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기글에서 거의 눈팅만 하는 대학원생 바볼입니다.
이번에 5GHz WiFi 안테나 관련하여 삽질을 좀 하였는데, 들인 수고와 돈에 비해 얻어낸게 별로 없었습니다. 작업내역을 정리하다보니 좀 침울하긴 하지만 나름 재밌었기 때문에 삽질내용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대학원생답게 두괄식 보고를 먼저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가 만든 안테나는 일단 망했습니다. 따라하지 마세요
2. 무선랜이나 공유기에 딸려오는 기본 안테나는 나름 강력합니다.
3. 아날로그/RF, 특히 안테나는 전문지식이 없으면 그냥 돈주고 사는게 낫습니다.
4. 안테나 설계지식이 있더라도 제작 자체는 업체에 맡기는게 좋겠습니다.
주의) 아래부터는 상당히 의식의 흐름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먼저, 제가 WiFi 5GHz 안테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화장실에서 WiFi 신호가 약하다는 것이죠.
아래 그림은 저희 집 도면인데, WiFi 안테나가 있는 파란 원 부터 거실 화장실의 변기 위치인 빨간 원 까지의 거리는 매우 짧은데도 불구하고 WiFi 신호가 꽤 약합니다. 아이폰 기준 안테나 표시가 두 칸 정도 겨우 나오는데, 운 나쁘면 아이폰이 5GHz WiFi를 포기하고 2.4GHz에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2.4GHz은ㅠ 느리죠ㅎ
5GHz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일단은 익스텐더를 고려해봅니다.
흐음, 꽤 싸네요. 그런데 추가전원이 필요하다는게 마음에 안듭니다. 게다가 콘센트 일체형이라니 미쳤습니까 휴먼? 이러면 가뜩이나 희귀한 멀티탭 남는 콘센트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꼽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실로만 나가도 WiFi 신호가 약해지는 마당에 익스텐더라고 이 신호를 잡아서 잘 확장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일단 패스.
다음은 지향성 안테나를 검색해봅니다.
에.. 음.. 너무 크군요. 제 방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2KM만큼 길진 않아요...
좀 확 끌리는 안테나가 없나 찾아보다 보니 직접 DIY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DIY 사례를 보다보니 공대생 마음이 조금 불타오르는군요. 나도 DIY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류는.. 야기 안테나가 좋겠군요. 저에겐 드럼 심벌이나 적당한 크기의 캔이 없습니다. 그리고 종이는 별로에요. 사실 고딩 때 종이에 은박지 싸서 만드는거 해봤었습니다.
한편, 선례들을 똑같이 따라하기는 뭔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야기 안테나 설계" 혹은 "yagi antenna design"을 검색해봅니다. 자료가 수두룩하네요. 뭔 소린지 1도 모르겠지만ㅋ
참고로 저는 안테나 전공자가 아닙니다. 제 연구분야는 메모리 쪽이에요. (낸드 플래시 똥이에요 똥)
한 며칠 자료를 모으다가 폴이란 아저씨가 만든 YagiCAD란걸 발견합니다.
http://www.yagicad.com/yagicad/YagiCAD.htm
예제도 딸려있길래 열어보니 으흠~ 그럴싸하네요.
그런데 이 툴엔 치명적인 제한점이 있습니다.
응 5GHz는 안돼~
...ㅠㅠ
그래서 다시 폴 아저씨의 YagiCAD를 대체할 툴을 찾아보았습니다. 4nec2란게 있네요.
이 툴은 5GHz도 지원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YagiCAD보다 기능이 많아요. 이쪽이 본가 느낌입니다.
심지어 최적화도 알아서 해주는 것 같습니다. 초기값으로 대충 막대기 몇 개 추가하고 무엇에 더 중점이 두고 최적화할 것인지 (weighting factors) 지정하고 optimize 버튼을 누르면 지가 알아서 몬가 합니다.
저에겐 전문 지식이 없으므로 이걸 좀 더 써보기로 합니다.. 초기수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므로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강의글을 참고하여 대충 5GHz의 0.48~0.52 파장길이 정도로 세팅을 하고 최적화를 돌렸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임피던스는 50옴에 맞추랬습니다. 뭐 어딜가나 50옴인거 같아요. 낸드 모듈 보드 뜰 때도 임피던스 50옴에 맞추는 것이 좋다고 데이터시트에 있었는데... 거참 신기하네요.
제가 대학원은 전자과로 오긴 했지만 사실 컴퓨터공학부 출신이라 자세한건 잘 모릅니다. 일단은 깡으로 해봅니다.
안테나 막대를 더 늘려보고 옵티마이즈를 계속 돌려봐도 14.5dB에서 더 이상 잘 안 오르는 것 같습니다. ㅇ ㅙ죠 ㅠ
옵티마이즈 돌린 놈의 빔 패턴 뽑힌겁니다. 꽤 그럴싸한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든 것 치곤ㅋ
뭔가 안테나 설계가 하나 완성된 것 같으니 안테나 구조를 확인하고 제작 각을 한번 봐봅니다.
안테나 총 길이는 16cm 정도이고 막대 하나의 굵기는 대충 2mm입니다. 안테나는 리플렉터 1개, 드라이버 1개, 디렉터 10개로 구성되어있고 막대기의 전체 길이는 30cm가 채 안되는 군요. 안테나 막대는 설계 단계에서 대충 brass으로 (황동) 설정했었으니 이대로 가면 되겠습니다.
안테나 축을 3D 프린터로 찍어내고 싶긴 한데 총 길이가 16cm라 너무 기네요. ㅠ 제 3D 프린터는 9cm 이내의 것만 출력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PCB를 축으로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안테나 지지대는 삼각대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안테나를 두개 달아야하기 때문에 (무선랜에 안테나가 두개 달려있음) 마운트가 조금 힘들 것 같으니 직접 만들기로 합니다. 얼마 전에 사서 조립하고 다시 분해까지 해서 처박아둔 레고로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대충 각이 나왔으니 먼저 기분전환으로 재료를 구매합니다.
황동구매.
RP-SMA 숫놈 커넥터 구매. 디지x에서 사면 저거 개당 6000원이 넘어가는데 여기선 10개를 2달러에 파네요. 흠좀무
근데 역시 알리라 그런지 이거 택배받는데 거의 한달 기다렸습니다. ㅋㅋ
그나저나 RP-SMA ㅂㄷㅂㄷ... SMA 계열 파츠들 이름 너무 헷갈리는 것 아닌가요;
RG174 RF coax 케이블 구매. 요즘은 엘레파x나 xx이스마트에서 아예 디지x 부품을 팔드라구요? 뭐징
구매를 마쳤으면 안테나 축을 위해 PCB를 설계합니다.
이건 별거 아니므로 그냥 뚝딱 만들어줍니다. 예전엔 독수리 캐드 썼었는데 요새는 KiCad가 더 편한 것 같습니다.
PCB도 대충 된 것 같으므로 CAM으로 만들고 PCB업체에게 제작을 의뢰합니다.
기글보고 JLCPCB 알게 됐는데 꽤 퀄리티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가격이 너무 싸서 대체 무엇으로 만든건지 무슨 짓을 한건지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최소한 외관은 괜찮아요.
2딸라! 이왕할꺼면 4딸라하지
원하는대로 해줬군요. 외관은 일단 흡족하지만 무슨 물질이 묻어있을지 모르니 만지는건 라텍스없는 라텍스 장갑 끼고 합니다.
안테나 축으로 쓸 PCB는 완성된 것 같으니 안테나 지지대를 레고로 뚝딱 만들어봅니다.
아몰랑 그냥 뚝딱임...은 아니고 사실 두번 정도 갈아엎었습니다. 높이가 높아지면 무게때문에 레고가 생각보다 잘 휩니다. 그리고 좌우 조절이 가능하게 기어 부품도 추가해줬습니다. 그리고 무선랜에서 안테나 뽑고 지지대에 설치했습니다. (여기선 가려서 안보임)
여기까지 완료된 상태에서 이전에 주문한 부품들이 오기까지 꽤 오래 기다렸습니다. 4월 중순에 시작한 것 같은데.. 작업은 딱 오늘 할 수 있었거든요.
다만 몇 몇 부품은 빨리 왔기 때문에 미리 작업해두었습니다.
안테나 막대 잘라둔 것. 안테나를 두개 만들어야 해서 두개씩 잘랐습니다.
근데 이거 자르는게 생각보다 손이 아픕니다. 항공가위로 무식하게 대충 잘랐거든요.
그리고 오늘에 와서야 이 안테나 막대를 안테나 축에 납땜하는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료가 늦은 것도 물론이고 작업은 창문을 열고 하고 싶었는데 매 주말마다 미세먼지가 대박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만의 초록색인지?
날씨도 좋았으므로 기회는 이때다 싶어 바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RP-SMA 커넥터 만듦. 커넥터 조립은
https://www.youtube.com/watch?v=vxRKTmdSSXY 를 참조하였습니다. 요즘 참 좋드라구요 검색만 하면 다 나옴ㄹㅇ
안테나 막대 납땜 과정. 납땜 스킬이 딸려서 좀 오래 걸렸습니다. PCB패턴이 작아서 납이 막대 밑으로 잘 안 들어갔거든요. 다만 구리에 납 붙이는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재질이 구리라 그런가 납을 알밋 써서 그런가
드라이버 빼고 다 붙인 상태.
납땜 중에 납땜 보조용 PCB 지지대를 저런식으로 쓰게 될줄은 몰랐는데 허공에 띄우는 것 보다 저런식으로 고정하고 하는게 더 편했습니다.
드라이버 붙이기. 막대가 자꾸 굴러다녀서 힘들었어요 ㅠㅠ 결국엔 종이박스로 막대 사이를 패딩해서 해결했다능
최종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생긴 것만으로는 맘에 듭니다.
실제 이 안테나를 사용했을 때의 WiFi 신호 세기를 평가해본 데이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측정은 아이폰에서 AirPort라는 앱에 딸린 WiFi 스캔 기능을 사용하여 했습니다.
각 색깔은 아까 맨 위에 있던 지도상의 점박이 색을 의미합니다.
주: 주황색: (바로 옆자리)
빨: 빨간색: 화장실
보: 보라색: 거실
초: 초록색: 주방
안테나 없음
주:-75dBm~-68dBm
빨:-89dBm~-82dBm
보:-89dBm~-86dBm
초:-90dBm~-87dBm
기본 5dBi
주:-47dBm~-41dBm
빨:-76dBm~-66dBm
보:-80dBm~-78dBm
초:-75dBm~-68dBm
야기 안테나 새로 만든 것 14.5dBi
주:-63dBm~-58dBm
빨:-88dBm~-86dBm
보:-88dBm~-86dBm
초:-89dBm~-87dBm
결과는 처참합니다. 사실 상 안테나 없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ㅋㅋ 오히려 나빠진 것 같기도 하네요?
뭐 적어도 바로 옆에서는 안테나 없는 것에 비해 10dBm 만큼 좋아지긴 합니다. 아무래도 안테나 옆에서 측정한 것이다 보니 안테나의 드라이버 부분이 다이폴 안테나 효과를 내서 그런 것 같네요.
기본 안테나 다시보니 선녀같네요
왜 저렇게 성능이 좋지 않을까 이유를 추측을 해보자면 몇 가지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전문지식 없이 한 설계가 근본부터 글러먹었다.
2. 안테나 막대를 손으로 대충 자른 것은 정밀도가 낮은데다 항공가위로 잘린 막대 단면이 조금 뭉개져있다.
3. 안테나 막대를 손으로 납땜하는 것은 정밀도가 낮고 1.5mm 정도의 간격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작업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테나 설계 소감: 툴에 나오는 약어들과 기본 개념들은 검색과 검색을 통해 어느정도 파악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가서 무식하다 소리는 피할 수 있을 거라 기대 중
안테나 지지대 조립 소감: 레고 분해할 때 부품 뽑는거 손아파요
안테나 막대 납땜 소감: 막대가 자꾸 굴러다녀서 빡침
최종 소감: 하... 이게 이렇게 물거품이 될 줄이야~
아무튼 결국 이렇게 저의 5GHz WiFi 세기 증폭을 위한 야기 안테나 제작은 실제성능 미달에 인해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ㅜㅜ
소모된 비용: 택포 6만원
소모된 알짜시간: 5시간
소모된 멘탈: 이틀 자체휴가 필요
최초 요구사항: 하나도 해결안됨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테나를 직접만드실생각을 하시다니..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