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두달 반쯤 거슬러 4월 중순. 친구의 직장(=강남소방서)으로 어른 고양이가 태어난지 일주일쯤으로 추정되는 새끼고양이 여섯마리를 차례차례 물어다 놓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이틀 후 퇴근하는 길에 여섯 쌍둥이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기나긴 육아의 시작이었습니다.
꼬질꼬질하고 아직 물로 씻길 수도 없는 새끼들... 인간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는 (흔히 '자아가 생긴다' 고 표현하더군요) 시기조차 아직 되지 않은 아가 떄는 움직이는 큰 동물을 무조건 졸졸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어미를 쫓아다녀야만 생존할 수 있는 본능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겠죠. 저를 보자마자 꼬물꼬물 달려듭니다.
새끼들은 체온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저체온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초여름에 보일러를 틀어 놓느라 정작 사람인 제가 죽을 맛이었지만 어쨌든 이쪽은 '죽을 만큼 덥다'는 엄살이고 저쪽은 정말 생명이 오갈 수 있는 문제이니... 그걸로도 부족해 생수통을 전자레인지에 1분씩 데워 '대용 엄마'를 만들어 둥지에 넣어 주었습니다.
으으... 괴로워... 아직 밥상 예절을 못 배운 애들이라 밥그릇을 밟고, 그 발로 다시 방 안을 휘젓고 다니고... 한번 급식하고 나면 물티슈로 발을 깨끗이 닦아 잠시 다른 방에 격리해둔 후 고양이 방을 완전히 걸레질해야 하는 순서가 뒤따라왔습니다. 아참, 밥은 3시간마다 한번씩 어김없이 급식해야 합니다. 첫날은 위 사진처럼 캔사료를 고양이용 분유에 개어 먹였지만 이날 새벽 검은 녀석이 설사를 시작해 세시간 쪽잠마저 반납해야 했습니다. 영아 설사는 치명적이라고 하기에...
아예 둥지를 치우고 제가 고양이방에 상주하며 지켜보다가,
제 품에 올려놓고 함께 잠들었습니다.
다행히 설사증상을 보이던 녀석은 첫날 밤에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양이 사료 급식이 아직 이르다는 판단 하에 완전 FM 육아모드로 전환했습니다. 젖병으로 분유를 급식하기로 한 것이죠.
으으 꼬질꼬질... 뜨뜻하고 끈적끈적한 새끼고양이의 감촉. 분뇨 냄새와 고소하면서도 비릿한 분유 냄새가 뒤섞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냄새를 만들어냅니다. 그래도 좋은 집으로 입양보낼 수 있을 정도로 클 때까지 아가들을 한 마리도 죽지 않게 키워야겠단 일념으로 한달을 보냈습니다. ......만, 그건 아직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이고. 일단 여기서 보여드리는 사진은 첫 일주일 이내의 개고생 흔적들.ㅋㅋㅋ
생존 본능일까요. 어디서 배우지도 못했을 텐데 젖병을 든 손을 양 앞발로 붙들고 매달리는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귀엽고, 뭉클했습니다. 한 끼에 20ml씩을 먹여야 한다는 동물병원의 가이드, 전문 블로그의 정보들은 오히려 초보 고양이 보모인 제 판단을 너무 어렵게 했습니다. 얘들 한참 먹인 것 같은데 20ml엔 한참 모자라는데...? 억지로라도 더 먹여야 하나...? 혹시 영양실조로 죽는 건 아닐까...?
고양이의 목숨과 결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사람을 처음 키우게 되는 초보 부모들도 이와 같은 어려움에 자주 봉착하겠죠. 처음으로 거기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제법 고양이다운 형상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를 엄마로 여기고, 제가 방에 엎드려 있으면 꼬물꼬물 제 가슴을 파고듭니다.
아기들을 재워 놓고 조심조심...
...일어나다가 한 녀석에게 걸렸습니다!
"엄마, 어디 가!"
회색 녀석은 유난히 저를 잘 따랐습니다. 푹신한 제 배 위에서도 잘 잤고,
제 손바닥 위에서도 잘 잤고,
심지어 수면 사이클이 아닌 시각에도 눈을 가려 어둡게 해 주면 금방 잠들었죠.
이렇게 한달을 보내고, 정말 믿기 어렵게도 이 녀석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모두 캣초딩으로 진화해 좋은 주인님들을 만나 입양가게 되었습니다. 입양을 보내곤 한동안은 새 주인들의 트위터를 멍하게 하루종일 보곤 했는데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 무뎌진 것 같네요...... 는 개뿔. 오랜만에 사진 정리하다 보니 눈물날 것 같네요.ㅜㅜ
이 녀석들아. 늬들 엄마가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 된 너네를 버려놓고 간 걸 내가 밤낮없이 먹이고 씻어 키웠다. 자아가 생길 무렵 새 주인에게 떠났으니 우연히 다시 보더라도 난 기억 못하겠지. 지금 함께 사는 주인님께 오래오래 사랑받으며 지내렴.
뭔가 급 마무리지만(...) 첨부파일 용량이 너무 커진 것 같아 여기서 끊습니다. 다음 편엔 이 녀석들의 입양 직전 모습 -그루밍을 하게 되어 뽀송뽀송하고 예뻐진 모습- 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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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보너스. 아래 사진은 가장 몸이 약해 저를 걱정하게 했던 검은 녀석입니다. 어차피 입양 보낼 아이들인데 이름붙여 주면 정들어서 나중에 보내기 힘들 거라는 조언을 들어, 지금까지 본 아이들은 제대로 이름지은 적 없이 "아가야-", "애기들-" 등으로 불렀지요.
그래도 이 녀석은 과연 입양이나 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었고 (설사 이후엔 (초여름 + 물통 엄마 + 보일러까지 돌렸는데!) 덜덜 떨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검은색이고 수컷이니 검돌이(...) 라고 대충 불렀지만 여튼 이름이 있는 아이. 물론 새 주인은 모르죠. 지금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군요.
이 꼬질꼬질한 녀석을...
제가 이만큼 키웠습니다! 만세!
다른 형제들보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입양처를 찾는 데 성공해 지금은 부잣집에서(...) 행복하게 길러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하나둘 떠나갈 때 허전한 마음도 이 녀석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 주어 그나마 연착륙시킬 수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 죽어 무언가로 다시 환생하거든 꼭 보은하러 와 주길... -_,-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