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11.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10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새 버전의 윈도우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윈도우가 나올 때마다 늘 그랬던대로, 이번에도 숱한 논란을 함께 끌고 등장했습니다. 우선 윈도우 10이 마지막 버전이며, 앞으로 새 버전 없이 윈도우 10을 업데이트해 나가겠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과거 발언이 있습니다. 참 논란거리가 되기 좋은 표현인데 저는 이해해 주렵니다. 발표 중에 나온 애드립에 가까우며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소비자들은 윈도우 10 이후로 새 버전은 없을 거라 받아들였고, 그걸 깨고 새 버전을 덜컥 내놓았으니 분위기가 썩 우호적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윈도우 11의 전체적인 모습 역시 불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윈도우 11이라고 부르기엔 기존의 윈도우 10과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윈도우 11이 아니라 윈도우 10의 22H1 업데이트로 내놨어야 하는 물건인데, 새 버전의 윈도우로 포장해 팔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바꾼 게 아니냐며 비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죠.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윈도우 10으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존 버전을 쓰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업데이트를 보장하고, 여러 새로우 기능을 추가했다며 유혹하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에 찬 시선들은 남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앱 실행 기능은 아직 정식 지원하지 않습니다. 

 

사실 새로운 기능도 논란거리입니다. 시작 메뉴를 왼쪽에서 중앙으로 옮긴 건 참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니어도 저는 참아줄 거에요. 이건 적응의 문제잖아요. 디자인이나 사용 체험의 일관성은 정말 중요하지만, 뭐가 됐건 아쉬운 사람이 참고 쓰는 거 아니겠어요? 예비군 앱이 뭐 기능이 좋거나 예뻐서 씁니까? 필요하니까 쓰는 거지. 하지만 혁신적인 기능이라며 소개한 것들이 아직은 효과가 없거나, 그마저도 지금 당장 쓰지 못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윈도우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실행하는 기능의 경우 베타 테스트에 머물러 있으며, 그마저도 한국에서는 안 됩니다. 오직 미국에서만 쓸 수 있지요. 아직은.  

 

소프트웨어 호환성도 문제입니다. 윈도우 11이 아무리 윈도우 10을 기반으로 삼은 운영체제여도, 어쨌건 버전이 크게 바뀐 새 버전의 운영체제입니다. 기존의 윈도우 10만 하더라도 대형 업데이트가 한 번식 나올 때마다 갑자기 잘 되던 기능이 안 된다느니 성능이 떨어졌다느니 하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험담은 수두룩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이번에 윈도우 11을 쓰면서 실행이 안 되거나 이상하게 굼뜨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증상으로 일반화하긴 어려우나, 안정된 윈도우 10을 버리고 윈도우 11로 굳이 이주하려면 대단한 모험 정신과 용기가 필요할 거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히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까다로워진 설치 조건이죠. TPM 2.0으로 대표되는 보안 모듈이 필수 조건이 되면서, 하루 사이에 윈도우 11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형 취급을 받는 부품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출시된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고 아직은 성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TPM이 무엇이고 그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이게 꼭 필요하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에 다들 동감할 겁니다. 모르시다면 이 글 한번 읽어 보시고요. https://gigglehd.com/gg/10411106 하지만 지금 당장 신경써야 할 점이 하나 늘었다는 건 분명한 단점입니다. 

 

물론 이런 불편한 점들을 상쇄할만한 윈도우 11만의 장점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럼 불편해도 깔아서 써야죠. 소비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장점은 세 가지, 성능, 기능, 가격입니다. 가격은 넘어갑시다. 변한 게 없으니까요. 기능은 앞에서 말했죠. 매력적이며 좋은 기능이라 주장하는 것들은 많으나 아직은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발표만 했지 아직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도 적지 않고요. 결국 남는 건 성능 뿐이네요. 성능 최적화가 잘 되서 윈도우 업데이트만으로도 체감할만한 변화가 있다면 윈도우 11로 건너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단점들을 모두 다 무시하고. 오직 성능 하나만 보고 건너갈 수 있지요.  

 

 

그래서 윈도우 10에서 11로 건너갈 이유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테스트 대상 모델들은 현재 시장의 주력 모델들인 라이젠 5 5600X, 라이젠 7 5800X, 코어 i7 11700KF 코어 i9 11900K입니다. 이들 CPU야 워낙 잘 알려진 것들이니 굳이 하나씩 소개할 필요는 없겠죠. CPU 연산 성능 테스트의 경우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빼고, 대신 게임 성능 위주로 테스트했습니다. 게임은 작은 프레임 변화에도 게이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항목이니, 최적화가 잘 됐다면 윈도우 11로 건너가고 그렇지 않다면 윈도우 10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한 가지 짚어두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윈도우 11의 경우 라이젠 L3 캐시 레이턴시와 대역폭이 떨어지는 버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윈도우 11에서는 라이젠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니 불리한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올법도 하나,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와 AMD의 발빠른 대처로 해결이 된 상태입니다. https://gigglehd.com/gg/11116460 윈도우 11 빌드 22000.189 이상 버전과 선택 업데이트를 설치하고, AMD 칩셋 드라이버의 최신 드라이버로 업데이트하면 이들 버그는 잡힙니다. 실제 캐시 대역폭과 레이턴시 테스트에서도 드라이버 설치 전후로 성능이 크게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MD 최신 칩셋 드라이버를 설치하기 전. L3 캐시의 쓰기 속도가 129.27GB/s고 레이턴시는 13.0ns입니다. 

 

 

AMD 최신 칩셋 드라이버를 설치한 후. L3 캐시의 쓰기 속도가 222.85GB/s로 오르고 레이턴시는 11.8ns로 줄었습니다.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 윈도우 11에서 하락폭이 적지 않습니다.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 피직스. CPU 성능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항목인데요. 여기에서도 점수가 전반적으로 떨어졌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원래 프레임이 높게 나오는 게임이라 그런지 하락 폭도 아주 큰 편입니다.

 

 

 

배틀그라운드. 이것도 리그 오브 레전드 못지 않게 프레임이 높고 그만큼 하락 폭이 큽니다.

 

 

더트 5. 게임 성능이 오른 CPU도 있지만 코어 i9-11900K는 9프레임이 떨어졌습니다.

 

 

호라이즌 제로 던. 코어 i9-11900K는 10프레임이 떨어졌으며 라이젠 7 5800X만 성능 변화가 없었습니다.

 

 

쉐도우 오브 더 툼레이더. 라이젠 5 5600X와 코어 i7-11700KF는 성능이 4프레임 정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코어 i9-11900K는 3프레임이 떨어졌습니다.

 

 

파 크라이 6.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나름 최신작이라 넣어 봤는데요. 이건 AMD 쪽의 성능 하락이 보이네요.

 

 

레드 데드 리뎀션. 그나마 윈도우 11이 좋은 성적을 보인 게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코어 i9-11900K는 성능이 줄었습니다.

테스트 결과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 11은 게임 성능은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인텔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나 AMD 라이젠 5000 시리즈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게임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라이젠 5000 시리즈는 원래 인텔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보다 더 좋은 게임 성능을 보여주며, 윈도우 11에서도 그런 경향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성능이 대체적으로 떨어지거나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윈도우 11만의 기능이 절실하다면 몰라도 굳이 위에서 열거한 불편을 감수하고 굳이 업데이트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윈도우 11의 부진이 계속 이어지진 않을 겁니다. 보다 정확히 결론을 내리자면 '아직까지는 성능의 이점이 전혀 없다'고 하는 쪽이 맞겠죠. 언젠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적화를 마칠테고, 윈도우 11의 자랑거리인 새 기능들도 쓸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문제는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거니와 그것 말고도 윈도우 11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는 겁니다. 최소한 성능 하락이 없고 버그가 발생하지 앖으며 윈도우 10만큼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지금은 모두 윈도우 10보다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마이크소프트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면 모를까 굳이 무료 베타 테스트를 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윈도우 11을 쓰지 못해 죽을 것 같다면 윈도우 11을 쓰세요. 또 강한 모험심과 끓어오르는 탐구정신을 이기지 못하겠다면 쓰세요.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윈도우 11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윈도우 10을 계속 쓰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6개월, 아니면 1년 정도 두고 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어차피 무료 업데이트도 되는데 처음부터 안정적인 윈도우 10을 마다하고 윈도우 11로 직행하는 모험은 피하고요. 현재 나와있는 CPU 중 게임 성능이 가장 좋은 건 라이젠 5000이지만, CPU 제조사를 불문하고 게임 성능을 가장 잘 뽑아내는 운영체제는 아직까지는 윈도우 10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