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드러머를 한다던가, 오케스트라에서 퍼커션을 연주한다는 소리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큰 무대의 맨 뒤에 쳐박혀 커다란 드럼세트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며 자신의 존재를 그저 소리로밖에 어필할 수 없는 드럼 연주자들의 안구에는 언제나 습기가 차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럼은 특유의 익숙하면서도 흥겨운 비트와 미칠 듯 쉬운 입문 난이도 덕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악기가 그렇듯 드럼세트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특유의 단점이 있습니다. 가령, 비올라는 존재 자체부터 눈물이 고인다던가, 트럼펫은 소리가 커서 연주하기가 힘들다는 그런 것들 말이죠. 드럼세트는 기본적으로 악기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을 기반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이며 그 소리도 결코 작지 않아, 일반적인 가정에서 드럼세트를 연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미칠 듯이 크고 아름다운 세트의 부피는 천조국에서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좁디좁은 대한민국의 주거 환경에서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요.
덕분에 다른 형태의 악기가 으레 그랬듯이 디지털화가 진행되어, 그냥 몇만원짜리 애기들 장난감 수준에서 표준 MIDI 신호를 받는 고급 장비까지 다양한 가격대에서 자신에게 맞는 전자 드럼세트를 어쿠스틱 악기의 반값 이하에 손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연주도 쉽고, 공간 요구사항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는데요, 그 원인은 바로 특유의 '때려서 연주하는' 연주 방식에 있습니다. 매트를 깔면 그나마 나아지지만 그렇다고 아무때나 마구 팰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전자피아노나 전자 바이올린 등에 헤드폰을 꽂고 새벽에 연주해도 아무도 시비를 털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시면, 악기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드럼스틱에 센서와 음원을 내장하여 드럼세트 악기가 없어도 단지 스틱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드럼을 연주하는 방식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물론 아무리 잘 만들어 봐야 허공에 드럼스틱질밖에 더 안되므로, 북을 때림으로써 발생하는 반발력의 부재 및 센서 인식 범위의 제한이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해결되지는 않구요. 당연히 실제 악기와 느낌이 현저히 다르므로 기법을 연습하는 용도의 물건으로 이해하심 곤란하구요.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최소한 기본 드럼 비트 정도는 연주하고 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를 다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6년 즈음, 음악 장난감인 Mijam 시리즈가 출시됩니다. 어원은 My + Jam으로 추정되는데요, 영어 속어 Jam은 재즈와 같은 장르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즉흥 연주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흥 연주와 믹싱을 컨셉으로 하여 외부입력 포트에 iPod 등 당시 유행했었던 휴대용 음향기기를 연결한 뒤 음악에 맞춰 연주하는 악기라고 보시면 될 듯.
보아하니 드럼스틱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듯 싶습니다. 그야 당연히 당시 기준으로는 구현하기 힘들었을 공중 드럼을 30달러 미만의 저렴한 가격에 구현했기 때문이죠. 기타, 마이크 및 믹서 시리즈도 있지만 드럼스틱만큼 실용성과 특색이 크게 없고 실제 악기와 연주법 및 성능 면에서 크게 차이나는 장난감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믹서는 그나마 잘 팔린 듯.
어떻게 해서인지 한국에도 정식 수입이 되었네요. 주식회사 손오공에서 들여왔구요, 마이라이트 제외하면 전부 국내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얘네들 전부 출시된듯. 제품 포장지에는 펑범한 연주는 거부한다 쓰여 있던데, 이걸로는 딱 펑범한 연주밖에 못 하는데 어떡하죠? 손오공 직원들도 드럼 안 만져본듯. 그나마 미제 원판을 들여오면서 원판 패키징 디자인 요소를 잘 살리긴 했네요.
인기가 좋아서인지 나중에는 페달까지 구현한 무선 드럼스틱까지 마이잼 프로라는 이름으로 출시됬는데, 국내에는 없네요. 오리지널 마이잼의 거지같음을 한번 맛봤기에 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받은 물건은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연식이 꽤 된 물건이더라구요. 출시 15년을 넘긴 물건이니 플라스틱부 변색은 그러려니 합니다. 뭐 다시 하얗게 미백하는건 가능한데, 그러기엔 귀찮고 표면 손상도 적지 않죠.
디폴트 상태에서 좌측 스틱은 스네어, 우측 스틱은 하이햇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일정 각도 이내' 에서 '일정 속도 이상' 으로 스틱을 휘둘러주면 스네어 음과 하이햇 음이 한 번씩 재생됩니다. 좌측 스틱에 있는 탐탐 / 심벌즈, 우측 스틱에 있는 베이스드럼+하이햇 / 플로어 키를 누르면서 휘두르면 그 음이 하나씩 재생되는 뭐 그런거죠. 추가로 오른쪽 스틱에는 Fill-In 버튼이 있는데, 필인이 뭐냐하면 대충 곡 중간에 두구두구다가다가당당 해서 양념 쳐주는 개념이고 궁금하면 유튜브 드럼 필인이라고 찾아보시면 다양한 예시곡 청취 가능하십니다.
컨트롤러 유닛. 미리 녹음된 1종류의 프리셋 드럼 비트를 재생할 수 있으며, 본체의 볼륨과 드럼 비트의 속도를 조절하는 버튼과 함께 측면에는 마스터 전원 스위치가 있습니다. 수컷 헤드폰 잭은 출력단이 아닌 외부 기기를 마이잼에 연결하기 위한 잭으로, 출력은 암컷 헤드폰 잭을 통해서 나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 그립법에 상당한 제한이 걸립니다. 매치드 그립만 사용할 수 있긴 한데, 제대로 된 매치드 그립이 아닙니다. 기본 비트를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튼을 눌러야만 하는데, 이때 자세가 다 망가짐. 기본비트만 칠거면 왼손이 아래로 가는 트래디셔널 그립은 아주 불가능하진 않지만, 연주가 더 어렵습니다.
- 애초에 드럼은 휘둘러서 치는 개념이 아니라, 북에 스틱을 튕겨서 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 근데 마이잼 스틱에는 그런거 없음.
- 드럼세트로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에도 탐탐 드럼은 두개가 달려 나옵니다. 그리고 그 탐탐 드럼은 '두 손으로' 치는데요. 여기에는 한 손에만 탐탐이 할당되어 있음. 그래서 필인을 버튼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따로 달아둔 걸지도?
- 심벌즈 버튼이 왼손에 위치해 있습니다. 심벌즈는 보통 오른손으로 연주합니다. 왼손으로 쳐도 엄청 큰 문제는 없기에 그러려니 합니다.
- 실제 드럼 연주자도 페달리스 + 버튼으로 북의 종류를 제어하는 저세상 인터페이스에 강제로 익숙해지지 않으면 연주가 어렵습니다. 스네어 하이햇 베이스 이상을 쓰는 다른 비트들은 그냥 연주 못하신다고 보심 됨. 님이 프로 드러머라도 해당없는 소리임.
- 에어 드럼의 감도 조절 불가능. 위치까지 감지해서 어떤 드럼을 치는지 자동으로 바꿔달라는 헛소리는 안하겠지만, 일정 강도 이상으로 휘둘러야 작동합니다. 모션 센서 방식인 만큼 자이로스코프의 각속도를 감지하여 일정 Threshold 이상이면 녹음된 음성을 재생시키는 매우 단순한 구조겠지만, 최소한 이 Threshold를 조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
- 구조적인 단점이라 하긴 뭣하지만, 하이햇 소리가 오픈 하이햇 소리입니다. 보통 기본 비트를 연주할 때 하이햇은 페달을 밟아 클로즈드 상태로 쳐야 보통 우리가 아는 그 드럼의 소리가 나는데, 얘는 사실상 기본비트만 치라고 나온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햇 소리가 오픈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방법에서는 사운드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이 덜 된거죠. 제작사가 드럼을 각잡고 제대로 쳐보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영역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6QjCyn6-lzE?feature=share 쇼츠로 분류되는 영상은 임베드 공유가 안되네요. 기본비트 치면서 영상을 촬영할 순 없기에 그냥 소리정도만 내봤습니다.
제가 집나오면서 집에 사운드카드라던가 하는 녹음 관련 장비들을 안들고와서, 정확한 사운드에 대한 분석은 생략합니다. 연주 도중 알 수 없는 노이즈가 유입되며, 스틱을 휘둘러서 악기 사운드가 재생 중인 때에는 양자화 노이즈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청감상 최소 15000Hz 미만에서 컷오프가 걸리는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녹음된 6가지의 드럼 소리는 약 8-12bit 사이의 양자화 비트수에 32kHz 미만의 샘플링 주기를 가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제품을 분해해서 포함된 사운드 칩의 데이터 정도는 검색해서 얻을 수 있겠지만, 제품 손상 없이 분해하는 법을 알 수 없어 역시 생략합니다. 소장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꺼내서 가지고 놀거라 망가지면 안되네요.
가격이 가격이고 제품 포지션이 포지션인 만큼 엄청난 기능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최소한 드럼 소리라도 똑바로 나게 만들어 줬으면 출시일과 가격을 고려해서 5점 만점에 5점을 줬겠지만, 그런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요. 한 3점 정도면 후하게 준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저냥 드럼 마려울때 꺼내서 억스잭만 연결하고 기본 비트 정도 연주하면서 SOUL을 느끼는 용도로 쓸 수 있긴 하므로.
한때 열심히 드럼매니아 하던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