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고가면서 이런생각 많이 해보셨을겁니다. 깜빡이 넣고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차 깜빡이가 내 차 깜빡이랑 속도가 안맞아요. 진짜 답답합니다. 저 망할 깜빡이가 내 차랑 똑같은 박자로 깜빡여주면 뭐가 덧나나요? 대체 뭐가 문제길래 내차도 현대차고 앞에차도 현대차인데 두 깜빡이 주기가 맞아떨어지지 않는지.
진짜 진지하게 어머니께서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등교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졸라많이 고찰했으며, 전자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뒤 그 답을 '어느 정도' 도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비안정 바이브레이터 회로를 구성하고 거기 LED를 달아서 깜빡이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어서, 자동차 깜빡이에도 똑같은 회로가 들어갈 것 같았는데 말이죠. 깜빡이는 소리는 릴레이가 만들어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 바이브레이터 회로가 전구가 끌어오는 고전류를 못 감당할 것임이 뻔하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맞는말이긴 했는데 모두 사실은 아니었구요.
그리고, 2021년 8월 유명 유튜버 'Technology Connections' 는 이 문제를 차량의 출시 시기별로 분석하여, 시원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유튜브 커뮤니티 자막 기능이 날라가서, 으레 그랬듯 본 영상의 내용을 토대로 약간의 의역과 자료를 추가하여 글로 간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또 저 회원님 인생에 도움안되는 쓸데없는 생각만 한다하지마시고 아래 영상을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다면 그냥 영상을 틀어두고 제 글을 읽으면서 깜빡이 스위치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직접 보셔도, EAGLE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된 자동차의 전장품은 각자 따로따로 놀았으며 이들을 제어하기 위해 스위치가 각각 하나씩 필요했습니다. 왼쪽 깜빡이에는 왼쪽 불 스위치가, 오른쪽 깜빡이에는 오른쪽 불 스위치가 따로따로 존재하며, 각각의 창문을 여는 스위치와 와이퍼 스위치 역시 각자 기계적으로 직접 결선되어 있습니다. 전장품 하나가 제어 스위치 한개에 개별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전장품이 늘어날수록 연결해야 할 선과 스위치의 수도 늘어나게 됩니다.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현재 차량의 상태에 따라 다른 부품을 제어하거나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오래된 똥차를 뜯어보면 이렇게 생긴 장비가 전구의 옆에 각각 한개씩 존재합니다. 여기서 나온 선은, 깜빡이를 제어하는 막대기 안에 있는 스위치에 직접 연결됩니다. (Turn Signal Switch 챕터 참조)
이 스위치 안에는 다음과 같은 회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속의 열팽창률이 다름을 이용하여 두 장의 금속을 이어붙여 온도가 높아지면 휘게 하는 '바이메탈' 의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비싼 IC나 만들기 복잡한 전자회로를 추가하지 않아도 일정 주기로 깜빡이는 회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격이 싸니까 원가절감에도 유리할 테고, 깜빡이의 특성상 그 주기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치는 코일과 전구에 병렬 연결되어 있으며, 처음 스위치가 켜지면 바이메탈 스트립 중앙에 말려 있는 코일에 전류를 공급합니다. 이때 코일은 큰 내부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원이 공급된 시간동안 온도가 상승하여 바이메탈 스위치가 휘어집니다. 바이메탈 스위치에는 자석이 붙어 있어, 가까워지면 붙지만 바이메탈 스트립의 온도가 하강하여 원상복귀되는 힘이 자석의 자기력보다 커지면 떨어집니다.
바이메탈이 휘어져서 자석이 붙으면 전구에 전류가 공급됩니다. 그러나 스위치는 전구와 코일에 병렬 연결된 상태이고, 전구의 내부 저항은 코일의 내부 저항보다 작습니다. 전류는 저항이 낮은 쪽으로 흐를려 하므로, 전류는 코일 대신 저항이 훨씬 낮은 전구로 흐릅니다. 이 시간 동안 전구는 붉게 빛나지만 코일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으며, 따라서 바이메탈 스트립의 온도는 낮아집니다.
일정한 온도 이하로 떨어져서 자석의 자기력보다 바이메탈 스트립의 복원력이 더 강해졌을 때, 자석은 떨어지고 전구 쪽 회로는 개방된 상태가 됩니다. 전구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전류는 코일 쪽으로 흐르게 되고, 위 과정이 반복되면서 깜빡이 램프가 깜빡입니다. 바이메탈 스위치와 코일은, 법으로 정해진 (널널해 터진) 깜빡이 규격에 맞추어 표준을 만족하는 속도로 깜빡이도록 설계합니다.
바이메탈 스트립을 데우는 코일에 가하는 에너지는 차량의 전류로 직접 공급하기 때문에, 차량 배터리의 전압과 잔량에 따라 스트립이 데워지는 속도가 달라져서 깜빡이가 깜빡이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바이메탈이 데워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스위치에 전원이 인가된 순간 깜빡이는 항상 꺼진 상태에서 시작하며 켜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바이메탈릭 스트립이 항상 일정한 두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덤.
이보다 '조금 더' 현대적인 깜빡이는, 기존의 깜빡이 모듈이 들어가는 차량과의 호환성을 그대로 유지하되 바이메탈 방식의 깜빡이가 가졌던 점등 타이밍 등의 단점을 개선합니다.
원리 자체는 이전의 바이메탈 깜빡이와 거의 동일하나, 깜빡이를 깜빡이는 부품은 코일이 아닌 콘덴서이고, 콘덴서에는 전자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위치가 닫히면 코일이 데워지는 대신 콘덴서가 충전되며, 콘덴서가 모두 충전되면 기전력이 강해져 자석이 연결되었다가 위와 동일한 원리로 전류가 전구로 통하면 코일이 식는 대신 콘덴서가 방전되어 기전력이 약해지게 되어 자석이 떨어지는 원리입니다.
이 경우, 콘덴서의 정전용량과 차량 전압이 동일할 경우 이론상으로 두 깜빡이를 동일한 주기로 깜빡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콘덴서의 표시용량과 실제용량이 항상 동일하지 않고 차량 전압도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이는 실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쌍팔년도 얘기였구요.
세월이 흐르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21세기의 자동차에는 수많은 전장품이 포함되어 나오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전기장비는 다른 전기장비와 연동되거나 자동차를 제어하는 메인 시스템과 연결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자동차의 RPM을 계기판에 숫자로 표시하고 이를 통해 연비를 계산하는 트립 컴퓨터, 오디오와 네비게이션 그리고 공조장치를 통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구현하기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1994년 처음으로 'CAN 통신' 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자동차를 수리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이 단어는, 쉽게 말해 자동차의 수많은 전장품을 제어하는 하나의 시스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차량의 시스템을 완전히 통합하려는 시도가 현재진행중이며 자동차의 깜빡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인포테인먼트와 트립컴퓨터를 포함하여 차량의 모든 시스템이 전자적으로 통합된 고급 차량은, 차량의 사운드 역시 별도의 소리 모듈이 아닌 카오디오 스피커에서 동시에 출력됩니다. 이런 차량이라면 보통 카오디오 튜닝시 차량의 소리를 스피커로 출력할 수 있도록 사운드 출력장치 연결이 따로 필요하거나, 아예 카오디오 튜닝시 시스템 사운드가 출력되지 않아 권장하지 않는 차량도 많습니다. 깜빡이 소리도 시스템에서 출력하므로, 차량 제조사의 디자인 지침에 따라 기존의 딱딱한 릴레이음 대신 듣기 좋은 부드러운 소리를 출력하는 등 UX 개선이 가능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자동차의 디지털 깜빡이음이 듣기 좋던데요.
이 종류의 차량은 깜빡이가 별도의 모듈이 아닌 차량 내부의 메인 프로세서에서 처리됩니다. 여기서 깜빡이의 속도를 조절하는 부품은 깜빡이 '모듈' 이 아닌 차량의 '메인 시스템' 에 장착된 클럭입니다. 차량 제어 컴퓨터 역시 고도로 발전한 현대식 컴퓨터의 일종이라 클럭 속도가 매우 정밀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하므로, 동일한 전자 시스템을 장착하고 동일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차량이면 깜빡이 속도가 항상 동일합니다. 한편, 동일한 제조사 동일 연식의 차량이라도 설치된 소프트웨어의 종류가 다르면 깜빡이 속도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디지털 깜빡이는 원가절감이 어렵기 때문에 구매한 옵션 여부에 따라 풀 디지털 깜빡이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로 현기차에서 깡통 ~ 아랫등급 옵션을 선택하였을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위와 같은 디지털 깜빡이 대신 전통적인 깜빡이 모듈이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이런 깜빡이 모듈에는 각종 집적회로가 들어가는 등 디지털화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NF소나타의 순정 깜빡이 모듈을 예시로 들면, 555 타이머로 추정되는 IC와 정전용량을 조절하기 위한 SMD 콘덴서, 그리고 후면에는 거대한 콘덴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타입의 신형 모듈은, 깜빡이 고장을 감지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한쪽 깜빡이가 나갈 경우 작동하는 쪽 깜빡이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깜빡이거나, 차량의 CAN 통신 시스템에 깜빡이 고장 신호를 전송하게 하는 기능 등을 포함합니다.
이 경우에도 콘덴서 값이 깜빡이의 속도를 제어하므로, 콘덴서의 정전용량 정확도 차이로 인해 깜빡이 속도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차가 신형 자동차임에도 깜빡이 속도가 맞지가 않는다면, 디지털 깜빡이 대신 위와 같은 모듈이 장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온도 기반의 깜빡이는 구하기 어렵지만 나머지 타입은 구하기가 쉬운 편. 왜냐하면 온도 기반 깜빡이를 사용한 차량에는 콘덴서 깜빡이 모듈이 호환되며 온도 깜빡이가 가진 단점을 모두 해결했으므로, 신형 깜빡이 모듈이 호환되지 않는 올드카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잘 봤습니다.. 추천~^^
- 테슬라 주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