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입니다. 하드웨어 사이트에 어울리는 표현을 쓰자면 새 컴퓨터를 사기 좋은 시기라는 소리죠.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불어오는 가을 바람 아래 익어가는 건 들판의 곡식이지 웨이퍼 위의 칩은 아니지만, 어쨌건 명절은 평소에없던 특별한 수입이 생길만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평소 교제가 뜸했던 친척 어르신들을 보고 일단 인사부터 오지게 박건, 회사의 매출과 분위기를 통해 추석 상여금의 지급 여부와 그 규모를 유추하는 주관식 문제를 풀건,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꽁돈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즌이 왔다는 소리죠. 코로나 때문에 그 규모가 예전만 못하긴 하겠지만요.
다른 의미에서도 그 동안 미뤄왔던 새 컴퓨터를 장만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해볼만한 시기입니다. 지포스 RTX 30 시리즈의 출시가 그래픽카드 뿐만 아니라 전체 컴퓨터 시장을 뒤흔들고 있거든요. 굳이 지포스 RTX 3080이나 RTX 3090처럼 비싸고 성능 무서운 그래픽카드가 아니어도 됩니다. 앞으로 나올 지포스 RTX 3070도 기존의 최상위 모델을 위협하는 성능을 지녔다고 하고, 그 즈음에 발표될 AMD의 라데온 RX6000 시리즈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지요. 또 최상위 모델의 시장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그 아래 등급의 중급형/보급형 그래픽카드 시장이나 중고 거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픽카드 쪽의 분위기는 대충 정해졌으니 다음은 CPU인데요. 여기에선 20만원 초반대의 중급형 프로세서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우선 50만원, 100만원 짜리 하이엔드 CPU를 쓸 분들은 어차피 이런 글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큼 많이 알고 있을 뿐더러, 어떤 제품을 구입할지 확고한 믿음이 있을테니까요. 또 내장 그래픽을 갖춘 보급형 CPU도 제외합니다. 이쪽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 되버리니까요. 하지만 20만원 초반대의 중급형 프로세서는 이야기할 게 많습니다. 가격이 부담되지 않다보니 판매량도 높고, 최신 그래픽카드를 활용하기에 충분한 싱글 쓰레드 성능과 6코어 12쓰레드의 멀티스레드까지 갖췄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이 AMD는 라이젠 5 3600이고 인텔은 코어 i5-10400입니다. 우선 가격이 비슷합니다. 둘 다 20만원 초반대에 팔리지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두 CPU를 비교 대상으로 삼기엔 충분합니다. 또 핵심 스펙인 코어 구성이 똑같습니다. 6코어 12쓰레드지요. 이쯤 되면 완벽한 동급 CPU라 할 수 있겠죠. 또 둘 다 TDP 65W니 소비 전력이 완전히 같진 않아도 대충 비슷하다 할 수 있겠고요. 아키텍처나 캐시 구성은 다르지만 그건 두 회사의 특징으로 봐야 할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가지고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해선 안되겠고, 그 스펙이 실제 성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따져서 비교해야 되겠지요.
얼핏 보면 코어 i5-10400 쪽이 유리해 보입니다. 왜냐면 더 늦게 나왔거든요. AMD는 작년 여름에 라이젠 3000 시리즈를 출시했고, 인텔은 올해 5월에 10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내놨습니다. 그 중간에 르누아르 데스크탑 같은 모델이 있긴 하지만 이건 분야가 다르니 비교가 안되고요. 내장 그래픽을 갖춘 CPU가 아니라 순수한 CPU 시장에서는 라이젠 3000과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두 제품이 지금까지 주욱 경쟁하고 있지요. 신형 제품일수록 성능이 더 높고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니, 라이젠 3000보다 더 늦게 나온 인텔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야 할것 같지만 실제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성능입니다. 인텔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라이젠 3000 시리즈의 출시 사이엔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CPU가 대게 1년마다 새로운 세대가 나오니까 한 세대가 차이난다고 봐도 되겠죠. 이렇게 늦게 나온만큼 10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더 높은 성능을 보여줘야 정상(?)이고, 정말 그랬다면 애시당초 이런 말이 나오지도 않았을텐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코어 i5-10400과 라이젠 5 3600의 성능 비교 테스트와 https://gigglehd.com/gg/7362577 순수한 싱글스레드 사용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의 테스트 결과를 다시 보시죠. https://gigglehd.com/gg/8279335
CPU-Z
wPrime
시네벤치 R20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코어 i5-10400과 라이젠 5 3600은 저마다 우세한 영역이 나뉩니다. 모든 영역에서 라이젠 5 3600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건 아닙니다. 일부 게임이나 AVX2 같은 특정 연산 분야에서는 코어 i5-10400를 비롯한 인텔 CPU가 더 높은 성능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 연산 성능 테스트에서는 라이젠 5 3600이 대부분 앞서고, 3D 마크와 상당수의 게임에서도 라이젠 5 3600의 성능이 더 높았습니다. 특히 싱글 쓰레드밖에 쓰지 못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의 성능 우세는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싱글 쓰레드 위주로 돌아가게 되는 여러 게임에서 라이젠 5 3600이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니까요.
물론 성능이 전부는 아닙니다. 앞서 코어 i5-10400과 라이젠 5 3600의 성능을 비교했을때도, 단순히 성능 차이가 난다고 말했던게 아니라 '성능도 가격도 애매해졌다'고 했지요. 그 때는 코어 i5-10400이 25만원이었으니 정말 심각했죠. 성능도 높지 않은데 가격까지 비싸니 이대로라면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고 판단해서인가, 인텔은 코어 i5-10400의 가격을 상당히 꽤 낮췄습니다. 현 시점에서 카드 최저가는 22만 3790원. 현금 최저가는 20만 8000원이 됐고요. 벌크 제품의 경우 카드가 19만 6400원, 현금가 18만 1300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코어 i5-10400F의 경우는 정품의 가격 차이는 거의 없고, 벌크는 만원씩 쌉니다.
20만원 초반대의 CPU에서 1, 2만원 차이는 크지요. 현금가에 벌크 제품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텔 벌크 CPU의 경우 단점이 두개 있는데요. 우선 쿨러를 안 줍니다. 인텔 정품 쿨러라고 해봤자 대단한 물건은 아니죠. 전원이 켜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없으먼 젼원조차 안 켜지지요. 사실상 컴퓨터의 필수품이 없다는 소립니다.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성능의 사제 쿨러도 많지만 어쨌건 그것도 다 돈입니다. 사제 쿨러를 쓰기로 작정한 시스템이라면 모를까 벌크가 마냥 저렴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사실 쿨러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부실한 성능 때문에라도 사제 쿨러를 일부러 사다 장착하는데, 쓰지도 않을 부품을 빼서 가격을 낮춘다면 환경 보호도 되고 좋지요. 쿨러보다 더 큰 문제는 A/S입니다. 인텔 벌크 CPU의 경우 A/S가 1년밖에 안 됩니다. 컴퓨터 부품 중에서 CPU는 그나마 고장이 잘 안 나는 부품이라고들 하지만, 일단 고장난면 이것만큼 골치아픈 물건도 없지요. 더군다나 한번 사서 1년 쓰고 버릴 물건은 절대로 아니고요. 몇 만원짜리 부품도 아니고 20만원에 육박하는 나름 고가 부품의 A/S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물론 사서 잘 쓰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위험 부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라이젠 5 3600는 어떨까요? 올해 여름에 20만원을 찍으면서 역대급 가성비를 기록했다가 지금은 가격이 좀 올랐습니다. 카드 최저가 23만 3420원. 현금으론 22만 1500원. 올해 7월의 그 가격을 기억하는 분들에겐 많이 오른 가격처럼 보이죠. 하지만 유독 한국만 이 가격에 팔리는 건 아닙니다. 뉴에그도 아마존도 상시 판매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199달러, 한화 23만원이 넘습니다. 일본은 거의 30만원에 육박하고요. 수요가 꾸준히 이어져 물건은 계속해서 팔리는데 전 세계적으로 물량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가격이 최저가 수준으로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23만원이면 오히려 선방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20만원까지 내려갔던 가격을 봤던 소비자들에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코어 i5-10400의 가격이 라이젠 5 3600보다 조금 더 내려간 지금은 더더욱 그렇죠. 아무리 라이젠 5 3600이 성능에서 우위를 보이고, 가격 차이가 1, 2만원으로 크지 않으며, 그 가격조차도 인텔과 AMD 플랫폼의 메인보드 가격과 램 오버 같은 기능 차이로 상쇄된다고 한들, 일단 CPU가 비싸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AMD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라이젠 5 3600의 가격을 낮춰야죠. 코어 i5-10400 수준으로 말입니다.
AMD 멀티팩의 구성. 정품 박스와 디자인은 다르지만 레이스 스파이어 쿨러를 제공하며, 박스만 다를 뿐 CPU 자체는 똑같은 정품이기에 A/S 기간 역시 같습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로 공급이 부족한 라이젠 5 3600의 가격을 낮출 신비한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는 멀티팩이라는 대안이 있지요. 정품 CPU와 비교하면 포장이 다르지만 그 안에는 CPU가 있고 쿨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름만 멀티팩이지 정품과 똑같은 A/S를 보장합니다. 따라서 쿨러도 없고 A/S 기간도 짧은 인텔의 벌크 제품과 비교될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이 멀티팩을 국내 시장에 대량으로 들여와서 라이젠 5 3600의 실질적인 가격을 낮출 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얼마냐고요? 추석 연휴가 끝나고 가격 안정화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20만원 정도가 될 거라는 귀뜸을 관계자에게서 들었습니다.
가성비는 가격 대 성능비입니다. 라이젠 5 3600의 성능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1년 전에도 지금 보여주는 성능 그대로였고, 코어 i5-10400이 나왔어도 성능에선 여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 성능 그대로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가성비는 당연히 오르기 마련입니다. 또 AMD의 멀티팩은 인텔의 벌크 제품과 다르게 엄연한 AMD 정식 유통 제품입니다. 비정품과 다르게 긴 A/S 기간을 제공하며, 번들 쿨러를 제공해 시스템 전체 구축 비용의 부담을 낮춰줍니다. 지금 국민 CPU를 정한다면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능과 더불어 가격까지 저렴해진 라이젠 5 3600 멀티팩을 고를 이유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