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버거의 플라토닉 이상향>, 사진, 마커스, 2020
Sony ILCE-6500 / FE 55mm F1.8 ZA / ISO 160, f/2.5, 1/80sec
영감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찾아온다고 하던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치즈버거가 그렇게 먹고 싶더군요. 그런데 하다못해 맛있는 버거용 빵 하나 살 수 없는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야 쉽지요. 아무래도 버거를 만드는데 빵부터 반죽해 만든다는 것은 마치 삼겹살을 먹기 위해 돼지를 도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들어가는 노력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일단 버거를 만들고, 감자빵위에 특별한 소스 순쇠고기 패티 두장 치즈에 양파까지 올려 접시 위에 놔 보았습니다.
원래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치즈버거라고 해 봐야 잘 구운 라자냐나 피자처럼, 아니면 케이크나 파이처럼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카메라라고 할 만한 것은 레시피 보는 용도인 아이패드의 카메라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감이 딱 오더군요. 그래서 마치 시골길을 운전하다가 영감을 받아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풍경사진 작가처럼, 길을 지나가다가 만난 생판 처름 만난 사람에게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 인물사진 작가처럼 모든걸 멈추고 달려가서 카메라를 가져왔습니다. 조리개나 셔터 속도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지난번에 쓴 설정을 그대로 두고, 당연히 스트로브에 건전지따위는 챙길 생각도 안 들어서 내장 플래시를 손가락으로 받쳐 세워서 벽과 천장에 바운스를 때려 찍었습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이걸 렌즈에 담지 않으면 놓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요.
하다못해 플레이팅에도 신경을 쓰긴 커녕 접시에는 패티 조각과 소스와 기름기가 번들거리고, 배경에도 성의 없이 식탁과 벽을 놓고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는 너무나도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노출과 색온도 보정 정도는 해야 합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만, 오늘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사실은 먹기 좋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버거의 맛에 대해 설명을 하면 무엇 하겠습니까만, 마음 한켠에는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이후로 먹는 버거들은 기존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것. 다만 이미 버거를 먹은 지 두 시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속에는 그 조화로운 맛이 금방이라도 다시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진 작품으로서도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담은 사진이 아닐까요.
사실 사진 한 장을 놓고 글을 이만큼 썼으면 사진의 비중이 적은 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진 게시판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취미로 만지면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셔터부터 누른 것은 이번까지 더해 단 두 번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작품으로서 제목마저 붙이고자 합니다. 수많은 치즈버거들이 되고자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개념적 이상향, 즉 "치즈버거의 플라토닉 이상향" 이라고요.
* 추록: 그래도 그렇게 자랑을 해놓고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레시피 링크를 남기고 갑니다. 빵, 패티, 소스(링크의 소스 부분만 + 핫소스) + 얇게 썬 양파
사진같은경우에는, 전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찍는, 포토그래퍼를 위한 제한적인 상황보다는 돌발적이거나 우연히 잘나온 사진들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저 사진도 깔끔하고 완벽해보이진 않아도, 자연스러운 느낌때문에 더 원하던 느낌이 더 살지 않았나 싶어요
....뭔가 핀트가 빗나간거같은데, 암튼 그렇다구요(쭈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