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 전인 2019년 7월 7일, 라이젠 3000 시리즈가 출시됐습니다. 1년에 365일씩이나 되는 날짜 중에서 하필이면 왜 7월 7일을 골랐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이겁니다. '니네 7nm 없지?'라고 염장을 지르는데 가장 좋은 날짜가 7월 7일이라서 그 날로 정했다는 것이죠. 물론 7nm가 라이젠 3000 시리즈의 전부는 아닙니다. 제조 공정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강화된 젠 2 아키텍처와 효율적인 칩렛 구조가 더해진 결과, 싱글스레드와 멀티스레드, 작업부터 게임까지 어떤 분야에서건 AMD 라이젠은 비로소 인텔 코어 프로세서를 넘어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2020년 7월 7일에 AMD가 라이젠 3000XT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7월 7일을 또 골랐네요. 그 이유 역시 간단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7nm 공정으로 데스크탑 PC의 CPU를 만드는 곳은 AMD밖에 없거든요. 물론 그 동안 인텔도 놀고 있진 않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데스크탑에 시장에 출시됐어야 할 10nm 공정 프로세서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죠. 대신 지금까지 써왔던 14nm 공정 아키텍처의 여력을 최대한 뽑아내고, 소켓을 새걸로 바꾸고 칩셋도 싹 엎은 10세대 코어 프로세서, 코멧레이크를 출시했습니다.
X570과 B550: PCIe 4.0의 차이
AMD 라이젠 3000XT의 경쟁상대가 바로 이 코멧레이크입니다. 하지만 라이젠 3000XT는 코멧레이크만큼 많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소켓이 AM4에서 변하지 않았고 칩셋 호환성 역시 그대로거든요. 바꿔 말하면 기존의 AM4 소켓 사용자들은 CPU만 바꾸면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소리죠. 뿐만 아니라 올해 말에 출시될 젠 3 아키텍처까지도 500 시리즈 칩셋의 호환성을 보장합니다. 반면 인텔은 8/9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플랫폼이 완전히 갈라져 호환되지 않습니다. 업그레이드에 그만큼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해야 한다는 소리죠. 그 후로도 새로운 소켓을 도입한다는 소문도 있고요.
플랫폼의 차이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인텔은 소켓까지 바꾼 새 칩셋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PCIe 버전은 여전히 PCIe 3.0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PCIe 4.0을 지원하는 제품이 라데온 RX5000 시리즈와 고성능 SSD밖에 없었으나, 올해 3분기에 발표하고 4분기에 출시될 차세대 그래픽카드에서는 PCIe 4.0의 사용이 대폭 늘어나리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NVIDIA의 연산 카드에선 이미 PCIe 4.0을 도입했고요. 또 PCIe 4.0 SSD도 본격적인 보급을 앞두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하이엔드 X570과 메인스트림 B550에서 PCIe 4.0을 모두 지원하는 AMD 플랫폼 쪽이 좀 더 미래지향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이젠 3000XT에서 달라진 점: 7nm 최적화
라이젠 3000XT의 핵심 스펙을 봅시다. 젠 2 아키텍처와 7nm 공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코어 수와 스레드 수, 캐시 구성과 TDP, 지원하는 메모리 스펙까지도 라이젠 3000 시리즈와 같습니다. 대신 CPU 클럭이 올라갔습니다. 라이젠 3000 XT 시리즈는 기존의 라이젠 3000X 시리즈에 비해 부스트 클럭이 100~200MHz 더 높습니다. 제조 공정이 7nm에서 바뀌진 않았지만 1년 동안 7nm 공정을 다루면서 터득한 노하우 덕분에 부스트 클럭을 더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CPU의 평균 클럭 역시 높아졌으며, 하나의 코어에 작업이 집중되는 상황에선 4~5% 정도의 성능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AMD의 설명입니다.
AMD 라이젠 3000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제품은 라이젠 5 3600입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가격대이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갖췄기에, 높은 판매량으로 시장에서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번에 출시되는 라이젠 3000XT 시리즈는 전부 라이젠 5 3600을 넘어서는 상위 모델들로만 구성됐습니다. 더 좋은 제품을 원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제품들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라이젠 9 3900XT, 라이젠 7 3800 XT, 라이젠 5 3600 XT의 3가지 모델이 있는데, 각각 라이젠 9 3900X, 라이젠 7 3800X, 라이젠 5 3600X에서 부스트 클럭을 100MHz, 200MHz, 100MHz 높인 제품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라이젠 마스터와 스토어 MI
라이젠 3000XT 시리즈의 출시와 함께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공개됐습니다. 라이젠 마스터는 기존의 인터페이스가 어드밴스드 뷰로 바뀌고 베이직 뷰가 새로 생겼습니다. 방대한 기능을 제공하는 라이젠 마스터는 라이젠 시스템의 필수 소프트웨어나 다름 없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보여주다보니 초보자들이 쉽게 적응하기가 힘들었는데요. 베이직 뷰에서는 보다 간단하게 정돈된 화면에서 시스템 상태를 보여주고, 단순하게 정리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CPU 오버클럭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능과 정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어드밴스드 뷰를 눌러 기존의 라이젠 마스터 인터페이스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스토어MI도 바뀌었습니다. 스토리지의 조합에서 용량 제한이 사라지고, SSD에 시스템 미러를 캐싱해 속도를 높여주며, 전체적인 인터페이스도 바뀌었습니다. 디자인만 보면 기존의 스토어MI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처럼 보이는군요. 최신 버전의 라이젠 마스터와 스토어MI는 윈도우 10,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 X570 칩셋 메인보드 조합에서 지원합니다. X470, B450, B550, X399, TRX40 등의 다른 칩셋과 CPU의 지원은 3분기 안에 추가될 예정입니다.
테스트 환경: 3가지의 라이젠 3000XT
라이젠 9 3900XT, 라이젠 7 3800XT, 라이젠 5 3600XT의 박스입니다. 이들 프로세서는 프리미엄 모델인 라이젠 3000XT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략하는 시장은 전부 다릅니다. 플래그쉽, 하이엔드, 메인스트림이죠. 그래서 패키지 구성도 전부 다릅니다.
라이젠 9 3900XT의 딱딱한 박스.
라이젠 7 3800XT의 박스는 살짝 허전합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성능을 내기 위해 고성능 쿨러가 필요하기에 번들 쿨러를 주진 않습니다.
라이젠 5 3600XT는 레이스 스파이어 쿨러를 번들로 제공합니다.
왼쪽부터 라이젠 5 3600XT, 라이젠 7 3800XT, 라이젠 9 3900XT입니다.
라이젠 9 3900XT. 12코어 24스레드, 클럭 3.8~4.7GHz, 70MB 게임 캐시, 105W TDP, 가격 499달러.
라이젠 7 3800XT. 8코어 16스레드, 클럭 3.9~4.7GHz, 36MB 게임 캐시, 105W TDP, 가격 399달러.
라이젠 5 3600XT. 6코어 12스레드, 클럭 3.8~4.5GHz, 35MB 게임 캐시, 95W TDP, 가격 249달러.
비교용으로 쓴 라이젠 7 3700X입니다. 8코어 16스레드, 클럭 3.6~4.4GHz, 36MB 게임 캐시, 65W TDP, 최저가 342,800원. 체급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8코어 16스레드 구성인 라이젠 7 3800XT와 비교할만한 CPU라 판단해 테스트에 넣었습니다.
이것도 비교용으로 쓴 라이젠 5 3600입니다. 6코어 12스레드, 클럭 3.6~4.2GHz, 35MB 게임 캐시, 65W TDP, 최저가 197,100원. 라이젠 5 3600XT와 비교하면 되겠지요.
AMD 플랫폼의 테스트 환경은 MSI MEG X570 갓라이크 메인보드와 https://gigglehd.com/gg/5201838 DDR4-3200 16GB 듀얼채널 메모리를 사용했습니다.
그래픽카드는 MSI 지포스 RTX 2070 SUPER 벤투스 GP OC D6 8GB https://gigglehd.com/gg/7532777 모델을 사용했습니다.
인텔에선 코멧레이크,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코어 i5-10400을 사용했습니다. 6코어 12스레드, 클럭 2.9~4.3GHz, 12MB L3 캐시, 65W TDP, 최저가 204,200원입니다. 6코어 12스레드라는 스펙을 보나, 2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보나 라이젠 5 3600과 비교되야 할 CPU인데요.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기본기가 어떤지 알아보는 참고용으로 쓸 수 있어 테스트에 넣었습니다.
인텔 쪽 메인보드는 MSI MPG Z490 게이밍 카본 WiFi https://gigglehd.com/gg/7201821 메모리는 CPU 상한선인 DDR4-2666 16GB 듀얼채널로 설정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클럭 이상의 차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라이젠 3000XT를 처음 봤을 때 가진 생각은 딱 이랬습니다. '기본 클럭도 아니고 부스트 클럭이 100MHz, 200MHz 올랐다고 뭐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 그런데 차이가 납니다. 그것도 100MHz, 200MHz 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 난다고 해야 할 정도로 차이가 꽤 많이 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라이젠 3000XT의 핵심은 7nm 공정의 최적화입니다. 부스트 클럭의 상승이 아닙니다. 그건 7nm 공정 최적화에 따른 결과일 뿐이죠. 라이젠 3000XT의 아키텍처는 라이젠 3000 시리즈와 같지만 공정 최적화를 더하면서 부스트 클럭은 물론이고 평균 클럭까지 함께 상승했습니다.
AMD의 설명에 따르면 싱글 스레드나, 스레드 수가 많지 않은 작업에서는 5% 정도의 성능 향상 효과가 있고요. 여러 스레드가 적절히 조합된 환경에선 최고 10%의 성능 상승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모든 코어를 빡빡하게 굴리는 상황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이 때는 부스트 클럭이 발휘될 공간이 줄어드니까요. AMD의 이같은 설명은 아래의 벤치마크를 통해서도 증명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부스트 클럭이 최고 200MHz 오르고, 이름 뒤에 XT를 붙인 게 전부인 것 같지만,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세대 변경에 버금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6개나 되는 CPU의 테스트 결과를 기존 양식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어, 흔한 그래프로 바꿨더니 양이 엄청나게 불어났네요. 테스트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라이젠 5 3600보다 라이젠 5 3600XT의 성능이 더 높습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말이죠. 멀티 코어가 중요한 상황에선 라이젠 7 3700X가 그래도 라이젠 5 3600XT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싱글 스레드 위주거나 스레드를 꽉 채우지 않는 작업이라면 라이젠 5 3600XT가 라이젠 7 3700X보다 더 성능이 잘 나오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것만 봐도 라이젠 3000XT가 기존 라이젠 3000 시리즈를 넘어서는 프리미엄 CPU임을 알 수 있습니다.
AMD 라이젠 3000XT 시리즈
기왕 산다면 역시 최신이 최고, 이 한마디로 정리가 되는 제품입니다. AMD 라이젠 3000XT 시리즈는 7nm 공정 최적화를 통해 부스트 클럭과 평균 클럭을 높여, 대다수의 상황에서 체감하는 성능을 끌어 올렸습니다. 라이젠 3000 시리즈보다 더 높은 성능을 원한다면 라이젠 3000XT 시리즈에 투자할 가치는 분명 있습니다. AM4 소켓의 호환성과 PCIe 4.0 지원을 비롯한 미래지향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변함 없으니 업그레이드의 부담도 한결 덜합니다.
AMD는 라이젠 3 시리즈을 출시해 보급형 시장을 평정하고, PCIe 4.0을 지원하는 저렴한 메인보드 칩셋인 B550를 통해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또 다양한 게임 번들 제공과 스토어MI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로 AMD 플랫폼의 부가 가치를 늘렸고요. 이번에는 라이젠 3000XT로 더 빠른 CPU를 제공하며 올해 말에는 새로운 아키텍처인 젠3의 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정말 많은 일을 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기존양식이 더 보기 좋은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