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옛날 옛적은 아니고, 전직 대통령 1심 판결이 나오고 삼성증권 배당 사태로 사회가 떠들썩한 시절에, 기글하드웨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근근히 먹고 살던 낄낄이란 사람이 모니터를 마주하고 슬피 울고 있었어요. 별로 1심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있지도 않은 주식을 공매도를 치지 못해서 그런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었지요.
그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한데, 표면적으로는 사용 중이던 마우스가 고장났기 때문이고, 속사정을 들춰보면 그 마우스가 되게 비싼데다 이제는 단종되서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며, 실질적인 이유는 좋게 사설 수리에 보내면 간단하게 끝났을 걸 무슨 땜납이 녹는 냄새를 맡아보겠노라고 어설프게 스위치 교체를 시도하다 본전도 못찾고 날려먹었기 때문이랍니다.
그간의 사정은 https://gigglehd.com/gg/2666857 이런 글이라던가 혹은 https://gigglehd.com/gg/2671794 이런 글에 잘 설명돼 있으니 한가하고 시간 남은 분은 링크를 눌러 보세요. 하여간 그건 이제와서 별로 중요한게 아니고.
마우스가 없으면 컴퓨터를 쓰지 못하지만 대체품 마우스는 있으며 그 마우스도 그렇게 나쁜건 아닌데, 평소에 버튼 잔뜩 달린 마우스에다가 온갖 단축키를 지정해서 이미지 저장이나 탭 전환, 탭 닫기 같은 기능들을 편하게 쓰던 게을러 터진 사람이 평범한 게이밍 마우스를 쓰라니 만족할 수 있겠나요?
불만족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 발전 동력으로 작용해 왔으나, 상당수의 상황에는 그냥 징징징으로 끝나곤 하지요? 지금 낄낄에게 처한 상황은 후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히잉 내 마우스 히이잉 마우스 불편해 히이잉 하고 청승맞게 울고 있으려니 뭔가 샤방하는 효과음과 함께 상서러운 연기가 메케메케하게 끼며 새 쪽지가 도착하는 것이었어요.
쪽지를 보낸 분은 평소 우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외모와 교양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년간 중국 무술을 수련해 다부진 몸매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비하면 사소하다 할 수 있는 약간의 재산을 소유한 하뉴하뉴하신 하뉴님인데, 하뉴 누나를 줄여서 하뉴나라고 계속 불렀더니 부끄러움을 타서 그런가 리플이나 글로는 잘 출몰하지 않는 분이였어요.
하여간 하뉴님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사설 센터의 정보를 알려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이 흉흉한 세상에 집주소를 함부로 노출했다가는 아이스방스에 곱게 냉매로 싼 엿이 올지 빅엿이 도착할지 모르니까 완곡하게 거절하겠으나, 하뉴나의 평소 자태를 보아하면 그런 일은 없을듯 하여 순순히 불렀더니만.
이런게 왔습니다.
거 서문이 되게 길죠. 원래 그래요.
EMS라니 외국에서 보낸게 틀림없는듯.
마우스.
기대를 안고 뜯어보는 순간 택배 상자 안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져 나오며 하뉴나의 모습을 한 마우스 신령님이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낄님 낄님. 낄님이 원하는 마우스가 이 마우스인가요?
아닙니다. 저 마우스는 허세 가득찬 자들이 즐겨 쓴다는 허세어에서 만든 것으로, 허세어 물건이 다 그렇듯 특가로 사면 쓸만하나 정가로 사면 본전 생각이 많이 들게 될 것이요, 마우스 자체만 놓고 보건데 추가 버튼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몰려 있어 손가락의 부담이 늘어나고 빠른 기능 활용이 어려울듯 하여 저는 일단 거르고자 합니다.
하고 건방지게 지껄였더니 이번에는 다른 마우스가 나왔어요.
낄님, 낄님, 그럼 이 마우스는 어떤가요?
레이저는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상품인데 최근 하던 주변기기는 안하고 왠 스마트폰을 인수한다니 망조가 끼지 않았나 두려운 곳이요. 마우스 자체만 놓고 보면 측면 버튼 커버를 교체하여 버튼의 구성과 활용 방법을 바꿀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점에서는 커세어 마우스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것도 제 쓸데없이 까다로운 눈에는 차지 않을 듯 하옵니다.
그러자 하뉴님은 이 마우스를 꺼내셨어요.
낄님, 낄님. 그럼 이 마우스라면 어떨까요?
스틸시리즈는 소프트웨어 지원이 애매하고 로지텍처럼 무한 휠 전환 기능은 빠져 있지만 마우스 메인 버튼 양 옆으로 추가 버튼을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엄지손가락 주변을 빙 둘러싸 버튼을 넣었으니 개인적으로는 G700S에 버튼 내구성을 극한으로 늘리지 않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기 몹시 귀찮은 저의 상황에선 저만큼 적응하기 편한 마우스가 없을 듯 합니다.
그랬더니 하뉴나의 모습을 한 마우스 신령님이 이 한마디를 하고 사라지셨어요.
그냥 다 쓰세요. 그리고 좋든 나쁘던 일단 써보고 나서 까는 거에요. 혹시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
그래서 졸지에 새 마우스가 3개가 됐습니다. 새 마우스가 하나였다면 와아 잘 써야지 이럴텐데. 3개니까 지금 좀 당황스럽네요.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아는 분이 보내신 거라서 부담이 아주 크진 않지만요.
다음부터는 마우스 해먹었다는 글 말고 비트코인하다 똥망했다는 글을 올리는걸 진지하게 고민중이에요! 이러면 제 전자지갑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코인이 쌓일.. 역시 그만둬야겠군요.
하여간 마우스를 하나도 아니고 3개 주신 하뉴님께 감사드리며, 감사의 표현은 해도해도 끝이 없으니 1절만 할께요. 그리고 지금 벌려둔 일을 갈무리하면 다음번엔 마우스 사용기를 차근차근 써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