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개인적으로 느낀 것과, 지극히 개인 취향에 따른 판단에 대해 떠들고 싶어서 쓰는 것이지, 나의 취향에 꼭 맞는 대안을 알아서 찾아 내놓으라는 글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몇 줄 놓치고 엉뚱한 대안을 제시하는 분들이 가끔 나와서 하는 소리에요.
짤은 그냥 다시마
이번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을 비웠고, 일을 위해 노트북을 들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 노트북은 지난 2년 동안 출장 장비로서의 역할을 썩 훌륭하게 수행하진 못했어요. 이유는 두 가지. 일정 시간 사용하면 SSD가 증발하면서 시스템이 먹통되버리고, 배터리 잔량 체크가 불확실해 갑자기 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지난 한주 동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써야 할 뉴스를 다 올려서 노트북을 끈게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욱 쓰다가 밤이 되면 어김없이 꺼져버리는 노트북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끄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컴퓨텍스 같은 곳에 출장을 갔을 땐 덜 쓴 편이네요. 거기는 낮 동안에는 밖에 있고 밤에만 켰으니까. 그런데 이번처럼 하루 종일 켜두는 건 버티질 못하네요.
SSD
SSD 증발상황 https://gigglehd.com/gg/2990983
SSD 증발상황 (2) https://gigglehd.com/gg/3767561
SSD 증발상황 (3) https://gigglehd.com/gg/4972404
SSD는 교체도 생각해 봤는데 M.2 2242/2260 SATA 6Gbps라는 매우 구하기 귀찮은 규격입니다. 거금을 들여서 여기에 맞는 SSD를 산다고 한들, SSD가 증발하는 증상이 혹시 다른 부분의 문제라면? CPU 발열이라던가 연결 과정 중에서 구조적인 문제라면? 최하 6만원을 들여야 하는데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배터리
저는 슈퍼배터리 노트북을 갖고 있습니다 https://gigglehd.com/gg/7235264
저는 슈퍼배터리 노트북을 갖고 있습니다(2) https://gigglehd.com/gg/7244118
배터리는 아예 노트북용 PD 충전 배터리를 하나 사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5만원 쯤에 노트북 충전이 가능한 제품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무게를 줄이고 짐을 줄일려고 노트북도 가벼운 걸 쓰는데, 거기에 500g짜리 배터리를 더하면 글쎄요. 처음부터 무겁지만 튼튼한 노트북을 사는 게 낫겠죠.
노트북이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자주 쓰진 않습니다. 일년에 한번 컴퓨텍스, 그리고 일년에 몇 번 갈지도 모르는 여행갈 때나 챙기는 건데요. 그리고 올해 컴퓨텍스는 아마도 안 갈것 같고요. https://gigglehd.com/gg/7270043 여행도 문제인게 코로나가 언제 끝날줄 알고 간답니까. 그래서 노트북에 큰 돈을 들이고 싶지가 않네요.
원래대로라면 르누아르 탑재 노트북이 적당한 조건과 괜찮은 가격에 나오면 사려고 했어요. 성능이야 르누아르라면 보장이 되니까 더 할말은 없고, 적당한 조건이란 가로 크기 2048 픽셀 이상의 고해상도(그래야 웹 페이지 두개를 나란히 표시 가능), USB-PD 충전(충전기 따로 챙기기 귀찮음), 1.3kg 미만의 가벼운 무게(저질체력)이군요. 가격은 뭐.. 내장 그래픽으로 충분하니까 한 60만원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앞으로 몇달 동안은 계속해서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다보니 노트북이 꼭 필요하네요. 르누아르 노트북이 국내에 안 나온 건 아닌데, 아직은 외장 그래픽을 달고 가격도 비싼 게이밍 노트북 뿐이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1. 가장 먼저 나온 건 기글에서 판매하는 피카소 기반 노트북들이었어요. 르누아르의 고성능까지는 타협한다 치고, 해상도는 포기해야죠. 이건 보조모니터로 어떻게 해결도 되니까. 하지만 무게는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2kg에 육박하는 노트북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요. 한창 체력 좋을 때도 묵직한 데스크노트를 샀다가 적응 못하고 정리했으니..
2. 두번째로 떠오른 게 안드로이드/iOS 태블릿인데요. 요새는 화면 분할이나 멀티태스킹이 모바일 운영체제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하니까요. 예전처럼 윈도우가 아니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에 이쪽은 저렴한 제품도 있고, 은근히 고해상도고, 가볍기까지 하죠.
하지만 탭 50개를 띄워놓고 닫았다 열어가며 이미지를 몇십장씩 저장하는 작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일 관리도 그렇고, 윈도우 시스템에서만 쓸 수 있는 매크로 마우스도 포기해야 하고요.
3. 그래서 나온 생각이 신제품을 사자는 거였습니다. 전에 기글에서 보고 알게 된 노트북 중에 이그닉 바이북 프로 14라는 게 있는데, 이 제품이 은근히 저한테 필요한 조건을 다 갖췄단 말이죠. 쿼드코어 i5니까 성능은 쓸만할테고, 무려 4K의 고해상도에 무게도 1.5kg 맞췄고, 심지어 USB-PD 충전까지. 그 외에도 장점이 참 많아요. 가격도 최하위 모델이 70만원인데 하이마트에서 청구할인으로 62만원이고(전북카드를 어디서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지만), 거기에 사무용으로 쓰는 거니까 부가세 환급받는다 치면 50만원 중반까지 어떻게 내려오겠군요.
문제는 신뢰도. 써본 사람이 너무 없고, 판매처도 몇 없어요. 리뷰 영상을 몇 개 봤지만 솔직히 수박 겉핥기지요. 그런 영상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꾸준히 사용한 후 쓴게 아니라서요. 지금 노트북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는데, 이 제품도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실수를 한번 했으면 됐지 두번 반복해야 하나? 여기까지 생각하니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가 않는군요. 청구할인 그런거 말고 50만원 중반대였으면 바로 샀을지도..
4. 찾다 보니 갤럭시 북 12.0을 중고로 파는 걸 봤어요. 이것도 은근히 제 취향입니다. 고해상도/가볍고/USB 충전에/아주 못쓸 성능은 아닐테고요. 키보드 케이스만 있다면야 노트북 대용으로 쓰는데 문제는 없을테고요. 한 가지 걸니는 건 카비레이크 탑재 모델이니 연식이 꽤 됐는데, 그걸 돈 주고 사야하나... 물론 삼성이니 배터리 교체는 가능하겠지만요.
이걸 40만원에 판다는 매물을 금요일에 보고, 토요일에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 사이에 팔렸네요. 다른 사람들은 50만원이나 그 이상에 판매 중이고요. 40만원도 보면서 고민했는데 50만원 짜리를 살리가 없겠죠.
5.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럼 그냥 신제품 노트북을 살까 생각도 해봤어요. 해상도만 풀 HD 수준으로 타협하면 USB-PD 지원하고 대충 쓸만한 성능과 휴대성을 지닌 노트북이 70만원 이하에서 몇 개 나오더라고요. 별로 정이 안 가는 레노버 씽크북 시리즈나 뭔가 두려운 화웨이 메이트북D 같은거. 써놓고 보니 둘 다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군요.
6. 그래서 지금은? 배터리야 차근차근 달래가면서 눈대중으로 쓰면 될테고, SSD가 증발한다면 SSD를 안 쓰면 된다는 역발상을 거쳐, 외장 케이스에 M.2 SSD를 꽂아 윈도우를 설치했습니다. 노트북의 SSD를 직접 교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글 윗부분에서 썼고요. 이렇게 해서 초기 설정까지 마쳤는데 SSD 케이스에서 나는 열이 상당하네요.
이 상태로 다음주에 다시 내려가보고, 그렇게 써서 버티는데 성공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르누아르 라인업이 빨리 늘어나라고 고사라도 지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