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에 이런 녀석이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레트로-게임기" 입니다.
왠지 모르게 북미판 패미콤(NES)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이 녀석의 내부엔
무려 360개나 되는 게임이 수록되어있다고 하는데
무릇 이러한 게임기들이 그러하듯 10개 정도의 인지도있는 게임을 제외하면
나머지 350개는 이 분이 플레이해야할 법한 것들로 가득차있는 것이죠.
사실 진짜 문제는 리스트에 있는 게임 제목과 내용물조차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13일의 금요일"이란 무시무시한 제목의 게임을 실행했는데 거기서 "버블보블"이 나올 줄 예측이나 할 수 있냔 말이죠.
그리하여 이 작업의 시작은 '최소한 게임이름은 똑바로 맞춰놓자.'는 심정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녀석을 처음 가동할때만해도
아마 라즈베리파이의 적당한 아종에 게임들을 에뮬레이팅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왠 정체모를 보드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 이대로 무리인가 싶던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으니
왠 출처 모를 microSD 카드 하나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더랍니다.
순간 설마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곧바로 컴퓨터에 연결해보았습니다.
자랑스럽게 적혀있던 360개의 게임 파일들이 좌라락 나타납니다.
이 게임기, ROM을 별다른 플래시 메모리가 아니라 microSD 카드에 저장해놓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NES 확장자를 보아하니 패미콤을 에뮬레이팅하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단순무식한 구조에 이마를 짚어보며, 곧바로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럼, SD 카드를 게임 카트리지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첫 삽을 크게 뜨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말은 거창했지만 구상 자체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내부에있는 microSD 슬롯을 외부 슬롯으로 바꿔보자는 것이었죠.
그리고 microSD는 꼽고 빼내기엔 사이즈가 너무 작으니 이걸 적당한 크기의 SD카드 슬롯으로 바꿔보기로했습니다.
그래서 microSD to SD 연장 케이블 한 점을 구매했습니다.
간단히 3D 모델링을 해서 이 게임기 뒷면에 들어갈 SD카드 슬롯도 하나 제작해주었습니다.
도면을 바탕으로 출력한 결과물입니다.
어딘가 휘리릭 뚝딱 만들어진 것 같아보이지만 중간중간에 치수를 잘못 넣은 걸 수정하느냐고
세번째 리비전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게임기 뒷면에 카드 슬롯이 들어갈 자리도 마련해줍니다.
버니어캘리퍼스로 치수를 재고 니퍼로 잘라낸 후, 편평하게 만들기 위해 오랜만에 줄로 열심히 갈아냈네요.
출력물을 얹어보니 사이즈가 딱 맞습니다.
결과물에 희망이 보이는 순간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립을 시작합니다.
보드에 연장 케이블을 고정하고 SD 카드 슬롯도 글루건으로 단단하게 부착합니다.
연장 케이블이 48cm나 되는지라 남는 공간에 적당히 욱여넣어주었습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으면,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어 완성합니다.
짠!
그렇게 해서 레트로-게임기에 게임 카트리지 슬롯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SD 카드 슬롯이긴 하지만, 카드 안에 게임을 넣으면 게임기가 구동하는 구조이니
게임 카트리지라 불러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ㅎㅎ
그럼 SD카드에 게임을 하나 집어넣고 전원을 켜보도록 합시다.
이렇게 일을 벌리면서까지 플레이할 게임은 과연...!
...는 마성의 BGM 소유자 치타맨2 !
패미콤 전설의 구린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짤막한 TMI로 이 치타맨2는 한글 패치까지 존재합니다.
번역의 질이 훌륭한 왈도체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권해드려봅니다.
여하튼 이렇게 레트로-게임기에 외부 SD 카드 슬롯을 만드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작업에 대한 짧은 평을 남겨보자면,
30년된 게임 해보겠다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일단 깔끔하게 잘 완성했으면 되었지!
그런 마인드로 이 작업을 마무리해보며 ㅎㅎ
이제 제임스 롤프의 뒤를 따라 구린 NES 게임들의 향연에 뛰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