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시스템을 위한 케이스가 필요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케이스는 주요 부품의 배치가 잘 드러나고 교체하기 쉬워 테스트용으로 딱이었으나(그래서 이름도 테스트 베드입니다), 메인보드 고정 핀이 소모품 취급인데 팔지도 않는데다 무거운 그래픽카드를 지탱할 고정 장치가 부족했습니다. 트리플 팬에 2슬롯을 넘어가는 그래픽카드를 슬롯 하나로 지탱하기엔 너무 불안하더군요. 한국에선 마음에 드는 케이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크릴은 미덥지 못했고, 좀 쓸만하다 싶은 건 너무 비쌌지요.
중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타오바오에선 선택지가 많이 늘어나더군요. 시장의 규모가 곧 다양성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걸 만들어도 그걸 살 괴팍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한국보단 훨씬 더 많을테니까요. 여전히 마음에 딱 드는 건 없었으나 대신 가격이 아주 저렴했습니다. 배송료까지 붙여도 쌌어요. 가성비가 워낙 매력적이다보니 대충 적당한 걸 사서 타협해서 쓰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세상 일은 생각처럼 순순히 흘러가지 않지요.
그렇게 해서 고른 케이스가 VEDDHA GRIDERCASE alpha V1입니다. 기글 회원분의 추천을 받아서 알게 됐지만, 저같은 똥고집이 어디 남의 말만 듣고 사겠나요? 제 눈에도 괜찮아 보이니까 산거죠. 실제로 구조나 질감, 만듦새는 아주 나쁘지 않습니다. 최소한 표준을 무시하는 ITX 케이스 https://gigglehd.com/gg/5093611 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품질이 좋았습니다. 물론 가격 차이도 나지만 크기 차이도 상당하니까요. 전체적인 가성비는 이쪽이 훨씬 더 우수하다고 생각되더군요.
쉬운 부품 교체를 위해선 메인보드가 지면에 수평 방향으로 배치되야 합니다. 이 케이스는 메인보드를 수직 방향으로 세우지만 그래도 대충 눕혀서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몹시 안일한 발상이었죠. 덕분에 뭐든 사진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눕히고 못 눕히고의 문제 이전에, 뭔가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표준을 무시하고 있을줄은 몰랐거든요. 어쨌건 샀으니까 쓰고 있지만 테스트용으로 만든 케이스는 아님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전시용이면 몰라도요.
제품명 | VEDDHA GRIDERCASE alpha V1 |
케이스 종류 | 오픈형 |
재질 | 알루미늄 프로파일/메탈 |
전체 크기 | 421x200x360mm |
무게 | 2.0kg |
드라이브 베이 |
3.5인치/2.5인치 x1. 나머지 공간은 낭비 |
확장 슬롯 | 기본 2개, 추가 지지대 사용 시 2개씩 늘어남 |
메인보드 폼펙터 | ATX |
파워 폼펙터 | ATX |
파워 길이 | 제한 없음 |
확장 카드 길이 | 제한 없음(전면 팬/라디에이터 장착 시 270mm) |
CPU 쿨러 높이 | 제한 없음(오픈형) |
쿨링팬/라디에이터/먼지 필터 |
120mm 팬 2개 상당 |
버튼/LED 구성 |
전원 버튼 x1 전원 LED x1 리셋 버튼, 하드디스크 LED, USB, 오디오 포트는 없음 |
참고 링크 |
https://item.taobao.com/item.htm?id=581670929257&_u=f2022po5o90f6a |
가격 |
188위안(2019년 7월 타오바오 기준, 한화 32,000원, 배송료 별도) |
박스 위에 뽁뽁이를 두른 무성의한 포장. 저 상태로도 중국에서 한국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어차피 쇳덩어리가 전부라 곱게 둘러쌀 필요도 없겠죠.
GRIDERCASE 시리즈의 알파 케이스라고 써졌네요. 나름대로 이름도 붙였습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박스를 열자 작은 박스들과 빈공간을 채운 포장재가 나옵니다.
작은 박스를 꺼내니 그 아래에 포장재, 그리고 알루미늄 프로파일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체 구성. 그래픽카드 지지대 하나를 더 추가해서 2개입니다. 원래는 하나만 줍니다. 케이스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부품보다 더 많은 수의 나사, 그리고 3가지 크기의 렌치가 불길함을 더해줍니다. 왕년에 촉이 좋을때는 이것만 보고도 흠칫했겠지만 요새는 늙어서 뭐가 이상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설명서. 만국 공통어인 그림으로 설명하고 약간의 영어를 더했습니다.
부품의 종류와 수가 많다보니 뭐가 얼마나 있는지 꼭 설명해줘야 되겠지요.
이 케이스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입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 고정용 나사, 그리고 렌치. 또 렌치. 지겨운 렌치. 왜 이렇게 렌치에 이를 가는지는 아래에서 보게 됩니다.
설명서에 나온대로 차근차근 따라해 봅시다. 우선 가장 큰 프로파일을 결합합니다. 프로파일의 가공 수준이나 도장 상태는 괜찮은 편. 어차피 험하게 쓰면 바로 칠이 벗겨지긴 합니다만.
알루미늄 프로파일의 체결에는 육각 렌치를 사용합니다. 십자 나사는 내구성이 떨어지니까 이걸 썼나 보네요. 여기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죠.
드라이버 없는 집은 없어도, 렌치 있는 집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렌치도 줍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조이고 있으니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정해진 구멍에 맞춰서 하나하나 조립해 줍니다.
나사와 프로파일을 끼울 위치가 딱 정해져 있으니까 그대로 조립만 하면 됩니다. 전에 썼던 미니 ITX 케이스처럼 https://gigglehd.com/gg/5093611 위치를 감으로 파악해가며 조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호감도 상승.
받침대까지 끼우니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프로파일을 직각으로 고정하기 위해 ㄱ자 모양의 부품을 끼워 넣습니다. 끼워서 밀어 넣고 나사를 조여 고정합니다.
그 나사조차도 육각 렌치를 씁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수한 부품이니까요.
ㄱ자 모양의 부품을 사용해, 받침대 부분을 견고하게 잡아주는 프로파일을 끼웁니다.
대충 맞췄다 싶으면 렌치를 돌려서 자리를 잡습니다. 슬슬 손이 아프지만 아직은 참을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한국 남자들은 병무청의 신검 영장을 봤을 때부터 참을성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생각합니다.
큰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아니, 완성된줄 알았습니다.
사진 가운데 쯤을 잘 보시면 알루미늄 프로파일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요. 그게 메인보드 지지대를 끼우는 자리입니다. 그럼 저 구멍은 옆을 보고 있어야 정상이겠지요? 그런데 위를 보고 있지요? 뭐해요? 다시 풀어서 제대로 돌려놓지 않고.
슬슬 육각 렌치를 싫어하게 됐습니다. 딱히 큰 피해는 주지 않는데 왠지 재수없는 그런 캐릭터같다고 해야 할까요. 프로파일에 써진 문구가 옆에서 잘 보이는 게 정상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위를 보고 있어야 하는군요. 중국인들의 디자인 감각은 워낙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프로파일이 제 자리를 잡았으니 메인보드 지지대를 끼워줍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번에 썼던 미니 ITX 케이스는 저 위치를 일일이 감으로 맞춰야 했지요. 미니 ITX라 망정이지 ATX를 그렇게 맞췄다간 속세의 미련을 버리고 성불했을겁니다.
메인보드 지지대의 조립은 맨손으론 절대 안되고 펜치를 썼습니다. 십자 드라이버로 이런 나사를 조이는 캡을 쓰는 게 더 우와하지만, 저는 우악스럽기 때문에 그런거 모릅니다.
이 케이스에서 가장 못마땅한 부분이자, '표준을 무시한다'로 제목을 지은 그 이유입니다. 메인보드의 조립에도 육각 렌치를 써야 합니다. 제정신입니까 차이나 휴먼? 다른 케이스 회사들은 밥 먹고 소화가 안되서 십자 드라이버로 조립하나요? 내가 메인보드 바꿀 때마다 손가락 통증을 유발하는 렌치를 어느 구석에 쳐박아 뒀는지를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까?
한번 장착한 메인보드를 어지간해선 들어낼 일이 없는 평범한 시스템이라면야 렌치를 써도 됩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위해 메인보드를 자주 교체해야 한다면 이건 좋은 선택이 아니죠. 저 때는 설명서에서 시키는대로 렌치를 써서 하나하나 조여 주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냥 남는 케이스 나사를 써서 메인보드를 장착했거든요. 왜 저때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냐고요? 그렇게 총명하면 이런 사이트를 10년째 운영하고 있을리가 없잖아요. 머리 회전이 빨리빨리 안 되니까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거죠.
메인보드 하나 뿐이지만 이제 케이스처럼 보입니다. 사진 찍을 땐 만만한 M-ATX 메인보드인 박격포를 달았는데, 지금은 E-ATX 폼펙터인 갓라이크를 장착했습니다. 이런 케이스에선 부품 간섭이라고 할 것도 없네요.
이제 파워를 장착할 차례입니다. 두 개의 부품에 파워를 고정하고, 이 부품을 케이스 프레임에 장착합니다. 에어컨 실외기를 다는 것 같네요.
나사구멍이 묘하게 안 맞습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장착해야 정상인데, 왼쪽 구멍에는 맞지 않고 오른쪽 구멍 두개에만 나사가 들어가는군요. 역시 표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 그렇습니다. 그래도 대각선으로 엇갈리도록 나사가 고정되니 대충 쓸 수는 있겠지요?
이 묵직한 파워를 케이스에 고정해야 하는데, 그걸 지탱하는 나사들은 참 작습니다. 은색 부품을 알루미늄 프레임의 홈에 끼워 넣고 나사를 돌리면 고정되는 식.
설명서에선 파워의 AC 전원 케이블이 아래로 가도록 설치하라고 나왔지만 여기에선 뒤집어서 장착했습니다. 모듈러 파워의 연결 단자에 먼지가 들어가는 게 싫어서요.
나사 체결 중. 이번에도 어김없이 렌치가 나옵니다. 그래도 이건 이해됩니다. 파워가 아닌 파워 지지대를 고정하는데 렌치를 쓰는거니까요. 파워 자체는 십자 나사로 고정했고.
파워 지지대를 프레임에 연결하는 나사가 작고, 여기에 장착한 파워가 워낙 커서 불안하긴 한데 아직까지는 안 떨어지고 붙어 있습니다.
이 케이스의 또 다른 단점은 스토리지입니다. 드라이브를 장착하는 부품을 딱 한 세트밖에 안 주며, 그것도 드라이브의 한쪽만 나사-그냥 나사 말고 렌치가 필요한 나사-로 조여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묵직한 3.5인치 하드디스크를 넣긴 좀 그렇죠.
가장 위 프레임에다 데롱데롱 달아두는 구조입니다. 한 셋트만 더 줘서 2.5인치 SSD가 두 개 들어갔다면 참아줬을텐데, ATX 케이스에 드라이브 딸랑 하나는 좀 너무하지 않나요?
그래픽카드의 안정적인 고정이 이 케이스를 산 주요 이유 중 하나였지요. 지지대를 프레임에 고정합니다. 역시나 렌치 나사와 작은 은색 부품을 사용합니다. 이건 메인보드나 슬롯마다 위치가 다르기에 감으로 맞춰야 합니다.
그래픽카드를 고정할때도 렌. 치. 출. 현. 이 케이스 만든 사람은 밥 먹을때도 렌치 세스푼 정도 뿌려서 비벼먹을거에요. 물론 저는 그런 성벽이 없기에 일반 나사로 바꿔서 고정했습니다.
중요한 부품은 다 달렸습니다. 이 케이스를 사기 전에는 대충 눕혀두고 쓰면 될거라 생각했지만, 그럼 파워 통풍구가 고스란히 막히며 시스템의 무게를 파워가 지탱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부품을 교체할 때만 잠깐식 이렇게 두고 쓰게 됐네요.
케이스 앞쪽이 허전하지요? 여기에다 뭔가를 달아줄 때가 됐습니다.
저 은색 부품을 쓰는 장면은 위에서 계속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썼는지 사진을 찍진 않았군요. 저걸 프레임의 홈 사이에 밀어 넣고 위에서 나사를 돌리면, 이 부품도 조금 옆으로 돌아가면서 꽉 물리는 식입니다.
쿨링팬을 달아줄 플라스틱 부품을 위아래에 달아줍시다.
옆에서. 나사를 조금 돌렸더니 은색 부품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프레임에 꽉 물렸네요. 이걸 도로 분리할 땐 몹시 귀찮습니다.
전원 버튼 겸 전원 LED, 그리고 전면 패널을 달아줍시다.
버튼 앞부분을 풀어서 끼워주고 다시 조이면 끝. 간단하죠?
너무 간단해서 문제입니다. 전원 버튼과 전원 LED밖에 없습니다. 테스트용 시스템에선 리셋버튼이 절실한데 그런건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있는 버튼/LED도 표준 색상이 아닙니다. LED -는 하얀색, +는 색을 넣어주는 게 국룰 아닌가요? 다시 한번 표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전면 패널을 장착했습니다. 쿨링팬은 달기 귀찮으니 넘어갑시다. 금속 프레임에 (렌치로) 고정한 플라스틱 쪼가리에 팬을 달아야 하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진만으로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케이스는 어떤 의미로는 흉기입니다. 저 모서리에 발가락이라도 찍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프로파일 끝에 플라스틱 캡을 끼우면 조금 덜 치명적인 흉기가 됩니다.
케이스 전면.
케이스 우측면.
케이스 뒷면.
케이스 좌측면.
대략의 크기를 짐작하시라고 자를 함께 놨습니다. 그냥 두꺼운 미들타워 ATX 케이스라 보면 되겠습니다.
이 날 미니 ITX 케이스와 ATX 케이스까지 두개를 한꺼번에 조립하고 찍느라 창의력이 떨어져 사진 구도가 다 비슷비슷하군요. 다른 일이 많다보니 한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글을 쓰다보니 잊어버린 부분도 있고요.
전시용 케이스로선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이 경우엔 부족한 드라이브 베이가 유일한 단점이 되겠군요. 부품이 노출되는거야 어차피 알고 사는거고. 한국에서 이 가격으로 오픈 케이스를 사려면 주재료가 아크릴이 되버리는데, 전 아크릴이 싫어요.
테스트/벤치마크용 작업대로 쓰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케이스 방향도 그렇고, 렌치 나사를 적극 사용하는 부품도 그렇고요. 그래도 기왕 샀으니 대충 쓰고 있네요. SSD가 달린 프로파일을 손잡이 비슷하게 쓰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