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명 스위스나이프-멀티툴 이라고 부른것이 있습니다. 멀티 툴만 있으면 모든지 할 수 있다! 라는 거죠. 이 기능도 저 기능도 칼부터 드라이버 심지어 이쑤시개 까지 모든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것을 다 할 수 있는 멀티 툴인데 막상 뭔가 하려고 하면 불편합니다. 멀티툴에 달린 드라이버로는 컴퓨터 조립을 하기 힘들고, 칼로 작은 나뭇가지 정도는 깎아도 식칼 처럼 야채는 썰수 없고 달린 펜치로 뭔가 하려고 하면 펜치가 휩니다.
비유가 좀 길었습니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모든 단자를 Type-C로 통일하는건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1. 직관성이 떨어진다.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입니다. 단자가 지녀야할 덕목중에선 가격, 처리되는 정보속도, 케이블의 두께 등등 여러가지 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직관성 입니다. 과거에 노랑 빨강 하양 단자의 RCA는 정말 직관성이 좋은단자 입니다. 한번만 배우면 누가봐도 이게 뭘 하는 단잔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왜 그 이후로 색깔이 칠해진 단자는 안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현대에 와서는 HDMI가 참 좋은 예입니다. HDMI를 꽂기만 하면 음성과 영상이 나온다는 단순함 그리고 직관성이 있습니다. USB Type A는 좀 다릅니다. 꽂기만 하면 왠만하면 모든지 할 수 있었죠. 여기서 중요한건 '왠만하면 모든지'입니다. 적어도 확실하게 '데이터 전송'의 기능과 미약하게 라도 '충전'기능까진 할 수 있습니다. USB는 말그래도 '할 수 있는것에 대한 범위'가 적어도 확실 합니다.
하지만 Type C는 극단적인 예를 들면 될줄 알고 꽂았는데 안되는경우가 발생 합니다. 꽂으면 영상이 출력 될 줄 알았는데 영상이 출력이 안됩니다. 꽂으면 충전이 될줄 알았는데 충전이 심각하게 안됩니다. 꽃으면 PCI로 쓸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됩니다. 좀더 구체적인 예로 어떤 사람이 Typc-C로 전원 구동과 데이터 교환을 모두하는 디바이스를 만들었다고 했을때 이 디바이스는 전력이 부족한 순간 제대로 동작을 안할겁니다. 심지어 지금 전원 규격이 저렇게 파편 난 상태라면 (USB-A는 전압값이라도 동일했으니까요) 기기에 작동하지않은건 물론이고 기기에 손상을 줄 과전류가 흐를 수 도 있습니다.
2. 필연적으로 단가가 올라간다. 모든걸 다 하려고 하면 뭔가를 잃게 됩니다. 멀티툴에서는 그게 기능 자체의 손상이면 단자에서는 그게 가격이 됩니다. 소소하게는 없는 기능이지만 type-c가 달려 있으니까 헷갈리지 않게 프린팅이라도 해야 합니다. 5v의 입력값을 받는 디바이스에 9v입력 값을 넣을 수도 있으니까 그걸 방지 하는 회로 또는 프린팅을 해야 겠죠.
케이블도 마찬가지 입니다. 5v면 충분한데 9v 12v를 전달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 케이블은 두꺼워집니다.
수정합니다. 전압 문제가 아니고 전류-전력 문제네요. 두꺼워 지는 문제는 아닙니다. 자세한 설명은 밑에 필로티어님 댓글을 참조해주세요.
벌써부터 얇은 저질type-c케이블에 사고가 나는경우가 제대로 충전을 지원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호환케이블은 만들기 힘들어지고 케이블 자체의 가격은 뛸 수 밖에 없습니다.
--
사실 단자 규격이란건 전선을 잇는 규격이 뿐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매번 전선을 이어서 쓸 수 없으니까. 단자라는걸 쓰는겁니다.
저런면에서 해결책이라 하면 예전 RCA단자처럼 색깔으로 라도 기능을 좀 구분해 줬으면 합니다. 데이터와 영상은 노란색, 충전은 5v는 파란색 9v는 녹색 뭐 이렇게라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아니면 1 2 3 처럼 써놔서2에는 1과 2을 낄 수 있지만 3은 낄 수 없다던가. 단자 테두리에 원모양으로 색을 입혀서 반쪽이 빨강이고 반쪽이 노랑으로 구분 한다던가. 이런 식으로 라도 빨리 단자의 직관성을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
하지만 Type-C의 다양한 프로토콜 지원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Alt mode라는 외부 프로토콜을 직렬 버스로 쏴 줄 수 있도록 변환해주는 프로토콜을 지원하는 USB 컨트롤러가 없다면 썬더볼트도 DP도 HDMI도 전부 그림의 떡이죠. Alt mode를 지원하는 포트는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하거나 최소한의 식별 표시를 해 둘 겁니다. 그렇지 않은 포트에 그런 치장을 하는 건 사기니까요.
단가 부분은 할 말도 없이 약점입니다. 랜 케이블이 CAT 버전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거나, HDMI 케이블이 2.0을 지원하는 물건이 더 비싼 것을 보면 분명하며, 결정적으로 이미 USB도 그러했습니다. 현재 Type-C가 USB2.0 프로토콜만 지원하는 기기가 대부분인 이유 또한 거기에 있을 겁니다.
전원 규격은 USB PD(파워 딜리버리)를 준수한다면 기기가 작살날 위험은 없습니다. 앞서 생긴 이슈는 표준 미준수로 인한 과전류 인가가 원인이었습니다. PD는 Type-C만을 지원하며, 정상적으로 설계된 PD 준수 칩셋과 케이블은 상황에 따라 알맞은 전압과 전류를 끌어다 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기기가 요구하는 만큼 전원 장치는 전기를 출력하며, 케이블은 자신의 최대 스펙까지 전기를 전달해줄 수 있습니다. PD 지원 기기는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인가 전류/전압을 자유자재로 변동 가능하며 혹여 기기가 PD를 미지원할 경우 USB의 기본 출력인 5V 0.5A(2.0까지) 혹은 5V 0.9A(3.0 이후)만 인가됩니다. PD를 지원하기만 하면, 칩셋이 알아서 일하므로 표준만 준수한다면 기기가 5V는 지원하는데 9V는 지원하지 못해서 기기가 타버리더라—같은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혹여 9V를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칩셋이 그런 전압 인가를 허용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PD 표준을 준수하는 디바이스와 충전기, 케이블만 있다면 디바이스가 터지거나 타버릴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Type-C의 최대 장점은 리버시블입니다. 라이트닝이 무사히 시장에 정착한 이유 중 하나로 편한 연결을 들 수 있지요. 뒤집어도 신호가 제대로 전송되도록 설계된 Type-C 단자는 그 무엇보다도 편리하다고 봅니다. 라이트닝 이래로 한번도 그런 규격은 보지 못했거든요. 분명 Type-C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