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일에 도시바의 100% 자회사인 도시바 메모리 주식회사가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도시바 본사가 살아 남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며, 도시바 본사의 채무를 탕감한다는 걸 전제로 분사되었습니다.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도시바 본사는 1조 5,000억엔에서 2조엔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조달해 재무 상태의 개선을 도모합니다. 도시바의 재무 상태가 악화된 원인은 2015년에 사회 문제가 됐던 분식 회계와 PC 사업의 수익성 악화, 그리고 원자력 사업에서 기업 인수 실패 등이 있습니다. 도시바 메모리가 설립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원자력 사업에서 미국 기업을 잘못 인수한 것인데, 여기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된바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시바 메모리 사업 자체는 도시바의 재무 상태 악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시바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도시바 메모리에 분할된 사업의 2015년도(2015년 4월~2016년 3월) 매출액은 8,456억원, 영업 이익은 1,100억원입니다. 매출 영업 이익률은 13.0%로 우수한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할된 사업은 NAND 플래시 메모리의 개발 및 제조, 판매, 그리고 SSD의 개발 및 제조, 판매 등입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사업의 매출은 2016 회계년도 상반기(2016년 4월 ~ 9월)에 4045억엔. 영업 이익은 501억엔. 매출액에서 영업 이익률은 12.4%로 전년 영업 이익률 18.3%에 비해 낮지만 제대로 수익을 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시바 메모리의 출범과 함께 관계된 인력과 시설도 도시바 메모리 산하로 이관되었습니다. NAND 플래시 메모리의 설계 및 NAND 플래시 메모리 컨트롤러 설계를 담당하는 도시바 메모리 시스템즈와 NAND 플래시 메모리의 패키징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도시바 고급 패키지, 그리고 사업 파트너인 미국 웨스턴 디지털과의 합작 생산 자회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한편 3월 31일까지 NAND 플래시 메모리 사업과 SSD 사업을 담당하는 사내 컴퍼니였던 도시바 스토리지 및 디바이스 솔루션 회사에는 반도체 사업과 HDD 사업, 반도체의 연구 개발 기능(반도체 연구 개발 센터)가 남겨졌습니다. 반도체 사업의 내역은 마이크로 혼합 신호, 이미지 센서, 개별 반도체가 있습니다.
반도체 사업에서 이미지 센서 사업을 담당했던 이미지 센서 사업 총괄부는 NAND 플래시 메모리의 담당 부서인 메모리 사업부 산하에 있었습니다. 또한 SSD 사업을 담당하는 SSD 총괄부도 메모리 사업부 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즉 SSD를 포함한 NAND 플래시 메모리 응용 제품도 메모리 사업의 담당입니. 반대로 스토리지 제품 부문에서 담당하는 스토리지는 HDD 뿐입니다.
도시바 메모리의 발족에 관한 2017년 2월 24일자 보도 자료에서, 분할하는 사업의 정의가 '스토리지 및 디바이스 솔루션 회사의 메모리 및 관련 제품(SSD를 포함하나 이미지 센서를 제외)의 개발, 제조, 판매 사업 및 관련 사업'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보기 좀 어렵죠. 일단은 메모리 사업부 산하에 이미지 센서와 SSD의 담당 부서가 함께 있었음을 염두에 둔 문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그나마 나이질 겁니다.
도시바 메모리 주식회사의 출범을 전제로 한 매각 공모(1차 입찰, 3월 29일 마감)에는 10개 안팎의 입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 8개 회사의 이름이 밝혀졌는데, 대부분은 반도체 업계 나 IT 업계에서 잘 알려진 기업입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웨스턴 디지털, SK 하이닉스, 혼하이정밀(폭스콘), 브로드컴, 실버레이크 파트너가 있네요.
응찰한 기업은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눕니다. 우선 NAND 플래시 메모리 제조 업체가 있습니다. NAND 플래시 메모리 사업의 파트너 인 웨스턴 디지털과 NAND 플래시 메모리에서 경쟁하는 SK 하이닉스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웨스턴 디지털이 응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NAND 플래시 메모리의 공동 개발과 공동 생산에 도시바와 50 대 50, 즉 동등한 관계에있는 웨스턴 디지털(원래는 샌디스크) 입장에선 외부 기업의 참여는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SK 하이닉스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업계에서 점유율이 낮습니다. 도시바 메모리를 포용해 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늘리겠다는 동기는 충분합니다. 덧붙여서 NAND 플래시 메모리 업계에서 1위는 삼성 전자, 2위가 웨스턴 디지털과 도시바의 연합, 그 다음이 마이크론과 인텔의 연합. 마지막이 SK 하이닉스입니다. 이는 시장 점유율 외에도 업계 견인력이나 기술력을 감안한 것입니다.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 입찰에 응하는 또 다른 그룹은 NAND 플래시 메모리 이외의 반도체 제조사입니다. 이 그룹에선 통신 네트워크용 반도체의 최대 기업인 브로드컴을 꼽을 수 있는데요. 보도에 따르면 2조엔의 금액을 써서 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NAND 플래시 메모리나 SSD를 사용하는 입장에 선 기업입니다. 애플(스마트폰), 구글(서버), 아마존(서버), 혼하이정밀(하드웨어 제조)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투자 펀드입니다. 기술 중심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문인 실버레이크 파트너가 2조엔 규모의 금액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아직 알 수 없는 건 도시바 본사가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을 얼마나 팔겠냐는 겁니다. 과반수임은 확실합니다. 매각 이익으로 약 1 조엔을 보기 위해선 자산 가치 5,000억엔을 공제하고 약 1조 5,000억엔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각 이익 1조엔은 채무를 해결하고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입니다.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을 모두 매각하는, 즉 도시바 메모리 자체를 전량 매각한다고 가정한다면 도움이 되는 것이 웨스턴 디지털이 샌디스크를 인수했을 때의 가격입니다. 2015년 10월에 인수 합의를 발표, 2016년 5월에 인수 절차를 완료했을 때 금액이 약 190억 달러입니다. 도시바와 샌디스크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웨이퍼 출하 기준)의 절반씩을 가져가기로 계약했습니다. 즉 도시바와 샌디스크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서 동등한 규모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시바 메모리도 약 2조엔이라는 금액이 나온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2015년 10월 시점에서의 평가와 2017년 2월의 평가는 상당한 상황 변화가 있습니다. NAND 플래시 메모리의 수급 구조가 변화한 것이죠. 공급 부족으로 NAND 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오르고 있어 매각 금액은 더 높아질거라 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매각을 서둘러야한다는 도시바의 내부 사정이 드러난 상황이기에 오히려 매각 금액이 2조엔보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2조엔이 전체 지분이라고 치면 1조 5천억엔은 주식의 3/4를 매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일 회사에 매각한다면 그곳이 도시바 메모리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파트너인 웨스턴 디지털 입장에서 내키는 전는 아니나, 거부권을 내세워 매각을 막으면 도시바 본사가 파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바 메모리에는 약 9,0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도시바 본사가 2018년 3월 말까지 매각을 끝낸다면 도시바 메모리에서 '도시바'가 빠지면서 외국계 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직을 알아보는 직원들이 적지 않게 나오겠지요. 도시바 메모리의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대부분은 근처에 거주하고 있기에 움직이지 않겠으나, 도쿄 쪽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이직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는 전자 기업의 반도체 사업 분할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입니다. 유능하다고 판단한 직원을 본사가 자회사에서 뽑아올 수 있습니다.
이르면 올 5월에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 매각이 합의를 볼 것입니다. 일본계 기업이 2차 입찰에 응하거나 일본 정부 쪽의 금융 기관이 출자를 결정하는 등, 매우 가능성이 낮은 역전극이 일어나지 않는 한 도시바 본사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도시바 메모리 내부의 인적 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