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살다 보면 가끔 컴퓨터 케이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쓰는 컴퓨터의 케이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좋은 케이스에 잘 조립해서 두고두고 사용해야 하지요.
컴퓨터를 취미로 하거나, 또는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집에 이런저런 남는 부품들이 굴러다니기 마련이고, 가끔은 부품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 때가 옵니다.
이럴 때마다 메인 시스템의 케이스를 뜯어서, 거대한 그래픽카드를 힙겹게 빼내고, 예쁘게 정리한 선들을 다시 헝클어트리고, 빼낸 선들을 하나하나 다시 연결하고, 테스트가 끝나면 그 모든것들을 원상복귀 시키는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지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테스트용 컴퓨터와 테스트벤치 케이스입니다. 대충 부품을 모아서 막 조립하고 선정리같은건 내팽개치고 대충 작동만 되게 하는 용도지요.
대충 부품 모아서 테스트만 할거라면 굳이 케이스가 필요 없이 책상 위에 늘어놓고 선만 연결해도 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가 끝난 다음 부품들을 다시 차곡차곡 정리해서 담아놓는것도 일일 뿐더러, 가장 큰 문제는 요즘처럼 그래픽카드가 덤벨만큼 무겁고 커다래지는 세상에선 그래픽카드를 안정적으로 고정해줄 방법이 없으면 고작 PCB 끄트머리에 의존해서 보드에 매달린 그래픽카드가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마치 쌍쌍바 부러지듯 파손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래픽카드 골드핑거가 쌍쌍바가 되는 꼴을 피하기 위해 테스트벤치 프레임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 때문인지, 아니면 태스트벤치같은게 필요한 힙스터 컴덕들은 호구잡고 좀 뜯어먹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인식 때문인지 제대로 된 테스트벤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가격표를 붙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다나와에서 제일 싼 케이스를 아무거나 사서 막 쓰는 용도로 활용하자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분명 가격이 저렴한것은 좋은데, 이 작은 친구들의 체구로는 300mm를 기본으로 넘어가는 요즘의 우락부락한 벽돌형 그래픽카드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유튜브에서 후기들을 찾아보니 철판을 쓴건지 알루미늄 포일을 쓴건지 프레임이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찌그러지는 기적적인 내구성을 가졌더군요.
내구성때문에 막 쓰기에도 부적합하고, 호환성때문에 테스트벤치로 쓰기에도 부적합한 친구들입니다.
(다나와의 최저가 케이스들. 차력쇼용 벽돌을 집어넣기 어렵다)
그렇게 테스트벤치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누군가 분리수거장에 그럴듯한 케이스를 버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저는 대장님이 쓰신 글 하나를 보고 눈이 번뜩 뜨이게 됩니다.
<알리에서 배신당하지 않는 방법. 가장 단순하고 저렴한 컴퓨터 케이스>
역시 답은 있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 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물건을 찾으려면 알리로 가면 되는것이였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솔루션. 딱 필요한 것만 있다. 단돈 2만원!)
바로 링크를 타고 달려간 저는 대장님의 리뷰에 감탄하며 구매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알리의 AI는 저에게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츄라이 츄라이"를 연발했고, 그러던 와중 저는 뭔가 다르게 생긴, 그러나 가격은 비슷한 다른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 이 상품은 어떠세요? 츄라이 츄라이. 단돈 2만 9천원!)
몬가.. 몬가 조금 더 그럴듯하게 생긴 모습에 반한 저는 테스트벤치 하나를 사도 대장님과 다르게 사고싶은 힙스터청개구리 정신으로 알리의 추천을 받아들였습니다.
1. 본론
일주일의 기다림 끝에 소포가 왔습니다. 과연 9천원이 더 비싼 테스트벤치는 무엇이 다를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박스를 열면 구성품들이 가지런히 나옵니다. 의외로 부품들끼리 흠집이 나지 않게 포장에 신경쓴 모습이 놀랍습니다.
내용물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윗부분부터 순서대로 팬 브래킷, 메인 프레임, GPU 고정 브래킷, 파워 고정 브래킷, 운반손잡이, 나사와 부속 봉투, 드라이브 브래킷입니다.
나사와 부속들이 들어있는 봉투는 이런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나름 용도에 따라 다른 나사들을 넣어준 점이 특이합니다.
좌측 상단은 케이스 밑면에 다는 다리(스펀지 덧대짐), 중앙 하단은 전원 스위치, 중앙 상단은 메인보드 스탠드오프 나사를 돌릴 때 쓰는 소켓렌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싸구려 플라스틱이라지만 소켓렌치를 넣어준 부분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설명서입니다. 한장이 들어있고 앞면은 영어 뒷면은 중국어네요.
설명서만 보고 조립을 마친 프레임은 이런 모습입니다. 파워 브라켓 하나와 전원 스위치와 운반손잡이는 알아서 눈치껏 조립하면 됩니다. 생각보다 구조가 튼튼하고 도장도 까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이녀석을 처음 박스에서 꺼낼때부터 조립할때까지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철판의 단단함이였습니다.
그래픽카드를 뺀 테스트용 베이스 세팅을 조립한 모습입니다.
이 케이스의 놀라운 점은 아랫면에 있습니다.
철판을 ㄷ자로 접어 아랫면 공간을 띄워놓았는데요, 여기에 보조 철판을 덧대서 드라이브 베이로 활용합니다.
공간 활용성이 좋아지기도 하고, 프레임의 뒤틀림 방지 기능도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주고 싶습니다.
또 아랫면의 네 모서리에 스펀지가 덧대진 다리가 달립니다. 이 다리 덕분에 프레임이 직접 바닥에 닿지 않고 안정적으로 눕혀둘 수 있습니다. 별 거 아니지만 나름 만족도가 높았던 디테일입니다.
다만 메인보드 후면 컷아웃은 쓸모가 없습니다. 저 컷아웃을 만들며 잘라진 철판을 드라이브 베이로 만든 모양인데, 이왕 잘라낼거면 좀 더 가운데쪽으로 자르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메인보드 시리얼번호 구경용으로는 쓸 수 있겠네요.
이 프레임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 또 하나는 전원 스위치입니다.
그래픽카드까지 모두 장착한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GTX780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오픈형 테스트벤치가 부품 호환성을 타는것은 모순이겠지요.
프레임을 세우면 이렇습니다.
세로로 세우면 차지하는 면적이 아주 컴팩트해집니다.
2. 결론
집에 부품들도 남고, 주마니에 2만 9천원도 남으신다면 사볼만한 물건입니다. 알리에서 스마트하고 정교한 물건을 기대하면 뒤통수를 맞을 것이 뻔하지만, 이렇게 철판으로 단순하게 찍어내는 수준의 물건은 돈값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점
- 합리적인 가격
- 생각보다 아귀가 잘 맞음
- 생각보다 견고함
- 생각보다 도장이 튼튼함
- 컴팩트한 크기
- 전원 스위치가 달려있음
- 후면에 수평으로 장착되는 드라이브 베이
- 안정적으로 눕혀놓을 수 있는 다리
- 상당히 편리한 운반 손잡이
단점
- 조립할 때 쇠비린내가 많이 남
- 쓸모없는 후면 컷아웃
- 파워 길이가 정확히 안맞으면 홀더 1개에 의존해서 고정됨
- 팬 홀더를 정위치로 설치하면 EATX 메인보드 설치 불가능
- 280mm 이상 라디에이터를 정위치에 설치하면 그래픽카드와 간섭이 일어날 수 있음
- 상단파워형 구조 (파워를 위에 두고 세우면 무게중심이 불안함)
-참고 링크
1. 구매하실 분들을 위한 상품 페이지 ( 2만 9천원 )
2. 대장님이 리뷰하신 채굴용 프레임 ( 2만원 )
3. 알리 쇼핑중에 찾아낸 그럴듯하고 멋진 Bykski 테스트벤치 ( 7만 1천원 )
(좀 더 비싸고 멋있는걸 써보고 싶으신 분들이 리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테스트벤치 구매에 좋은 아이디어를 주신 대장님께 감사의 의미로 돈은 없고 사랑을 한웅큼 보내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