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은 다섯 손가락 중 가장 이질적입니다. 손가락의 길이와 두께, 겉으로 드러난 관절의 갯수와 그 움직이는 방향이 다른 네개와는 편이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이 엄지손가락이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의 삶도 많이 다릅니다. 어느 쪽의 삶이 더 낫다고 감히 아는체는 삼가겠으나, 이 엄지손가락이 있어 많은 일들이 가능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엄지손가락이 있기에 무언가를 잡고 사용하는 행위가 발전하고, 거기에 알맞는 도구와 물건도 개량되었습니다. 드라이버, 칼, 프라이펜, 연필, 하나하나 열거하기 참 힘들지만 그 목록의 끝에 마우스를 넣어도 되겠지요.
그리고 커세어를 비롯해 적지 않은 수의 마우스 회사들은 엄지손가락을 아주 편애함과 동시에 지극히 혐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슨 근거로 말을 그렇게 하냐고요? 엄지손가락 외에 다른 손가락으론 누르지도 못할 부위에 특수 기능 버튼을 잔뜩 몰아넣은 커세어 게이밍 시미터 프로 RGB(CORSAIR GAMING SCIMITAR PRO RGB) 마우스를 보시죠. 특수 기능의 실행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할 적임자가 엄지손가락밖에 없다고 인식하는 편애이거나, 엄지손가락이 여러 버튼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과로사하길 바라는 혐오에서 비롯된 결정처럼 보이지 않나요?
혹은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에서 나온 결과일 수도 있지요. 검지, 중지, 약지는 각각 왼쪽, 휠, 오른쪽 버튼이라는 마우스의 핵심 기능을 맡으니 다른 버튼을 주면 헷갈릴테고, 힘을 주기 어려운 새끼손가락에 버튼을 할당하면 오히려 쓰기 불편할수도 있습니다. 나름 튼튼하고 큼직해 마우스를 잡으면서도 버튼을 누를만한 여유가 있으며, 다른 손가락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따로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에 더 많은 버튼을 할당하는 건, 차별이나 역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잘 활용하려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도라고 봐야 할 겁니다. 버튼은 많지만 그걸 전부 동시에 누르는 것도 아닌데요.
이렇게 생각하면 커세어 시미터 프로 RGB의 버튼 디자인이 겉보기엔 이상해 멀리 피하고 싶게 생겼을지언정, 그 배치는 나름대로 이유와 논리를 갖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제품 출시 소식만 가지고 공식 이미지와 스펙 테이블만으로 리뷰를 썼다고 주장하는 수준 미달의 블로그가 아닌 이상, 실제 사용에서도 이론만큼이나 잘 작동할지는 직접 써봐야 알 일입니다. 그래서 '히익 저렇게 버튼이 한곳에 잔뜩 몰려있는 흉칙한 걸 어떻게 써!'하고 겁을 잔뜩 먹어 6개월 동안 숙성시켜놨던 마우스를 꺼내서 한달 동안 이리저리 굴려보다 이제야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품명 | CORSAIR GAMING SCIMITAR PRO RGB |
디자인 | 오른손잡이 |
버튼 수 | 17개 |
연결 | USB 유선 |
센서 | PMW3367 |
해상도 | 최고 16000DPI |
가속도 | 30G |
폴링 레이트 | 1000Hz |
LED | 1680만 컬러 RGB, 4구역 |
크기 | 119.4x77x42.4mm |
무게 | 147g |
소프트웨어 | 커세어 유틸리티 엔진 |
케이블 길이 | 1.8m |
기타 | 측면 버튼 위치 조절 |
A/S | 2년 |
가격 |
마우스를 막 받았던 2018년 4월 다나와 최저가 99,000원 글을 올리는 2018년 11월 중순의 다나와 최저가도 99,000원 |
의외로 쓸만한 하드웨어
처음 봤을 땐 괜찮았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단점과 결함이 튀어 나오는 제품이 있고, 첫 인상은 영 못마땅했으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응해 보니 의외로 쓸만한 물건이 있습니다. CORSAIR GAMING SCIMITAR PRO RGB를 총 2주일 쯤 되는 여행과 출장에서 써 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점을 찾기엔 부족하지만 마우스의 형태와 디자인에 적응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새 모바일 게임을 몇개 받아보면 '아 재미없어~'하며 15분만에 지워버리는데, 이 마우스처럼 2주 정도 진득하게 붙잡고 있었다면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마우스를 잡아봅시다. 느낌이 괜찮습니다. 디자인이 예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못생겼지만 잡긴 편합니다. 못생긴 고양이의 털이 푹신한 것과 비슷한 맥락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왼손 눈치 볼 필요 없는 오른손 전용 마우스니 나름 인체공학 디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대놓고 인체공학 디자인은 또 아닙니다. 그렇게 만드려면 메인 버튼을 좀 더 오목하게 팠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신 새끼 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을 올려두는 홈이 꽤나 편안합니다. 겉으로 보면 영 정떨어지게 생겼으나 그 위에 올려둔 손가락은 편안하다 말합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은 마음에 듭니다.
버튼의 느낌도 좋습니다. 메인 버튼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죠. 여기에서 지적이 나오면 그건 마우스로서 실격입니다. 문제의 측면 버튼은 물컹물컹 흐물거리지만 그래도 누르는 느낌은 괜찮습니다. 스틸시리즈 라이벌 마우스의 보조버튼처럼 딱딱해서 누를 때 느낌도 별로고 소리가 시끄러운 것보단 이게 낫습니다. 측면에 달린 12개의 버튼은 의외로 헷갈리지 않습니다. 우선 사용자의 손 크기에 맞춰 측면 버튼의 위치를 바꿀 수 있고, 버튼 표면의 촉감을 줄마다 달리 하여 구분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처음 몇번은 헷갈릴지언정 버튼 배치에 나의 규칙이 있다면 구분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끔 어 이게 뭐더라 하고 버퍼링이 걸릴 때도 있으나 예외로 다뤄도 될 정도로 드뭅니다.
LED도 예쁩니다. 컴퓨터 사용 시간의 상당수가 마우스를 손으로 덮는 시간일텐데 쓰잘데기없이 LED는 왜 넣나 싶었지만,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올 때 빛나는 마우스를 보노라면 LED의 뽕맛이 이거구나 싶습니다. 측면 버튼에 들어오는 LED도 좋지만 그 앞의 조명은 환상적입니다. 시동 걸린 슈퍼카의 설정샷이 떠오르네요. 휠옆의 조명도 멋있고 케이블 옆의 조명도 예쁘긴 하나 이건 눈에 잘 안 들어오네요. 등판의 조명은 손등에 구멍이라도 뚫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들지만, 여기에 쓰잘데기없이 조명을 넣는 건 다른 회사도 다 마찬가지니 그려려니 하고 넘어갑시다.
박스 전면. 커세어 제품군의 박스 디자인은 다들 비슷하군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패밀리룩을 인정해 줍시다.
박스 뒷면. 마우스 말고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권하면 어울릴 것 같은 아저씨 사진이 있는데 이것도 다 편견이겠지요. 바로 그 위에 '초고속 1MS 래그 없는 게임플레이'라는 설명에서 조선족의 샹차이 내음을 느낀다면 역시 편견일 겁니다.
박스를 열면 마우스 본체가 보이고, 안쪽 커버에는 이 마우스의 특징인 12개의 측면 버튼을 홍보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개봉이 아닌 해체가 더 잘 어울리는 구조물입니다. 이런 포장을 좋아하는 지구인은 아직 보지 못했네요. 지구인이라고 한정지은 이유는 제 교류의 범위가 아직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서. 뭐라뭐라 되게 말 많고 두껍지만 그 중에서 한국어의 지분은 얼마 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이런 제품의 설명이 다 그렇듯 종이 하나에 만국어를 다 모아놨습니다. UN 회장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본 저장된 프로파일입니다. 마우스 공통인 뒤로가기 앞으로가기나 잘 넣어두지, 설명서를 보고 더듬더듬 눌러보지 않으면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도 없는 온갖 괴상한 기능은 왜 넣었을까요. 아래 소프트웨어 부분 때문에 더 마음에 안드네요.
마우스를 꺼내야 하는데 구조물 안에 단단히 봉인이 됐군요. 이거 포장은 어떻게 할까 궁금해집니다.
이번에도 박스를 해체했습니다. 마우스를 적당히 쓰다가 잘 포장해서 중고로 되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저는 이 사용기까지만 쓰고 박스는 버릴거라서 상관 없습니다만.
마우스가 나왔습니다. 이제 뭐가 있는지 부위별로 돌려가며 봅시다.
CORSAIR GAMING SCIMITAR PRO RGB입니다. 측면에 3x4=12개의 버튼을 붙여둔 것만 제외하면 그냥 흔한 마우스라고 해도 될 겁니다. 그리고 이게 이 마우스의 가장 큰 특징이지요. 휠 버튼 뒤쪽에는 2개의 버튼이 더 있는데 이건 DPI나 프로파일 전환용으로들 많이 쓰다보니, 다른 기능을 할당하긴 어렵죠.
엄지손가락이 12개의 버튼 위에서 바쁘게 오가면 제 자리를 찾도록 만들었습니다. 첫번째 줄과 세번째 줄은 부드럽고, 두번째와 네번째는 다소 거친 느낌이 납니다. 일단 적응에 성공한다면 버틋을 잘못 누를 일은 의의로 없습니다.
여기에 버튼이라도 넣어줬음 좋으려만 그런 건 없고, 대신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그립은 확실하게 넣어줬습니다. 전체적인 생김새와 그립 디자인이 어우러져 참 못생겼다는 인상을 넉넉하게 주지만, 엄지손가락이 측면 버튼 누르느라 바쁘니 오른쪽 그립은 확실하게 잡아줄 필요는 있습니다.
뒷면입니다. 오른쪽을 깨물어 먹으려다가 NG 내가 왼쪽을 깨문 듯한 애플 사과 로고 모양인데, 대게 엄지손가락이 새끼손가락보다 더 크고 굵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디자인입니다. 등짝의 커세어 로고는 저같은 사람에겐 별 감흥을 주지 못하네요. 로고 보고 커간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브랜드 애착은 없거든요.
대신 마우스 전면은 충분히 커간지라고 불러줘도 됩니다. 휠을 둘러싼 LED와 휠 왼쪽의 LED 세줄은 '이 녀석들이 나름 있어보이게 뽑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이끌어냅니다. 실사용에는 전혀 보태주는 게 없지만 어쨌건 예뻐 보입니다.
휠은 잘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케이블이 한쪽으로 쏠린 게 불편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애시당초 오른손 잡이 전용 마우스도 피해야 되겠지요. 휠 뒤에는 DPI와 프로파일 변환 버튼이 있고, 커세어 로고가 보입니다. 마우스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가 상판이 두개로 갈라져 있는데, 저 자리에 때나 땀이 차기 참 좋아 보이네요.
바닥입니다. 그 흔한 마우스 모델명조차도 없네요. 서퍼는 네 모서리에 붙였다고 말하기엔 다소 위치가 애매한데, 마우스 줄을 끌고 다니면서 힘을 받는 부위로 옮겨 붙인 듯 합니다. 센서 구멍은 대체로 마우스 중앙에 있습니다.
편조 케이블과 실리콘 포트입니다. 커세어 헤드셋과 재질과 디자인이 똑같습니다. 패밀리 룩 내지는 부품 재활용일텐데, 포트 부분에 마우스 그림이 있으니 다른 커세어 제품과 헷갈릴 가능성이 없긴 개뿔이죠. 일일이 들어서 확인하고 꽂아야 합니다. 케이스에 똑같은 커넥터가 줄줄이 연결된 걸 보고 희열을 느끼는 사람한테나 쓸모있을 디자인입니다.
마우스 포장 안쪽에는 비닐로 넣어둔 공구가 있습니다. 그걸로 측면 버튼의 위치를 고정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위치를 바꾸는 과정은 쉽습니다. 다만 꽉 조여둔 위치를 자주 바꾸긴 귀찮습니다. 어차피 선호하는 위치는 한 곳으로 정해져 있을 테니, 나 혼자만 쓰는 마우스라면 별 지장은 아니겠지요.
마우스가 작진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크지도 않습니다.
손 작은 사람도 사용하기엔 크게 문제가 되진 않다고 보입니다. 이건 개인 차이라 직접 잡아보지 않는 이상 판단이 어렵습니다만.
마우스 크기. 119.4x77mm
카우스 높이. 42.4mm
흔해 빠진 큐센 마우스와 로지텍 G700s와의 크기 비교. 시마터 프로가 옆으로 퍼지긴 했으나 앞뒤 길이는 그렇게 긴 편은 아닙니다.
마우스 높이. 높이는 보통 마우스보다 높지만, 로지텍 G700s보다는 낮습니다.
옆에서. G700s 같은 큰 마우스만 자주 접하다보니 시미터 프로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매번 강조하지만, 마우스처럼 손이 직접 닿는 물건은 한번은 꼭 잡아보고 사야 합니다.
마우스 본체의 무게는 119g.
케이블까지 다 더하면 751g. 별 의미는 없습니다. 저 케이블을 다 짊어지고 쓰진 않으니까요.
RGB LED. 여기까진 평범합니다. 케이블 옆의 세줄 LED가 꽤 괜찮은데 그 부분 사진은 빠졌네요.
측면 버튼의 LED보다도, 그 앞의 빨간 LED가 위치선정이 절묘합니다. 자동차 배기구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입니다.
생각보다 별로인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100점 만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준수하다 말해줄 의사는 충분한데, 소프트웨어는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프로그램 번역이 별로라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물론 번역이 형편 없긴 하죠. 좀 배우신 조선족에게 맞긴 수준입니다. 그냥 봐줄만 하지만 곳곳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이 조선족을 비하하는 걸로 보인다면 좀 배우신 중국인으로 표현을 바꾸죠 뭐. 국내에 나오는 컨텐츠의 번역이나 서비스를 그런데다 밑기는 게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닌데, 설마 그걸 지적했다고 불편하실 분은 없겠지요? 타이완넘버원. 이거야 커세어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외국 회사 제품이 갖는 고질병이죠. 프로그램의 번역을 이런 식으로 해놓고도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국내 유통사가 별로 힘이 없거나 관심이 없나 봅니다.
버튼이 17개나 있지만 5버튼 마우스에도 꼭 들어가는 뒤로/앞으로 가기가 기본 할당된 버튼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할당된 버튼을 못 찾은건가 싶었는데 1번부터 12번까지 다 눌러봐도 없는 거 맞더군요. 프로그램에서 따로 설정해 줘야 합니다. 그래도 제가 요새 베충이같은 애들을 많이 상대하다보니 참을성이 늘어서 여기까지는 이해해줄 수도 있습니다. 실드도 쳐줄 수 있어요. 본격적으로 버튼 많이 쓰는 상황에 맞춰 디자인한 마우스로, 겨우 웹서핑할 생각이나 하다니, 그것도 설정 프로그램 없이 그냥 지나갈 생각을 하다니 실로 불경하구나! 됐지요?
그래서 본론인 소프트웨어인데 설정 자체는 별거 없습니다. 마우스 버튼을 고르고 원하는 기능을 정하면 끝입니다. 그런데 여러 버튼에 설정을 넣다보면 이 과정이 너무 불편합니다. 설정이 끝난 상황에서 다른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면 기능 할당이 거기로 건너갑니다. 할당 작업이 끝났다고 따로 저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확인'도 없고 '적용'도 없단 말이죠. 새로운 버튼을 설정하려면 새 액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한번에 여러 설정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할당된 버튼에서 다시 설정하는 스스로를 찾게 될 겁니다. 그 옛날 수행자들이 득도하기 위해 일부러 고통과 불편함을 찾았다고 하던데, 2018년에 수행을 하고 싶다면 우선 마우스부터 커세어로 바꿔 보세요.
무엇보다 짜증나는 점은 마우스 본체에 프로파일 저장이 되기는 하느냐는 겁니다. 이게 도통 애매하단 말이죠. 메인 시스템에서 나에게 딱 맞춰서 액션을 설정하고 정신 사나운 RGB LED도 더러는 끄고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하얀색으로 바꿨습니다. 이 상태에서 노트북으로 옮기니 분명 메인 시스템에서 바꾼대로 LED 색은 바뀌었는데, 매크로와 액션은 하나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깔아보니 마우스에 하드웨어 프로파일은 분명 들어갔지만 양념 같은 RGB LED 값만 저장됐고 정작 메인 코스인 버튼 설정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내보내기 가져오기가 반쯤 들어가다 말았나 싶어 몇 번을 재시도했는데 여전합니다. 커세어가 커간지인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요. 간지를 내는 LED만 알고 필요한 기능 설정은 몰라서 그런거였어요.
커세어 유틸리티 엔진의 기본 화면.
있지도 않은 다른 커세어 제품들을 데모라는 이름아래 쫙 깔아주는 걸 보면, 커세어 제품들을 일괄 관리하는 통합 소프트웨어라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기획된 듯 하나, 커세어 제품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액션에서 매크로를 설정합니다. 기능을 할당하고 싶은 버튼을 고르고, 원하는 기능은 뭘 쓸 것인지를 아래에서 지정합니다.
이 부분 사진 찍는 걸 깜박했지만 프로그램에는 멋지게 나왔군요. 휠과 그 앞의 LED 효과입니다.
좌클릭이나 우클릭의 기능을 다른 걸로 바꿀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니까 마우스 측면만 나오도록 바꿔두고 설정하세요.
조명 효과. 기본적으로는 요란한 무지개입니다. 다른 RGB LED 제품도 그렇죠.
DPI 설정입니다. DPI 설정과 LED 기능을 모두 갖춘 마우스라면, DPI마다 LED 색상을 따로 설정하는 센스는 있어야죠.
영문 버전에선 performance였겠지만 한글 버전에선 '공연'이 됐습니다. 그래도 이건 양반입니다. '각도 스내핑'이나 '리프트 높이'는 추측하는데 많은 뇌세포가 필요했거든요. 이렇게 할 바엔 그냥 번역을 하지 말던가요.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소개할 때 중국을 들먹였습니다.
기다리기 귀찮아서 때려 치운 표면 교정입니다. 이런 기능도 주는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메인 시스템에서 사용 중인 스틸시리즈 RIVAL 500 https://gigglehd.com/gg/2916024 마우스의 설정입니다. 버튼 배열은 다르지만 가급적 비슷하게 맞춰보고, 그게 안 되면 헷갈리지 않는 선에서 설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LED는 정신 사나운 건 다 꺼버리고, 측면 버튼 앞에만 하얀색으로 설정. 고해상도 모니터에서 웹서핑만 하니까 DPI도 3600 하나면 되네요.
본격적으로 매크로를 설정해 봅시다. 그 전에 시간제 노동자가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요. 스크린샷을 다시 보면서 번역 엉망이라고 했던 부분은 빼버릴까 고민했지만, 시간제 노동자를 보니 역시 넣어야 되겠어요.
미디어 설정. 영화를 많이 본다면 필요한 기능이겠지요. 다만 저한테는 필요 없으니 패스.
키 다시 매핑. 마우스의 기본 기능은 대충 여기서 찾아 할당합니다.
하지만 참신한 기능을 원한다면 키의 기능을 입력 키로 바꿔보세요. 이쯤 되니 제가 원하는 건 거의 다 나오네요.
웹 브라우저의 이미지 저장 같은 특수 기능은 따로 정해진 게 없습니다. 매크로에서 직접 입력 내용을 기록해야 합니다.
매크로 기록 과정은 어려울 건 없습니다. 빨간색 원 버튼은 만국 공통어지요. 일단 되는대로 기록한 후 불필요한 내역을 삭제하면 끝.
단순히 키보드 버튼 몇 개로 끝나는 단축키라면 거창하게 매크로까지 갈 것도 없이 '키 입력'에서 설정이 끝납니다.
액션을 하나 만든 후 G1을 누르고 원하는 기능 할당. 다른 액션을 만들고 G2를 누른 후 원하는 기능 할당. 이게 쌓이다보면 헷갈리니까 액션의 이름 변경. 이렇게 해서 설정을 끝냈습니다.
특정 프로그램에 특정 프로파일을 맞추는 기능도 있습니다. 게임이나 애플리케이션마다 다른 액션을 지정한다면 이 기능이 필요하겠지요. 저는 오직 웹서핑만 하는 사람이니 이건 필요 없고.
지금까지 잡아놨던 설정을 나중에 날리면 몹시 귀찮으니까 파일로 빼 줍시다.
프로파일을 하드웨어로 저장하는 기능도 있긴 한데, 앞서 설명한대로 뭔 짓을 해도 안 되요. LED는 분명 적용이 되는데 추가 버튼에 기능을 할당하기 위해 만들어뒀던 액션은 하나도 적용이 안됐습니다. 커세어는 간지를 중시하는 회사니까 LED만 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본격적인 사용은 2주일 정도 했지만, 처음 설정부터 실제 사용까지는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커세어 유틸리티 엔진의 버전이 바뀌었네요. 메인 시스템에 깔린 구 버전에선 하드웨어로 프로파일을 내보내는 설정을 찾았으나, 노트북에 깔린 새 버전에선 그런 걸 찾지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리뉴얼하면 단지 익숙치 못하다는 이유로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례를 워낙 많이 봐서, 일단 불편해도 좀 적응하고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보는데 이건 그냥 기능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디자인이 왜, 무엇을 위해 바뀌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디자인 팀이 논다고 위에서 쪼기라도 한건지.
정리하면 이 마우스의 많은 버튼을 설정하는 과정은 몹시 귀찮습니다. 그리고 설정이 끝난 후에도 커세어 유틸리티 엔진을 깔아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드웨어를 제대로 활용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로지텍이나 스틸시리즈의 설정 프로그램이 설정할 때만 쓰이는 것과는 몹시 대조적입니다. 시작 프로그램에 등록된 커세어 유틸리티 엔진이 실행되기 전까지 커세어 게이밍 시미터 프로 RGB는 그냥 괴상하게 생긴 마우스일 뿐입니다. 이 마우스를 쓴 이후로 저에겐 한가지 의식이 생겼습니다. 느린 노트북에서 CUE가 실행돼 마우스 LED가 설정한대로 바뀌기 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경건하게 기다리는 것이죠. 컴퓨터에 액티브 X 같은 게 하나 더 늘어난 것도 못마땅한데, 시작할 때 약간의 지연 때문에 더 짜증이 나네요.
새로 바뀐 소프트웨어입니다.
하드웨어 프로필이 세개나 있지만 하나도 정상 작동하는 게 없고,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마다 하드웨어 프로필을 덮어 씌운다고 계속 메세지가 나오고 자동 작업을 하니 너무 성가십니다. 그래서 하드웨러 프로필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어디서 수정하는지도 못 찾겠어서요.
이전 버전이 모든 커세어 디바이스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면, 이번 프로그램은 시스템 모니터링 기능까지 가져오려고 시도했습니다. 뭐 시도 자체는 좋다고 해 주죠. 기본 기능부터 제대로 해야 칭찬을 들을텐데.
인터페이스가 달라졌을 뿐이지 설정 메뉴와 방법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구성도 같아요. 허접한 번역까지도 말이죠. 공연과 리프트 높이, 각도 스내핑 같은 참신한 단어는 여전합니다..
LED 설정 메뉴는 많으나 쓸건 없군요. 이건 개인 취향이니 넘어갑시다.
설정 기능의 위치만 바뀌었지 기존 버전과 똑같습니다.
시스템을 바꿔가며 프로파일 저장/불러오기를 10번 정도 시도했으나 포기하고 다시 설정.
하드웨어 프로파일 부분만 확실하게 손을 대면 기능 자체는 로지텍이나 스틸시리즈와 비슷한 수준인데, 그게 안되네요.
CORSAIR GAMING SCIMITAR PRO RGB
누구나 완벽을 바라지만 그건 바램일 뿐, 현실은 항상 타협이 뒤따릅니다. 제가 마음에 100% 드는 글이나 회원만 남겨둔다면 사이트가 남아 나겠나요. 개인적으론 못마땅해도 정해둔 기준만 지키면 냅둬야죠. 커세어 게이밍 시미터 프로 RGB 마우스도 그렇습니다. 적극 추천하기엔 못마땅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실수로 창 밖에 떨어트렸는데 마침 시끄러운 중국인의 머리가 그 자리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식으로 처분할만한 물건은 또 아닙니다. 뭐 잘못 먹으면 분뇨조절장애는 되도 고작 마우스 하나 때문에 분노조절장애를 불러오는 사태를 막을만한 절제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상식 수준의 인내심을 붙여 충분히 쓸 수 있는 마우스입니다.
커세어가 하드웨어를 만들 줄 아는 회사임은 분명합니다. 써 보니 손 안에 살살 굴러 들어오는 괜찮은 디자인과 멋진 LED가 그걸 증명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미국 개발자가 일하기 싫어서 영어가 대충 통하는데 하청준 걸 다시 끼루끼루스탄이나 낄끼리란드 같은 곳에 거주하는 영세 개발자에게 던진게 아닌가 의심해 봅니다. 그것도 마우스 없이 소프트웨어만요. 그러지 않고서야 마우스의 기능을 설정하기가 이토록 어렵고, 그나마도 제 기능을 쓰지 못하고, 업데이트 후에는 원래 있던 기능마저 사라지는 소프트웨어가 나올 리가 없잖아요. 소프트웨어를 다시 만들면 이 단점이 사라지겠지만, 정말 다시 만들지는 커세어나 알겠지요.
일전에 이 마우스를 캐드 작업용으로 추천하신 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전용 프로그램의 압박을 이겨낸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베충이 같은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극한직업 우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