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도 날려먹고, 2080은 치웠고, 이럴때 아니면 어디 갈 수 없다는 충동이 들어 강원도에 후다닥 다녀왔습니다.
사북에서 석탄유물종합전시관을 보고, 강원랜드라는 곳을 살짝 들여봤다가, 옆동네 고한으로 넘어가 수요미식회에 나온 맛집을 가고, 동백산-솔안 사이의 한바퀴 도는 철도를 타면 완벽하겠군! 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제가 무슨 마미손도 아니고 계획대로 되고 있을리가 없죠.
옛날에는 탄광 산업이 흥해서 제법 발전했던 곳이나, 지금 석탄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다들 아실테고.. 이제는 근처에 생긴 강원랜드에 경제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동네 규모에 비해 엄청난 자본이 들어갔다는 게 느껴지고, 그 자본이 대부분 강원랜드에 관련된 것이죠.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그런가, 가게마다 붙어있는 '콤프 가능'(강원랜드 마일리지 비슷한걸 쓸 수 있다는 소리) 이라는 안내문 때문인가, 동네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밥부터 먹어야지 싶어서 아무 밥집. 만원짜리 김치찌개인데 반찬은 별 의미가 없고, 고기는 분명 삼겹살이 들어갔지만 국물의 대주주는 미원이군요. 집 근처에 6000원짜리 김치찌개가 얼마나 자비로운 음식인지를 깨닫습니다.
분명 맛집이나 인심 좋은 집도 많겠지만, 굳이 그렇게 장사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네요. 서민 음식 김치찌개를 만원으로 잡기 위해 반찬을 붙인 것도 그렇고. 이런 가게인데도 계란 60판을 한번에 들이는게 장사는 괜찮게 되는듯.
길을 잘못 들어서 뜻하지 않게 동네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 같은 간판도 보고.
요새는 LPG 통의 색이 바뀌었나봐요?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큰 가스통은 지극히 당연한데, 저걸 어떻게 들어서 옮기려나.
큰 강 옆에 오래된 건물이 있어서, 대만의 우라이 같은 분위기가 났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라 마누라도 똑같이 생각하네요.
이제 석탄유물보존관으로 올라갑시다. 남들은 차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전 언제나 도보를 선호하죠. 겁나 오래된 굴다리.
차타고 도박하러 와서 강원랜드에서 돈 다 잃은 후 전당포에 차 맡기고 집까지 걸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좀 외곽으로 빠지니 전당포가 많네요. 대포차를 정말 팔기는 하려나.
석탄유물종합전시관. 알쓸신잡에서 소개된 걸 보고 저긴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꿈을 이제서야 이루게 됐습니다. 실제로 광부들이 쓰던 물품들이나 장소가 그대로 소개된 곳이에요.
-는 개뿔. 어쩐지 홈페이지도 제대로 된게 없고, 등록된 리뷰도 얼마 없고, 곳곳마다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고, 관리 주체는 중구난방이고 리뷰도 몇개 없더라니.
나중에 와서 볼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 뒤에 보이는 것들은 하이원리조트, 혹은 강원랜드. 앞에 보이는 차들은 더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박물관으로 보내야 하지 않나 생각되는군요.
뒤의 언덕을 보니 탄광은 탄광이었구나 싶네요.
여기서 강원랜드를 가기 위해 도로 내려왔습니다. 걸어서 마저 올라가면 되지만 무료 셔틀을 타는 게 더 빨리 가는 방법일것 같아서요.
그러나 강원랜드가 1.입장료를 받고, 2.입장 인원이 정해져 있으며, 3.들어가도 기계마다 자리를 맡아둔 사람들이 많아 플레이하기 어렵다. 라는 후기를 보고 깔끔하게 포기.
마을의 생기 없는 분위기를 보고 있으니 강원랜드를 굳이 가 볼 생각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기도 했고요.
기차타고 고한으로 왔습니다. 한정거장. 버스를 타긴 좀 애매해서, 그냥 신선한 공기 마시며 기다렸습니다.
사북은 앞으로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고한은 앞으로도 오고 싶은 동네에요. 여기도 강원랜드 영향을 크게 받았고, 심지어 강원랜드 직원 사택이 있는 동네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여기는 강원랜드 이전에도 사람들을 끌어모을만한 요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스키 같은 레저 산업으로.. 오래된 숙소가 있는 걸 보니 딱 티가 나더군요.
메밀촌막국수. 점심 먹은지 얼마 안되서 곤드레밥 말고 이것만 시켰습니다. 맛이 적당히 좋군요. 이런 맛일줄 알았으면/일정이 이렇게 꼬일줄 알았으면 점심은 안 먹고 버틸걸 그랬어요. 다음번에도 기꺼이 와서 먹고 싶은 맛입니다. 자리만 있다면.
다만 홀에서 일하는 동남아/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요식업에 대한 이해가 없네요. 여기 일이 힘든건가, 아니면 시급이 짠건가, 혹은 사람이 그만큼 없는건가.
서빙 직원들 수준이 형편없어도 여전히 팔릴 맛이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음식점이 될 수 있는 곳에 이런 평가를 내려야 하는 건 많이 아쉽네요.
여기도 급류가 흐르는 강이 있습니다. 우라이보다는 일본의 구조하치만을 보는 듯...하지만 별 의미는 없네요.
히익 죽음
고한읍 뒷골목. 단층 주택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분위기가 되게 차분해서, 이런데서 한달 쯤 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더군요. 물가도 사북보다는 훨씬 나아보이고. 빵집이나 편의점도 있고.. 고한역 건너편의 고한읍 모노레일도 신기하더군요. 무료니까 괜히 타보고 싶어지던데.
마을보다 고지대에 위치한 기차를 타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더군요. 대만 허우퉁-스펀-징퉁까지 가는 기차와 느낌이 많이 비슷했어요. 굳이 외국까지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도 볼게 많구나 생각도 들고.
여기까지 보고 태백/동해/정동진은 패스하고 바로 강릉으로 갔습니다. 동백산역에서 심포리역 사이에 철도가 한바퀴 빙 도는 곳이 있어서 기대를 걸었는데, 알고보니 그냥 터널이었네요.
강릉 숙소 앞에서 포장한 치킨. 반반이 17,000원인데 감자튀김도 주고 콘슬로에 치킨무에 콜라까지. 맛도 좋고요. 이런 가게가 집 앞에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시켰을텐데요. 위치는 CU 강릉신성점 옆. 이름은 까먹었어요. 지도에는 참돌이 더블치킨이라고 나오는데 정작 가게는 전혀 다른 곳이었거든요.
숙소는 그 근처의 크리스탈모텔. 어지간하면 모텔 좋았다 나빴다 이야기는 안 하지만 이번엔 해야겠어요. 강릉에 오면 별 일이 없는 한 무조건 크리스탈모텔로 갈거에요. 가격 무난한데 청소가 깨끗하고 이불에서 장난 안친다는게 팍팍 느껴지거든요. 청소하시는 분이 인사하시는 곳도 정말 오래간만.
다음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
옆동네 일본만 가도 아직까지는 스위치백이 살아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그런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