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실패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말이죠. 표준을 무시하고 https://gigglehd.com/gg/5326098 표준이 없는 https://gigglehd.com/gg/5093611 중국산 케이스를 사서 테스트베드로 써보려던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 실패를 토대로 왜 테스트 베드 케이스들이 메인보드를 세우지 않고 눕히는지, 그래픽카드 지지대를 단순한 기둥으로 대체하는지, 왜 남들 고르는 선택이 무난하고 위험 부담이 적다는 것인지를 깨달았지요. 이를 교훈삼아 처음부터 위 조건에 맞춰 테스트 베드로 만들어진 케이스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꽤나 괜찮아 보였죠. 실패한 시도가 늘 그렇듯이. 이번엔 뭘 놓쳤나 반성을 거듭한 결과, 제 실패는 '테스트 베드 케이스의 요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라, 중국산을 너무 믿었다는데 있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테스트 베드를 찾는 방랑기는 이제 끝내기로 결론내렸고요.
이 테스트 베드 케이스는 Streacom의 BC1과 매우 닮았습니다. https://streacom.com/products/bc1-open-benchtable/ 그러니까 샀지요. 물론 원본의 수많은 장점들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접어서 보관할 수 있다던가, 여러 홈이 파져있다던가, 디테일이 좋다던가 등등 말이죠. 제가 아무리 날로 먹는 걸 좋아한다지만 로또 1등이나 바랄 뿐이지, 중국산 싸구려 복제품에 그런 것까지 기대할 만큼 파렴치하진 않습니다. 그냥 테스트 베드로서 제 구실이나 하길 바랬죠. 시스템을 조립해놓고 보니 대체로 쓸 만한 수준임엔 분명하나, 중국 제품이 늘 그렇듯 '표기되지 않은 부분'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뒷통수를 후려갈기네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고, 조금만 개선하면 앞으로 나아지겠지만 이제는 중국산에 대한 기대를 그만 접을래요.
제품명 | JXK-K1 |
케이스 종류 | 오픈형 |
재질 | 두께 8mm의 알루미늄 패널/메탈 |
전체 크기 | 365x280x120mm (케이스 크기만. 위에 올린 부품은 제외) |
무게 | 2.8kg |
드라이브 베이 |
3.5인치/2.5인치 x4. 설명만. 실제로는 1개 |
확장 슬롯 | 기본 4개, 추가 지지대 7개까지 고정 가능 |
메인보드 폼펙터 | ATX |
파워 폼펙터 | ATX |
파워 길이 | 제한 없음 |
확장 카드 길이 | 제한 없음 |
CPU 쿨러 높이 | 제한 없음(오픈형) |
쿨링팬/라디에이터/먼지 필터 |
360mm 라디에이터 장착 가능. 장착만 가능함. |
버튼/LED 구성 |
전원 버튼, 리셋 버튼, 전원 LED, 하드디스크 LED, USB 3.0 x2 |
참고 링크 | |
가격 |
375위안(2019년 7월 타오바오 기준, 그래픽카드 지지대 4개 세트, 한화 65,000원, 배송료 별도) |
나는 분명 케이스를 샀는데, 도착한 건 마약상이 은밀하게 거래하는 꾸러미처럼 생긴 물체입니다. 테스트 베드 케이스를 분해하면 평평한 부품 몇 개만 남으니까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이렇게 포장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바퀴벌레가 알을 낳았을 것 같은 박스를 잘라서 칭칭 감아 보낼 줄이야. 중국 가내 수공업의 기상이 이토록 웅장합니다.
열어보기 전에 한 장. ATX 메인보드보다 좀 크니까 엉뚱한 물건을 보내진 않았을거라 판단했습니다. 포장이야 어찌됐건, 물건만 제대로 받으면 되죠.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낄낄은 반성해라. 비싼 돈 주고 들어간 식당에서 맛이 참 없으면, 음식을 밥 먹는 데 쓰지 말고 정성스럽게 해체해서 휘젓어두는 데 쓰라고 어떤 요리사가 말해줬었는데, 6만원 짜리 음식이 6천원 짜리 국밥보다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포장 상태보다 더 형편없게 오체분시할 자신이 없네요.
환경 파괴와 자연 오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이 포장한 스티로폼 쪼가리(중국인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티로폼 사용을 줄이자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중국인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제 진심을 믿어 주세요!) 들을 치우는데 힘을 다 쏟고 나니, 뭔 각티슈 박스를 우겨넣은 듯한 종이가 위에 올려졌고, 아래에는 중국에서 미이라를 만든다면 이런 천으로 싸겠구나 하고 의심되는 물체가 남겨졌습니다.
위쪽의 종이 상자를 찢었더니 케이블과 그래픽카드 지지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알았다면 '왜 설명서가 안 보이지?'라는 의문을 품었어야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헤헤헤 새 케이스다 헤헤헤' 이렇게 바보처럼 웃고 있었을 뿐, 관찰하여 문제를 찾고 그 원인을 탐구하는 지적인 활동은 전혀 해볼 상태가 아니었죠.
액세서리들을 다 꺼냈습니다. 수많은 나사와 케이블이 나왔네요. 오른쪽 나사 부분의 배경색이 이상한 건 흰색 배경에 은색 물건이라 하이라이트가 날아가기 쉬워 누끼를 따기가 몹시 귀찮다는 이유로 디자이너가 찬란하게 불만족을 표시했고, 저로서도 돈 받고 쓰는 메인 리뷰도 아니고 재미로 쓰는건데 정성스럽게 포토샵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대충 하자고 지시해서 그렇습니다.
옛날 가루약 포장 종이를 열어보는 심정으로 포장된 천을 열었습니다. 이 천이 보기에만 하얀색일 뿐이지 실제로는 먼지와 이물질이 제법 묻어 있어더군요. 이 케이스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대충 만들어지고 포장됐는지를 이 사진을 보며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야 테스트 베드 케이스처럼 생긴 물건이 나왔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중국이 괜찮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우리들의 좋은 친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원가 절감을 위해 참신한 발상을 해내는 곳 역시 거기란 사실을요.
ATX 메인보드 한장보다 위아래옆으로 조금씩 큰 수준입니다. 바꿔 말하면 ATX보다 더 큰 메인보드는 여기에 올릴 생각을 하지 말아야 정상입니다. E-ATX나, E-ATX라던가, 혹은 E-ATX, 그리고 E-ATX가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갓라이크 https://gigglehd.com/gg/5201838 말고 다른 메인보드를 올릴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갓라이크는 E-ATX입니다.
두께는 1cm 쯤 됩니다. 구멍이 안 뚫려있고 손잡이만 달려 있었다면 방패로 써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지만, 이 생각이 지극히 중2병 스럽다는 건 둘째 치고, 과연 방패로 쓸만한 강성이 확보될런지가 의심스럽군요. 제조국이 제조국이다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이건 누가 봐도 지지대처럼 생겼지요. 지지대의 재질, 두께, 감촉은 전부 메인보드 패널과 같습니다. 표면은 금속 치고는 부드러운 편. 작은 입자가 만져지는데 불쾌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나사 구멍도 다 제자리에 박혔고요. 이렇게 보면 또 괜찮아 보이는 물건입니다.
이제 지지대를 조립해 봅시다. 어느게 위로 가고 어느게 아래로 가야할지 모르겠지만, 구멍이 다 똑같은 위치에 뚫려 있으니 좌/우 구별하지 않는 물건이겠거니 하고 끼워봅니다. 좀 더 까탈스럽게 따져보려 해도 설명서도 없고, 표시도 없는데 뭘 더 할 수가 없네요.
나사를 조립합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집에 드라이버가 없거나 드라이버를 쓸 줄 모르는 건 아니고, 어느 나사를 저기에 꽂아야 하는지 일일이 대봐야 한다는 겁니다. 나사 종류는 여럿인데, 설명서는 없고 표기도 없으니 남는 건 삽질 뿐이죠. 하지만 나사는 양반입니다. 더 귀찮은 일도 있거든요.
지지대를 조립하니 이것만으로도 조립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트레이 위에 메인보드, 아래에는 파워와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하면 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그 과정은 생각만큼 순조롭진 않습니다.
메인보드 지지대로 쓸 육각 기둥을 트레이 위에 고정합니다. 이거 조립하는 데 쓰는 캡은 들어있지 않지만, 펜치로 대충 조이면 되니까 별로 불만은 없습니다. 그리고 꼭 이러다가 기둥 나사가 뭉개져서 나중에 헛돌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홧김에 새 케이스를 또 사고 그러죠.
판매 페이지에 올려둔 사진을 보니 저 구멍으로 전원/리셋 케이블을 넘겨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버튼의 고정 너트를 빼내고 케이블을 쑤셔넣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너트를 다시 끼워주면 고정이 끝납니다. 파워 버튼은 수직을 딱 맞춰야 어여쁘게 보이겠으나, 다행이도 리셋 버튼은 아무런 표식이 없어 조금 덜 귀찮습니다.
버튼 설치 완료...일 리가 없지요. 더 중요하고 더 귀찮은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죠. 그래서 사람은 때때로 자신과 자신이 했던 행적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은 자아 성찰에 쓸 시간이 없죠.
USB 포트를 끼워줍니다. 이 케이스의 장점 중 하나가 USB 포트 제공입니다. 전에 샀던 두 케이스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메인보드에 달린 USB 포트에만 의지하기엔 그 수가 살짝 부족합니다.
나사가 무한히 헛도는 저주에 걸렸습니다. 플라스틱에 대충 구멍을 뚫어뒀으니 나사가 멈추지 않고 돌리는대로 돕니다. 몇 달 뒤에는 USB 포트에 뭐 하나 꽂으려 했더니 아래로 빠졌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하겠으나, 일단은 귀찮으니까 이대로 씁시다.
메인보드를 올렸습니다. E-ATX 폼펙터지만 그런대로 올라는 갑니다. 오른쪽과 위로 좀 삐져 나왔어도 당장 쓰는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이런 형태의 케이스에서 부품 보호까지 기대하면 안되죠.
USB 3.1 핀헤더를 꽂아줍니다. 이 문장을 쓰기 전에 USB 3.0까지 쓰고 멈칫한 후 3.1로 바꿨습니다. 정확히는 타입 A 형태의 USB 3.1 Gen1 핀헤더라고 해야겠군요. 한국에 작명을 업으로 삼은 분들이 참 많은데, USB-IF에게 좀 소개할까봐요. 포트 이름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라고 붙여도 USB 3.1 Gen1 Type A보다는 훨씬 더 직관적일 겁니다.
자. 이제 전원/리셋 버튼 케이블을 꽂을 때가 됐습니다. 게임을 못하면 편부 가정에서 성장한 환경의 어려움이 몹시도 크다는 질타를 받습니다. 짧게 말하면 애미 없다고 하죠. 이 케이블은 그만큼 비극적입니다. 이름이 없고, 극성이 없습니다. 전원 버튼과 LED, 리셋 버튼과 디스크 액세스 LED가 한 묶음인데, 검은색과 빨간색 중 누가 버튼이고 누가 LED인지 안 나와있고, 또 LED 케이블의 어디가 +고 어디가 -인지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 표기도 안 됐고 설명서도 없거든요. 그 비밀의 답을 찾기 위해선 메인보드에 일일이 꽂아봐야 합니다. 혹시나 해서 제품 상세 페이지를 보니 거기에는 평범한 유색/흰색 조합의 케이블을 사용하고, 커넥터에 이름도 써졌네요. 한국이었으면 악플 100개는 뚝딱 달렸을 겁니다.
수냉 라디에이터 지지대입니다. CPU 위쪽에 라디에이터를 장착하는 게 국룰이니 이쪽에 달아줍시다. 눈썰미 좋으신 분들은 '그럼 라디에이터를 겨우 2개의 나사로 지탱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실텐데, 저는 그만큼 눈치가 좋지 못하기에 나중에서야 이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진 찍는걸 빼먹었는데 SSD나 하드디스크도 같은 방식으로 장착합니다. 메인보드 트레이 아래쪽에요.
사진은 8월 15일 광복절에 찍었는데 글은 한 달이 지난 9월 15일에 쓰다보니, 이 사진을 도대체 왜 무슨 의미로 찍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습니다. 빨리 쓰지 지금껏 뭐했냐고요? 그 사이에 쓴 메인 리뷰만 7개니까 일주일에 두개씩 쓴 꼴인데, 다른 일을 아무것도 안 하고 일주일에 두개는 어렵지 않지만, 뉴스도 쓰고 관리도 하고 칼바람 나락에서 총명 든 가렌한테 욕도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근데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은 욕해도 ㅇㅈ 아닌가요?
나중에 제품 정보 페이지를 보니 왜 찍었는지 알았습니다. 검색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위에 써둔 글을 지우기 아까워서 그냥 둡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정말 힘들게 사는 사람이야라고 어필할 기회가 지금밖에 없어서 지우기 싫습니다. 메인보드 트레이 가장자리의 구멍에 수냉 라디에이터를 달아야 하는데, ATX가 아닌 E-ATX 메인보드를 올리다보니 저 구멍이 가려집니다. 그래서 수냉 라디에이터가 갈 자리가 CPU 위쪽밖에 없습니다.
싸다는 이유로 산 수냉 쿨러를 달아봅시다. 이것도 사용기를 쓴다고 사진만 찍고 글이 진도가 안 나가네요. 수냉 라디에이터는 케이스 상단 패널의 아래에 메달리기 마련이니, 쿨링팬이 라디에이터 아래에 자리잡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건 라디에이터 지지대 바깥에 고정해야 하니까 쿨링팬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슨 말이 이렇게 기냐고요? 그럼 짧게 말하겠습니다. 저 쿨링팬을 전부 떼서 반대편에 다시 조립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파워를 조립할 차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마존에 파워 특가가 안 뜨나 전전긍긍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F5를 눌렀겠으나, 하뉴나가 생일 선물로 파워를 주신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지는 않고요. 보시다시피 AC 플러그 가이드가 걸려서 안 들어갑니다.
쿨링팬을 위로 넣었으니까 안 들어가지! 뚫려있는 아래로 팬이 가도록 해야지! 라고 지적하실 분들에게 드리는 사진입니다. 그럼 더 안들어갑니다. 저 F 스위치가 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저를 엿먹이는 걸 보니 Fuc...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시스템에서 쓰던 파워를 끄집어 냈습니다. 이것도 스위치가 살짝 간섭을 일으키고, 자리에 맞는 나사가 2개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립은 됩니다. 왜 제가 샀던 중국 케이스들은 파워에 나사 4개가 온전히 다 들어가는 경우가 없는걸까요? 나사에서도 원가 절약을 하려는 시도인가?
사진 찍는 걸 잊었지만 아래쪽에 SSD도 달았습니다. 차마 저기에 하드디스크를 메달 순 없더군요. 나사 2개로 하드디스크를 고정하기 불안해서가 아니라 느려서요. 요즘 세상에 SSD는 필수가 아니라, 하드디스크는 외장 하드에 넣고 백업용으로만 써야 한다는 몹시 급진적이고 과격한 주장을 이 자리를 빌어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케이스 설명에선 분명 4개까지 드라이브가 달린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어디에 달아야 할지 마땅한 자리도 안 보이고, 나사도 없습니다.
확장 슬롯 옆에 그래픽카드 지지대를 꽂아줍니다. 이 지지대도 불만이 없습니다. 어차피 ATX 폼펙터니 그래픽카드가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뻔히 정해져 있거늘, 봉이 박히는 높낮이를 조절하는 너트나 그래픽카드를 지탱하는 너트 모두 자신만의 위치가 없습니다. 이케아 책상에서 높낮이 조절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맞춰가며 조절해야 합니다. 그나마 메인보드 지지대 위치에 구멍을 뚫어줬으니 이건 참아주렵니다.
이제야 완성입니다. 몹시 없어보이고 지저분하지만 어쨌건 완성입니다.
그래픽카드와 SSD
파워
수냉 라디에이터
백패널
조립이 남았으니 전원을 켜야겠지요. 전원을 켜려면 전원 케이블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냉 라디에이터가 가려버리네요? 제품 정보 페이지에서 왜 수냉 라디에이터를 아래가 아닌 위로 올렸는지를 이제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저 라디에이터를 떼내야 한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사람은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생물입니다. 창고에서 딱 하나 남은 ㄱ자형 AC 플러그를 찾아냈습니다. 역시 안 쓰는 물건도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긴다니까요. 안 쓴다고 버리고 나눔했다가 나중에 아쉬웠던 적이 한두번도 아니고요. 이러다가 저장 강박증에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라디에이터를 떼서 위에다 붙였냐고요? 파워 케이블을 연결한 상태에선 라디에이터를 아래쪽으로 달 수 있어도, 이미 라디에이터가 달린 상태에선 틈 안으로 파워 케이블을 도저히 넣질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파워 케이블 연결하는 김에 라디에이터를 떼서 위에다 붙였습니다. 사진만 봐도 바깥쯕으로 쳐져있는 게 영 불안하네요. 하지만 제조사는 수냉 라디에이터가 달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조금 없군요.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지요. 옛 조상님들부터 수도권 집중화란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탄식은 잠시 접어두고, 우여곡절 끝에 조립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기 위해 썼습니다. 전원도 잘 켜졌고요. 모든 부품들이 잘 작동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끄럽습니다. 은근히 시끄럽습니다. 처음에는 부품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에 귀를 대 봐도, 수냉 쿨러에 귀를 대 봐도 거기서 나는 소리는 아닙니다. 메인보드나 SSD가 시끄러울 일은 없으니 남은 범인은 파워 뿐이죠. 하지만 파워는 원래 잘, 그리고 조용히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범인은 케이스였습니다. 이 케이스의 지지대는 바닥에 그 어떤 것도 붙이지 않고, 금속 다리가 그대로 표면에 닿습니다. 따라서 쿨링팬의 작은 진동이 지면에 전달되며 소음이 증폭되는 부작용이 있지요. 조립 부품 사진을 보니 바닥에 뭐 붙이라고 줬던 것 같기도 한데, 설명서도 안 주거늘 그걸 어떻게 아나요?
맨바닥 위에 케이스를 바로 내려놨을 땐 53.7dBA였는데, 종이 박스를 접어서 깔고 나니 49dBA로 줄었습니다. 이 극적인 변화를 선사해준 케이스가 너무나도 괘씸해 동영상까지 찍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온 해결책.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접착력에 약해서 나중에는 바닥에 떨어져 돌아다니네요. 중국산 케이스를 믿은 게 실수고, 다이소 제품에 뭘 기대한 게 바보죠. 그냥 종이 박스에 테이프라도 감아서 붙여둘까봐요. 멋은 이미 포기했으니까.
이 제품을 쓰는 과정은 괴로웠으나, 이 글을 쓰는 과정은 나름 즐거웠습니다. 의뢰받은 물건이 아니니 그냥 머리 속에서 나오는대로 두드리면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단점과 불편함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지 않았나 살짝 후회도 되지만, 어차피 제조사에서 이 글을 볼 일도 없을텐데 뭔 상관인가요. 설령 봐도 어쩔거에요. 거긴 중국이고 여긴 한국인데.
이 제품을 끝으로 더 이상 테스트 베드 케이스를 사진 않으려고 합니다. 세번에 걸친 중국산 테스트 베드 케이스를 통해, 모든 제품은 투자한 만큼 가치를 지닌다는 교훈을 얻었거든요.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원한다면 더 비싼 돈을 투자해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못하니까 여기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끝으로, 글 작성에 필요한 돈을 도움을 주신 AMD 코리아, MSI 코리아, 3RSYS, 하뉴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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