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알리에서 메모리를 사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3 for $4.99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알리에서 선별한 각종 잡동사니들 중 3개 이상을 고르면, 개당 $1.66에 무료로 5일 이내 배송을 해 주는 이벤트인데요, 사실 $1.66짜리 물건을 3개 사면 $4.99가 아니라 $4.98이라는 것은 넘어갑시다.
아무튼, 이렇게 $1.66에 집어올 수 있는 잡동사니 중에는 microSD 카드도 있습니다.
이 이벤트의 대상이 되는 상품의 목록은, 알리바바 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잡동사니 재고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데요. 보통 32GB microSD 카드는 거의 상시로 이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64GB는 운이 좋으면 가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그렇게 1.66달러에 산 4종류의 SD카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Somnambulist 32GB Class 10 UHS-I U3
Somnambulist 라는 브랜드의 32기가 카드입니다. 제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제너릭한 패키징에 담겨 있습니다.
본체에는 SOMNAMbulist®이라는 브랜드 표시와 함께 Class 10과 UHS-I U3 이라는 속도 스펙이 적혀 있습니다. “microSD” 라는 표기가 없는 걸 봐서는 아마 SD-3C의 허가를 받지 않고 생산되는 모양입니다. 용용이 비슷한 것도 그려져 있군요.
왜 브랜드 이름이 “몽유병자”인지는 모릅니다. 중국 중소기업들은 원래 영문 브랜드를 이상하게 짓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합시다.
아마존에 상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등록 상표여야 하는데, 기억하기 쉬운 자연스러운 이름들은 이미 선점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업자들은 아무 이름이나 써서 브랜드를 만들고, 상표등록을 시킨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정말인지는 모릅니다.
ReadCID 프로그램을 이용해 CID 필드*를 읽어 보면, 제조사 ID(MID)는 0x89이며, OEM ID는 0x0303으로 유효하지 않은 값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제품명은 NCard, 시리얼 번호는 d60d621c, 제조연월은 2022년 9월입니다. Class는 10입니다.
(* CID: Card Identification Register. SD카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내부 레지스터)
UHS 등급 같은 최신 규격의 정보는 SSR(SD Status) 레지스터를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일단 UHS-I U3, Video Class V0, App Performance Class A0이라는 데이터가 들어가 있습니다.
과연 정말로 그 수준을 내줄까요? 실제 성능을 알아봅시다.
AmorphousDiskMark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Mac App Store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macOS용 디스크 벤치마크 프로그램으로, 어디서 굉장히 많이 본 듯한 친숙한 인터페이스가 특징입니다.
순차 읽기 속도는 나쁘지 않지만, 순차 쓰기는 UHS-I U1 수준에 불과하고, 순차 쓰기 성능은 그야말로 참혹한 모습입니다.
이번엔 유닉스용 H2Testw라고 할 수 있는 f3 (Fight Flash Fraud)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용량이 정상인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FAT32/MBR로 다시 포맷해주었습니다.
결과를 보니 용량 사기는 아니었지만, 깨진 섹터가 204236개(99.72MiB)나 나왔습니다. 거의 죽기 직전인데요.
대체 무슨 폐급낸드를 썼길래 이 모양인지 모르겠네요.
2. 브랜드 없음 Extreme PRO 32GB
구형 SanDisk Extreme PRO의 디자인 코드를 베낀 디자인이지만, 별도의 제조사 브랜드 표기 없이 “Extreme PRO” 라고만 써져 있습니다. 칠이 살짝 벗겨져 있네요. 이 친구 역시 microSD 로고가 없습니다.
뒷면엔 CE 로고, MMSZ32GU39T25-TO LXKYML TW 2301 Made in Taiwan 이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CID를 읽어 보면, 제조사 ID(MID)는 0x89이며, OEM ID는 유효하지 않은 값인 0x0303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제품명은 NCard, 시리얼 번호는 19302912, 제조연월은 2022년 6월입니다.
Somnambulist와 조회 가능한 정보가 거의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브랜드만 다르고 같은 공장에서 나온 친구들이지 싶습니다.
역시 동일한 프로그램을 통한 벤치마크입니다.
순차 RW는 그래도 R 33.34MB/s 22.82MB/s로, 기재된 것처럼 U1/클래스 10 사양을 뛰어넘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랜덤4K QD64 테스트를 버티지 못하고 엄청난 발열과 함께 죽어버렸읍니다.
증상은 포맷 불가. CID정보는 불러와지는 걸 봐서 컨트롤러는 살아있는데 낸드가 죽어버린 것 같네요.
다행히 알리에서 환불을 해줬습니다.
죽어버린 김에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부를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공한다면 낸드 칩과 컨트롤러의 마킹을 통해 제조사를 알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산성 용액이나 최소한 아세톤 정도의 화학적 처리를 거치겠지만, 그런 게 없으므로 고도로 전문화된 물리적 공정 (기열 민간인들은 뻬빠질이라고도 한다!) 을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쓱싹쓱싹
10분 경과, 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작업 중에 낸드와 컨트롤러째로 사포로 갈아버렸다는 사소한 찐빠가 발생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거 하지 마세요.
3. Bliksem 64GB Class 10 UFS-I U3 TF-card
Bliksem 브랜드로 시판되고 있는 SD카드로는, 축구공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버전, 산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버전, 노루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 버전 등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제가 산 건 축구공이 그려져 있는 버전입니다.
패키징은 Somnambulist와 동일합니다.
SD카드에 인쇄된 이미지의 퀄리티가 매우 낮아 보이는데, 이것은 200만 화소, f/2.4, 1/5", 1.75미크론의 웅장한 스펙을 자랑하는 POCO X4 GT 후면 접사 카메라 덕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해상도가 굉장히 낮게 인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로고가 무슨 간체 중국어 Windows 기본폰트를 써서 만든것같이 생겼군요.
흠...
CID 체크. 제조사 ID는 0x6F이고 OEM 정보는 유효하지 않은 값, 상품명은 CBADS, 시리얼은 aa0000ae이며 생산년월은 2022년 12월입니다.
클래스 10, SSR 정보에는 UHS-I U1, 비디오 속도 클래스 V10, Android A1 등급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리눅스 커널 코드에 따르면 제조사 코드 0x6F는 STMicroelectronics라는데, 이건 SD-3C의 데이터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수집한 정보를 통해 임의로 만들어진 테이블이라 믿거나 말거나이긴 합니다. 애초에 STM에서 microSD를 만드나요?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마이크로센터 OEM으로 판매된 제품과 같은 제조사 코드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친구도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오… 순차 읽기 90MB/s, 순차 쓰기 70MB/s 이상으로, 1.66달러치곤 상당히 준수한 성능을 내줍니다.
f3 테스트는 어떨까요?
우선 데이터를 쓰겠습니다.
1GB 테스트인 AmorphousDiskMark와는 달리 64GB 전체 공간에 쓰기를 진행하는데, 연속 평균 쓰기 속도는 35.09 MiB/s 가 나왔습니다.
이제 읽기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연속 평균 읽기 속도 83.96 MiB/s, 깨진 데이터도 없고 용량도 정상이네요.
4. Eldingu 64GB Class 10 A1 UHS-I U3
친숙한 "그 포장"에 담겨 있습니다.
이 친구도 Bliksem처럼 중국어 기본폰트로 만든 로고와 저화질 표면 인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SD나 TF 같은 표기는 전혀 없고, Class 10, A1, UHS-I U3 등급 표시만 있네요.
CID 체크. 제조사 ID는 0x6F이고 OEM 정보는 유효하지 않은 값, 상품명은 CBADS, 시리얼은 aa000079이며 생산년월은 2022년 12월입니다.
클래스 10, SSR 정보에는 UHS-I U1, 비디오 속도 클래스 V10, Android A1 등급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시리얼 뒷자리 2개만 빼면 Bliksem과 똑같네요.
벤치 결과도 비슷비슷합니다.
f3 테스트. 먼저 쓰기를 진행합니다.
연속 쓰기 평균 속도 36.94MiB/s.
연속 읽기 평균 속도 84.57 MiB/s, 배드섹터 없고 용량 조작도 없습니다.
총평
알리발 메모리라고 해도, 용량이 1024TB인 SD카드처럼 누가 봐도 사기인 것들을 거르고 나서, 64GB처럼 "현실적"인 용량이 표기된 제품을 구매하면, 최소한 용량 사기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인 시각으로는, 테스트한 4개 제품 중 2개가 불량이었으니 불량율이 50%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리에서 SD카드를 사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양품이 걸린다는 가정 하에 64기가에 1.99달러라면 가성비가 좋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요즘 그냥 반도체값 자체가 하락세라 기성 제조사의 SD카드도 충분히 싸다는 점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현 시점에서 쿠1팡에서 로1켓배송이 되는 64기가 SD카드를 가격순으로 정렬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불량률 50%를 감수하고 2천원짜리 SD카드 사기 vs 8천원 주고 키2오시아 메모리카드 사서 로1켓배송으로 내일 받기...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 되겠읍니다.
ROM 비슷하게 쓴다면 AliExpress산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