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테크잖아요? 그러니 일단 여기다 씁니다. 리뷰 게시판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캐스퍼를 오래 경험한건 아니고, 무엇보다도 리뷰 게시판은 IT제품의 리뷰가 중점이 되는 편이 낫죠.
그냥저냥 좀 놀러가고 싶어서 쏘카로 캐스퍼를 빌렸습니다. 왜 굳이 캐스퍼냐면, 싸서요. 혼자 렌트하는 것도 아니고 짐도 꽤 많이 실을 것 같은 상황에서 굳이 경차를 타고 싶은 생각은 그닥 없었지만, 부담없는 가격에 넉넉한 공간과 주행의 즐거움, 그리고 좋지 못한 출력을 제공하는 캐스퍼는 최상의 선택은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의도치는 않았으나 캐스퍼 차량에 대한 글을 읽어본 바는 있습니다. 차량의 컨셉과 가격이 나름대로 파격적이라 그런지, 의견이 참 다양하네요. 귀엽다, 드럽게 안나간다, 그돈씨, 살만하다 등등 하나로 통합된 의견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마치 <꼬마유령 캐스퍼> 처럼 톡톡 튀는 귀여운 외관과 깜찍한 동력 성능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일부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에 충분하지만, 단점 역시 명확하기에 결코 모두가 선호할 법한 차량은 아니거든요.
우선 캐스퍼 차량의 가장 메이저한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풍부한 옵션은, 주행하는 내내 운전자와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무려 0.9CC의 참으로 거대한 심장을 가진 꼬마자동차 주제에 앞 차량과의 거리를 인식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어떤 환경에서도 잘 동작하는 차선보조 시스템은 150km의 여정을 덜 피로하게 해 주었으며, 모비스가 공급하는 괄목할 만한 성능의 5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최적의 길을 찾아줌과 동시에 음악 스트리밍과 같은 고급 기능까지 갖추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캐스퍼는 무려 경차라는 점 되겠습니다.
스피커의 음질은 어차피 경차가 경차한거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으며, 볼륨 최대로 땡기고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 7번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들었으니 그걸로 됬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안드로이드 오토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그 점은 아쉬웠습니다. 5세대 인포테인먼트는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니, 제대로 된 케이블을 사용하면 작동하겠죠.
핸들에 달린 즐겨찾기 버튼은 내가 원하는 기능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바로가기 기능을 제공하지만, 본인은 경로 재탐색 기능으로 설정하여 막힐 때마다 눌렀습니다. 어댑티브 크루즈는 운전이 재미없어지기에 저는 크게 사용하지 않았으나, 있으면 좋은 기능임은 틀림없죠. 앰비언트 라이트는 정말 어둡고 단색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밤에 보면 나름대로 이뻐요. 사실 이건 들어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큰 장점이 되는데, 어떤 정신나간 제조사가 최하위 클래스의 차량에 이런 옵션을 넣어줍니까?
캐스퍼에는 그 어떤 차량에도 꿀리지 않는 완전자동식 에어컨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동 모드에서도 블로워가 얼마나 세게 작동하게 할지 High-Medium-Low 3단계로 세팅할수 있는 점은 동급이 아니라 당장 윗급의 차량에서도 찾기 힘든 큰 장점입니다. 독립식 냉난방은 불가능하지만 그 사이즈에 독립식 냉난방을 해봤자이기에 패스. 어차피 있어도 잘 쓰는 기능도 아니고. 그깟 에어컨이 뭐가 대수냐 싶지만, 더울때 틀면 너무 추워져서 꺼야 하고 다시 더워지면 손으로 다시 켜야 하는 수동식 에어컨 은근히 불편하죠?
닉시튜브 이뻐요. 뭐 딱히 실용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나름대로 참신한 UI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비게이션의 성능은 무척 양호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이 7인치가 전부라는 점이 걸립니다. 10인치형 와이드 인포테인먼트를 박는데 그렇게 큰 돈이 든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또한 디스플레이의 위치가 계기판보다 높고 운전자에게서 멀며 운전자 방향으로 각도가 들어가있지 않아 운전 중 네비를 확인하거나 조작하기 어렵다는 점, 영어로는 음성인식이 불가능한 점이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이 클래스에서는 최고의 옵션이기에 납득.
최근 현대가 자사의 차량에 적용하는, 속도와 RPM 게이지를 8세그먼트 디스플레이로 대체한 디지털 타입의 계기판은 그 기능성에서 큰 문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간에도 시인성이 우수하고,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세그먼트의 색이 바뀔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계기판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죠. 레드존이 6.5RPM에 있어, 레드존을 치면 디스플레이의 숫자가 빨간색으로 점등합니다. 정보량 역시 나쁘지 않은 편이며, 계기판을 통해 진행할 수 있는 차량 설정은 모두 인포테인먼트와 통합되어 터치스크린을 통해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계기판에서 '게이지'라는 요소가 부재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RPM이 증가하면 세그먼트가 더 많이 켜지지만, 이것만으로는 속도나 RPM과 같은 주행에 필수적인 정보를 직관적으로 캐치할 수 없습니다. RPM 게이지의 바늘이 2와 3에 위치해 있는 것과, 8세그먼트 디스플레이에 2.6이라는 숫자를 표시하는 것은 그 느낌이 전혀 다르죠. 타 차량이 8세그먼트식 LCD 계기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늘어날수록 세그먼트가 더 많이 점등하여 바늘식 계기판처럼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하는 게이지 요소를 적용했다는 점을 보아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겠습니다.
현재 이 차량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목되는 동력성능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리뷰어가 지적한 사안이니 대충 간단히 요약하자면 타 차량의 반악셀이 캐스퍼 풀악셀 정도, 혹은 125찌찌 딸동기 알차 졸라 땡기면 나오는 정도라고 설명하면 납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나스카 경기장의 한복판을 방불케 하는 크고 웅장한 소리와 간신히 60을 바라보는 계기판은 캐스퍼가 참으로 귀여운 이유이자 이 차량을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구실이죠.
그러나 이런 악평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주행에는 사실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걸로 고속도로 1차선에서 추월도 몇 번 했구요. 어차피 이걸로 서킷 탈거 아니잖아요. 스피디움 들어갈꺼라구요? 그건 그냥 정신이 나간 생각이에요. 최고속도는 140 정도로, 140을 넘기면 차체가 불안정해진다 뭐 이런 개념이 아니라 그냥 평지 140을 절대 못 넘긴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과격한 주행으로써 부족한 동력 성능을 어느 정도 메꿀 수는 있지만, 이 경우 일반적으로 경차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여겨지는 연비는 좀 희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반납까지 평균연비 11.8 정도가 나왔는데요, 엄청난 희생은 아닌게, 준중형 차량을 시내주행하면 보통 이정도가 나오지 않나요? 그리고 아반떼를 똑같이 밟으면서 타면 7~8 전후가 찍힙니다.
기어는 4단이고 드라이브 모드는 딱 두 가지가 있는데요, 노멀과 스포츠가 있습니다. 변속기 옆의 조그 다이얼 스위치를 우측으로 가볍게 돌려주면 스포츠 모드가 되는데요, 엑셀 반응성이 달라짐을 제외하면 차이가 전혀 없습니다. 노말 모드든 스포츠 모드든 도로 한번 제대로 달릴려면 온 힘을 쥐어짜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거든요.
터보차져 장착 모델은 고질적인 출력부족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다고는 합니다. 아반떼와 비슷한 성능이라고 하는데, 뭐 이건 안 타봐서 잘 모르겠고 터보는 유지보수가 어렵긴 합니다만.... 살거면 무조건 터보 사세요. 아 그리고 주차 졸라 쉽습니다. 후방카메라도 좋지만 그냥 차 크기가 작아서 어디든지 들어가는게 맞는듯?
물론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카바칠 장점이 명확한 캐스퍼는 여전히 현대의 베스트셀러 경차입니다. 오랜만에 나온 경형 SUV로서 아직까지는 대체재가 딱히 없고, 경차 혜택을 전부 받으면서 사이즈도 크고 준중형 차량의 고가 트림에서나 적용되는 첨단 옵션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동력 성능을 약간 희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입니다.
나름대로 젊은 연령층을 노렸으나, 30대 이상의 연령층이 실구매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20대 사회 초년생이 첫차로 선호하는 차량은 경차가 아닌 차량으로써, 돈을 더 쓰고 좋은 옵션을 포기하더라도 준중형 이상의 차급을 선호하는 풍조가 있는데요, 이에 캐스퍼 풀옵션은 깡통 아반떼와 줄곧 비교되고는 합니다. 동일한 가격에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깡통 아반떼는 캐스퍼 풀옵션의 완벽한 안티테제거든요.
현재 출시되는 최신 차량에서 옵션의 유무는 굉장히 큰 차이를 불러오는데요, 2010년대 중반부터 출시되는 국산차량은 풀옵션을 기준으로 실내를 디자인한 흔적이 이곳저곳 발견됩니다. 작은 일반형 오디오 시스템과 수동식 에어컨이 들어가도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예전의 차량들과 달리, 거대한 화면과 대형 클러스터가 포함됨을 상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디자인하는 최신 차량들은 옵션을 안 넣으면 그야말로 허허벌판이 따로 없습니다.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뻥 뚫린 자리에 코딱지만한 흑백 화면과 엄청나게 거대한 버튼 몇 개만이 운전자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또한, 과거와 달리 자동차 순정 옵션의 기능성 역시 증가했습니다. ADAS와 ACC를 비롯한 수많은 주행보조 장비가 대중화되고, 이름뿐이었던 슈퍼비전 클러스터는 압도적인 시인성과 정보량을 제공하는 풀컬러 디스플레이가 되었으며, 주행에 큰 도움을 줌과 동시에 센터페시아 디자인의 기준이 되는 순정 인포테인먼트의 기능 역시 크게 발전했습니다. 300만원 주고 맞춘 채ㅡ첨ㅡ단 모오ㅡ젠 네비가 제공하던 우악스런 성능과 조작감 덕에, 아예 싹 다 탈거한 뒤 싸제 네비를 퍼티로 뜨고 사포로 갈아내면서까지 매립하던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언젠가 양구에서 차량용 튜닝부품을 나눔해 주시던 분이, 자동차가 워낙 좋게 나오니 이런 물건들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어라운드 뷰나 주행보조 기능 같은거 사놓고 안쓰는 사람 없죠. 이에 더불어, 안전과 관련된 옵션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탑승자의 생명까지 보호합니다. 씽크웨어의 주력상품은 더이상 대한민국 1위 아이나비 네비게이션이 아닌 블랙박스와 전동킥보드이며, 과거에 오너들이 차를 통째로 뜯어가면서까지 추가하고자 애를 쓰던 각종 기능성 튜닝은 이제 순정 옵션이 되어 찾기 어렵게 되었으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란 그저 이동수단 혹은 재력을 과시용 물품을 넘어, 생활 공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저 이동이 목적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고,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벤츠 매장을 방문하는 대신 샤넬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려도 목적 달성에 무리가 없죠. 답답하고 피곤한 출퇴근 시간 자동차는 휴대용 에어컨과 음악 청취실이 되어주며, 무겁고 큰 물건을 옮겨야 할 때라면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휴일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데이트하기 위한 주 무대가 되기도 하죠. 경우에 따라 모텔을 대신하....기도 할...라나요?
비록 캐스퍼는 미친 듯이 느려터진 조그마하고 귀여운 경차이지만, 여전히 이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도 남습니다. 물론 그 점은 깡통 아반떼도 마찬가지이지만, 캐스퍼에 포함된 풍부한 옵셔널 기능은 이를 더 쉽고 즐겁게 해 줍니다. 이거저거 다 안되서 중요한 순간에 흥을 깨뜨리는 깡통차와는 다르죠. 차급과 옵션 둘 다를 원한다면 천만원을 더 쓰고 풀옵션 아반떼를 사시면 되는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고민은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여유가 없으니 하는 거라서요.
둘 중 무엇을 선택하냐는 구매자의 가치관에 달렸겠지만, 적당한 가격에 수많은 편의사양을 누리며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깡통 아반떼 대신 풀옵션 캐스퍼를 구매하는 편을 적극 추천합니다. 한편, 깡통차로써의 캐스퍼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경차조차도 깡통을 살 정도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더 경제적인 대체재가 이미 많은 상황이라서요. 캐스퍼의 강점은 동급대비 다양한 옵션 선택권과 큰 적재용량에 있기에,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즉, 캐스퍼는 최상위 트림을 구매할 때 그 가치가 두드러짐으로써 풀옵션 안살거면 그냥 안 사는게 나은 차량입니다.
그래서 본인에게 1800이 주어진다면 살거냐구요? 아뇨. 본인은 여전히 혼다 엑드방 신차를 뽑아서 풀튜닝하고 남는 돈으로 겜트북을 사는 것이 훨씬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선택권이 깡통 아반떼와 풀옵션 캐스퍼로 나뉘어진다면 무조건 후자를 구입하겠습니다. 자동차와 함께하는 즐거운 삶을 사랑하기에.
2024년 캐스퍼 전기차를 목표로 한다던데
현 캐스퍼의 변속기 문제를 해결하면 더 평가가 좋아지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