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쨰 여기 와서 계속 오디오 이야기만 하는 거 같지만) 대충 저번 일요일날 디렘 프로 개발을 위한 청음회를 다녀왔습니다. 저랑 제 지인, 그리고 기글하드웨어 회원이라면 perillamint님과 유우나님이 같이 갔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4명 말고 다른 팀은 없었어서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오는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충 연구실이라고는 하지만 오피스텔을 개조해서 쓰고있는거라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기가 가정집인지 연구실인지는 잘 모릅니다. 근데 들어가보니 그동안 출시한 제품들과 측정장비들이 놓여있는걸 보니 뭔가 하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충 평가는 세 가지 항목에 대해서 진행했는데요.
1. 시안 디자인
2. 시안 착용감
3. 청음 후 음색 평가
로 진행을 했습니다. 디자인은 소니캐스트 블로그 들어가셔서 보면 되니 별로 이야기거리가 안 되고, 착용감은 일부 부분이 날이 서 있어서 귀에 찔리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청음이잖아요?
제가 항상 쓰고 있는 ATH-MSR7과, 다른 소니캐스트 제품과 비교하기 위해서 E3과 w1을 가져갔습니다. 청음 후 샘플에 대해서 평가를 적고, 감상을 이야기한 다음에 각 샘플당 설계 의도와 측정치를 보는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맨 왼쪽 샘플이 디자인 시안이었고요, 그 오른쪽의 6개가 이번에 음색 튜닝을 위한 샘플입니다. 완성품은 아니고 돌피니어 하우징에 SF드라이버 집어넣고 음색 튜닝을 한 물건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음질은 크게 다르지 않고 어떤 음색이 취향에 맞는지를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케이블도 임시로 연결되어 있어서 잘못하면 끊어먹을까봐 조심해서 다루었습니다.
일단 시안 1번부터 6번까지 중 3개는 SL 타겟이고(하만 타겟 개선) 3개는 DL타겟입니다. (DF타겟 개선) 대충 SL타겟은 대중적인 소리, DL타겟은 사람들이 보통 플랫하다거나 (저같은 경우) 밑빠진 독 사운드라고 표현하는 소리입니다. E3의 음색에서 개선한 것이 대충 SL타겟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느 것이 SL타겟인지 DL타겟인지에 대해서는 청음 전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각 제품의 특성은 명확했기 때문에 청음하기 어렵진 않았습니다.
아래부터는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청음은 개인 디바이스를 사용해서 진행했고, 곡도 개인이 선택해서 진행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린지 스털링의 shatter me와 조용필의 태양의 눈으로 진행했습니다. shatter me는 악기 구성이 좀 단조롭기 때문에 각 악기가 내는 소리를 얼마나 잘 재생하는지에 초점을 맞췄고, 태양의 눈은 기타, 드럼, 베이스, 합창단, 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되기 때문에 여러 악기가 얼마나 해상력을 좋게 내주는지를 중점으로 들었습니다. 공통적으로는 저음과 고음에서 악기 소리가 난 후, 다음 소리가 나기까지의 잔향감을 얼마나 잘 재생하는지도 염두에 두고 들었습니다. 모든 청음회가 끝났기 때문에 스포일러에 대한 제약이 없어서 참 좋네요. 감상은 저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은 메모대로 적었습니다.
1번은 전형적인 오디오테크니카의 사운드입니다. 여성보컬과 하이햇 영역이 강조되어 있지만 저음이 빠져있지는 않습니다. 흔히 커뮤니티에서 "르스"라고 부르는 LS200하고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애니송 듣기 참 좋은 물건이었지만 문제는 각 대역 사이가 비어있어서 집중하고 듣는다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양의 눈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났는데, 기타 소리가 뒤로 빠져서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2번의 경우에는 보컬이 앞으로 나와 강조되어 있고, 상당히 밸런스가 잘 잡힌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저음부 표현력을 볼 때, shatter me의 덥스텝 베이스 부분에서 근음은 잘 안 나오고 배음이 표현되어서 되게 가볍고 통통튀는 소리가 나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컬이 나와있고 고음부에서 약간 부족해서 어두운 음색이 느껴졌습니다.
3번의 경우에는 고음이 강조되어서 좀 쏘는 소리가 났습니다. 바이올린은 잘 들리지만 shatter me의 태엽소리 같은 경우에는 태엽 소리는 날아가고 태엽 위의 노이즈만 살아나는 기현상이 들렸습니다. 드럼 킥 같은 경우에는 잔향부분이 잘 들리고 정작 드럼을 때리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네어를 치는 다이나믹한 느낌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태양의 눈에서는 스네어 대역이 달라지니 스네어 드럼이 뒤로 빠지는 현상이 들렸습니다.
4번의 경우에는 딱 ER4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네, (누구는 이것을 좋다고 말하시겠지만) 밑빠진 독 사운드요. 저음이 저 하늘로 날아가버린 대신의 극한의 해상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MSR7도 다른 물건에 비해서는 꽤나 저음이 없고 단단한 편인데, 이 샘플의 경우에는 MSR7에서 저음의 양감을 "더" 줄이고 단단함도 같이 날아간 느낌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투명한 소리가 났습니다. 악기와 악기 사이 잔향이 확실히 남는 소리 말입니다. 태양의 눈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었습니다. 중저음이 통째로 날아간 느낌이 들어서 케이크에서 빵은 버려놓고 크림만 빨아먹는 느낌의 소리가 났습니다.
5. 2번에 비해서 보컬이 좀 더 멀어졌습니다. 2번이 머리 앞 2cm에서 나는 보컬이라면 5번은 한 7cm까지는 멀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좀 더 단단한 소리가 나는 것도 특징입니다. 그리고 2번에 비해서 더 투명해지고 하이햇 소리 같은 부분이 더 나아졌습니다. 태양의 눈을 들었을 때는 1번보다 더 밝은 소리가 났습니다만 다이나믹스가 6번에 비해서는 좀 부족했습니다.
6. 저번 리뷰에서 제가 E3에 대해 단점으로 짚었던 요소들이 해결된 소리가 났습니다. 저음의 양이 줄어서 다른 대역을 침범하는 일이 없어졌고 (이는 벙벙대지 않고 단단해졌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고음부가 좀 더 투명해졌습니다. 하지만 벨이나 하이햇이 바이올린이나 보컬에 가려서 강조되지 않았던 점은 단점으로 짚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청음 결과를 서로 공유했는데요, 저같은 경우에는 1번과 6번을 좋은 물건으로 짚었습니다. 하지만 1번같은 음색을 찾는다면 오디오테크니카 물건을 사면 되겠죠. 결국 의논을 거친 다음에는 5번과 6번을 짚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대체적으로 6번을 좋은 물건으로 짚으셨습니다. (4번을 선호하신 분도 계십니다.) (웃음)
대충 정답을 알려드리자면 1,2,6번이 SL타겟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샘플이고, 3,4,5번이 DL타겟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샘플이었습니다. 이후 튜닝 의도와 샘플들의 측정 결과를 공유했습니다.
SL타겟 샘플들은 하만 타겟보다 공통적으로 저음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샘플의 차이가 나는 것이죠. 1번의 경우에는 "펀 사운드"를 지향하는 샘플이었습니다. 저음과 고음, 그리고 몇몇 대역들이 부스트되어서 구불구불한 모양이 나는 샘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소니캐스트에 기대했던 다리미로 핀 주파수 응답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이죠. 그리고 6번의 경우에는 제가 청감적으로 느낀 것 그대로의 소리입니다. 극저음부를 좀 줄이고, 3k 부스트를 줄인 다음 초고음부를 다듬은 물건이죠.
3,4,5번은 좀 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단 기본은 4번입니다. 극저음 부스트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3k 부분과 고음 부분만 부스트 해준 것이었거든요. 3번은 여기서 저음부를 살짝, 고음부를 더 부스트한 형태고, 5번은 더 SL타겟에 가까워지는 형태로 저음과 고음을 부스트한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감적으로 2번과 5번이 비슷하게 느꼈었습니다. (주된 차이점은 보컬의 거리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음한 사람들끼리 대충 이야기를 나눈 결과 판다면 5번과 6번을 기반으로 만드는 게 어떤가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1번과 4번은 다른 브랜드가 이미 잡고 있는 성향이기도 하고요(웃음) 3번은 도저히 쏘는 소리가 나서 피로감만 느낀 결과가 났습니다.
물론 1번부터 6번까지 모두 실제 제품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제품은 청음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다듬을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 청음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대충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야기고, 나머지 1시간 반 동안은 연구실 소개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선 W1 관련해서 핫했던 소재인 QCY T4와의 관계와 배터리 안전인증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tws와 국내 음향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은 덤입니다.)
대체적으로 결론은 위키에 업데이트를 해 놓았습니다만 개략적으로는 QCY T4쪽이 카피를 한게 맞다는 쪽입니다. DIREM W1의 개발 시기가 더 앞에 있었고, 홍보자료도 과장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독점 칩셋, 자체 금형 등) 다만 이게 홍보물로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법한 말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칩셋의 경우에는 시판 칩셋을 기반으로 한 특주품이었고(PAU1606-S1R1 칩셋은 제가 찾아본 결과 QCY T4와 W1 말고는 쓰는 제품이 없었습니다 (웃음) ) 자체적으로 펌웨어를 만든 게 맞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슬픈 소식은 DIREM W1 pro와 DIREM 마세라티 에디션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진행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소리겠지만 DIREM 마세라티 에디션은 DIREM Pro로 어느 정도 기획이 이어지는 거 같은 느낌이 드니 어떻게 보면 또 다행인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저도 평소에 주변에 말하고 다니는 편입니다만 한국 음향기기 제조사들과 음향 관련 커뮤니티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소니캐스트가 개발자가 활동을 많이 하는 지극히 특이한 경우고, 보통 다른 회사들은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 이렇게까진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제품이 수입으로 들어오고(특히 매니아들이 쓰는 제품은 거의 대부분이) 수입사들이 그저 다른 제조사가 만든 (그리고 최근엔 중국에서 OEM/ODM으로 떼오는) 물건들을 단순히 유통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에 궤를 같이합니다. 오디오 잡지를 봐도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청음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인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측정을 기반으로 한 리뷰가 많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주파수 응답 그래프를 기반으로 한 설명이 많아서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도헌교수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으셨지만 주파수 응답 그래프가 모든 것을 말하진 않습니다. 주파수 응답은 음색을 설명하기엔 유용한 도구입니다만 음질을 나타내는 영향력이 상당한 지표는 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Impulse Response 그래프라던가, Square wave 응답, Step response 응답같은 것들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데, 국내 리뷰 사이트들은 이런 것들을 제공하지는 않거든요. 차라리 이너피델리티나 오디오사이언스리뷰가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았습니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게 2000년대의 그 막가파식 오디오로 돌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 간혹 보여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겠듯이 불만을 엔간하면 안 꺼내겠지만..... 그런 현상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계속 접근해 나가는 것이 커뮤니티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위키에 글을 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고 아는 거 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걸 하나하나 공유해나가서 공공의 지식을 쌓는 것이 최종적으로 커뮤니티의 발전을 낳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S : 아니 대체 화이트노이즈로 이어폰 청음을 하는 빌런은 누군가
PS2 : 다른 팀은 밥도 사 줬다는데!
PS3 : 디락도 기념품으로 줬다는데!
PS4 : 누군가의 애플 인이어를 측정기에 집어넣자마자 THD가 10% 이상으로 치솟은 게 개그
.....
그래도 다른 팀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 가치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게 본심일지는 상상에 맡기는 걸로?
여튼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장입고 갈까 하려다가 평상복으로 입었네요
막 집어 입었는데 회사 로고가 아닌 컨퍼런스 티라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