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CPU는 간단한 구성의 기본 쿨러만으로도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랬으나, 가을과 겨울,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자 혁신적인 아키텍처와 최신 공정으로 발열을 낮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에 사계절의 변화가 없이 겨울만 이어지는 지역이라 삼천리가 화려강산하지 못했다면, 그 오해를 교정하지 못한채로 평생 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잡으실 때 어떤 안목으로 부동산을 보였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한국은 몹시 춥거나 아주 더운 두 계절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가고 있잖아요? 그 사이에 낀 봄이나 가을은 별로 존재감이 없고, 미세먼지만 부각될 뿐이죠.
이런 기후 때문에 가을부터 봄까지 아무 탈 없이 쓰던 기본 쿨러가 여름이 되자 갑작스레 못마땅 해졌습니다. 온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쿨러는 열심히 자기 일을 했어요. 기글하드웨어 운영자처럼 말이에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묵묵히 제 할일을 한게 아니라, 일한다고 티를 냈다는 것이죠. 요즘 세상에 조용히 자기 일만 하면 바보 소리를 듣고, 뭐라도 티를 내야 인정을 받다보니 쿨러도 자신이 CPU 온도를 낮추는 과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로 말이죠. 그 소리에 감격을 금치 못해 어떤 방법으로 노고에 보답할까 한동안 고민하다가, 기본 쿨러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기로 했습니다. 더 좋은 성능의 쿨러로 교체 말이죠.
기본 쿨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도 역시 기본 쿨러라면 기본 쿨러입니다. 원래 쓰던 건 AMD 레이스 스파이어, 나중에 교체한 건 AMD 레이스 프리즘. 하지만 말이 좋아서 기본 쿨러, 번들 쿨러지 그 구성은 완전히 다릅니다. 레이스 스파이어는 고물상에서 1kg당 천원으로 쳐주는 알루미늄 방열판과, 수거를 안 할것 같은 쿨링팬으로 나뉩니다. 레이스 프리즘은 거기에 1kg당 5천원을 상회하는 구리를 방열판에 섞었습니다. 그냥 구리가 아니라 가공이 들어간 히트파이프와 베이스고, 그걸 무게대로 순순히 쳐 줄지도 의문이며, 요새 시세가 저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스 프리즘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으니까요.
레이스 프리즘은 소음을 잡고 온도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이 동네 고양이 증식의 주범으로 의심되는 고양이(슈퍼에서 서식, 8살, aka 나비)의 땅콩처럼 묵직하고 위엄있는 디자인을 갖췄습니다. 고양이보다 더 나은 점도 있습니다. 아무리 고양이의 눈이 보석처럼 빗난다고 해도 레이스 프리즘의 RGB LED만큼 멋지진 않거든요. 이쯤 되면 레이스 프리즘 빠돌이가 된것 같은데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장용으로 하나 더 샀을 정도니까요. 특정 회사/제품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자아를 잃어버리고, 그 회사/제품을 까면 자신이 모욕당한 것처럼 달려드는 이들이 게시판에 가끔 출몰하던데 제가 거의 그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그것도 AMD CPU가 아닌 AMD 쿨러로요.
그런데 그 최고 존엄 레이스 프리즘을 몹시 담담한 말투로 당당하게 모독하는 자가 등장했습니다. 3RSYS Socoool RC100 RGB가 그것입니다. 그것도 길고도 장황한 말이 아니라 '타워형인 RC100이 낫다' 한마디로 끝내버렸어요. 수냉이면 당연히 한수 접어줘야겠지만 공냉, 평범한 타워형 쿨러입니다. 고물상에서 정말 좋은 값을 쳐줄 수준으로 크고 무겁다면 이해하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주변 부품과 간섭이 아예 안 생길 정도로 작습니다. 거기에 가격까지 쌉니다. 13,000원. AM4 소켓을 지원하는 쿨러 중에서 가장 싸진 않아도 충분히 하위권에서 다툴 가격입니다. 이런 저렴한 쿨러가 레이스 프리즘보다 더 낫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돌려봤습니다. 결론은 허무하리만큼 간단하네요. 쓰리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품명 | 3RSYS Socoool RC100 RGB |
지원 소켓 |
인텔 LGA 115x, 1366, 775x AMD AM4, 3(+), 2(+), FM2(+), FM1, 940, 939, 754 |
RGB LED | 연동 기능 없음, 순환식 |
크기 | 92x78x130mm |
히트싱크 | 알루미늄 핀, 니켈 도금 |
히트파이프 | 6mm 4개 |
무게 | 540g |
쿨링팬 크기 | 92x92x25mm |
쿨링팬 속도 | 700~2000rpm |
풍량 | 10.78~42.35CFM |
소음 | 15.7~27.8dBA |
쿨링팬 전력 | 12V DC, 0.18A, 2.16W |
베어링 | 유체 베어링 |
쿨링팬 추가 | 120mm 1개 추가해 총 2개 가능 |
연결 단자 | 4핀 PWM |
참고 | http://prod.danawa.com/info/?pcode=8180158 |
가격 | 13,290원(2019년 11월 다나와 최저가 기준) |
생긴거
지극히 단순하게 생긴 타워형 쿨러입니다. 92mm 구경팬을 달고, 거기에 맞는 자그만한 히트싱크 타워를 세웠습니다. 92mm 구경 쿨링팬이 달린 쿨러라면 빈말로라도 '거대한 히트싱크를 달아 공기와의 접촉 면적을 늘렸으며 운운'할 순 없는 크기죠. 13000원짜리 쿨러에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기대할 정도로 양심 가출한 분들도 사실 없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쿨링 성능이 어느 정도일까 기대 반 염려 반이 믹스된 감정이 몰려오지만, 한편으로는 장착 호환성이나 간섭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트싱크와 베이스 사이의 연결은 6mm 두께의 히트파이프 4개를 씁니다. 이게 3개만 됐어도 대단히 저가형처럼 보였을텐데 4개가 되다보니 히트싱크의 아담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싸 보이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성능에도 다시 기대를 걸게 됐습니다.
쿨링팬은 평범한 RGB LED입니다. 여기서 '평범하다'는 건 R, G, B 세가지 색상으로 빛을 내는 LED임에는 분명한데, 메인보드나 다른 쿨링 시스템과 연동되는 기능은 없다는 소리입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적해진 색상들이 바뀌며, 그 효과도 밋밋하고 심심합니다. 컴퓨터의 LED가 칼군무를 추듯 딱딱 맞춰서 색상 통일을 이루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RGB LED여도 레이스 프리즘에 들어간 LED 효과와는 또 다릅니다. 레이스 프리즘의 고급스러움은 번들 쿨러 수준을 넘어섰지요. 오히려 번들 쿨러니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내기 위해 더 공을 들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고 귀찮은 설정은 하기 싫고, 뭐가 됐건 반짝반짝 빛만 내면 합격 도장을 찍어줄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어쨌건 중요한 건 이겁니다. RGB LED는 있습니다.
제품 박스.
뒷면에 소개된 스펙.
언박싱.
쿨러 본체, 설명서, 조립용 액세서리와 지지대.
설명서. 그림에 한글 설명이 있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인텔 LGA 소켓용 지지대.
뒤집어도 특별한 건 없습니다.
3RSYS Socoool RC100 RGB의 정면.
반투명한 쿨링팬 날개를 통해 RGB LED의 튜닝 효과를 냅니다.
뒷면. 알루미늄 핀과 히트파이프가 보입니다.
일정 간격을 두고 배치된 알루미늄 핀. 아래쪽엔 거대한 고정 레버가 달려 있습니다.
측면. 알루미늄 핀 말고 다른 건 없습니다.
상단. 4개의 히트파이프가 알루미늄 핀을 뚫고 나왔습니다.
4개의 히트파이프가 CPU 히트 스프레더에 직접 닿습니다. 베이스 위에는 보호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크기는 92x78x130mm.
미니 ITX처럼 극단적으로 작은 환경이 아니라면 간섭이 일어나진 않을 크기입니다.
쿨링팬의 구경은 92mm.
다는거
지원 소켓의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쓰는 건 딱 두 가지라 해도 되겠죠. 인텔 LGA 115x와 AMD AM4. AM4 소켓은 레이스 맥스/레이스 프리즘 쿨러와 똑같은 방식으로 고정합니다. 메인보드의 가이드에 쿨러를 걸어서 눌러줍니다. 고정에 쓰는 레버는 큼직하고, 플라스틱이 아니라서 손가락이 아프지 않습니다. 인텔 소켓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푸쉬 핀을 써서 틀을 메인보드에 끼워 AM4 소켓처럼 만들고, AM4 소켓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정합니다. 푸쉬핀을 볼 때마다 이걸로 제대로 고정이 될까 생각도 들지만, 인텔이 쓰는 방법이니 성능에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생각해보니 인텔 똥써멀도 문제는 없었...죠?
앞서 말한대로 타워형이지만 그리 큰 제품은 아닙니다. 메인보드나 메모리 등 다른 부품과의 간섭은 없다고 봐도 됩겠습니다. 높이가 130mm인데 미들타워 케이스 중에서 이게 안 들어가고 옆판이 안 닿히는 케이스는 없을 겁니다. '없다'가 아니라 '없을거다'인 이유는 이 세상에 워낙 해괴망칙한 케이스가 널려 있으며, 그 모든 케이스를 대조해보지 않아서 입니다. 하지만 미들타워의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 생각하면 장착과 호환성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가격, 크기, 무게, 장착까지 참 부담이 없는 쿨러 되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성능 뿐인데, 그건 아래에서 봅시다.
AM4 소켓은 메인보드에 장착된 기본 지지대를 사용합니다.
AMD 정품 쿨러 끼우듯, 레버가 없는 쪽을 지지대에 먼저 끼우고 레버를 눌러서 다른 쪽도 마저 끼웁니다.
메모리 슬롯을 해치지 않아요.
전원부 방열판과의 간섭도 없어요.
인텔 LGA 115x는 두어가지 작업이 더 필요합니다. 푸쉬 핀을 마운팅 브라켓에 끼웁니다. 4곳 모두에요.
마운팅 브라켓을 메인보드 위에 올립니다.
검은색 고정 핀을 푸쉬 핀 안에 꽂아서 고정합니다.
그 다음은 AM4 소켓과 똑같습니다. 한쪽을 걸고, 다른 쪽도 마저 걸어줍니다.
이쪽도 딱히 간섭되는 부품은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관찰.
쓰는거
요새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쿨병에 전염된게 아닌가 고민 중입니다. 남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꼭 그걸 믿지 못하고 굳이 검증하겠다고 나서서 이런 귀찮을 일을 벌이니까요.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라 '쿨병'이 된 이유는 3RSYS Socoool RC100 RGB가 쓰리알의 댓글 그대로 레이스 맥스/레이스 프리즘보다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줘서입니다. 레이스 맥스/레이스 프리즘도 나름대로 묵직한 히트싱크와 다수의 히트싱크까지 넣은 괜찮은 쿨러지만, 타워형의 구조적인 차이는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걸 제대로 설명하자면 물리 법칙과 열역학이 나와야겠죠. 이렇게 3RSYS Socoool RC100 RGB이 유리할 줄 알았으면 레이스 스파이어 테스트는 넣지 말걸 그랬나봐요. 이 쿨러는 비록 13000원이지만, 히트파이프도 없고 알루미늄 덩어리인 레이스 스파이어와 비교될 수준은 절대로 아닙니다. 괜히 귀찮게 쿨러 3개를 테스트했네요.
쿨러의 성능이라면 온도를 가장 먼저 생각하지만, 온도 말고 소음도 중요합니다. 낮은 온도를 댓가로 시끄러운 팬 소음을 들려줘도 무죄로 판결받을 쿨러는 서버 뿐이죠. 가정용 PC에서 시끄러운 소리는 죄악과도 같습니다. 3RSYS Socoool RC100 RGB는 괜찮은 성능과 낮은 소음을 모두 갖췄습니다. 30cm 거리에서 측정한 걸로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아서 20cm 거리로 좁혀서 한번 더 테스트했는데요. 레이스 프리즘의 온도는 3RSYS Socoool RC100 RGB과 비교해도 크게 차아니지 않으나, 대신 소음에서 격차가 꽤나 많이 벌어집니다. 레이스 스파이어의 경우 의외로 조용한 결과를 보여줬으나, 그건 쿨링팬 디자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조용한 대신 성능이 많이 떨어지네요. 알루미늄 방열판과 쿨링팬만 달린 기본 쿨러에 많은 걸 기대해선 안되겠죠.
레이스 프리즘과 비교하기 위해 소장용으로 샀던 쿨러의 박스를 열었습니다.
두 쿨러의 쿨링팬 구경은 같습니다.
이쪽도 92mm 팬을 사용합니다.
쿨러의 전체적인 부피도 비슷하고, 히트파이프의 수도 같군요. 차이점이라면 타워형인 RC100 쪽이 히트싱크 면적은 더 넓고, 기본 도포된 써멀은 AMD 쪽이 더 고급일거라는 거.
테스트엔 라이젠 7 3700X CPU를 사용했습니다. https://gigglehd.com/gg/5201526
사진을 다른 상황에서 참고용으로 여러번 찍다보니 메인보드가 제각각인데, 온도 측정은 MSI MEG X570 ACE 메인보드에서 했습니다. https://gigglehd.com/gg/5216044
테스트는 MSI 드래곤 센터에서 회전 속도를 측정하고, OCCT로 부하를 주어 측정했습니다.
3RSYS Socoool RC100 RGB입니다.
온도.
아이들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풀로드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레이스 프리즘입니다. 레이스 맥스에 RGB LED를 얹었지요.
온도.
아이들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풀로드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가장 단순한 구조의 레이스 스파이어입니다.
온도.
아이들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풀로드 상태의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
3RSYS Socoool RC100 RGB
AMD 레이스 프리즘 쿨러는 멋진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소재, 예쁜 RGB LED를 갖췄습니다. 3RSYS Socoool RC100 RGB은 그보다 더 나은 성능과 압도적으로 조용한 소음을 갖춘 쿨러입니다. 무엇보다 가격도 싸지요. 번들 쿨러에 가격을 책정하긴 애매하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격으로 비교하면 3RSYS Socoool RC100 RGB이 만원 정도 더 싸더군요. 저렴한 고성능 쿨러를 사겠다면 이만큼 만만한 선택도 없습니다. 레이스 프리즘 대비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이라면 디자인일까요? 그 만큼 큼 끝장나는 포스가 느껴지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가성비 시스템이나 케이스 뚜껑 닫아놓고 쓰는 곳에서 그런게 필요하진 않겠죠.
이 제품 추가하면 괜찮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