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글에서 쓰는 첫 사용기네요.
기글의 가호로 EMP와 우주방사선이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며, Odroid HC-4 후기를 적어봅니다.
arm 열풍이 뜨겁습니다. 약쟁이 정신으로 무장한 사과맨들이 사과농장 아키텍처를 arm 기반으로 변경하고 나서 사방에서 AMD64에서 arm 기반 아키텍처로 이주하려는 행렬이 마치 사이버 유목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끌벅적하네요.
그런 김에 저희도 이주를 시도해볼까 고민중입니다. AWS에서 최신 세대 범용 컴퓨팅 머신은 arm 암페어 기반인데, 대여료가 제일 저렴해요. 그래서 이 최신 세대로 이주하면 와! 서버비 절감! 아무고토 안 하고 그저 머신 종류만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홍보를 열심히 하길래 혹해버렸어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AWS에서 인스턴스를 파서 이것저것 해보기도 좀 무서운 게, 요금폭탄 한 번 나오고 나서 뻘짓은 클라우드 위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배운 뒤에는 빡빡이 베조스가 어떻게 하면 불쌍한 고객들의 호주머니를 거지같은 이용요금표와 약관으로 갉아먹을 수 있을까 하는 동네로밖에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현재 시중에서 arm 서버를 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잘 팔지도 않을 뿐더러 파는 것도 저희 사정에 비해서는 상당히 오버스펙에, 그렇게까지 투자할 여력도 없네요. 그래서 아 암돌려보고 싶다... 하던 중 대안으로 발견한 것이 Odroid입니다.
SBC, 싱글보드 컴퓨터는 많은 이들을 컴공의 늪으로 빨아들였습니다. 미대생부터 요즘은 중고등학생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저렴하고 가지고 놀기 좋은 컴퓨터와 자연스레 딸려오는 Unix-like(공짜니까) 운영체제에 별의별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당연히 발열과 가격을 잡기 위해서 arm 기반 아키텍처와 작고 귀여운 성능, 고기는 못 구울 정도의 발열은 덤입니다.
그러면서 확실한 컨셉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든 것 같습니다. 기존 AMD64의 지향점은 '범용'이고, arm의 지향점은 '저전력'인 점이 입문자 입장에서는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래서 각설하고, 국내 제조사인 하드커널에 나름 신상품인 Odroid HC-4를 주문했습니다.
처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공식 쇼핑몰이 너무 올드한 느낌이라 다른 쇼핑몰들을 찾아보니, 그... 중국 직구 아시죠? 번역기 돌려서 상품들 긁어서 올려놓는. 그런게 한가득이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홈에서 구매했습니다. php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미권 중소기업 홈피 느낌이 나는 공홈은, 오지게 느립니다.
웹 개발자가 없는 것 같은데, 디자인은 차치하고서라도 사이트가 느려요.
UX가 불쾌할 정도로 느린 사이트는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다행히 TLS 인증서는 살아 있는데, Let's Encrypt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드는 생각이 '여기는 자기네 공홈도 자기네 개발보드 위에서 돌리나?' 했습니다. 근데 진짜 의심중입니다. 아니라면 제발 접근성 개선이 시급합니다.
참고로 위키랑 포럼도 많이 느려요. 공홈보단 나은 편인데 기글처럼 빠릿빠릿하고 크-린한 경험은 못 줍니다.
놀랍게도, 공홈에서는 아주 여러 번 경고를 올려놓았습니다. 사후지원은 불가하답니다. 이메일과 전화번호 옆에는 한국어 페이지인데도 (No technical support) 라고 써놓았어요.
초기불량시 2주인가 이내 교환신청하는 것 외에는 아예 사후지원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지원은 포럼과 위키에서만 진행한다고 하네요. 이게 B2B 개발보드 판매전략인가 싶은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넣었습니다. 생각보다 싸진 않아요. 귀찮아서 파워 서플라이도 같이 시키고 부가세 10%, 배송비가 붙으니 $69에서 10만원 조금 넘는 금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4일동안 송장이 안 나오더라고요. 배송준비라고 뜨는데, 다행히 추석 전에 시켜서 그전엔 왔습니다.
5일차 송장이 뜨자마자 거의 당일배송이 되었습니다. 경기도 안양시라니까, 익일 배송인 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좋네요.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통해 수령한 녀석입니다. 이 모든 기본적인 판매역량에 투입할 수 있었던 자원을, 그저 개발역량에 몰빵했길 빌면서 택배를 깠습니다.
나름 자체 박스도 있는 건 좋군요.
흰 상자가 2개여서, 뭐 사은품이라도 넣어줬나 하면서 기대하며 열었습니다.
...낚였죠. 놀랍게도 파워 서플라이가 콘센트 교체형이더라고요. 국가별 콘센트에 맞게 그것만 바꿔 보내주는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고정은 확실하게 되긴 하지만, 허접하긴 합니다.
이렇게 받아 놓고 운영체제 굽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대충 우분투 마테랑 미니멀 지원해줘서 미니멀 깔았죠. ssh로 연결해서 쓸 건데 괜히 GUI 깔 필요는 없으니까요.
여기서 뻘짓 좀 했습니다.
위키에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SD카드 리더기에 물려서 이미지 구운 건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엔 잘 되었는데 이미지가 깨지더라고요. 가족 노트북에 마이크로SD 단자가 있는 게 있어서 거기서 구우니 잘 됩니다.
하드커널(제조사) 제공 우분투 미니멀 이미지에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root 계정이 아예 설정되어 나온다.
2. ssh가 포트까지 열려서 완전히 설정된 채로 나온다.
3. 유일한 팬 작동온도가 60°C부터 시작된다. 그 이하 온도에서는 제로팬이다.
4. 홈 경로에 psp 에뮬 관련 프로그램들이 깔려 있다. - 오드로이드를 게임용으로 많이 쓰나 봅니다.
그리고 HC-4 자체적인 특징이 또 있습니다.
1. 느리다. 정말 느리다.
2. 그런 와중에 부팅 로고는 잘 뜬다.
3. 바닥에 뾰족한 물체로 간신히 눌러야 하는 전원 스위치는 작동하지 않는다(용도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4. 파워를 꽂으면 부팅이고, 뽑으면 강제종료다.(???)
5. 하드를 꽂으면, 공진음이 예술이다.
랜이 기가비트 랜이라는데, 물린 공유기가 100메가 압티메 공유기라 제성능을 다 끌어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파일 다운로드는 11~12mb/s로 잘 나오더라고요.
여러 방면에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별도의 전원 스위치가 없어요.
바닥에 똑딱이 스위치가 하나 있는데, 진짜 아직도 그거 용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그거 누르려면 하드 꽂힌 본체를 손으로 들어올린 뒤 볼펜 같은 걸로 깊숙히 파인 구멍에 찔러넣어서 눌러야 해요.
처음에 그거 눌러야 부팅되는줄 알고 일단 전원이랑 HDMI, 키보드 연결하니까 이미 petitboot 떠서 당황했습니다.
발열은 제법 있습니다. 불쾌한 뜨뜻함이 이것저것 돌리면 느껴지는데, 제가 쐬는 선풍기 바람에 맞기만 해도 3~40도로 훅 떨어지는 걸 보면 총 발열량이 진짜 적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쿨링 솔루션도 진짜 구색맞추기로 달아놓은 느낌이 있어요.
하드 쿨링 솔루션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팬 하나 사던가 USB선풍기 하나 달아주면 완벽할 것 같아요.
40mm 팬이 조립되어 나옵니다. 60도까지는 제로팬입니다.
$ sudo apt install lm-sensors 해서 프로그램 깔고 $ sensors 하면 SoC에 내장된 센서값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보니 온도는 진짜 잘 나오더라고요. 위가 램 온도, 아래가 SoC 프로세서 온도입니다. 아래가 항상 1도 정도 낮게 나옵니다.
상당히 정확합니다. 40mm 팬 켜고 끄고, 외부 선풍기 바람 있고 없고에 따라서 휙휙 바뀌는 게 진짜 온도계 느낌 나서 그거 하나는 좋았습니다.
팬을 최대속도로 올려보니 40mm 특유의 엔진음이 납니다. 그래서 130(0~255, 255가 최대풍속)인가 주니까 간신히 잘 안들릴 만한 소음이 되어 그렇게 설정해놓았습니다.
60도 팬리스 기본설정으로 두면 60도는 안 가고 55도 근처에서 놉니다. 별로 느낌이 안 좋아요. 약하게라도 내장 팬을 틀면 그래도 50도는 웬만해서는 안 넘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능 정말 느려요. 셀러론 같은 애들이랑 비교하면 안 됩니다.
옛날 이미지라고 해도, apt update && sudo apt upgrade -y 가 10분이 넘게 걸리니 멘붕이 옵니다.
여기에 도커를 깔아 올려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싹 접었습니다. 이건 범용으로 못 씁니다. 파일공유나 NAS 딱 하나만 하면 잘 맞을 것 같아요.
홈서버에서 NAS + CCTV + 개발머신으로 말 그대로 범용으로 이것저것 다 돌리고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얘는 참고로 Athlon 200GE입니다. 2코 4쓰 TDP도 착하고 성능도 잘 나오고 문제도 없어서 너무 좋아요.
다만 애슬론 기쿨은 쓰레기여서 안 쓰는 라이젠 기쿨 달아주기만 하면 되었었는데... Amlogic S905X3 프로세서도 나름 4코어인데 너무 체감차이가 많이 나긴 합니다.
문제는 저 토스터 폼팩터입니다. 폭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하드를 꽂은 뒤 옆으로 밀면 움직입니다. 즉 수직으로 꽂는데 고정이 완벽하게 안 돼요. 놀랍더라고요.
2개 다 꽂을 엄두가 도저히 안 납니다. 하나는 SSD 꽂아야 사용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도 초기 목표인 '핫스왑 되는 HDD 복사기를 사는 대신에, 조금 더 보태서 (나름) 컴을 사자!'는 잘 달성한 것 같습니다.
핫스왑 잘 되고, 인식 잘 됩니다.
백그라운드에 아무것도 안 띄우고 막 쓰는 갈 때 되신 500기가 하드 하나 꽂은 채로 bpytop 한 번 찍어봤습니다.
분명 4코어 4기가 램 맞는데... 이런 성능은 결국 웹서버 아니면 파일서버로밖에 못 쓸 것 같기는 한데, 사용처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심심할 때 위키나 웹 사이트 하나 만들어서 잊어버리고 살 것 같긴 한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물건이었습니다.
케이스와 배송은 정말 아니올씨다지만, 가장 핵심적인 SBC는 분명 잘 만든 놈인 것 같습니다. 시간과 예산이 주어진다면 아예 케이스 하나 만들어서 고용량 하드 두개 딱딱 꽂고 레이드 걸어놓고 팬 큰거 하나 붙여서 다락방 NAS로 잘 쓰겠지만, 언제 그럴 의욕이 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결론은,
1. 헤비하게 도커에 이것저것 올리는 NAS로 쓰려면 사지 마세요.
2. 돈이 정말 없어서 정말 최소전력 NAS나 미니서버가 필요하다면 좋은 선택입니다.
3. arm 써보고 싶으면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4. 정 최고 가성비 NAS로 쓰고 싶다면, 케이스 자작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5. 참고로 bios 없어요. x86-64랑 이것저것 조금 다른 게 있습니다.
6. 저는 써봤으니까 다시 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셀러론보다도 안 좋다면 쓰기가 쉽지 않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