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이크론 2300의 핫딜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구매자들 중 한 사람이죠. 하지만, 제게는 이 구매가 의미가 큽니다. 여태까지 하드 디스크를 써온터라 바로 이 녀석이 제 생애 첫 SSD가 되었거든요.
혹자는 아직도 제가 하드 디스크만 써왔다 하니 "집에 박물관을 차리려는 것이냐?"며 놀리기도 하였습니다만, 몇 년 전 컴을 새로 맞출 때 하드 디스크를 구매한 까닭이 기존 하드 디스크의 내용물 복구였던터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SSD를 경험하고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일단 배송은 위와 같이 왔습니다. 조그마한 택배 상자 안에 에어캡 포장 하나 그리고 그 안에 플라스틱 케이스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옛날에 메모리 살 때 처럼 자르기도 뜯기도 힘든 악명 높은 플라스틱 압축 포장에 담겨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고급스러운 케이스가 나와 감동 받았습니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여는 곳에는 그냥 열리지 않도록 라벨이 하나 붙어있습니다. 언제 패키징을 했는지 날짜가 작성되었으며 주소를 지운다고 다 지워버렸는데 싱가폴에서 제조되었다고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라벨 스티커를 떼어내면 케이스를 열 수 있습니다.
케이스를 열어 보면 저렇게 중앙에 진정한 목적인 SSD가 크기에 딱 맞는 틀에 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테이프로 붙어있는 비닐 포장에는 안경용 드라이버로 조일 수 있는 매우 작은 고정 나사가 1개 들어있습니다.
보아하니 SSD는 말레이시아에서 제조되었고 패키징을 싱가폴에서 한 모양입니다.
이제 저 친구를 꺼내서 끼워주고 나사를 조아주면 끝나는데 막상 그 과정을 촬영해놓는 것을 깜빡해서... 없네요. ㅠㅠ
이제 펌웨어 업데이트가 있을지도 몰라 마이크론 공식 홈페이지를 들러봅니다만, 펌웨어만 별도로 존재하진 않고 저 'Storage Executive Software' 라는 프로그램을 받아야합니다.
설치 중인 파일에서 .jar 파일들이 보이길래 예상은 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자바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처음 실행하면 저렇게 자바 실행에 대해 허용해달라는 방화벽 팝업이 뜹니다.
요즘 오라클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독자적으로 자바 SDK나 런타임을 만드는 곳들이 생겼는데 이 프로그램은 그 중에서 Azul의 Zulu를 사용하네요.
대충 펌웨어 업데이트와 더불어서 SSD의 S.M.A.R.T 정보를 볼 수 있고 스스로 점검해보는 등의 기능들이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 경고 온도가 섭씨 78도, 치명적 온도가 섭씨 81도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열이 높기로 유명한 제품이라는데 아래의 벤치마크를 돌린 직후나 게임 중에도 아직까지 그 정도로 높은 온도는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벤치마크 결과는 대충 이러한데 제가 테스트를 제대로 한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NVMe만 체크해두고서 나머지는 기본값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며칠 SSD를 써보고 난 후 크게 느낀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쓰고보니 마이크론 2300에 대한 소감 보단 SSD 자체에 대한 소감이 되었네요.
1. SSD가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귀엽습니다. 램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더 작아요. 특히 고정용 나사가 매우 작은데 제가 안경을 써서 망정이지 안경용 드라이버가 없었으면 어찌 나사를 조였을까 싶을 정도로 난감했습니다.
2. 생각보다 하드 디스크의 소음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SSD로 바꾸고 나서 소음이 엄청나게 줄었습니다. 하드 노이즈 킬러로 유명한 3RSYS사의 케이스를 쓰는데 J210 해머는 그런게 없었던 걸까요? 그래픽 카드 쿨러 소리만 어찌 할 수 있다면 노트북 수준으로 소음을 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3. 윈도우 설치 속도가 의외로 빨라 당황했습니다. 하드디스크 쓰던 시절에는 그래도 설치부터 초기 설정까지 대충 몇 십 분 정도 여유는 뒀었는데 이제는 그냥 설치 중 퍼센트 숫자 오르는 걸 눈으로 보고 기다려도 괜찮을 정도의 속도가 나옵니다.
4. 이미 윈도우 11까지 올라오면서 부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고 여겼었는데 SSD에서의 부팅 속도는 이 조차도 느리게 느끼게 만들 만큼 빨랐습니다. 비프음 나고 로딩바 이미지가 보인 뒤로는 기다림이란게 있었나 싶을 정도라 순간 빠른 부팅이라도 켜놨나 착각했습니다.
5. 바탕화면과 작업표시줄 등 윈도우의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들의 속도가 빠릿해졌습니다. 그 동안은 버벅임이 존재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6. 무엇보다 속도 체감을 확실히 한 것은 파일 이동과 복사입니다. 전송 속도의 단위가 MB/s에서 GB/s로 달라졌고 그만큼 빨라졌습니다.
7. 여태 게임들을 하면서 새로운 개체를 만날 때 마다 순간적으로 뚝 뚝 끊어졌었는데 이게 프로세서나 그래픽 사양이 부족한 줄 알았습니다만, 알고보니 하드 디스크가 발목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로딩이 매우 빨라졌고 개체들의 로딩은 사실상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없어졌습니다.
8. 물론 그렇다고 기존의 사양으로 못 돌리던 게임이 돌아가는 수준의 기적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9. 여담입니다만, 이제 최소 요구 사양을 맞추었기에 윈도우용 구글 플레이 베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와 게임을 동시에 돌리고 있다가 마우스 조차 꿈쩍 않는 프리징이 일어나면서 블루스크린으로 넘어간 경험이 한 번 있습니다. 블루스크린 자체야 원인은 다양하니 이게 SSD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어쩌다보니 SATA SSD를 건너뛰고 NVMe SSD로 바로 넘어가서 체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젠 진짜 2TB 이상의 대용량 백업 용도만 아니면 가격으로든 성능으로든 하드 디스크를 놓아줄 때가 온게 맞구나라는 걸 실감합니다.
500GB 짜리 하드디스크를 이보다 좀 더 비싼 가격으로 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같은 용량에 소음도 없고 작고 가벼운데 수십 배는 빠르고 더 저렴한 SSD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제품 수명이 몇 년을 버티느냐가 관건이긴 하겠습니다만, 이것도 들리는 얘기들로 보면 사실상 걱정 할 필요가 없는 시기가 온 듯 하니 얼마 안 있어 하드 디스크를 못 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제품은 NVMe 1.3이고 이미 두 배 속도가 나오는 1.4가 나온데다 앞으로 계속 발전할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