 중단했고, 제품을 발표했지만 시장에 한번도 유통하지 못한 채로 사장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이코 엡손이 98 호환 기종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출시를 중단한 제품은 "분쟁이 되는 BIOS를 탑재한 제품은 불안하다는 영업적인 이유에서 발매를 취소한 것"이라 설명하고 저작권 침해가 아님을 주장하는 한편, 한달 후인 4월 24일에는 PC-286 Model 0을 발표합니다. 이것이 사실상 98 호환 기종의 첫 상품화 모델이 되지요.


엡손은 "Model 0은 Model 1 ~ 4와 완전히 다른 그룹에서 개발한 것" 이라 천명하며 "세이코 엡손은 저작권 보호에 엄격한 미국에서 IBM 호환 기종을 출시한 바 있다. 그 실적을 통해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제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해 새로운 제품도 저작권 침해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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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13일에 열린 98 호환 기종 사업 진출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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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출시된 PC-286 Model 0


같은 해 11월에 NEC와 저작권 문제를 화해하고, 세이코 엡손은 호환성을 높인 데스크탑 PC인 PC-286V, 노트북인 PC-286U 등의 신제품을 계속 출시, 1년 판매 목표롤 1만대로 잡았습니다. 세이코 엡손의 98 호환 기종 사업은 이듬해인 1988년에 1년 출하량이 20만대까지 늘어나는 급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8 호환 기종 사업은 1995년에 발매한 PC-586RJ를 마지막으로 종료됐습니다. 1993년에는 PC 직판 사업을 하는 엡손 다이렉트가 설립돼 Endeavor 브랜드로 진행하던 IBM PC/AT 호환 기종(DOS/V PC)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지금의 PC 사업으로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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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avor 브랜드의 첫 제품인 AT-1000


 

98 호환 기종 사업은 실패인가?


사실 세이코 엡손의 역사에서 98 호환 기종 사업은 실패로 분류되곤 합니다. 엡손의 지명도를 높이고 이 시기 일본 전역에 영업소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원동력이 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실패로 분류되는 건 98 호환 기종이 세이코 엡손의 이념인 창조와 도전에 어울리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 큽니다.

 

98 호환 기종 사업은 NEC의 98 사업을 따라가는 사업입니다. 주요 부품인 CPU는 인텔, O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권을 쥔 것이며 엡손의 독자적인 요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이코 엡손에게 중요한 사업이지만 엡손만의 특징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한 셈입니다. 엡손 사이트의 역대 사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98 호환 기종을 소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습니다.


PC 업계에서는 사업 매각이나 철수가 진행되는 등, PC 사업 환경은 전보다 어렵지만 그래도 엡손은 엡손 다이렉트를 통해 PC 사업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소형, 경량 등의 엡손이 가진 차별화 기술을 PC 사업에 활용해 거기서 차별화를 도모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 중입니다.


세이코 엡손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엡손 다이렉트는 일종의 자회사입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세이코 엡손의 전신이었던 신슈는 핫토리 시계의 자회사나 다름없었지요. 자회사가 거리를 두고 자유롭고 활발한 분위기를 조성해 사업을 펼쳐온 것이 지금의 세이코 엡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엡손이 PC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거기에는 엡손의 DNA가 발휘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엡손 다이렉트가 엡손에서 나온 회사이기에 더욱 기대할만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3. 면도기와 노래방, 로봇까지. 엡손이 만들어 낸 수많은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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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현 스와시의 세이코 엡손 본사에 있는 '물건 만들기' 박물관. 이곳은 본사 안에 위치한지라 공개된 시설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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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선 엡손의 역사적인 제품을 볼 수 있다네요.


 

세이코 엡손 여명기의 획기적인 제품


세이코 엡손이 여명기였을 때 획기적인 제품을 3가지 꼽는다면 작고 가벼운 디지털 프린터 EP-101,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인 세이코 쿼츠 아스 바겐 35SQ, 그리고 도쿄 올림픽에 사용된 소형 크리스탈 시계인 세이코 크리스탈 크로노미터 QC-951일 것입니다.

 

모두 그 전까지는 없었던 제품이자, 세이코 엡손이 주장하는 에너지 절약, 작은 크기, 정확도를 추구한다는 정신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세이코 엡손의 DNA를 계승한 제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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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브랜드를 만들어 낸 소형 디지털 프린터 EP-101은 1968년 9월에 출시됐습니다. 그 전까지 없었던 소형화와 높은 내구성을 실현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위 사진은 1억대 출시를 기념한 금도금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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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가공 기술과 전자 기술의 융합에 의해 등장한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 세이코 쿼츠 아스트론 35SQ. 시계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제품입니다. 1969년 12월에 발매됐으며 IEEE 마일스톤에서도 인정한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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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쿼츠 아스트론 35SQ의 내부 구조. 시간 정확도는 한달에 ±5초의 오차를 낼 정도로 고정밀도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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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시계 용 수정 진동자.  아스트론 35SQ에 탑재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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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AC 전원이 필요없는 휴대용 고정밀 수정 진동자 시계, 세이코 크리스탈 크로노미터 QC-951. 사물함 정도의 크기였던 시계를 휴대가 가능한 수준으로 소형화했으며, 건전지 두개로 1년 동안 쓸 수 있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쓰였지요. 출시는 1963년 9월.

 

 

동양의 스위스를 내세우며 만든 시계


세이코 엡손은 1942년에 설립된 야마토 공업을 뿌리로 합니다. 처음엔 협력사로 시작해 나중에 시계 부품을 가공했고, 부품 가공에서 부품을 제조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네 동양의 스위스라 불리게 된 역사적인 제품인 5형 시계(여성용)을 만들게 됩니다. 여기에선 엡손 브랜드가 나오기 전의 부품과 제품을 전시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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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의 연혁. 야마토 공업으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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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공업의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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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공장. 된장 회사의 된장 저장고를 개조해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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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당시에는 공장장이라고 불렸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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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공업이 생산하던 부속품. 정확히는 진동체와 기어를 하나씩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장치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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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뒷면. 화살표로 가리킨 부품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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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만든 회중 시계. 이 안에 들어간 부속을 야마토 공업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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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에서 만든 탁상 시계. SEIKOSHA란 브랜드가 붙었는데 이것도 부품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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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초자리 신관. 무기의 부품을 만드는 데 시계 기술을 썼다네요. 프로토타입이 나온 시점에서 일본이 전쟁에 진지라 실전 투입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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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이것도 프로토타입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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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크리스탈을 생산하는 제조 장치의 모형입니다. 강철로 만들었으며 온도차에 의해 크리스탈을 만들어 냅니다. 이 제조 장치는 대포의 포신을 만드는 데 활용한 정밀 가공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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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에 세이코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5형 시계. 여성용입니다. 밤을 새서 4개를 만들었는데 그 중 작동한 건 두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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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나온 10형 시계. 7년 동안 백만대 이상이 생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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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개발된 프린팅 타이머. 시계 측정 기구와 시간 인쇄 기구를 조합해 도쿄 올림픽에서도 쓰였습니다. EP-101의 조상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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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이 개발한 미니 프린터.

 


엡손 브랜드의 존재감을 높인 세계 최초의 제품들


세이코 엡손은 다양한 세계 최초의 제품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품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엡손 브랜드의 존재감을 높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탈 기술과 반도체 기술에 있어서도 오랜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엡손의 정밀 제조를 뒷받침했습니다. 여기에선 획기적인 제품과 기술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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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출시된 디지털 쿼츠 06LC는 세계 최초의 6자리 LCD 디스플레이를 장착했습니다. 그 전까지의 디지털 시계는 시간을 볼 때 버튼을 눌러 시간을 표시했으나, 06LC는 저전력 기술을 사용해 시, 분, 초를 항상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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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액정 TV 시계 T-001. 세계에서 가장 작은 TV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애플 워치보다 34년 전에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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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개발된 시계 크기의 스마트 디바이스 크로노비트. PDA의 기본 기능을 시계 크기에 모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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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액정 포켓 TV ET-10. 세이코 엡손의 반도체 기술, 액정 기술, 고밀도 실장 기술로 실현한 제품으로 2인치 TFT 액정 스크린을 탑재했습니다. 1984년에 84800엔으로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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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10의 프로토타입. SUWA SEIKOSHA와 EPSON 브랜드가 모두 표기됐습니다. 1983년에 개발됐으며 SID(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에서 기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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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포켓 TV. 이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서 다양한 형상의 제품을 매년 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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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CD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프로젝터 VPJ-700. 현재 엡손 프로젝터 사업의 시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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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개최된 SID(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에 출품한 세계 최초 3 LCD 프로젝터의 프로토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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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완성된 액정 프로젝터의 양산 시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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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DVD 일체형 프로젝터 dreamio EMP-TWD10가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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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의 첨단 시계 기술을 뒷받침한 크리스털과 크리스털 오실레이터 제품군도 많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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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개발된 세계 최초의 멜로디 IC. 알람 시계에 사용하며 멜로디 소리, 종소리, 초인종 소리의 3가지 소리를 울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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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술을 가진 것도 세이코 엡손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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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분야에서는 시계 외에도 CMOS IC 게이트 어레이, CMOS IC 메모리 등을 따로 판매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터미널 프린터. 프린터 사업을 발전시킨 제품들

 

프린터로서의 엡손이 시작된 물건은 EP-101이지만 그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상품화한 것이야말로 PC에 연결해 쓰는 프린터의 개발이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첫 모델은 세계 최초의 터미널 프린터 TP-80,  그리고 그 후속 모델인 MP-80이 다양한 PC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 세계에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후에도 세이코 엡손은 프린터 사업을 가속시켜, 잉크젯 인쇄 기술을 발달시키고 컬러와 포토 프린터에 앞장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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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 프린터 사업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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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팅 기술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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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터미널 프린터인 TP-80. PC와 POS 단말기에도 쓰인 제품으로 저렴하면서 80자리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이 인기를 끈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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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출시된 MP-80는 개인이 PC에 프린터를 연결해 사용하는 시대를 이끈 제품이라 할 수 있으며, 프린터의 엡손이란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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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 최초의 잉크젯 프린터인 MP-130K. 저소음, 빠른 속도, 선명함이란 점에서 당시의 주류 제품이었던 임팩트 도트 프린터를 능가했지만, 491,000엔이라는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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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터미널 프린터의 누적 출시량이 1,000 만대에 도달한 것을 기념해 금도금한 LQ-1050를 만들었습니다. 임팩트 도트 프린터의 표준 모델로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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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프린터 출시 1,000 만대 기념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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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비디오 프린터 CV-5000. 우스이​​ 미노루 사장이 개발에 참여했으나 기술에만 신경쓰고 고객의 요구를 무시했다며 반성하는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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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프린터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3년에 출시한 LP-8000. 전시된 제품은 당시 이미지 캐릭터를 맡았던 이이지마 나오코의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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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마하 기술을 채용한 MJ-500. 1993년에 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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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출시한 세계 최초로 720dpi를 실현한 컬러 잉크젯 프린터 MJ-700V2C. 1993년에 개발한 마이크로 피에조 헤드는 탁월한 도트 형태를 지녔습니다. 일본에만 35만대가 판매됐으며 컬러 연하장을 집에서 직접 뽑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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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발매한 PM-700C는 최초의 포토 마하젯 시리즈 프린터입니다. 기본 4색, 라이트 시안, 라이트 마젠타를 더한 6색 잉크를 채용했으며, 필름 사진에 육박하는 고화질을 실현한 제품으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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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세일이란 이름과 함께 출시한 잉크젯 프린터 PT-100. PC를 사용하지 않고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쉽게 인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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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출시한 첫 대형 포맷 프린터 PM-9000C. A0 판형을 10분만에 출력합니다. 출력 업체에 맡겼던 광고, 포스터, POP를 직접 뽑을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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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오 스캐너와 컬러리오 프린터를 합친 컬러리오 카피 CC-700 복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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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출시한 Stylus C-80. 일반 소비자 제품으로선 세계 최초로 일반 용지를 지원하는 안료 잉크를 쓴 프린터입니다. 독립형 잉크 카트리지도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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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나온 새로운 안료 잉크 기술 PX 잉크를 슨 기술을 쓴 PM-4000PX. 2800dpi의 품질로 전문 사진 작가와 디자이너, 하이 아마추어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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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출시한 PM-A850는 본격적인 A4 지원 포토 복합기입니다. 잉크 외에 다른 특징이라면 핸드폰에서 직접 인쇄하는 것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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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오 E-100. 여자들도 쓰기 쉬운 프린터를 만들기 위해 여성으로만 구성된 프로젝트 팀 Team8이 기획한 제품. 2004년에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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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출시한 A3 흑백 레이저 프린터 LP-S4000PS. 100만 페이지의 인쇄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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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의 레이저 프린터 생산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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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매한 MAXART PX-20000. 차세대 고속 헤드인 마이크로 피에조 TF 헤드를 탑재한 첫 제품입니다. 깊은 바다의 색을 재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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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나온 EP-901F. 프린터에 다시 EP란 모델명을 붙인 의욕적인 제품입니다. 생활 공간과의 조화를 겨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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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신흥 국가에 출시한 대용량 잉크 탱크 탑재 잉크젯 프린터 L200.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적인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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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진출한 엡손 프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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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발사된 우주 왕복선인 디스커버리에 탑재돼 우주 공간에서 실험 보고서와 사진을 비롯해 5백장을 인쇄.

 

 

엡손 다이렉트로 이어지는 PC 사업. 그 시작은 회계 사무소 전용 컴퓨터
 

현재 엡손 다이렉트로 이어진 PC 사업은 EPSON 브랜드 최초의 제품인 회계 사무소 전용 컴퓨터 EPSON EX-1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병원, 주유소 등의 제품을 개발하고 휴대용 컴퓨터의 개발과 워드 프로세서 전용 모델을 출시, 해외에선 IBM · PC / AT 호환 기종을 내고 일본에선 PC-9800 호환 기종을 출시하는 등 사업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EPSON EX-1로 시작하는 회계 사무소용 사업은 지금도 회계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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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의 PC 사업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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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 HC-20. A4 크기에 디스플레이, 키보드, 프린터, 마이크로 카세트를 수납. 1.7kg의 무게에 배터리 구동이 가능합니다. 누적 출시량은 25만대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가격은 138,0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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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나온 일본어 워드 프로세서 PC QC-10. OS는 CP / M을 탑재, 일본어 워드 프로세서와 일체화했습니다. 또 FDD를 탑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 제품입니다. 당시의 광고 카피는 컴퓨터가 일본어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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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의 기능 키는 일본어 입력에 최적화된 조작에 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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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은 사무용 PC 제품으로 EQUITY 시리즈도 준비했습니다. 1986년에 발매한 EQUITY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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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프로세서 전용 모델은 워드 뱅크란 브랜드로 내놓았습니다. 1986년에 출시한 워드 뱅크 F(PWP-8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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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가 없는 워드 프로세서 전용 모델로 눈을 돌려 내놓은 워드뱅크 노트. 1987년에 출시한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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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사무소 전용 사무용 컴퓨터는 오랬동안 계속했던 사업 중 하나입니다. 1987년에 발 한 KX-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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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9800 시리즈 호환 기종인 PC-286 모델 0. CPU는 이름에 나온대로 80286을 탑재. OS는 MS-DOS Ver3.1을 탑재했습니다. NEC의 PC-9800 시리즈보다 높은 성능을 가진 제품을 출시하이 목표며 처리 성능은 25% 이상 빨라졌다네요. 1987년에 357,000엔으로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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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나온 PC-286BOOK. 두께는 63mm, 무게 4.3kg에 3.5 인치 FDD를 2개 내장한 것이 특징입니다. 가격은 258,0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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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는 98 호환 기종이 100만대를 출시했는데 이를 기념한 모델입니다. 1996년까지 총 166만대를 판매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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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발매한 PC-286NOTE executive. 철저하게 얇은 두게를 추구한 제품이며 458,000엔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후 BOOK을 표준 모델로, NOTE를 고 부가가치 모델로 책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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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매한 PC-486GR. 486SX를 탑재했으며 가격은 458,0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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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나온 PC-486 PORTABLE. 2-in-1 PC의 프로토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격 288,0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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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다이렉트가 출시한 Endeavor 브랜드의 첫 제품. AT-1000. 구입 주문을 전화로 직접 넣는 방식을 고수했는데 출시 첫날에는 엡손의 콜센터가 있던 지역을 담당하는 NTT의 교환기가 일시 불통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고 하네요. 가격은 98,0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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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 나 CG 등의 전문가를 위한 용도까지 커버하는 플래그쉽 모델 Endeavor Pro4000. 확장성이 뛰어난 타워형 케이스를 채용했으며 2006년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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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성능이 뛰어난 노트북 Endeavor NA802. 센트리노 2 프로세서를 탑재했으며 자가 복구 코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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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avor Na03mini. 아톰 N470을 탑재한 넷북. 최저 가격은 39,900엔

  

 

엡손이 만든 놀라운 제품들

 

세이코 엡손은 사업 다각화를 지향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시계나 프린터에서 축적된 기술을 응용한 것이 많지요. 여기에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엡손이 출시해 온 독특한 제품군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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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이크로 로봇인 무슈. 너비-높이-폭의 크기가 1cm밖에 안 되지만 98개의 부품을 넣었으며 자율적으로 작동합니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로봇으로 등록됐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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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를 구성하는 부품들. 세이코 엡손의 마이크로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많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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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비행 로봇 μFR-II.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드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제품이며 2004년에 개발했습니다. 무게는 8.6g. 비행 시간은 약 3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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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는 시계 외에 다른 분야의 첫 제품으로 전기 면도기인 ES-102를 내놓았습니다. 시계 제조 기술을 사용해 칼날 보호 망을 가공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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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여성용 면도기 ES-818, 오른쪽이 업계 최초의 알람 기능이 있는 회전 칼날을 탑재한 ES-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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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의 칼날 보호 망을 만드는 데 세이코 엡손의 시계 제조 기술 노하우를 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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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의 기술을 활용해 1985년에 제품화한 KS-200.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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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붐을 타고 개발한 휴대용 가라오케 MK-200. 마이크와 스피커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한손으로 부담없이 노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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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안경 렌즈 비스타 플렉스. 1975년에 나왔으며 프린터, 면도기에 이어 세번째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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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렌즈는 시계의 커버 유리와 케이스에 사용 된 플라스틱 가공 기술을 활용해서 상품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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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콘택트 렌즈의 상품화도 했습니다. 산소 투과성 하드 콘택트 렌즈를 포리콘이란 브랜드로 출시, 이후 세이코 하드 등의 제품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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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개발한 최초의 스칼라형 로봇 프로토 타입. 시계의 자동 조립용으로 개발했으며 외부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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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D도 엡손이 적극적으로 개발한 분야입니다. 업계 최초로 28mm의 두께를 달성한 5.25인치 FDD SD-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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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판금 프레임 랙&피니언 구조를 실현한 3.5 인치 FDD SMD-48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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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치와 5.25인치를 합친 FDD인 SD-880. 디스크의 모양이 바뀌면서 이런 제품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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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이 출시한 다양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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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 스토리지 사업의 최종 제품인 3.5인치 FDD, SMD-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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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에서도 인기가 높은 제품을 많이 출시했습니다. 1998년에 출시한 GT-7000는 세계적인 히트 모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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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펜 타입 디지털 멀티미터. 1983년에 발매한 테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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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온도계를 출시했던 때도 있습니다. 이것도 세계에서 가장 작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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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에는 전자 영어 번역 기계도 상품화했습니다. 문자를 읽어 영어로 번역해 준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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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세이코 엡손의 첫번째 디지털 카메라인 CP-100는 1996년에 출시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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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디자인이라는 독특한 모양이 특징인 디지탈 카메라 CP-8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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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오 포토란 이름의 대구경 3배 줌렌즈를 탑재한 카메라, CP-920Z. 2001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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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레인지파인더 디지털 카메라 R-D1. 2004년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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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나온 멀티미디어 스토리지 뷰어 Photo Fine Player P-3000. 4인치의 LCD 디스플레이와 40GB의 HDD를 탑재한 표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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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션 TV입니다. 57인치인 ELS-57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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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나 DVD를 쉽게 제작하는 복사기 PP-100.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과 함께 디스크 표면에 이미지를 동시에 인쇄할 수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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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손 클래식 CD 컬렉션. 광 메모리 등의 연구 개발을 통해 축적된 스탬퍼 제작 기술을 활용해 오디오 CD 제작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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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상품화됐습니다. EPSON 브랜드가 들어간 CD 박스도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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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발매한 워드 뱅크 펜인 PWP-PEN. 필기 입력이 가능한 단말기로 핸디 워드 프로세서에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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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를 탑재한 인포메이션 디바이스 Locatio.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으며 1999년에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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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의 전신이 된 태블릿인 MC 모베리오. 98 호환 기종 사업이 끝난 후 PC로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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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전화기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1991년에 나온 WR-25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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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은 기술 공유에서도 여러 실적이 있습니다. 카메라 날짜 표시 모듈은 사진에 날짜를 함께 기록하는 기능을 세계 최초로 실현했으며 많은 카메라에 탑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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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이 최초로 개발한 액정 프로젝터. 코닥 OE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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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 남코의 히트 제품인 다마고치의 액정 부품도 세이코 엡손의 기술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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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기판 TN 패널은 카시오의 필름 카드 계산기에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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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가 상품화한 핸드폰은 세이코 엡손의 액정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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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에 OEM 납품한 테이프 워드 프로세서 LM-200은 1990년에 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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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라벨 라이터도 사실은 엡손에서 생산한 것입니다.

 

소스:

http://pc.watch.impress.co.jp/docs/column/gyokai/20150612_706426.html

http://pc.watch.impress.co.jp/docs/column/gyokai/20150713_711195.html

http://pc.watch.impress.co.jp/docs/column/gyokai/20150817_7163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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