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생업으로 하는 형님 한 분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신티크가 고장났다고 하더군요. 이전에 비슷한 증상 때문에 수리를 받았는데도 터치가 먹통이 되어서 그냥 대충 쓰신다는 겁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제가 한 번 보겠다고 하고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고장난 기계가 근처에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어요.
모바일스튜디오 계열은 프로 라인업으로 오기 전까지는 성능에 비해서 높은 발열과 쿨링팬 소음으로 말이 많았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돌연사 하는 경우가 이따금씩 있습니다.
뭐, 애초에 디지타이저를 만드는 회사라 노트북/태블릿 설계가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와콤은 항상 패널 발열이 고질적인 문제였죠. 신티크 프로 신형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디스플레이에 쿨링팬까지 달려있습니다. 곧 신티크 프로 24로 교체할 예정인데 벌써부터 여름 걱정이 태산이에요.
어쨌든, 이번에 손보게 된 제품은 '신티크 컴패니언 2'입니다.
2015년 출시, 5세대 인텔 CPU, DDR3 메모리, 윈도우 8 pro 운영체제 탑재.
요즘 나오는 프로 라인업과는 다르게 상-하판 분리가 그나마 쉬운 편이고 업그레이드 슬롯도 나름 후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지금도 저렴한 입문용 디지타이저 겸 태블릿으로 종종 거래되고 있습니다.
증상은 세 가지. 1, 팬 소음이 심하다. 2, 발열이 심하다. 3, 터치 인식이 먹통이다. (중요)
겉면을 살펴보자면 약간 낡은 것 외에는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으므로, 1번과 2번은 내부 청소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3번은 패널 문제가 아니라면 9할은 소프트웨어 부분이 엉켰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도 윈도우 클린 설치를 통해서 레지스트리를 초기 상태로 날려버리면 됩니다.
나무위키에서는 클린 설치를 진행할 경우 간혹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고, 윈도우 8에서 10으로 올리는 도중에 드라이버 어딘가가 맛이 갔다고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사실 이게 제일 합당한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스플레이가 다치지 않도록 수건을 깔고 작업하겠습니다.
컴패니언 2는 후면 나사만 제거하면 쉽게 상/하판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접착제가 듬뿍 발린 고무에 숨겨져 있죠. 그냥 뜯을 수도 있지만 고무가 뜯어질 수 있으므로 히팅건을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가정집에 누구나 하나쯤 상비하는 히팅건을 사용하겠습니다. 네, 헤어드라이기요.
너무 달궈지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하며 접착제에 열을 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미술용 헤라나 칼 등으로 조금씩 들어내면 됩니다. 생각보다 많이 뻑뻑하네요.
접착제가 아니라 접착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네요. 어쩐지 너무 안 떨어진다 싶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지저분하니 재장착할 때는 새 양면 테이프를 붙여줘야겠어요.
상/하단 고무를 모두 분리했습니다.
은색 나사가 보입니다. 전부 분리해주고, 디스플레이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어 줍시다.
컴패니언의 기판은 이렇게 생겼군요.
거대한 배터리가 먼저 눈에 띕니다.
영롱한 2개의 메모리 슬롯이 반갑지만, 참으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히트 파이프가 발열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네요.
배터리가 장착된 기기를 다룰 때는 항상 제일 먼저 배터리부터 분리해야 합니다.
낮은 확률이지만 작업 과정에서 쇼트가 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 밖에도 기판과 연결된 모든 케이블을 탈거하고 재장착했습니다.
딱히 케이블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면 전부 다 점검해 보는게 상책이죠.
이소프로필 알코올을 사용하여 묵은 때를 제거합시다.
...너무 많네요. 쿨링팬 떼고 다시 해야겠습니다.
남는 슬롯에는 집에 굴러다니는 메모리를 장착해줬습니다.
똑같이 8+8GB로 맞춰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집에 남는 건 4GB밖에 없네요.
그래도 다다익램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흡/배기 팬.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 치고는 그렇게 심각하진 않습니다만 어쨌든 묵은 먼지가 블레이드에 코팅되어 있습니다.
태블릿 특성상 분리하는 것 조차 쉽지 않으니 충분히 이해됩니다. CPU 써멀은 가루처럼 휘날린다에 걸죠.
가루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썩 좋은 상태는 아니네요.
내기는 비긴 겁니다.
이소프로필 알코올을 묻힌 면봉으로 잘 닦아냅니다.
느낌표 모양의 다이. 그래픽 코어도 꽤나 크네요.
요즘 나오는 모바일 CPU 다이는 저거의 절반만하던데 말이죠. 발열이 높은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비할 만한 것은 다 끝냈으니 이제 재조립합시다. 뽑아놓은 케이블들을 다시 연결하고, 분해의 역순으로 조립하면 됩니다. 그리고 윈도우를 설치해야죠.
--- 클린 설치 과정 생략 ---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제 잘 됩니다.
터치도 동작합니다. 원래는 드라이버 단에서 아예 인식을 못 하는 바람에 '터치 사용 불가' 라고만 출력되었거든요.
역시 레지스트리 어딘가가 꼬여있던 게 분명합니다.
반나절이나 걸리긴 했지만 마소 자동 드라이버 업데이트도 다 끝냈습니다. 클린 설치하는 김에 해둘 수 있는 건 다 해 두는게 좋죠.
작업 관리자를 봅시다.
브로드웰 i5-5257U. 2코어 4쓰레드. 아이리스 그래픽 6100.
이제 쓰로틀링도 걸리지 않고 그런대로 쓸만한 클럭이 나옵니다.
DDR3 12GB 메모리.
16GB로 맞췄으면 좋지 않았을까 못내 아쉽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구매하라고 바람 좀 넣어야겠어요.
이렇게 고물 태블릿으로 창고에 처박힐 뻔 했던 컴패니언은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금 빡세게 굴려지게 되었습니다.
노인 학대 아니냐고요? 에이, 브로드웰 정도면 현역이죠.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는 사용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것이 제 지론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티크를 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