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 1호가 1시간에 29000000미터의 속도로 지구를 벗어나면서, 인류의 우주 시대도, 우주로 향한 경쟁도 동시에 시작됐습니다. 소푸트니크 인공위성의 발사는 서구 사회에 폭넓은 공포와 정치적인 분쟁을 일으켰고, 1961년 4월 12일에 소련의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지구 주위를 돌고 오자, 미국이 우주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했다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사람을 달로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데요. 1961년 5월 25일에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상, 하원 특별 회의에서 아폴로 계획을 선포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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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1호의 모형

 

 

찰칵. 인류의 우주 활동을 기록하기

 

아폴로 계획 전체를 통틀어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던 것은 "이것은 비록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진보이다"로 대표되는 달 착륙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는 전체 계획의 1막에 불과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발사를 전후로 해서 나사는 여러 번의 유인 우주선 임무를 수행했는데요. 총 29명의 우주인이 우주로 들어섰고, 그들은 각종 과학 실험을 진행했으며,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전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발을 딛는 것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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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일반 카메라를 대폭 개조해서 우주로 들고 갔는데요.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핫셀블러드의 HEDC(Hasselblad Electric Data Camera)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플로 11호에 탑재되어, 달의 모습을 찍는 데 썼거든요. 암스트롱의 발자국도 바로 이 카메라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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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우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HEDC입니다.

 

나사의 방대한 우주 임무에서 핫셀블라드 카메라가 항상 빛을 냈던 건 아닙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다양한 카메라를 들고 우주로 나갔거든요. 라이카, 칼짜이스, 135판형 SLR, RF 카메라 등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했습니다. 이들 카메라는 로켓이 우주로 쏘아져 나가기 전에, 필요한 개조를 모두 거쳤고, 시간이 지날수록 개조되는 부분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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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호에 쓰인 HEDC 카메라는 짜이스 플라나 C 2.8/80mm 렌즈를 씁니다. 우주에서 사용을 위해 많은 부분이 개조되었는데요. 카메라 뒤의 벨크로 찍찍이가 보이시죠? 렌즈의 조리개, 초점 거리, 각종 설정 등을 적어서 벨크로에 붙여놨다고 하네요. 그리고 카메라 위에는 대형 고정 레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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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의 미놀타 Uniomat 카메라입니다. 이 카메라는 상하가 뒤집어져 있고, 카메라 위쪽에 외장형 광학식 뷰파인더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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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초기의 유인 우주비행 임무에 쓰였던 핫셀블러드 500C입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빼버렸습니다.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는 빼버리고 간단한 외장 프레임이 이를 대신하고 있으며, 초점 조절링이나 조리개 조절 링에는 조작하기 편하게 레버를 붙여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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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의 제미니 4호 입무에선 우주인이 파인더가 없는 칼짜이스 Contarex Special 카메라를 썼습니다. 이 카메라에 달린 렌즈는 짜이스 플라나 2/50이구요. 우주에서 편리한 조작을 위해 셔터, 필름 감개 등을 전부 크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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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라이카 M3입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쳤는데, 황반 현상의 뷰파인더는 빼버리고 각종 조작 버튼과 레버는 크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이름을 떨친 니콘 F가 우주에 들어서다

 

이런 명성이 높은 카메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 사이에 부품 호환이 되지 않았고, 이것이 적잖은 불편과 압력이 되었으며, 우주 중에서는 직접 카메라를 수리해서 써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핫셀블러드의 중형 카메라는 결과물은 좋았으나 카메라가 너무 무겁고 쓰기 불편했으며 조리개도 크지 않아 빛이 부족한 우주에서 쓰기 불편했지요. 그래서 나사는 135판 카메라를 쓰기로 결정하고 20세기 70년대의 우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NIPPON KOGAKU K.K.라고 불리던 회사, 즉 니콘에게 이 작업을 맡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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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를 쓴 월남전 종군 기자

 

일찌기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라이카 카메라는 수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추축국과 동맹국의 종군 카메라맨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여러 분야의 촬영에서 널리 쓰인 제품이 됐습니다. 월남전이 벌어졌을 때는 라이카 카메라 외에도 다른 답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바로 니콘 F SLR 카메라입니다. 근거리는 라이카, 망원은 니콘으로 조합해서 쓰는 경우가 늘어났고, 니콘 135판형 SLR을 쓰기도 했습니다. 월남전쟁이 시작된 후 니콘 SLR 카메라는 종군 기자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고, 이것은 나사가 니콘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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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 Photomic FIN 나사 버전

 

 19세기 60년대에 나왔던 카메라들은 대기층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진공, 무중력 등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빌봉된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했고, 카메라가 유해 기체에 노출될 수도 있었습니다. 우주인들은 무겁고 둔한 우주복을 입고 있었으니, 우주로 나가야 하는 카메라는 반드시 조작이 편리해야 했습니다. 나사는 우주에선 대기층이 보호해 주지도 않고, 태양과 우주 복사선이 카메라의 반사경에 미치는 영향이 지구에서보다 훨씬 크며, 또 이런 요소들이 필름의 감광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반드시 가벼워야 했습니다. 로켓을 지구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데 1g의 무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는 오랜 기간 동안 우주에서 카메라를 운용하면서 쌓은 경험, 교훈, 개선 의견과 필요로 하는 설계를 니콘에게 전달했고. 니콘은 나사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개발 팀을 꾸려 니콘 F Photomic FTN 카메라의 나사 버전을 내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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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이 전시한 니콘 F Photomic FIN 나사 버전

 

높은 온도 차이와 무중력 환경에서 카메라가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니콘은 나사의 표준에 부합하는 윤활제와 부착제 등을 사용했고, 카메라 내부의 플라스틱 부품은 내구성이 더 높은 금속으로 대체했으며, 전기 용접 부분은 나사의 표준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카메라 표면의 고무 그립은 떼버리고 거칠게 처리한 금속 재질로 대체, 표면에는 대량의 고정 나사를 박아, 로켓이 대기층을 독파할 때 생기는 극렬한 진동에서도 카메라가 상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카메라 뒷부분과 아랫부분에는 벨크로를 넣어 진공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고정할 수 있도록 했지요. 거의 모든 조작 버튼, 레버, 회전판 등등은 우주복을 입고도 조작할 수 있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카메라 위쪽은 핫슈 대신 콜드슈를 넣었습니다. 그 어떤 전기적 접점이 없는 포트지요. 그리고 우주복을 입고 쓰기 힘든 카메라 상단의 광학식 뷰파인더도 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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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 Photomic FIN 나사 버전에서 달라진 것들

 

72장의 135판형 필름을 넣기 위해(이 필름은 나사가 코닥에 요청하여 만든 것으로, 폴리에스테르 막을 기반으로 해 일반 필름보다 더욱 얇습니다) 니콘은 카메라 내부의 필름 전송 시스템을 뜯어고쳤고 카메라 상단의 필름 카운터 역시 손을 댔습니다. 셔터 다이얼과 노출 다이얼은 같은 축에서 움직이도록 했는데요. 원래 이 카메라의 감도는 6, 12, 25, 50, 100, 200, 400, 800, 1600, 3200, 6400의 1/3 스톱 단위로 설정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를 6, 12, 25, 40, 64, 80, 160, 320, 500, 1000, 2000, 3200, 6000으로 바꿨습니다. 셔터 스피드 다이얼에선 벌브를 빼버리고 60(1/60s)을 하얀색으로 표기, 그 다음에는 하얀색 X, 그리고 125~1000의 숫자를 하얀색으로 표기했습니다. (기본 버전은 T, B, 1, 2, 4, 8, 15, 30, 60, 125, 250, 500, 1000로 표기되어 있고 60이 빨간색, 125~100은 녹색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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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 Photomic FIN 나사 버전에서 달라진 것들

 

개발 팀은 니콘 F 포토믹 FTN의 아래에 바디와 크기가 딱 맞는 금속 재질의 F36 모터 드라이브를 달았습니다. 모터 드라이브는 카메라 뒤쪽의 레버를 조작해서 조작이 가능했고, 한쪽에는 배터리 커버가 있었는데 그 안쪽에는 총 10개의 니켈 배터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이 배터리의 수명은 2500번이었지요. 모터드라이브 아래엔 퀵 마운트 슈를 달아 우주선에 쉽게 고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S(한장만 촬영), C(셔터 스피드가 1/250s 보다 느리지 않을 때 3fps로 연사), T(릴리즈)의 3가지 모드를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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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나아간 니콘 렌즈

 

우주에서의 촬영을 위해 니콘은 렌즈 역시 손을 봤습니다. 플라스틱 부품은 쓸 수 없었고 플라스틱 렌즈캡 역시 쓸 수 없었습니다. 전부 금속 부품으로 바꿨고 발삼 수지나 윤활유 역시 나사의 표준에 맞춰 골랐습니다. 하지만 렌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우주복을 입고도 조리개나 초점 거리를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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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공식 자료를 보면 니콘 포토믹 FTN 나사 버전은 1971년의 아폴로 15호 임무에 투입됐는데 이는 아폴로 계획의 아홉번째 임무입니다. 니콘 포토믹 FTN 나사 버전은 Nikkor-S Atuo 55mm f/1.2 렌즈와 ASA 6000 필름을 이용해, 중심 해상력 581/mm, 주변부 해상력 211/mm의 사진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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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연구 개발 요구를 맞추기 위해 니콘은 자외선 촬영에 최적화한 UV-Nikkor 55mm f2.0 렌즈도 제공했습니다. 위 사진 오른쪽의 니콘 F 포토믹 FTN에 탑재된 렌즈가 바로 그것입니다. (광학식 뷰파인더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주에서 쓰인 135포맷 카메라 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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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첫번째 비행

 

1981년 4월 12일에 컬럼비아호 우주왕복선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됐습니다. 이는 나사의 Space Transportation System, 줄여서 STS의 첫번째 비행이었으며 임무명은 STS-1이었습니다. 우주 비행의 역사적인 시기에서, 니콘의 F3는 나사의 임무에 동참, 컬럼비아호의 첫번째 비행과, 그 이후의 STS 임무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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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3 small. 이게 위에서 봤던 F 포토믹 FTN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이진 않지요?

 

니콘 F 포토믹 FTN 나사버전과 마찬가지로, 나사는 F3에 우주에서의 활동, EVA(Extra-vehicular activity)에 알맞은 여러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윤활유 교체, 고무 그립 제거, 모터 드라이브 장착 등이 있겠네요. 다만 여기서 다른 점이라면 F3 나사버전은 두가지로 나왔다는 겁니다. 하나는 72장 135포맷 필름을 넣는 F3 small, 다른 하나는 필름실의 크기를 늘려 250장의 135포맷 필름을 넣을 수 있는 F3 Big입니다. 총 50여대의 F3가 나사에 제공됐는데, 그 중 대부분은 지구에서 훈련에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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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3 Big. 더 많은 필름을 넣어 우주 활동에서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니콘은 필름실을 카메라 양 옆으로 늘렸습니다. 역대 니콘 SLR 중 제일 위엄이 넘치는 녀석이지요.

 

F 포토믹 FTN이 묵묵히 우주에서 활약하다가 최근에서야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STS에 참여한 F3 나사 버전은 니콘의 대대적인 선전에 힘입어 유명세를 탔습니다. The only operational 35mm SLR camera scheduled to fly on NASA's SPACE SHUTTLE Program. 나사의 스페이스 셔틀 프로그램에 유일하게 참여한 35mm SLR 카메라. 니콘이 소비자들에게 내세운 광고 문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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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이 일본에서 썼던 광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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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썼던 광고들.

 

 

F4의 디지털화, F5의 실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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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ESC

 

시간이 지나면서 니콘의 새 모델인 F4, F4s, F5도 STS 임무에 쓰이게 됩니다. 그 전에 등장했던 F 포토믹 FTN, F3 스몰, F3 빅과 비교하면 이들 제품들은 여러 부분에서 경험을 쌓아, 일반 제품과 차이가 매우 적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개조하고 여러 부속을 더하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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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F4s 나사 버전

 

1991년 9월에 니콘의 SLR은 나사의 우주 실험 항목 중 하나가 됐습니다. ESC(Electronic Still Camera)라는 카메라가 STS-48 임무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것은 니콘 F4를 기반으로 해서 만든 디지털 카메라인데, F4의 광학식 뷰파인더, 바디의 앞부분 절반, 렌즈 마운트는 그대로 남기고, 필름실을 코닥 디지털 백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디지털 백에는 흑백 CCD 센서가 달려 있고 크기는 15x15mm였으며 1024x1024 해상도의 사진을 ASA-200의 감도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8비트 흑백 이미지만 기록할 수 있었는데 촬영한 이미지는 하드디스크에 보관했다가 지구의기지에서 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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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cules 시스템

 

사실 ESC는 헤라클레스 시스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들고 다닐 수 있는 형태의 기기로, 지구의 자기와 극, 지리 위치, 환경의 실시간 연합 모니터링 등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는데, 여기에는 ESC 한대, PDU 유닛 한대(Playback-Downlink Unit)가 딸린 노트북, 헤라클레스 프로세서, ESCEB(Electronic Still Camera  Electronics Box. 하드디스크 포함), NRL HERCULES Inertial Measurement Unit(관성 측정 유닛, 3축 고리형 레이저 자이로스코프를 내장), 야시경, 카메라 렌즈, 케이블 등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STS-48 외에도 ESC는 STS-49, STS-53, STS-56, STS-91 등에 쓰여 여러 사진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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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로 찍은 사진

 

EVA 활동의 업그레이드에 따라 나사는 카메라의 개조만으로는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카메라에 '우주복'을 입히기로 했습니다. 카메라에 입힌 우주목은 하얀색의 thermal blanket인데 -50~110도의 환경에서 정상 사용을 보장합니다. 덕분에 니콘 F5는 윤활제만 다른 걸로 바꿔서 EVA에 참가할 수 있게 됐습니다. thermal blanket 표면에 달린 셔터 버튼을 눌러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고, 렌즈도 바꿀 수 있었으며, 보호 기재 역할도 해서 방사선이 필름에 영향을 주는 것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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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임무에 쓰인 F5. 우주복을 입은 카메라입니다.

 

ESC의 성공은 나사를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일반 소비자 사장에 DSLR이 출현하면서 나사는 STS에 초기 DSLR인 DCS460C(니콘 N90S SLR에 코닥 디지털 백을 붙인 모델)을 투입시켰고, 2007년 12월에는 D2Xs를 구입, 2009년에는 11대의 D3s와7대의 AF-S 14-24mm f/2.8G ED 렌즈를 구입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의 경험이 누적된 thermal blanket 덕분에 신형 니콘 DSLR은 더 이상 우주에 나가기 위해 개조를 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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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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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디스호의 착륙은 우주 비행 시대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2003년 2월 1일에 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컬럼비아호가 STS-107의 28번째 임무를 수행하던 중, 대기층으로 돌아오다가 관제 센터와 연락이 끊겼던 것이죠. 머지 않아 텍사스주 상공에서 기체는 폭발했고, 우주왕복선에 타고 있던 7명의 승무원은 전부 사망했습니다. 컬럼비아호의 사고는 나사의 우주왕복선 퇴역 계획을 앞당기게 했고, 2011년 7월 22일의 아틀란티스호가 마지막 임무를 끝낸 후, 우주왕복선은 정식으로 퇴역하게 됐습니다. STS는 총 135번 발사됐고 350명이 넘는 승무원과 천톤이 넘는 물자와 장비를 저궤도에 올려놓고 마무리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주 왕복선의 퇴역이 니콘 카메라의 우주 진출을 막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다수의 니콘 DSLR이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사용 중이며, 러시아도 2010년에 니콘의 촬영 기자재를 구입해 우주에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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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직원이 들고 있는 D2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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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http://www.evolife.cn/html/2013/72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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