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지금까지 벤치마크에서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거든요. 하지만 제 잘못은 아니라고 추하고도 구차하게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겠습니다. 난 인텔을 믿었던 만큼 내 메인보드 기본값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생각없이 코어 i9-14900K을 PL2 4096W로 튜닝시켜 뒀고 그런 설정을 한 후부터 벤치마크를 자주 하며 점수를 뽑아냈던 것뿐인데 그런 조합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난 철권 8 에러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언리얼 엔진 게임에서 비디오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메세지를 자주 보이며 안정성을 조금씩 멀리하던 그 어느 날- 이쯤 되면 뭘 말하려는건지 아시죠?
인텔 CPU의 안정성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13/14세대 코어 i7/i9 K 시리즈 프로세서가 그 대상입니다. 인텔의 다른 제품은 안전하니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직까진 그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만 지금 분위기는 클럭이 높고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게임에서 에러 메세지를 뱉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요. 거슬러 올라가면 12세대 코어 프로세서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13세대보다는 14세대가, 코어 i5보다는 코어 i7/i9가, nonK보다는 K 시리즈가 클럭이 더 높고 전력 사용량이 많기에, 불안정한 모습을 더 많이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철권 8 데모가 A/S 센터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고, 인텔 하이엔드 프로세서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불안해 하고 있을 동안 제조사는 뭘 했느냐, 일단 메인보드 제조사 탓을 했습니다. 인텔이 권장하는 설정 프로필을 제공하고 거기에서 사용하길 강력하게 권고하며 오버클럭 경고를 강하게 표시하라고요. 그랬다가 민심이 나빠지니 우리는 메인보드 제조사 탓을 한 것이 아니며 아직은 조사중이니 해결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해달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는데요. 메인보드 제조사들이 최고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설정한 값을 가지고 고성능 CPU라며 홍보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기본 프로필대로 쓰라고 하니 유쾌하진 못하네요.
어쨌건, 지금까지 올라온 벤치마크 결과는 인텔이 권고하는 설정대로 테스트를 안하고 메인보드 제조사가 임의로 풀어둔 값대로 실행한 것이기에, CPU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정상적인 조건에서 테스트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경쟁 상대인 라이젠 7000 시리즈의 상대적인 성능 역시 재평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14세대 하이엔드 프로세서인 코어 i9-14900K와 코어 i7-14700K의 테스트를 다시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인텔 기본 프로필'과 '메인보드 제조사의 최고 성능 프로필'을 비교하고 싶었으나, 아 글쎄 메인보드 제조사 프로필대로 설정하면 CPU가 고장날 수도 있다잖아요? 제 거라고 해도 개복치처럼 돌연사하실까봐 두려워서 차마 그렇게까진 못하겠는데, 가뜩이니 바싼 CPU를 빌려서 테스트하다보니 더더욱 거기까지는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발표한 '인텔 권장 프로필'대로만 설정해서 테스트했습니다.
여기에선 MSI MPG Z790 엣지 TI 맥스 WIFI 메인보드를 사용했습니다.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의 바이오스는 CPU 라이트 로드 컨트롤에 노말과 어드밴스드밖에 없지요.
인텔 기본 프로필이 추가된 최신 버전의 바이오스를 설치했습니다.
360mm 짜리 고성능 수냉 쿨러인 MSI MPG 코어리퀴드 K360를 장착했으니 당연히 쿨러와 전력 제한 설정도 수냉 쿨러, 전력 제한 4096W로 맞춰져 있는데요.
여기서부터는 MSI의 공식 설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https://www.msi.com/blog/improving-gaming-stability-for-intel-core-i9-13900k-and-core-i9-14900k
이 비싸고 좋은 쿨러를 달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253W의 번들 쿨러 설정으로 바꿨습니다. 메인보드도 분명 수냉 쿨러를 감지했는데 번들 쿨러로 바꾸니까 '님 제정신이신?'하고 물어보는 것 같군요...
위에서 본 대화창은 새 CPU/쿨러 설치 후 바이오스에 진입하면 나오는 건데요. 거기에서 설정을 놓쳤다면 오버클럭 메뉴에서 CPU 쿨러 튜닝을 바꿔도 됩니다.
최신 바이오스에서는 어드밴스드 CPU 컨피규레이션 메뉴에서 CPU 라이트 로드 컨트롤에 인텔 디펄트 옵션이 추가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걸 골라 줍니다.
CPU 라이트 로드 컨트롤을 노말로 설정하고 그 아래의 CPU 라이트 로드 모드를 직접 손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선 그냥 인텔 디폴트로 설정하고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텔의 기본값이기에 라이트 로드 관련된 다른 메뉴는 뜨지 않습니다.
CPU는 코어 i7-14700K와 코어 i9-14900K를 사용했습니다. 모두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제품들이죠.
인텔 시스템입니다.
MSI MPG Z790 엣지 TI 맥스 WIFI https://gigglehd.com/gg/15363310
MSI MPG 코어리퀴드 K360 https://gigglehd.com/gg/9865449
MSI MPG A1000G PCIE5 80PLUS GOLD https://gigglehd.com/gg/13458212
AMD는 라이젠 7 7800X3D, 라이젠 9 7950X3D, 라이젠 9 7950X를 사용했습니다.
AMD 시스템입니다.
MSI MPG X670E 카본 WiFi https://gigglehd.com/gg/14908890
MSI MEG 코어리퀴드 S360 https://gigglehd.com/gg/11407122
MSI MEG Ai1300P PCIE5 80PLUS PLATINUM https://gigglehd.com/gg/13318499
공통 테스트 조건입니다.
DDR5-6400 32GB 듀얼채널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4080 슈퍼
윈도우 설치용 NVMe M.2 512GB, 게임 설치용 SATA 6Gbps 2TB
윈도우 11 23H2
드라이버: 552.22
사실 결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테스트를 안 해도 이럴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도 있고요. 전력 제한을 걸었으니 CPU가 발휘할 수 있는 성능의 잠재력은 당연히 떨어집니다. 물론 원래 전력 설정 값이 4096W라고 해서 진짜 CPU 하나가 4000W씩 뽑아 먹은 건 아닙니다. 그러다간 체하는 게 아니라 불이 날 겁니다. 하지만 CPU가 끌어올 수 있는 전력에 제한을 두면서 최대 성능이 떨어지는 건 분명합니다. 사실 전력 제한을 걸기 전에도 14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라이젠 7000 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다고 보긴 어려워 재탕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차력쇼도 못하게 됐으니 기대 성능은 더욱 떨어지게 됐습니다.
시네벤치 R23의 싱글 스레드에서는 1개의 코어만 쓰기에 인텔이 높은 클럭으로 더 나은 성능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벤치마크일 뿐입니다. 요즘 세상에 코어 1개만 쓰는 상황이 얼마나 있겠나요. 멀티 스레드에서는 상황이 바뀝니다. 블렌더나 V레이 등의 실제 작업 조건을 반영한 테스트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게임에서도 대용량의 3D V 캐시를 탑재한 라이젠 7000X3D 시리즈가 전반적으로 높은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253W로 전력 제한을 걸면서 인텔 진영의 전력 사용량이 4096W일 때보다는 꽤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AMD보다는 많이 쓰고요. 여전히 많이 뜨겁습니다.
사실 이 테스트는 인텔 쪽에 그나마 유리한 조건에서 진행됐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MSI는 번들 쿨러 수준으로 전력 제한을 걸었다고 해도 여유가 있는 편이거든요. 기가바이트 같은 곳은 이보다 훨씬 더 심하게 제한을 걸어서 코어 i9가 코어 i7 수준으로 성능이 떨어진다고들 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여전히 인텔의 완전 순정 값보다는 높은 편이기에, 지금 나온 설정으로도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이보다 더 억제된 조건의 바이오스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스템 전체 전력 사용량
y-cruncher 파이 연산 500M 자리
CPU-Z 17.01
CPU-Z 19.01
CPU-Z AVX2
CPU-Z AVX 512
시네벤치 R23
시네벤치 2024
블렌더
코로나
Vray
아토믹 하트
호그와트 레거시
발더스 게이트 3
바이오 해저드 RE4
컴패니 오브 히어로즈 3
사이버펑크 2077
F1 22
호라이즌 제로 던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
P의 거짓
배틀그라운드
쉐도우 오브 더 툼레이더
어새신 크리드: 미라지
아바타: 프론티어 오브 판도라
레드 데드 리뎀션 2
인텔의 정식 조사와 그 대응책이 어떨지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 현 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시스템이 불안정하세요? CPU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텔이 시키는대로 바이오스 설정을 바꾸셨나요? 그럼 성능이 떨어집니다. 이걸로 해결이 될까요? 아직 모릅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사례들도 심심찮게 나오더라고요. 한 줄 요약해서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요? 비싼 하이엔드 프로세서를 사셨다고요? 저런, 애석하게도 처음 샀을 때 기대했던 돈 값은 제대로 못 할 것 같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성장형이라는 소리를 듣는 AMD와는 정 반대가 되버렸습니다그려.
사실 성능이 좀 떨어진 건 참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전력 제한 4096W에서 253W로 낮췄다면 엄청나게 큰 변화처럼 보이지만, 말이 4096W지 실제로 거기까지 올라갈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문제는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인텔 하이엔드 프로세서는 지금까지 홍보했던 성능을 지키지 못했고, 아직도 명확한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아 무엇이 원인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이걸로 완벽히 해결이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조금만 불안한 모습을 보여도 이게 CPU가 죽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 어쩌면 전력 제한의 부작용이 아닌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 한 마디는 자신있게 할 수 있습니다. 안정성의 인텔이라는 표현, 최소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