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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비봉클럽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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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작정하고 비평문 좀 써보려고 벼렸는데 생각해 보니까 다른 과제도 많고 해서 어설프게 감상평 나눠봅니다.

 

*

 

먼저 영화가 서사 장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희곡과는 다르게 영화는 시점이라는 제약이 존재하며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를 볼 때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분석해야 합니다. 화자가 뭘 말하고 싶은지 작가가 뭘 보여주고 싶은지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따라서 정석대로 하자면 시간순으로 정렬된 스토리와 다시 재구성된 플롯을 텍스트에서 추출해야만 하며, 거기에서 상징물과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도식화해서 그래프로 만들어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상징물이나 인물의 행동, 대사 등이 무언가 하나를 말하려는 것처럼 어떤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주제입니다.

 

또한, 시점도 플롯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좋은 작품은 작품의 플롯과 제시한 시점이 매우 잘 섞여 있어 서사 전개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같은 플롯을 1인칭 화자가 전달하거나 전지적 화자가 전달하거나 제한적으로 전지된 카메라가 전달하는 것에 따라 독자는 새삼 재미없게도 또는 아주 몰입하면서 작품을 읽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희곡 이론을 가져와서 분석하기도 하는데 바로 미토스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체 플롯과 상징물, 인물 분석이 완전히 다 끝난 뒤에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상승의 봄, 긍정 지속의 여름, 하강의 가을, 부정 지속의 겨울로 미토스를 나눕니다.

 

빠뜨리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삽화가 있습니다. 삽화는 서사 진행에서 굳이 삭제해도 무방할 필요 없는 군더더기처럼 보이지만, 화자(작가)는 삽화를 통해 작품의 주제에 가까운 것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삽화를 왜 굳이 집어넣었는지, 삽화의 의미가 뭔지 파악하는 것은 작품 이해에 한발 다가서는 데 필요한 작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이 너무 주제만을 강하게 전달하려 하거나 너무 많은 주제를 주입하려 한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교술성이 너무 짙어져서 더는 소설이 아니라 삼류 프로파간다 사상교육 자료가 되어버리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에서 나병 환자들과 조 원장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겉으로는 개인과 집단의 대립이라는 분규 발생형 플롯 구성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는 조 원장이 가진 권력욕이나 과시욕이 뒤틀려 그들의 낙원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만의 낙원을 만들려는 개인의 내적 갈등을 연쇄 고리식 플롯 구성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소록도이지만 타락한 지도자를 빗대어 당시 군사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놓고 군사정권이 국민을 억압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싸구려 운동권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배경에 전혀 상관없는 소재가 등장해도 작가는 충분히 독재자를 신랄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을 비평하는 여러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작품을 읽어 봅시다. 사실 상징물 도식화하다가 귀찮아서 때려치워 버렸습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일지, 신카이 감독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삽화가 제법 사용되었습니다. 도입부의 삽화부터 간혹 꿈의 형태로 제시되는 삽화는 소년 호다카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이 작품에서 삽화는 특히 노래로 제시가 되는데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도 많이 사용된 방법입니다. 노래의 가사는 호다카의 행동과 생각을 보충해줍니다.

 

호다카는 가출 소년입니다. 왜 가출했을까요? 저는 한 번도 가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격이 내향적이기도 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다카는 기어코 가출합니다. 소설의 주인공답게 문제적 행동을 일삼습니다. 소년이 가출하게 된 동기를 삽화로 살펴봅시다.

 

호다카는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조차 비가 퍼붓는 와중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소년은 빛을 뒤쫓습니다. 잡힐 듯 말듯 따라잡지 못하는 빛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빛은 도망가버립니다. 소년은 빛을 잡을 수 없습니다. 소년은 빛을 잡기 위해 무작정 도쿄로 상경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은 소년을 억압하지만, 소년은 그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도쿄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만 16세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도쿄에도 없습니다. 온종일 비가 퍼붓는 배경에서 소년 호다카는 비를 바가지로 맞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캡슐 호텔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제시됩니다. 지쳐 쓰러진 소년이 꾸는 꿈은 그래서 자신의 동기를 재확인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요? 소년은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굶는 소년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소년은 소녀를 좋아하게 되고 소녀를 위해서라면 맹목적으로 달려듭니다. 오해했지만 소년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우연히 얻은 힘을 서슴없이 써버립니다.

총은 호다카의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자기주장입니다. 그 총마저 없으면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고 자신의 주장은 묵살되고 맙니다. 소년은 소녀를 위해 제 목소리를 힘껏 냅니다. 마치 총성처럼 말이죠.

 

사실 제대로 분석하려면 삽화로 된 가사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데 대략 분위기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날이 개는 능력으로 돈을 벌게 된 소년과 소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 보입니다. 삽화로 제시된 노래 두 곡의 가사를 보면 치기 어린 10대의 포부를 잘 드러냅니다. 무기력했던 소년은 이제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나름 유명세도 탑니다. 그 소녀만 보면 행복합니다. 마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소년은 이대로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소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은 차례차례 소년을 압박해 옵니다. 처음에 호다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사람부터 가출 소년과 불법 총포 건으로 호다카를 쫓는 형사들까지 소년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초자연적인 존재마저 소년을 압박합니다. 소중한 것을 달라고 말이지요.

 

객관적으로 가출은 잘못되었습니다. 총포를 사용하는 것도 위법이고 하나의 희생으로 다수가 행복해지는 공리주의도 대의를 따지면 옳은 듯합니다. 하지만 호다카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소년이 자신을 억압하던 공간을 떠나는 것마저 막는 기득권, 소년이 제 의지로 돈을 벌 의사마저 막는 기득권, 대안으로 행복해진 지금을 유지하고 싶은 소년을 억압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면 자기 의사마저도 묵살하는 기득권까지. 소년은 차례차례 억압당하고 위축됩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간신히 도망친 소년과 소녀는 비싼 호텔에서 (나름) 비싼 음식들을 사먹고 노래를 부르며 지금을 즐깁니다. 소년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애써 외면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회피라도 하면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기를 무기력하게 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제시되었던 삽화가 다시 나옵니다. 소년 호다카에게 빛은 소녀였습니다. 삶의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쫓아간 빛의 끝에 있는 건 소녀였으니까요.

소녀 히나에게도 소년은 조력자입니다. 어머니가 죽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와중에 살아가는 의미를 찾게 해줬으니까요.

삽화로 제시된 이 내용은 둘의 관계를 제시해줍니다. 둘은 기득권이 억압하는 배경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것이 깨지고 둘이 갈라지자 한쪽은 필사적으로 다른 한쪽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결국, 소녀는 희생되고 소년만 남았습니다. 무력하게 기득권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소년은 우유부단한 자신을 탓합니다. 뒤늦게 자신이 더 연상이었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 대상에게 자신이 의존했다는 사실을 안 소년은 눈이 뒤집힙니다.

우여곡절 끝에 기득권으로부터 다시 탈출하는 소년은 힘겹게 도망칩니다. 조력자 나츠미에게 도움을 받아 소녀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소년은 힘겹게 다가갑니다. 이때 삽화로 제시되는 노래 가사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해 봅시다. 소년을 구해 준 남자는 소년에게 명함을 건네 줍니다. 소년이 마지막 보루로 남자를 찾아갑니다. 남자는 소년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할 일을 제공해줍니다.

남자 케이스케는 소년에게서 자신을 겹쳐 봅니다. 가출한 이유도 살아온 삶도 목표도 다르지만, 가출 소년이었다는 공통점으로 케이스케는 소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소년에게 조력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케이스케에게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사별했지만 아내도 있었고 떨어져 지내지만, 딸도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소년이 아닙니다. 더는 가출할 수도 가출할 이유도 없습니다. 남자는 소년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케이스케는 오컬트 잡지에 기고할 기사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케이스케 본인은 오컬트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잡지 기고는 항상 거절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소년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케이스케의 행동은 기득권의 위치에서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자신의 과거 모습으로 생각해 어서 너도 기득권층으로 빨리 편입해오라는 시선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소년이 과연 순순히 따라올까요?

 

자신의 생계에도 압박이 오자 어른 케이스케는 압박에 굴복합니다. 케이스케는 ‘어른이 되라’고 소년에게 주문하지만, 소년은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년을 보고 치기 어린 소년의 한심한 발악으로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닳아빠진 어른들은 소년을 억압하는 세상이 소년에게 얼마나 갑갑한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물론 작가가 이걸 납득 가능하게 전개했냐는 비판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겠습니다).

또한, 케이스케는 많은 사람이 바란다면 사람 하나쯤 바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기득권은 가진 게 많고 그것을 잃을 수 없습니다. 케이스케는 아내를 잃었기 때문에 천식이 있는 딸마저 잃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케이스케는 소녀를 되찾으려는 소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형사가 케이스케를 찾아와 소년이 필사적으로 소녀를 찾으러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케이스케는 사라진 소녀를 죽은 아내에 겹쳐 보게 됩니다. 케이스케는 소년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어른 케이스케는 소년 호다카를 저지합니다. 어른은 소년의 뺨을 때립니다. 현실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조금이나마 경감받을 방법은 자수뿐입니다. 어른은 기득권층의 시선에서 소년에게 조언합니다. 소년은 어른을 거부합니다.

소년은 총을 집어 듭니다. 서로 생각이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소년의 총성은 절규 같기도 합니다. 극한으로 억압받는 자신의 처지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고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은 사라져 없어진 상황에서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은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겁니다. 소년은 힘을 얻은 채 간신히 자신을 방어합니다. 동시에 주장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저지하려는 기득권을 향해서 말이지요.

 

그저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는 소년의 말에서 어른 케이스케는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이전처럼 단순히 소년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아내와 사별했던 자신을 완전히 대입해 소년을 이해하게 된 겁니다. 소년을 완전히 이해한 어른은 소년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돕습니다. 자신을 억압하던 기득권이 자기 힘을 쓰지 못하자 소년은 다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삽화로 나오는 노래는 작품의 주제를 끊임없이 (소년 대신)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이제 회피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을 이해해 준 사람을 구하러 떠납니다. 소년은 소녀가 ‘의지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 소년에게는 목표 말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득권이 억압하든 초자연이 방해하든 간에 소년은 자신과 소녀가 행복해지는 것을 바랍니다. 소녀가 무거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뤄냅니다.

이때 삽화로 나오는 노래는 소년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지금까지의 무책임하던 자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자책하고 기득권의 억압과 운명의 방해가 있더라도 소년은 의지를 불태우며 목표를 이뤄냅니다.

 

소년은 소녀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모든 삶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해 바라야만 한다는 겁니다. 인생은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자꾸 다른 얘기로 새는 것 같습니다만 다른 얘기를 해 봅시다. 나츠미는 숙부 케이스케를 미덥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오컬트 기사 취재를 좋아합니다. 나츠미는 기득권으로 빠르게 편입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성과는 좋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에 편입하는 것이 남들이 바라고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취직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정작 동기가 불분명합니다. 나츠미는 오컬트 취재나 하는 숙부를 못 미덥게 보면서도 그 일이 자신에게 알맞고 좋아하기 때문에 쉽게 기득권층에 편입되지 못합니다. 기득권은 오컬트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나츠미는 기득권에 편입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아직 기득권에 편입되지 않은 나츠미는 어른들보다 때 묻지 않아 ‘덜 닳았’습니다. 따라서 나츠미는 소년 호다카를 아직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숙부의 공리주의적인 발언에 반발하고 소년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로를 알게 됩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떠밀려 남들 다 하는 대로 기득권에 편입되는 것은 적성에도 맞지 않고 좋아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은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소년이 억압을 박차고 나간 세상은 괴상하게도 뒤틀려 버립니다. 도쿄는 수몰되고 아극기후로 변해버립니다. 개인이 운명을 거스를 수는 있겠지만 당연히 운명을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운명에 구속되며 소년은 마음 한쪽에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보호관찰기간이 끝난 호다카는 다시 도쿄로 이끌려 옵니다.

 

그런 호다카에게 케이스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원래 미쳐있었다’고 말이죠. 호다카는 더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소년이 아닙니다. 케이스케는 자신의 목표 정도는 확실한 호다카를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호다카는 일련의 사건으로 청년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비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는 말라고 케이스케는 격려합니다. 호다카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요.

 

호다카는 소녀 히나를 재회하고 기뻐합니다. 세상을 바꿔가면서까지 살려야 했던 대상을 보자 호다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소녀는 하늘이 맑아질 리가 없는데도 여전히 기도합니다. 삽화로 제시된 노래에서 호다카와 히나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운명’을 짊어지려는 소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청년 호다카는 소녀 히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다카는 자신이 선택한 뒤틀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선택한 세상을 긍정합니다. 호다카는 더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의 탓’으로 운명이 뒤틀렸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대로 세상이 바뀐 것입니다(그것이 불행한 결과였을지라도요). 그래서 그들은 불행한 운명을 긍정하고 분명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

 

전반적인 서사 내용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상승 여지가 살짝 보이는 봄의 미토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억압받던 주인공 호다카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깨달아 억압하는 대상을 내치고 각성하여 자신의 선택대로 세상을 바꾸고 책임집니다. 그 결과는 뒤틀린 운명으로 인한 멸망한 배경이지만 그 속에서 호다카와 히나는 그들이 선택한 세상을 긍정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은 이미 해답을 찾았고 답을 찾은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고 앞으로도 자신은 선택을 통해 바꿔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상승 여지가 있는 봄의 미토스입니다.

 

이 작품의 서사 구조는 교양소설과 흡사합니다. 미국판 교양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작중 초반에 호다카가 들고 다니는 책으로 나온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소년 호다카의 방황하는 모습을 홀든에게 겹쳐 보게 하는 동시에 소설의 주인공 홀든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포부를 호다카에게 겹쳐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붙들린 홀든의 처지는 소년 호다카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홀든이 가진 포부는 각성 이후 호다카의 확고한 목표를 향한 선택과 비슷해 보입니다. 마치 어른들의 닳아빠진 세상에서 도망쳐 소년만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호다카와 닮았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이미 초반에 상징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문제적 주인공이 이해 못 할 현실을 겪고 또한 어른들이 말한 것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고 가출해, 여행하며 보게 된 사건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며 만든 객관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신을 쌓아 올려 어른들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채비를 하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유사한 구조를 띤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만의 교양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카이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일까요.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루카치가 말했듯이 이미 별(이상)도 보이지 않는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을 찾으려 돌아다녀도 이상은 결코 찾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정신만은 갖추었습니다. 청년은 아직 어른의 삶에 다가서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신카이 감독이 모색한 이상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득권층(과 초자연이라는 운명) 앞에서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청소년들에게 힘들겠지만, 억압을 집어던지고 너의 인생은 너만의 것이니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너의 선택을 믿고 너만의 선택을 따라가라는 것 말입니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청소년으로서는 막중한 운명을 혼자서 온전히 짊어지지 말고 조금은 서로가 나눠질 것을 추천하고 그들의 과감한 선택을 격려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막중한 책임 또한 자신의 선택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신카이 감독은 무작정 청소년들의 선택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한 조건과 선택에 상응하는 대가인 책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이룬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됩니다.

 

*

 

이 닳아빠진 어른들의 세상을 소설은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은 자라서 어떻게 어른이 될까요. 우리는 적어도 이상을 모색하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신카이 감독의 역량 문제로 불친절하고 매끄럽지 못한 전개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제가 확 와닿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의 한계겠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카이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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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title: AI기온 2019.11.03 22:12
    집가서 읽어봐야겠는데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호다카가 노래를 부르다 끊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사는 시간이 빨리 갔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래서 호다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끊은 걸로 받아들였는데 일어를 못 해서 어느 단어에서 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 profile
    픔스      2018년도 비봉클럽의 해 2019.11.03 22:26
    졸업식에 나오는 노래는 仰げば尊し(우러러보면 존귀한)입니다. 작중 나온 가사는 思えばいと疾し この年月 今こそ 別れめ 까지입니다. 아마 토시쓰키부터 안 불렀던 것 같네요.
  • profile
    title: AI기온 2019.11.03 22:44
    제가 일어를 못해서.. 토시쓰키가 어떤 의미인가요
  • profile
    픔스      2018년도 비봉클럽의 해 2019.11.03 22:53
    https://kotobank.jp/word/%E5%B9%B4%E6%9C%88-583449

    세월歳月과 거의 같은 어휘입니다.
  • profile
    title: AI기온 2019.11.03 23:03
    정말 죄송한데 저 구절을 어떻게 읽는지/해석하는지 몰라서 토시쓰키가 어느부분이며 결과적으로 어디서 끊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구글 번역으로 해도 영 신통찮네요..
  • profile
    픔스      2018년도 비봉클럽의 해 2019.11.03 23:10
    오모에바 이토토시 코노토시츠키
    (떠올리면/쏜살같이 지난/이 세월)
    이마코소 와가레메 이자사라바
    (이제는/헤어질 때/모두 안녕히)
  • profile
    title: AI기온 2019.11.03 23:16
    아하. 대사 길이 생각해봤을 때 이토토시 부분은 불렀겠네요. 감사합니다.
  • ?
    파랑two 2019.11.08 11:22
    비평-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쓴다는 거 자체가 대단합니다.
  • profile
    픔스      2018년도 비봉클럽의 해 2019.11.08 12:38
    이건 초고라 많이 다듬어지지 않은 내용이고 조만간 다른 견해까지 추가해서 한번 더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작성된지 4주일이 지난 글에는 새 코멘트를 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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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9.11.05 소식 By낄낄 Reply2 Views103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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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커세어 알루미늄 헤드셋 스탠드 ST50

    커세어 ST50 헤드셋 스탠드입니다. 가격 34.99달러. 알루미늄 재질, 고무 베이스.
    Date2019.11.05 소식 By낄낄 Reply2 Views80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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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No Image

    컨벡터(전기히터) 사용해보신분 있을까요?

    지난 겨울에 원룸에서 난방을 조금만해도 가스비가 5만원씩나오는 충격을 겪은 후  올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보고자 컨벡터를 하나 구매해보려고합니다.   다나와 뒤져오니 종류가 너무 많아 뭘 사야할지가 고민이네요  샤오미, 캐리어, ...
    Date2019.11.05 질문 By리피 Reply10 Views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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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구형 노트북에 깐 해놀로지가 심히 만족스럽습니다.

      구형 샌디브릿지 i5 노트북을 NAS 개조해서 쓰고 있는데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일단 성능이 썩어도 i5인지라 반기가랜 대역폭 정도는 너끈하게 돌아가서 어지간한 시놀로지 저가형보다 성능은 나은거 같구요, 어차피 퀵커넥트 따위 ...
    Date2019.11.05 일반 By새벽안개냄새 Reply5 Views178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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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No Image

    캡슐커피머신 매우 만족스럽네요

      직접 찍은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네스카페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가 사용하는 모델 사진을 대신 가져왔습니다.   사용한지 약 2주가 되었고 이제서야 후기겸 글을 작성하게 되네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어쩌다보니 무상으로 얻...
    Date2019.11.04 일반 ByRetribute Reply9 Views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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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LG OLED TV, NVIDIA G-SYNC 지원 펌웨어 제공

    LG의 2019년 OLED TV에 NVIDIA G-SYNC를 지원하는 펌웨어 업데이트가 나옵니다. E9(65인치, 55인치), C9(77인치, 65인치, 55인치) B9(65인치, 55인치) 시리즈가 해당됩니다.
    Date2019.11.04 소식 By낄낄 Reply5 Views89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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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00년대 SD카드만한 디지털 디스크 미디어, DataPlay.

      90년대 후반부터, 멀티미디어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혜성같이 등장한 Windows 95와 가정용 데스크톱 컴퓨터의 보급 확대, 무엇보다도 컴퓨터 프로세싱 파워 및 저장매체의 발달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그 전...
    Date2019.11.03 일반 ByVeritas Reply24 Views241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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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아답터 수리 맞길만한 곳 있을까요?

    샤오미 치사이클 아답터 인데 플러그 부분이 부러졌습니다   이미 추가 충전기 구매해서 사용중이긴한데 또 뷰러질수도 있으니 기존 제품 수리를 맞겨보려고 합니다     혹시 수리가능한 업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Date2019.11.03 질문 Bybabozone Reply1 Views83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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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스포일러 있음] 날씨의 아이 후기

      원래 작정하고 비평문 좀 써보려고 벼렸는데 생각해 보니까 다른 과제도 많고 해서 어설프게 감상평 나눠봅니다.   *   먼저 영화가 서사 장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희곡과는 다르게 영화는 시점이라는 제약이 존재하며 카...
    Date2019.11.03 일반 By픔스 Reply9 Views68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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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소소한 매직마우스 2 발 개조

      매직마우스 2   비싸기는 오지게 비싸면서 마우스의 기본 부분에서 영 허술하단말입니다.   로지텍 같은 회사라면 당연히 테플론 같은 저마찰 재질로 만든 마우스 발을 달아줬겠지만.. 매직마우스는 그딴거 없고 그냥 허접한 일반 플라...
    Date2019.11.02 일반 By새벽안개냄새 Reply7 Views203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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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OONDROP CHACONNE 이어폰

    MOONDROP CHACONNE 이어폰입니다. 소리보다는 무겁지 않을까 궁금하네요. 13.5mm 구경 다이나믹 LCP 진동판 드라이버, 주파수 대역 20Hz~20kHz. 임피던스 24Ω±15 %. 감도 124dB/1mW. 케이블은 4N 실버 도금/6N OCC, 무게 30g...
    Date2019.11.02 소식 By낄낄 Reply2 Views64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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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LUXMAN B-side arro studio collection S5 스피커

    LUXMAN B-side arro studio collection S5 스피커입니다. 가격은 98,000엔. 생긴 게 특이해서 올려봐요. 프랑스 arro studio 디자인, 전면 30W 출력 80mm 구경 우퍼+10W 출력 25mm 구경 트위터, 측면에 10W 출력 25mm 구경 x2 위성 트위터...
    Date2019.11.02 소식 By낄낄 Reply3 Views49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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