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통장 잔고가 0이 될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 겪어 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배터리가 0%까지 떨어지는 꼴은 도저히 참고 넘기질 못하겠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특히 노트북과 스마트폰 배터리는 싫거나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 거의 바퀴벌레보다는 좀 낫다 싶은 수준으로 기피하는 수준입니다. 노트북이 안 되면 일을 못하고, 스마트폰이 안 켜지면 놀지도 못하는데, 요새 나오는 제품들은 배터리 교체도 안 되니까요. 그래서 보조 배터리나 충전기를 가방마다 하나씩 넣어두는 자원 낭비를 저지르는 한편, 정말 정신병적인 수준으로 이 배터리가 얼마나 버틸 것인지를 가늠하다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터리가 0%까지 떨어지진 않습니다. 한국은 보조 배터리를 사거나 충전할 만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운 나라도 아니고요. 요새는 집 밖을 잘 안 나가니 더더욱 배터리 잔량을 근심스럽게 쳐다볼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손만 뻗으면 충전기 케이블이 손에 닿고, 1년 365일 24시간 전기가 끊기지 않는 곳에 살면서도 '혹시 단전이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같은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창조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심심하면 컴퓨터가 나가고 냉장고가 멈추던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트라우마인지, 아니면 정말 배터리 잔량에 대해 정신병 수준의 집착이 있어서인지 따지는 건 그닥 영양가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이 글의 본론은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도 충전할 방법이 없나 찾다보니, 우리의 친구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크랭크를 손으로 돌리는 자가 발전기 형식의 충전기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고 있길래 사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알리에서 파는 괴상한 물건의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 역시 딱히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하기가 어렵네요.
제품명 | Hand Crank Generator |
입력 | 손으로 돌려 전력을 만드는 크랭크 |
출력 전력 | 최대 3V/6.6A, 5V/4A, 6V/3.3A, 9V/2.2A, 12V/1.6A, 15V/1.3A, 혹은 돌리는 대로 |
출력 포트 | USB x2, 케이블 직접 연결 x2(1개는 정해진 전압 출력, 1개는 최고 전압 출력) |
발전 속도 | 2000rpm |
최대 출력 | 200W |
외부 재질 | 금속 |
크기 | 140x90x82mm(손잡이 제외) |
무게 | 758g |
참고 | https://ko.aliexpress.com/item/4001061251175.html |
가격 | 24.30달러(2021년 6월 알리 익스프레스 기준) |
중국 냄새 나는 박스.
도대체 박스를 왜 주는 걸까 싶은 포장 상태.
자리 차지하는 손잡이는 분리된 채로 포장했습니다.
설명서는 중국어인데 솔직히 읽을 건 없습니다.
크랭크 충전기입니다. 무게가 758g으로 꽤 묵직합니다.
크기는 손잡이를 제외하고 140x90x82mm입니다.
손잡이까지 계산하면 200mm 이상으로 길어집니다.
전면.
3/5/6/9/12/15V 전압 선택 스위치, USB-A 포트 2개, 전선을 직접 연결하는 단자 4개가 있습니다. 왼쪽 2개는 3/5/6/9/12/15V 등 정해진 전압대로 출력하며, 오른쪽 2개에 연결하면 크랭크를 돌리는대로 뽑아내는 가장 높은 전압을 출력합니다.
위쪽의 사용 설명에는 크랭크를 빨리 돌릴수록 출력이 늘어나며, 최대 출력은 20W, 크랭크를 빨리 돌리면 오른쪽 아래 2개 포트에서 나가는 전압이 높아지고, 너무 느리게 돌리면 전압 출력이 안된다. 마지막으로 USB 포트 사용 전에 반드시 전압을 5V로 맞춰두란 설명이 있습니다.
뒷면. 손잡이밖에 없습니다.
옆엔 통풍구밖에 없습니다.
위엔 그나마도 없습니다.
바닥에도 바람 구멍은 있군요.
분량이 너무 안 나오니 뜯어 보았습니다.
발전기가 가운데를 차지하는군요.
전면 포트와 스위치가 달린 기판. 2200uF 짜리 캐패시터도 보입니다. 저기에 전기를 임시 저장하나봐요.
손잡이 쪽은 더 볼거 없습니다.
이걸로 가장 만만한 핸드폰부터 충전해 보았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50% 이하로 떨어트린 상태에서 테스트했습니다. 그냥 충전기라면 출력이 얼마였다고 설명하면 끝인데, 이건 크랭크를 어떻게 돌렸는지 보여드릴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정말 빡세게 돌려야 12V나 9V에서 5W 정도가 나오고요. 5V에서는 2.6W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로 충전이 되긴 합니다. 그런데 전원 공급이 된다는 것 이상의 의의를 둘 순 없습니다. 스마트폰 초창기의 5V 0.5~1A 짜리와 비슷한 수준인데, 요즘 세상에 이 정도 출력으론 실사용이 힘들 뿐더러, 저 속도로 계속해서 돌리면서 충전을 몇 분이나 유지할 수 있을까요?
혹시 몰라서 영상 촬영을 안 하고 충전만 해 봤는데, 그 때도 충전되는 전력은 똑같았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충전기여도, 전원 공급만 된다면 그걸 쓰는 게 이거보단 낫습니다. 이 제품의 의의는 전기가 완전히 안 들어오는 곳에서 어떻게든 전원 공급을 해야 할 때 이거라도 쓸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을 준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제목에 쓴대로 무인도에 표류하거나 북괴가 침공하거나 지구가 망하기 전까지는 쓸 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