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키보드의 배열은 좋으나 싫으나 국가 표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ANSI-INCITS 154 표준이나, ISO/IEC 9995-2, 우리나라의 KS X 5002 등이 이러한 국가 표준의 예입니다. 여기에서 오른쪽의 숫자 패드를 떼어내면 소위 말하는 텐키리스가 되는 것이고, 하다 못해 포커 배열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60% 배열이나 해피해킹 키보드 배열마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은 여기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난 키보드 배열을 그래서 변태 배열이라고 부릅니다.
변태 배열에는 기본이 되는 국가 표준도 없는 만큼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런 형태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오쏘리니어 키보드는 더더욱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쓰는 사람들은 (저를 비롯해서) 오쏘리니어가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로 직접 써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매장에 전시되어 있거나 한 것도 아니고, 사기 쉬운 것도 아니고, 산다고 하더라도 손에 안 맞으면 내보내는 것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오쏘리니어 키보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중 하나인 플레이드라는 키보드의 소개를 해 드릴까 합니다.
플레이드는 이런 호기심을 채워 주기에 딱 알맞은 키보드입니다. 키보드를 직접 만든다고 하면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더라고 하더라도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드는 납땜이 쉬운 쓰루홀 소자만을 사용하여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구성도 단촐하게 구성되어 공제가 기준 기판과 소자 등을 모두 포함하여 6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판매가 되었고, 기판과 소자를 별도로 주문한다면 개당 가격은 더 낮아집니다.
그래서 오쏘리니어를 써 보고는 싶은데 큰 돈을 들이기에는 부담되는 사람들에게 썩 괜찮은 장난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래도 스위치와 키캡 가격까지 하면 10만원은 가까이 됩니다.)
아래는 오늘 조립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조립 설명서로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조립을 기록한 사진 정도라고 보시면 될 듯.
공제 구성품은 위와 같습니다. 주 기판, 바닥용 기판, 투명 아크릴 창, 소자 봉투.
소자 봉투의 내용물입니다. 소자 개수는 얼마 안 되는 데다가 전부 쓰루홀 납땜용 소자.
왼쪽 위부터 USB 쇼트 방지용 제너 다이오드, 16MHz 크리스탈, 리셋/부트용 택타일 스위치 두 점, USB 데이터 신호용 75옴 저항 둘, 2x3핀 ISP용 헤더, IC 소켓, 디커플링용 필름 캐퍼시터 100nF 둘, 크리스탈용 20pF 필름 캐퍼시터 둘, MCU로 사용될 ATMega328, USB 과전류 보호용 퓨즈, 디커플링용 전해 캐퍼시터 4.7uF, USB Mini B 소켓, USB 데이터 라인 풀업 및 LED용 1.5k 저항 셋, 리셋 신호 풀업용 10k 저항, 적색 및 녹색 LED 각 하나.
그리고 키보드 매트릭스 구성용 1N4418 다이오드 50개가 기판에 장착됩니다.
기판에 소자를 심을 때는 보통 높이가 낮은 소자부터 높은 소자 순으로 작업합니다. 제 경우에는 조립 설명서의 순서대로 USB쪽의 제너 다이오드부터 작업.
요렇게 이쁘게 각을 맞춰 다리를 굽혀줍니다.
그리고 장착. 무연납을 썼더니 아직 인두가 열을 덜 먹어서 이쁘게 나오지는 않았네요.
다이오드는 극성이 있는 만큼 잘 보고 붙여야 합니다. 이 경우 검은색으로 칠해진 쪽이 사각 패드(>| 기호의 |쪽)로 가는 식.
저는 그나마 작업성 괜찮은 SCS7 무연납을 썼는데, 굳이 무연납을 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키보드 기판을 혀로 핥거나 할 것도 아니고...
저항도 적절히 붙여줍니다. 색깔을 보고 용량을 맞춰서 붙이면 됨.
R1/R7/R8 자리에 1.5k옴, R2/R3 자리에 데이터 라인용 75옴, R4 자리에 10k옴이 들어갑니다.
R3 납땜 하는 위치랑 D49 제너다이오드 사이 간격이 좁다 보니 다이오드보다 이쪽을 먼저 붙여주는 것이 편할 수 있겠네요.
키보드 매트릭스용 저항을 꼽아줍니다. 마찬가지로 방향을 잘 보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매트릭스 자체는 N키 롤오버가 지원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현재 ATMega328용 QMK 펌웨어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굳이 필요는 없긴 한데...
48회 반복. 키 숫자만큼 해 줘야 합니다. 여기가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부분.
저는 이쁘게 하나하나 핀셋으로 각 잡아서 굽혀서 더 오래 걸렸습니다.
크리스탈을 박아줍니다. 납땜은 기판 뒷쪽에서.
필름 캐퍼시터들도 박아줍니다. 다리 사이 간격이 좁은 것들은 크리스탈 옆 C1/C2 위치에, 간격이 넓은 것은 C4/C5에.
USB 포트를 달아줍니다. 이 기판에서 제일 난이도가 높은 작업.
뒷면을 보시다시피 5개의 USB 핀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습니다.
요령이라면 맨 위의 고정용 다리 둘을 먼저 가접해서 수평을 맞춘 후 신호선, 그리고 다시 아래쪽 고정용 다리 순으로 납땜.
저는 수평 잡는 것을 까먹어서 포트가 약간 비뚤어졌습니다.
LED를 박아줍시다. LED도 다이오드인 만큼 극성이 있으니 잘 확인. 다리가 짧은 쪽이 사각 패드로 들어갑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받은 녹색 LED는 불량품이었습니다.
LED용 점퍼 패드를 이어 줍시다. J4와 J5.
플럭스를 너무 먹이면 표면장력 때문에라도 두 패드가 잘 안 붙으니 요령껏.
중간에 사진이 한 장 사라진 느낌인데...
퓨즈, 전해 캐퍼시터, IC 소켓과 ISP 헤더, 리셋과 부트 스위치를 꼽아 줍니다.
ISP 헤더는 사실 굳이 안 꼽아도 되는데, 구멍이 있는데 남겨놓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아쉬워서...
퓨즈는 저렇게 굽혀줄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해 캐퍼시터는 극성이 있으니 조심. 짧은 다리가 사각 패드로 들어갑니다.
MCU를 소켓에 넣으면 사실 키보드는 다 된 겁니다. USB를 연결해서 테스트.
공제품의 경우 MCU에 이미 부트로더가 입혀져서 나오는데, MCU만 별도로 구했을 경우엔 물론 그런 건 없습니다.
ISP 플래싱을 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음...
부트로더 모드에서 USBasp로 잡히는 것이 확인되면 Zadig으로 libusbK 드라이버를 잡아준 후 QMK로 펌웨어를 입혀 줍니다.
저는 미리 준비해 놓은 키맵을 입혔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테스트 용도인 만큼 기본 키맵으로도 충분.
키보드로 인식이 되면 핀셋이나 클립 등으로 각 키가 잘 입력되는지 확인해 봅니다. 아쉽게도 LED를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네요.
기판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으면 스위치를 심어 줍니다. 저는 미리 준비해 놓은 체리 MX 블랙 + TX 스프링 60g을 사용.
보강판이 없는 구조인 만큼 5핀 스위치만 사용 가능합니다. 3핀도 쓸 수야 있는데 수평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처음 보여주는 뒷면. 스위치를 이렇게 다 꼽고 나서 납땜해주면 됩니다.
제일 아랫줄 가운데에는 2u 키도 사용 가능.
납땜을 다 끝내고 하판과 결합한 사진. 결합은 간단하게 나사와 너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키캡까지 씌워주면 완성.
일단 달려있는 LED는 동작하도록 하는 부분이 펌웨어에 없어서 직접 짜 주어야 합니다.
이 코드 자체야 그렇게 어려운 코드는 아닌데 문제는 QMK 개발 환경을 셋업해야 하니.
그런데 열심히 글을 써놓고 보니 사실 노임 감안하면 플랑크랑 비교해서 그렇게 싼 것도 아니긴 합니다.
주문하면 받는데까지 소모시간이 좀 있어서 그렇지, 플랑크 EOTW면 80불 정도 하고, 정말 저렴하게 간다면 중국에서 JD40같은거를 땡겨오는 것이 더 싸게 먹히겠고...
기판 조립 자체를 재미로 할 사람이라면 꽤 괜찮은 장난감이기는 하네요. 보기에 유니크한 점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