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컴퓨텍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으리으리한 시스템이나 신기한 화면을 보여주는 VR이 아니라, 전시장 어딜 가던 볼 수 있었던 기계식 키보드였습니다. 전통적인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의 명가인 체리는 물론이고 중국의 여러 회사들이 호환 스위치를 내놓으면서 보다 많은 곳에서 저렴한 기계식 키보드가 나올 수 있게 됐거든요. 덕분에 기계식 키보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건 좋은 일이나, 특별히 개성이랄 게 없는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난립하고 품질이 의심되는 저가형 제품에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허나 그런 제품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키보드도 있습니다. 바로 VARMILO입니다. 저렴한 호환 스위치가 아닌 체리 정품 스위치를 사용하고, 독특한 색상과 다양한 디자인, 우수한 품질로 기계식 키보드 매니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는데요. 한국 시장에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아 구하기가 다소 어려웠지만, 브라보텍에서 VA87M과 VA68M을 시작으로 VARMILO의 기계식 키보드를 스위치별로 들여오고, 거기에 키캡과 커스텀 서비스까지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제는 VARMILO의 키보드를 쓰기가 아주 쉬워졌습니다.
브라보텍이 유통하는 VARMILO 기계식 키보드는 제품 모델과 키 스위치의 종류, 키캡의 색상에 따라 정말 많은 종류가 있으나, 여기에선 87키 모델인 VA87M의 스카이 핑크 색상에 청축 스위치를 조합한 모델을 가지고 VARMILO 기계식 키보드가 어떤 물건인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품명 | VARMILO VA87M 스카이 핑크 PBT 염료승화 영문 BRAVOTEC (청축) |
키 배열 | 87키 (표준 104키에서 숫자 키패드를 제거) |
키 스위치 | 체리 MX 청축 (녹축, 갈축, 적축, 흑축 모델이 따로 있음) |
키캡 재질 | 염료 승화 인쇄한 PBT 키캡 (키캡 두께 1.3mm) |
스테빌라이저 | 체리식 |
키 높이 | 스텝스컬쳐 2 |
LED | 4단계 밝기 조절이 가능한 화이트 LED |
LED 효과 | 소등, 점등(밝기 조절), 브레싱(속도 조절) |
N 키 롤오버 | 무한 입력 (설정 필요 없음) |
반응 속도 | 125Hz |
케이스 재질 | ABS (스카이 핑크 컬러. 다크 믹스, 화이트 모델이 따로 있음) |
인터페이스 | 미니 USB (PS/2로 변환 불가) |
케이블 길이 | 150cm |
크기 |
356x134x12~21mm |
무게 | 0.95kg |
가격 | 171,800원 (2016년 11월 15일 기준 최저가) |
포장
새하얀 박스입니다. 버밀리오의 로고 외에 다른 건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네요.
박스를 열면 포장재 아래에 키보드가 있습니다.
키보드는 비닐로 포장했고, 위쪽엔 구성품이 들어 있습니다.
구성품은 설명서, 키캡 리무버, 미니 USB 케이블, 포인트 키캡 1개입니다.
키보드 본체는 비닐 포장 외에도 배송 중에 키가 눌리지 않도록 플라스틱 커버를 씌웠습니다.
외형
솔직히 말해서, 네추럴이나 커브드 키보드가 아닌 일반적인 키보드의 모양은 다들 거기서 거기입니다. 네모 반듯한 형태에 키가 가지런히 놓여 있지요. 어찌보면 VARMILO VA87M도 그런 특별할 거 없는, 어찌보면 뻔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실물을 마주하면 그 생각은 달라질 겁니다. 테두리가 없는 비키 스타일의 몸체에 염료승화 키캡 특유의 깔끔한 색상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반적인 104/106키 레이아웃에서 숫자 키패드가 빠진 87키 배열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키보드의 크기는 356x134x12~21mm로 꽤나 작은 편이나, 키 자체의 크기는 일반적인 키보드와 같습니다. 덕분에 키보드가 차지하는 공간은 줄었지만 타이핑은 불편하지 않지요.
높은 온도에서 염료를 압착해서 색을 입히는 염료승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오래 사용해도 각인이나 색이 바래거나 벗겨지지 않으며, 키 표면에 각인이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색상은 사진 촬영에 사용한 스카이 핑크 컬러 외에도 다크 믹스와 화이트가 있어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다만 한글 각인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실 분이 있을 것 같네요.
키 수는 87개지만 사용할 수 있는 키의 수는 그 이상입니다. Fn 키와 특수키를 조합해 다양한 멀티미디어 컨트롤 기능을 쓸 수 있으며, Caps Lock와 Ctrl의 전환, Fn과 윈도우 키의 잠금이 가능하거든요. 덕분에 동영상이나 음악 재생 시 편리하고, 게임에서 특수 키의 오타도 줄어듭니다.
키보드 주변에 키를 감싼 바디가 없어, 키 안쪽과 스위치 베이스가 그대로 노출되는 키보드를 비키 스타일이라 부릅니다.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는 디자인적인 장점과 함께, 키보드를 들어서 툭툭 털기만 하면 안의 먼지가 그대로 빠진다는 실용성까지 겸비한 디자인이지요.
전통적인 키보드는 키의 높이가 전부 같습니다. 직관적일지언정 딱히 편한 구성은 아니지요. VARMILO VA87M는 가운데 줄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며 위아래 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계단 형태의 스텝스컬쳐 2 디자인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가운데 줄에서 멀리 있는 키를 누르기 위해 움직이는 거리가 줄어들어 보다 편하게 타이핑을 할 수 있습니다.
키보드 바닥의 높이 조절 받침대를 펴서 키보드 상단 높이를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서 높이를 조절해 쓰면 되겠지요.
바닥입니다. 중앙에는 키보드 모델명과 시리얼이 부착된 스티커가 있고, 두개의 높이 조절 받침대와 모서리엔 패드를 부착해 키보드가 잘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또 바닥 표면에 상처가 나는 것도 막아주지요.
높이 조절 받침대를 펴면 이렇습니다. 미끄럼 방지 패드의 면적이 넓어 접지 효과가 좋습니다.
바닥 정 가운데엔 미니 USB 타입의 포트를 연결합니다. 케이블은 키보드 중앙, 왼쪽, 오른족으로 빼낼 수 있어, 키보드를 본체의 어느 쪽에 놓건 불편함 없이 사용 가능합니다. 또 키보드 케이스가 케이블을 한번 잡아서 고정하는 역할까지 하기에 케이블이 쉽게 빠지지도 않습니다
내부
키보드에 번들된 키캡 리무버를 사용하면 키캡을 쉽게 떼어낼 수 있습니다. 리무버를 키캡에 끼우고 바깥쪽으로 당기면 끝이거든요. 물론 손으로도 떼어내는 건 가능하지만 한두개면 모를까 키 전체를 그렇게 떼어내긴 힘들고, 키가 모여 있는 경우엔 손가락으로 잡기도 불편합니다. 또 손이나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키캡을 분리하면 키나 스위치가 파손되거나 표면에 상처가 날 수도 있습니다. 키캡 리무버가 없다면 모를까 주는 걸 쓰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요.
기계식 키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스위치를 썼냐는 것입니다. 요새는 값싸고 쓸 만한 스위치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 스위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디까지나 '체리 호환'일 뿐. 기계식 스위치는 체리냐 체리가 아니냐로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VARMILO VA87M는 체리 로고가 선명한 스위치를 사용했지요.
VARMILO VA87M의 체리 스위치는 체리 청축, 녹축, 갈축, 적측, 흑축으로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다른 회사의 기계식 키보드에서 접하기 힘든 스위치가 있다는 점도 VARMILO VA87M의 매력 중 하나지요. 여기에선 기계식 키보드의 대표적인 스위치인 청축을 쓴 모델로 테스트했는데, 청측 특유의 선명하게 들려오는 찰칵 소리와 키가 걸리는 느낌은 이게 바로 기계식 키보드임을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스페이스 바나 엔터처럼 크기가 큰 키는 고정 방식도 다릅니다. 어떤 부위를 눌러도 한결같은 느낌으로 작동하도록 일종의 고정 장치인 스테빌라이저를 넣게 되는데요. VARMILO VA87M는 체리식 스테빌라이저를 사용해 고정용 철사를 키캡에 직접 끼우지 않습니다. 덕분에 키캡을 끼우고 빼기가 매우 쉬워, 취향에 따라 키캡을 바꿔가며 사용하는 분이나 청소를 위해 키캡을 뺄 때 매우 편합니다.
스위치 바로 아래엔 화이트 LED를 넣어 조명 효과를 냅니다. 스페이스 바처럼 긴 키는 LED도 3개가 들어가 고른 조명을 보여줍니다.
키캡의 높이는 줄마다 다릅니다. ESC나 펑션키가 위치한 첫번째 줄의 경우 높은 곳이 10mm이나 가운데데 있는 키는 8mm로 높이가 낮습니다.
VARMILO VA87M의 키캡은 PBT 재질로 만들었습니다. PBT 재질의 키캡은 표면의 입자가 느껴져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고, 마모에 강해 오랬동안 사용해도 키캡 표면이 번들거리지 않습니다. 단점은 비싸다는 거지요. 잘 만든 PBT 키캡은 그거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기계식 키보드 한대 가격이 나옵니다. 물론 번들거리고 쉽게 미끄러지는 키캡이 딱 질색인 분이라면 PBT 키캡에 투자할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입니다.
키캡의 두께는 1.3mm입니다. 키캡의 재질을 따지면 됐지 두께까지 볼 필요가 있냐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키캡의 두께는 무게로 이어지며, 키캡의 무게는 키를 누르는 힘과 소리에 직결됩니다. 키가 두꺼우면 무게가 늘어나 누르는 데 힘이 더 많이 들어가고 키가 얇으면 소음이 커지지요. VARMILO VA87M는 키의 재질과 디자인, 최적의 사용 경험을 고려해 키의 두께를 1.3mm로 설계했다고 하네요.
키보드 뒷면과 키캡 사이의 나사를 풀어내면 케이스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키보드 바닥의 미니 USB 연결 커넥터는 연장 케이블로 키보드 기판과 연결되네요. 사진 아래쪽엔 VARMILO 87키 용으로 설계된 기판임을 보여주는 각인과, 스페이스 바 아래에 숨겨진 긴 스테빌라이저 철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판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VARMILO VA87M은 기본적인 LED 조명과 멀티미디어 기능만 제공하며, 매크로나 RGB 조명 전환 효과는 없기에 고성능 MCU나 복잡한 회로 설계를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키 수가 87개니 무게도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키 스위치와 기판 사이에 두꺼운 금속 패널을 넣었거든요. 무게가 1kg 가까이 나가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 패널은 키보드의 무게를 늘려 타이핑 시 키보드가 잘 움직이지 않도록 무게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스위치의 충격이 바로 기판에 전달되지 않도록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보강 패널이 없다면 장기간 키보드를 사용했을 경우 누적된 충격 때문에 기판이 휘거나 접촉 불량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기계식 키보드는 '자칭' 게이밍 키보드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보강판을 넣지 않아 몇달 주기로 꾸준하게 고장이 나는걸로 유명했지요.
테스트
VARMILO VA87M은 설치에 별다른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멀티미디어 컨트롤과 LED 조명 변경, 키 전환과 키 잠금 기능 역시 USB 포트에 연결하고 윈도우 기본 드라이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게이밍 키보드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N키 롤오버 무한 입력에도 따로 설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화이트 LED는 4단계로 밝기를 조절 가능합니다. LED 밝기가 은은하게 바뀌는 브레싱 기능은 속도를 지정할 수 있고, LED 조명을 아예 켜거나 끈 상태로 고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조명이 가장 약할 때의 밝기는 이 정도.
밝을때는 여기까지 올라갑니다. LED가 키 아래쪽에 있으니 이 각도에서 LED의 조명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지요.
빛이 전혀 없는 어두운 곳에선 이렇습니다. 조명 효과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네요.
조명과 소음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입니다. 청축 특유의 딸깍거리는 소리 경쾌한 느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음은 키보드 바로 옆에서 측정했을 때 67.8dBA가 나오니, 소음에 민감한 환경이라면 청축 말고 다른 스위치를 고르면 되겠지요.
VARMILO VA87M는 고급형 기계식 키보드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제품입니다. 믿을 수 있는 체리 MX 스위치를 사용하고, 마모에 강하며 잘 미끄러지지 않는 PBT 키캡, 염료승화 방식으로 물들인 독특한 색상과 돋보이는 디자인, 그리고 과하지 않은 LED 조명까지. 그게 그거같은 제품이 범람하는 기계식 키보드 시장에서 단연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는 물건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글 각인의 부재, 그리고 체리 MX 스위치에 몸값 높은 PBT 키캡을 조합했으니 가격이 싸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가격에 걸맞는 품질을 지녔음은 분명하니, 기존의 기계식 키보드에 만족하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되겠습니다. 또 청축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키 스위치와 여러가지 색상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커스텀 서비스까지 준비 중이라 하니 나만의 기계식 키보드를 간단하게 갖추길 원하는 분들에겐 이만한 제품도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