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하나의 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 핫딜게시판 구경하고 있는데 '무선 블루투스 헤드폰'이 4천4백원 5일무료배송이면 이게 실화인가.. QCY H2 헤드폰이 싸다싸다 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는데..
암튼 찾아가보니 알리 천원마트에서 3개 초이스 그거 있잖아요. 거기로 가면 저 가격이 나오더라고요.
본래 출시가는 30달러 라고 일단 적어놨고.. 핫딜 프로모션 없이 기본상시할인가는 14달러 정도로 팔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집에 본격 헤드폰도 블루투스 이어폰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뭐 드라이버 크기가 40미리?!나 된다는데 근데 5천원이라고? 하면서 어느새 스르륵 결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알리가 무섭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고 있습니다. 하지만 5천원도 안했단 말입니다..
평택세관 휴가철 끝났는지 5일 만에 도착은 했습니다. 박스는 이렇게 생겼는데요. 일반적인 헤드폰 박스들이 완충에 신경을 써서 유닛에 비하면 부피가 상당히 큰 편에 비해서 이 박스는 이거 맞나 싶을 정도로 작더군요. 사진은 없습니다만 내부에 뭐 완충재 같은 건 별로 없었고요. 그래도 새거라고 아주 얇은 종이 등으로 유닛 일부를 감싸놓긴 했었습니다.
접혀있는 헤드폰 외에는 작고 허름한 메뉴얼과, 고만고만해 보이는 짧은 C타입 케이블, 그리고 3.5파이 유선연결을 위한 3.5파이 이어폰짹 수놈-수놈 이런 케이블이 있었습니다.
헤드폰은 이렇게 생겼고요. 제가 머리가 큰 편입니다만 (군대 때 60호 좋아했습니다라고 쓰면 군필 분들은 대충 아실듯..) 이렇게 좀 늘려주니 정수리까지 넉넉하더라고요. 특히 가벼워 편안합니다.
귀에 닿는 패트, 정수리에 닿는 패드에는 인조가죽을 따라한 것 같은 비닐이 붙어 있습니다. 폴리우레탄 어쩌고라는데 이런거 보통 오래되면 가루되면서 떨어지죠.
패드 안쪽으로는 이렇게 LR 구분을 해 놓았습다. 패드 자체는 푹신하고 좋습니다. 장력도 강하지 않고요. 다만 보시다시피 저 인조가죽 패드는 어떠한 무늬도 없어서.. 귓바퀴 쪽으로 땀이 아주 잘 차게 생겼고 오래써보니 좀 그런 느낌이 있더군요. 반면 뭔가 귓바퀴에서 밀착밀봉이 잘 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냥 쓰고만 있어도 외부소리가 좀 덜해요. 뭐 모든 밀폐형 헤드폰들이 그렇지만요.
헤드폰의 오른쪽 뒤에는 버튼들이 있습니다. 윗쪽에는 [플러스-재생-마이너스] 구성의 버튼 3개가 있습니다. 블투 헤드폰에서는 뭐 익숙한 구조죠. 아래쪽으로는 길게 눌러 전원 온오프(켜면서 계속 누르고 있으면 페어링 모드), 재생 중에 짧게 눌러 헤드폰에 저장된 3개의 EQ를 전환하는 버튼이 있습니다.
전원버튼 위의 구멍에는 LED가 들어있어 충전시 빨강 동작시 주기적으로 파랑 점멸 그렇습니다. 그 아래로는 3.5파이 오디오 신호 입력단자와 C타입 USB 충전단자가 있습니다. 사진에는 가려졌는데 USB 단자 아래로는 마이크가 있습니다. (3.5파이 단자 위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뉴얼에도 설명이 없는 것 같아요)
인터넷 어딜가도 찾을 수 없었던 메뉴얼 일단 여기에 좀 올려놓을까 싶습니다.
페어링 정보로는 JH919가 아니라 H1이라고 뜹니다. H1이라는 것에서 이 제품이 QCY H2의 대충 카피판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두 제품 다 드라이버 유닛 크기가 40미리라고 되어 있죠.
블루투스 5.1을 지원한다고 하긴 하는데.. 뭐 일단 저렇고요.
코덱은 스마트폰에서 페어링걸고 개발자모드 들어가고 확인해본 결과 AAC를 지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2023년도 블루투스에서 세상에 SBC만 지원한다는 게 실화냐.. 거 뭐 하지만 5천원짜리에 큰 기대를 하면 안되는 것이겠죠. 아니 그래도 언제적 SBC인 건가 싶습니다. 2만원 안되는 QCY들도 다들 AAC 잘만 지원해준다 말이죠.
각잡고 본격적으로 소리를 듣는다고 할 때에는 젠하이저 560S 씁니다. 20만원대 헤드폰인 건데 근데 핫딜가면 10만원 중후반까지 내려오죠. 소리 괜찮습니다. 레지던트이블 같은 어드벤처 할 떄에도 쓰고 가상서라운드 돌리는데 아 맛있습니다 소리.
뭐 진동판 크기는 둘 다 비슷하게 38미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음향기기는 단순스펙만큼이나 인클로저 설계가 중요하죠.
JH919 헤드폰 접었을 때 크기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부피가 줄어드니까 실제 체감은 더 작게 느껴집니다.
어쨌든 충전하고 페어링해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506S와 본격 비교 이런 건 절대 아니고요....
음향기기의 소리라는 것은 실로 주관적인 영역이며 특히 소스의 악기구성과 음원 마스터링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아래는 객관적 리뷰는 아니고요 대충 경향만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트랙은 몇십년째 듣는 것들로 들어보았습니다. 오히려 옛날 트랙들이 다이내믹스의 편차가 있어서 소리듣는 것에 나을 때가 있습니다. 라우드니스워 이후로는 아휴 소리가 다들 너무 빵빵해서 원
* 전원조작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면
파워 ON → 페어링 → 커넥티드
하는 식으로 여성 음성으로 알려줘서 편리하더라고요. 끌 떄에도 파워오프 소리 납니다.
* EQ(헤드폰 자체)
재생 중에 전원버튼을 짧게 누르면 EQ가 무엇으로 변경되었다는 음성이 납니다. 전원을 껐다 켜도 계속 유지되네요.
음질음색 따지기 이전에 일단 이 EQ에서 소리 차이가 좀 나서 먼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EQ 끄는 건 없고 무조건 아래 3개 중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소리의 대역폭을 넘어 음장감에도 어떠한 차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① 베이스 모드 : 저음의 댐핑을 넘어 저음의 부밍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보컬을 포함한 많은 소리들을 마스킹하는 느낌이 조금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헤드폰의 킥드럼 펀치감이 아주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응답속도가 빠르고 명쾌한 그런 헤드폰은 아닙니다. (그런 거 찾으실려면 ATH 티타늄..) 웅장은 좋은데 그걸 넘어서 약간의 부밍과 마스킹이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는 음악소스에 따라 달라집니다. 808베이스 죽도록 때려보자 함 죽어보자 하는 힙합 트랙들에서는 이어패드의 물리적 진동을 느꼈습니다. 베이스 지상주의 취향인 분들도 많으시죠.
② 보컬 모드 : 보컬을 강조했다 해서 고음역과 저음역대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어떤 보컬모드는 전화기 음성 수준으로 가버리는데 이건 그런게 아닙니다) 적당하고 웅장한 저음역 위에서 중음과 중고음대가 더욱 가깝게 잘 들립니다. 골라보자면 이것이 음역대 밸런스가 가장 잘 맞는 EQ설정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여기에서 저음역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통기타의 현 튕기는 소리에 윤기가 있습니다. 고역 강조한 팝음악들은 치찰음 직전까지 소리가 얇게 올라갑니다. 저는 보통 이걸로 이 헤드폰을 쓰고 있습니다. 밸런스 괜찮으면서도 소리가 재미가 있거든요.
아래의 헤드폰 음질과 음색에 대한 설명 모두 이 EQ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③ 팝 모드 : EQ를 끄면 이렇게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일단 좀 밋밋한 느낌이 있습니다. 희한하게도 보컬도 베이스도 강조를 안해서 그런지 주변 악기들의 분리도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다만 보컬모드처럼 보컬이 선명하지 않고 그렇다고 베이스 모드처럼 베이스가 넘치는 것도 아닌데 딱히 장점을 찾을 순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안쓸 거 같긴 합니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음원 소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죠.
* 음질
SBC 연결에서 음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요. 뭐 그래도 기대보다는 괜찮습니다. 좋은 거 쓰다가 이것으로 바꾸어 들으면, 그리고 내가 소리를 한번 들어보겠다고 각잡고 집중해서 들으면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이지만 가성비로 보면 이건 실로 꽤나 양호한 음질입니다. 빠른 비트에서의 반응성이 조금 부족하고, 고음역으로는 대역폭이 조금 협소한 느낌이 드는데 그건 코덱탓인지 헤드폰탓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충 유투브 보고 대충 동영상 보는 일상적인 사용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볼륨 부족함 전혀 없고요.
해상도니 분리도니 하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훌륭하지 않지만 아유 부족하네 못쓰겠네 이런 건 아니에요. (이건 EQ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지지만요) 음장감이 아주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소스 자체에 리버브가 어떻게 얼마나 걸려 있느냐가 사실 더 큰 팩터죠. 물론 오픈형 이어폰 특유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음장감' 같은 건 이런 밀폐형 헤드폰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뭔 짓을 해도 이 헤드폰이 고역대가 시원하게 뻗어가진 못하고 마찬가지로 저역대가 아주 깊게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코덱이슈인지 헤드폰 하드웨어 이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음색
본격 모니터링 젠하이저 800도 아니고.. 이런 저가형 기기들은 음질보다도 음색과 토널밸런스를 따져야겠죠. 하이 피델리티 찾을라면 5천원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여튼 이 물건 저역의 댐핑을 강조한 전형적인 중저가형 밀폐형 헤드폰의 소리가 납니다. 유닛이 큰 것이 더해 밀폐형 구조라 그런건지 저음역이 웅장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음장감 비슷한 게 있을려고 합니다. 고음역대는 '보컬EQ'를 먹여 끌어올렸는데 오 꽤 잘 올라왔네 하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뭐 리뉴얼 이전 젠하이저가 약간 이런 웅장하면서 약간 어두운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디파이어 H180이 이런 비슷한 느낌 아니었나 싶은데요. 거기에 이전 젠하이저 음색 좀 섞으면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헤드폰은 헤드폰인 게 분명합니다. 아 이어폰과는 다르다 이어폰과는
* 딜레이
제 기분탓인 것 같긴 한데 0.05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투브 보면 블투 딜레이 확인하는 비디오 많잖아요. 0.1초까지는 확실히 아니고 0.05초 정도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신경안쓰면 또 모르겠다 싶네요. 이건 코덱보다도 헤드폰 하드웨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죠.
* 멀티페어링
잘 됩니다. PC와 휴대폰 양 쪽 동시 멀티포인트도 되네요. QCY 중에 한번씩 이거 안되는 물건들이 나와서 사람을 놀라게 하죠. 얼마 전 구매한 T20이 멀티포인트가 안되던 게 기억나네요.
* 블투 연결의 안정성
집 안에서만 써봐가지고 잘 모르겠어요..
* 총평 : 대충 5천원에 사서 대충 유투브 본다면 굿 초이스
본격 음악감상용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충 유투브용이나 뭐 문서치면서 배경음악 듣는 그런 용도로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펌핑된 베이스 양감이 실로 재미가 있습니다. 보컬모드EQ를 걸면 전체적인 톤의 밸런스가 괜찮아지고요. 그러면서도 저음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사람 목소리가 잘 들립니다. 유투브 대부분이 유투버 본인 또는 등장인물들의 '음성'이 사운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그런 용도로 쓴다면 특히 훌륭하다 싶습니다. 그리고 무선의 편리함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죠. 단점이라면 귀에 땀이 좀 차는 구조가 되는 건데 뭐 싼 것들은 다 이렇습니다.
주변에 권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이라면 충분히 권할만한 물건이다 싶습니다. 물론 4만원 5만원 하면 다른 선택지가 많은 물건인데요. 이게 5천원 만원 하면 괜찮은 선택이다 봅니다.
2만원이 되면 QCY의 스테디셀러 이어폰들과 그리고 비슷한 사양의 QCY H2 헤드폰이 있죠. QCY H2 아직 못들어봤는데 기회되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왠지 거기서 거기일 것 같습니다만.
* 부록 : 살아있는 레전설 소니 E9 LP
쓰다보니 이 이어폰 생각이 납니다. 현재 시점 기준 제가 가지고 있는 방구석 헤드파이에서 가장 좋은 건 젠하이저 560S가 될 것 같고요. 최악은 소니 E9LP 입니다. 그러니까 그 정도 영역대가 제 리뷰에서는 최고와 최악의 어떤 기준점이 되는 거죠.
이 이어폰은 감히 역사에 남을 안좋은 물건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13미리 대형 유닛을 썼다고 자랑하면서 쏘니 브랜드달고 1만원 전후의 싼 가격에 팔아먹는 물건인데요. 와 이건 진짜 어디 비싼 기차나 비행기타면 서비스로 던져주는 그런 이어폰 수준의 소리가 나더란 말이죠. 2020년대에 이런 물건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든 일입니다. 소니가 이런 걸 실제로 시장출시한 게 꿈인가 싶습니다. 가끔 보면 알리에서 정가 5천원도 안하는 Mx400 금형한 차이파이 유선 오픈형 이어폰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이 이어폰에 비하면 아주 소니 888 저리가랍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씩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거 듣다 보면 삼성 번들이 전설의 명기 소니 EX90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