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계에 스테디셀러를 꼽자면 꼭 빠지지 않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해피 해킹 키보드입니다.
2006년에 출시된 키보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니까요.
과장 좀 보태자면 IBM AT 키보드가 현재 수많은 104키 키보드들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듯이,
해피 해킹 키보드 특유의 배열은 비록 대중적 시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모사품을 만들어내었습니다.
60% 배열이라는 점도 있지만, 물론 가장 특징이 되는 부분은 바로 오른쪽 부분의 배열입니다.
보통 ANSI 표준 배열에서 백스페이스가 있을 자리를 반으로 나눠 백슬래시와 `를 넣었고,
원래 백슬래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딜리트(또는 백스페이스) 키를 옮겨와 오른손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또한 길다란 오른쪽 쉬프트키를 쪼개 펑션 키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안 그래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작게 느껴질 수 있는 60%라는 사실을 마치 뽐내기라도 하듯,
양쪽 아래에 컨트롤 키가 들어갈 자리 대신 삽입된 브랜드 로고는 상징적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단순히 배열때문에 사람들이 해피 해킹 키보드를 찾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러버돔 키보드라고 불리는 토프레의 러버돔만이 주는 키의 느낌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옛날부터 그게 대체 얼마나 좋길래 그러나 궁금해서 한번쯤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부담되는 가격 덕분에 우선순위가 계속 밀렸고, 남들보다 늦게 접하게 된 축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위 말하는 '키감'은 오늘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해피 해킹 키보드가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키보드는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키맵의 조정은 딥스위치를 가지고 제한적으로만 가능하고,
지금이야 블루투스 모델이 별도로 판매중이지만 그랬다간 안 그래도 비싼 가격이 더 비싸집니다.
hasu라는 별명을 사용하시는 분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이미 제시해 주셨습니다.
여기서의 이 hasu는 오픈 소스 키보드 펌웨어 프로젝트인 TMK를 관리하는 그 hasu가 맞습니다.
그래서 이메일을 통한 주문 후, 얼마 안 있어 일본에서 등기가 날아왔습니다.
HHKB 알트 컨트롤러입니다.
MCU로는 ATMEL AVR계열인 ATMega32U4를 사용합니다.
블루투스가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물론 있는 버전으로.
마이크로칩의 RN42를 사용해서 블루투스 2.1을 지원합니다.
가장 최신 리비전인 리비전 O입니다.
한눈에 보면 이런 구성으로, 좌측부터 부트로더 진입용 택타일 스위치, USB Mini B 커넥터, LED 두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블루투스 모듈 스위치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기존 HHKB에 있던 USB 허브 기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뒷판의 나사 세 개를 풀면 분해됩니다.
흡음재는 제가 별도로 넣어 놨던 것.
기존 컨트롤러는 이런 식으로 키보드 매트릭스 보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리합니다.
이렇게 상판과 하판으로 분해됩니다.
위쪽이 오리지널 토프레 컨트롤러, 아래쪽이 하수 TMK 알트 컨트롤러.
블루투스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물론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미리 구해두었던 2000mAh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꽂아줍니다.
그런데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배터리 와이어가 너무 짧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커넥터가 다른 JST 규격이라는 것.
안 되면 되게 만듭니다. 전원을 넣으니 LED가 들어오는 것도 확인됩니다.
배터리를 연결할 때에는 극성을 잘 맞춰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전원 관리 칩셋을 태워먹을 수 있기 때문.
조립은 분해의 역순으로, 매트릭스 보드와 컨트롤러 보드를 다시 연결한 다음 상판과 하판을 결합합니다.
제 경우에 친절하게도 기본 키맵이 담긴 펌웨어가 설치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사용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기본 키맵만 사용할 거라면 굳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죠.
TMK는 앞서 말했듯이 오픈 소스 프로젝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프로젝트들도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QMK입니다.
QMK는 더 많은 키보드들을, 더 많은 기능들을 더 쉽게 지원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기반은 TMK에 두고 있기 때문에 TMK를 지원하는 보드들은 대부분 QMK에서도 지원됩니다.
대강 키맵을 짜서 펌웨어를 컴파일해 봅니다.
뭐, 몇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잘 작동합니다.
블루투스도 문제... 가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연결이 되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배터리 부족시 LED를 통해 경고등을 띄워 주기는 하나,
정확히 배터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나마 대안이라면...
이런 식으로 HID Listen을 통해 전압 상태나 키보드의 정보를 받아다 볼 수는 있습니다.
물론 이쪽은 이쪽대로 유선 연결이 필요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덤으로 배터리의 수명도 그렇게 긴 편은 아니라,
2000mAh의 용량 정도면 대강 20시간정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나마 USB 포트를 통해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키보드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크게 살 만 합니다.
특히 토프레 무접점 러버돔 키보드의 경우 그 선택권이 극한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생각해 볼 법 합니다.
다만 블루투스 기능은 기성품으로 판매되는 블루투스 키보드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공간 제약에 맞는 적절한 크기의 배터리를 직접 공수해야 한다는 점 역시 단점입니다.
최소 십수만원짜리 키보드를 장난감처럼 뜯고 개조할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직접 펌웨어를 컴파일하면서 사용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좋은 장난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