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탑 키보드가 무협이라면 펜타그래프는 사파입니다. 구파일방처럼 도열한 청축 갈축 녹축의 정파 기계식 키보드들은 펜타그래프를 가리켜 '노트북에나 들어가던 주제에 감히 데스크탑을 넘본다'며 매도합니다. 직전제자 체리 키보드라면 그 질타가 더욱 클 것입니다. 애플 키보드라면 차라리 낫습니다. IBM 호환 PC가 아닌 맥은 다른 세계, 그러니까 세외의 일이니까요. 허나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사파중에 사파가 있는데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별로 싸지도 않고 단점도 많지만 나름 고급지다며 은근히 이를 따르는 어둠에 속한 자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바로 저같은 사람이죠.
아무리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사파 취급을 받을만한 회사는 아니라고요? 회사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키보드는 글쎄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신형 키보드 상당수가 한국에 정식 출시되지 않는 것만 봐도 메이저-정파와는 거리가 영 멀어 보입니다. 키보드 자체에도 사파 취급을 받을만한 여지가 다분합니다. 최신형인 Microsoft Surface Ergonomic Keyboard는 좌우가 분리된 인체공학 디자인을 썼습니다. 네. B(ㅠ)를 왜 왼손으로 치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바로 그 디자인이죠. 호불호가 갈리는게 거의 파인애플 피자 수준입니다. 자는 파인애플 피자 맛있던데, 그래서 이런 키보드도 좋아하나 봅니다.
제품명 | Microsoft Surface Ergonomic Keyboard |
스위치 종류 | 펜타그래프 |
키 배열 | 좌우 분리형 인체공학 디자인 |
키 수 | 113개 |
키 내구성 |
QWERTY 키: 1천만번 핫키/멀티미디어 키: 50만번 |
통신 규격 |
블루투스 4.0/4.1 LE 통신 거리 10m 통신 주파수 2400~2483.5Mhz |
전원 공급 |
AAA 배터리 2개 최대 12개월 사용 |
크기 | 460.14x229.22x34.73mm |
무게 | 1.01kg |
a/s | 1년 |
가격 |
129.99달러 (2018년 4월, MS 공식 스토어 기준) |
우선 에르고노믹, 내추럴, 인체공학
에르고노믹, 내추럴, 인체공학까지.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좌우를 분리해 각도와 높이를 틀어 손목의 부담을 줄이자는 컨셉의 키보드 디자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참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제가 써본 것만 해도 내추럴 키보드 엘리트와 내추럴 키보드 4000(http://gigglehd.com/zbxe/97224 )부터 시작해서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http://gigglehd.com/zbxe/11238491 )까지 있습니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 인체공학 키보드 많이 써봤다고 부심 부리냐고요? 부심까지는 아니고, 그만큼 할 말은 많다고 강조하려는 겁니다.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 내추럴 키보드의 장점과 단점은 서피스 에르고노믹 키보드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적응하면 이처럼 편한 키보드도 없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이보다 불편한 키보드도 없습니다. 한글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B(ㅠ)키가 왼쪽으로 떨어져 나올거라는 데 지갑 속의 이번주 로또 용지를 하나 걸어 봅니다. 지금 이상한 키보드에 적응해서 쓴다는 부심 부리냐고요? 별로 그럴 생각은 없는데 다분히 그래 보인다는 점에서 이건 분명 사파의 키보드임에 틀림 없습니다.
박스. 요새 마이크로소프트는 박스 잘 만듭니다. 표면은 부드럽고 결합은 꽉 물려 있어, 박스를 여는 맛이 있습니다.
박스 뒤. 오른쪽의 알칸타라 로고가 보이네요. 저것도 고어텍스처럼 아무나 만드는 소재는 아닌 듯.
가운데가 위로 솟은 키보드에 맞춰 박스 안의 높이를 다르게 했습니다.
뚜껑을 열면 키보드.
그 아래엔 설명서가 있습니다. 예전 인체공학 키보드는 팜레스트 아래에 넣는 받침대를 줬었는데 이젠 안주네요. 사실 받침대를 보면서도 이걸 누가 쓰나 궁금했습니다.
구성은 솔직히 볼거 없습니다. LED 효과를 고르거나 단축키를 설정하는 게 아닌 이상, 키보드의 설명서가 두꺼워야 할 필요는 없겠죠.
Microsoft Surface Ergonomic Keyboard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의 영역을 따로 나누고, 손목의 자연스러운 위치에 맞춰 살짝틀었으며, 그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벌렸습니다.
중간에 빈 공간이 있지만 쿼티 키 영역과 키패드 사이에 빈 공간이 없어 그리 길진 않습니다. 대신 휘어있는 배열과 아래의 팜레스트 때문에 위아래로 더 큽니다.
키보드 가운데 부분이 위로 솟아오른 것도 인체공학 디자인의 특징.
여기서 보면 인체공학 키보드의 특징이 더욱 돋보입니다.
바닥. 위로 솟아오른 만큼 아래는 들어가 있네요. 모서리엔 미끄럼 방지 실리콘 패드를 붙였습니다.
블루투스 연결 버튼과 2개의 AAA 건전지. 건전지로 12개월 간다고 하던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건 몰라도 이걸로 사람 속인적은 없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건전지를 쓰긴 아까워서 에네루프를 넣었더니 블루투스 대기 상태에서 키보드가 활성화되기까지 1~2초 정도 딜레이가 있더군요. 일단 활성화된 후에는 바로바로 입력이 됩니다. 에네루프의 전압이 낮아서 그런가 싶네요.
그리고 펜타그래프, 간혹 시저스
기계식은 차라리 편합니다. 이건 카일 청축이에요 새로 나온 LP에요 보기 드문 백축이에요. 이 한마디로 키감의 설명이 대충 끝나니까요. 그런데 펜타그래프는 그게 안됩니다. 분명 회사마다 제품마다 느낌이 다른데 이걸 참 귀찮게도 일일이 설명해야 합니다. 일단 같은 서피스란 이름에 색상과 출시 시기도 비슷한 서피스 블루투스 키보드 https://gigglehd.com/gg/2157127 와 비교하면 이쪽의 키가 조금 더 무거운 느낌입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요. 스컬프트 에르고노믹과 비교하면 좀 가벼운 것 같기도 합니다만. 뭐 여기까지는 다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니까 비슷비슷하다 치고, 애플의 키보드와 비교하면 확연히 무겁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쾌하게 타이핑할 수 있는 애플 쪽이 키감만 놓고 보면 가장 낫네요.
키 스위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키캡의 촉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키보드를 살 때는 알칸타라 팜레스트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타이핑을 하고 나니 키의 촉감이야말로 이 키보드에서 가장 인상깊더군요. 흡사 석고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처음 이 키보드를 샀을땐 알칸타라 커버를 쓰담쓰담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정작 키보드를 쓰고 나니 그냥 키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네요. 서피스 블루투스 키보드도 부드럽긴 하지만 이거보다는 덜합니다. 가뜩이나 오래 써서 반질반질 닳아버린 스컬프트 에르고노믹과 비교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펜타그래프 방식의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 3개. 근데 미묘하게 느낌이 다릅니다.
키 크기는 평범해 보이나, T나 스페이스처럼 거대한 키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키 구조가 궁금해서 가장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Clear를 뜯어봤다가 아작냈습니다. 사용기에 넣을 사진 한장을 위해 키 하나를 포기한 셈이 됐네요.
또,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 표준을 만들었습니다. 윈도우도 어떻게 보면 운영체제의 표준이고, 각종 오피스 규격도 표준이죠. 다만 다른 분야에서는 성과를 잘 냈는지 모르겠네요. 스마트폰은 그냥 말아먹었다 치고, 키보드는 계속 시도는 하는데 사람들이 이걸 좋아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펑션키 위의 숱한 특수 기능키 말입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나름대로 쓸만한 기능키이긴 한데, 굳이 이걸 Fn 버튼으로 전환해가며 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전작인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펑션키와 기능키 전환을 스위치로 선택해야하고, 무슨 키보드 같지도 않은 스위치를 펑션키에 넣은 건 쓰면 쓸수록 불편하더군요. 따로 떨어져 나와서 캐터리를 따로 챙겨야 했던 키패드도 다시 본체에 붙었습니다.
특수 기능키는 키패드 위로도 이어집니다. 계산기 실행? 이건 사무용이라면 꼭 필요할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다만 그 위치가 문제네요. 왼쪽으론 넘버락, 오른쪽으로는 모든 창 최소화, 아래엔 현재 창을 닫는 클리어 버튼이 있거든요. 가뜩이나 키패드와 특수키 사이에 공간이 없어서 오타 내기도 쉬운데 저 위치는 좀 아니다 싶습니다. End나 아래 화살표처럼 돌기라도 넣어두면 구분이 좀 편할텐데요. 앞서 소개한 창 최소화나 클리어 버튼, 로그오프 버튼은 사무실에서 딴짓하다가 들키거나 엄크에도 유용할 것 같지만 저한텐 전혀 쓸모없는 기능이라 적응이 안되네요. LED는 Fn, 캡스 락, 스크롤 락, 넘버 락 키의 우측 상단에 달려 있습니다. 나름 직관적이나, 햇빛 아래에선 잘 티가 안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스페이스 키는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 큰게 위로 솟아올라 있는데 한 덩어리라면 뒤틀리고 삐걱거릴 겁니다. 기존 제품이 그랬거든요.
키보드 위를 채운 펑션키. 키는 작지만 키감은 아래의 쿼티키와 똑같습니다. F1~F12와 특수 기능키의 전환은 왼쪽 아래에 있는 Fn으로. Fn을 누르면서 펑션키를 누를 필요는 없고 그냥 토글입니다.
키 배열은 일반 키보드랑 살짝 다릅니다. 델리트가 긴 것과 프린트 스크린이 그 옆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가뜩이나 좁은데 왼쪽 하단에 Fn 키를 우겨넣은 것과, 사악한 윈도우 키가 왼쪽 오른쪽에 모두 있는 건 영 불호.
계산기랑 로그오프까지는 알겠는데 바탕화면 표시, 검색, 클리어 버튼은 눌러보기 전까지는 용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래저래 불만을 늘어놨지만 그래도 괴상한 스위치를 사용한 전작보다는 낫네요.
왼쪽의 ScrLk는 LED 꺼짐. 오른쪽의 NumLk는 LED 켜짐. 보기에는 예쁩니다. 그런데 실용성은 떨어집니다. 지금 아침의 태양을 맞으며 키보드를 치고 있는데 저게 켜진건지 꺼진건지 도통 구분이 안됩니다. 태양이 진 후에나 키보드를 꺼내는 어둠의 자식들에게 어울리는 LED일듯. 역시 사파의 키보드입니다.
마지막으로, 서피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펜타그래프' '인체공학' '키보드'라는 특징은 전작인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가 처음으로 달성했습니다. 따라서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와 비교를 안 할수가 없지요. 우선 색이 달라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라는 이름에 회색이란 이미지를 넣고 싶은건가, 서피스 블루투스 키보드나 지문 인식 키보드, 서피스 다이얼, 서피스 프리시전 마우스까지 온통 회색으로 통일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만의 색상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며, 나름 예쁜 색과 디자인임도 부정하지 않으나 실용적인 선택은 아닙니다. 특히 알칸타라 재질로 마무리한 팜레스트는 정말 예쁘지만 때가 엄청나게 잘 타며, 그렇게 더러워진 부위가 은근히 신경쓰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내구도를 말하긴 아직 이르지만 분명한 건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도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를 만들 때 미쳐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좌우를 아예 분리시키고 키보드 몸체를 얇게 뽑아내면 참 예쁘겠지?가 고작이었겠죠. 그게 키보드 몸체가 뒤틀리고 테두리가 깨져 나가는 주범이 될 것임을 알면서 그런 식으로 만들진 않았을 겁니다. 제품을 잘못 만들었으면 욕을 먹고, 그 실수를 고치지 않으면 욕을 배로 더먹는데, 다행이도 서피스 에르고노믹 키보드는 욕머겅 두번머겅까지는 가지 않을 듯 합니다. 키 영역은 분리했으나 몸체는 한 덩어리고, 두께도 넉넉하니 멧집은 분명 나아졌을거라 믿어 봅니다.
알칸타라 쓰담쓰담 만질만질. 그래도 핥짝핥짝까진 안했습니다. 처음에 서피스 3를 봤을 때부터 알칸타라 커버 하나 때문에 사고 싶었어요. 갤럭시 S8을 사면 거기에도 알칸타라 케이스를 씌울 듯.
사용 중이던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는 비닐같은 인조가죽이 때타고 더러워지고 쭈글쭈글해진 것도 모자라 모서리가 벗겨졌습니다. 나름 오래 썼다고는 해도 썩 만족스러운 내구도는 아니죠. 이쯤 되면 더러워서라도 버려야지.
키보드를 박스에서 꺼낸 이후 꼬박꼬박 손을 씻고 사용했으나, 한 이주일 정도 지났을 뿐인데 저렇게 때가 묻었습니다. 오죽하면 마누라가 자기 쓰담쓰담 하기 전에도 그렇게 손 씻으라고 핀잔을 줄 정도니, 손을 깨끗하게 씻고 쓴건 정말 확실합니다.
사진 왼쪽이 원본, 오른쪽은 티가 좀 나라가 포토샵에서 레벨을 끌어올린 거. 평소 저 부분에 손목을 얹어놓고 쓴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 외에 장점은 없네요. 알칸타라가 때 덜탄다고 누가 그러나요? 이걸 볼때마다 누래진 삼각 팬티를 보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서피스 블루투스 키보드와 비교. 색이 똑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서피스는 곧 회색인듯.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과 비교. 키패드 때문에 덩치가 꽤 차이나네요. 저 키패드는 지금 어디로 도망간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이 비어있는 저 구조는 다시 봐도 별로입니다. 검은색 키보드는 F7 왼쪽 위가 깨져 나갔고, 스페이스 바 바로 위에 금이 가 있지요. 지금은 꽉 채웠으니 그럴 일은 없지요.
알칸타라가 더러워지니 어쩌니 했지만 기존의 비닐 쪼가리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기존 제품은 가운데를 누르면 아래로 휘어져서 영 불안했는데, 서피스 에르고노믹은 눌러도 끄떡 없습니다. 키보드를 누른다고 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만.
Microsoft Surface Ergonomic Keyboard
전작인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 키보드와 비교하면 서피스 에르고노믹 키보드는 많은 부분을 개선했습니다. 재질, 구조, 디자인까지 모든 점에서 좀 더 완벽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완벽한 제품이 되지 못하는데, 큰 단점이 두개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에는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는 거. 한글 각인도 없고 구입도 불편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비싸다는 겁니다. 스컬프트 에르고노믹 데스크탑은 마우스 포함해서 10만원인데 이건 키보드만 129.99달러, 14만원 쯤 됩니다. 저야 사파의 마수에 빠져 알칸타라를 씌운 인체공학 디자인의 펜타그래프 키보드가 아니면 안된다고 구입했지만, 그래도 비싸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태라서 그런진 몰라도 알칸타라 촉감은 개인적으로 참 괜찮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