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PFU가 개발/제조/판매하는 해피 해킹 키보드(HHKB)는 2016년 12월 20일자로 첫 제품이 나온지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여기에선 개발 초기에 참여했던 개발자들이 참여해 해피해킹 키보드가 어떻게 생겨났고, 20년 동안 거의 같은 형태를 유지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해피해킹 키보드는 1996년 12월에 2세대 제품이 나왔는데, 그때는 500대 뿐이었다고 합니다. 허나 지난 고급형 키보드로 인정받아 20년 동안 40만대를 팔았다네요.
변화가 큰 PC 시장에서 20년 동안 모습이나 형태를 바꾸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해피해킹 키보드의 기본 모델을 고안했던 도쿄 대학의 와다 에이이치 명예교수는 '미국의 카우보이는 말이 죽으면 거기에 버리고 사막을 걸어가나 안장은 짊어진다. 말은 소모품이나 안장은 자신의 몸에 맞춘 인터페이스기 때문이다. PC도 소모품이나 키보드는 평생 쓸 수 있는 인터에이스로, PC가 2년마다 도태되도 키보드는 계속 쓸 수 있다는 개념과 신념을 바탕으로 키보드 사업을 계속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해피해킹 키보드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1970년대엔 다양한 PC와 각각의 규격/표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2년에 PFU가 발행하는 기술 정보지 PFU 테크니컬 리뷰에 서문을 써달라는 의뢰가 해피해킹 키보드를 고안한 와다 교수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원래 머리말은 1~2페이지지만 10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써서 보내줬다네요. 제목은 키보드의 배열에 관심을 써 달라는 것. 내용은 당시 키보드에 대한 고찰로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pfu.fujitsu.com/hhkeyboard/pfutechreview/
논문의 내용은 PC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한인 인터페이스가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와다 교수는 당시에 Sun의 워크스테이션을 사용중이었는데 시스템을 바꿀 때마다 키보드 배열이 바뀌어 매우 불편했다네요. 그래서 컴퓨터는 그대로 두고 다른 컴퓨터는 네트워크로 연결, 키 바인딩을 커스텀, 키보드 커넥터를 규격화하고 자신만의 키보드를 갖고 다님, 키보드의 공통 부분을 규격화하고 거기만 쓴다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PFU의 선택은 바로 마지막이었습니다.
논문을 쓴 당시에는 별 반향이 없었고 와다 교수도 자신이 이런 글을 썼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 도쿄 대학을 정년 퇴직하고 후지쯔 연구소로 징장을 바꾼 와다 교수에게, 1년에 2번 있는 성과 보고회를 위해 PFU의 신카이 전무가 오게 됩니다. 이분은 1970년에 이미 와다 교수와 함께 컴퓨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어 안면을 텄는데, 만난 김에 1992년에 썼던 논문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키보드를 실현하기 위해 PFU에 와달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잘라 만든 키보드 배열을 들고 PFU에 갔습니다. 당시엔 거절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PFU의 개발자들은 진지하게 프로젝트를 시작해 1996년에 제품을 만들어 12월의 WIDE 연구회에 전시했는데, 5백개가 다 팔렸습니다. 즉 PFU의 사장이 원고를 의뢰하고 와다 교수가 기본 개념을 제안하고 신카이 전무가 그걸 기억해서 컨셉대로 프로젝트가 나온, 기막힌 우연 끝에 제품이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해피해킹 키보드는 PFU의 프로젝트 중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컨셉 모델은 X 터미널 키보드를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아스키 배열이 작고 가볍고 강도가 뛰어나야 하며 스트로크가 꽤 깊어야 한다는 개발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이게 1996년 12월 20일에 나온 첫 모델입니다. 개발에 든 비용은 2천만엔이고,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1대당 3만엔에 팔았습니다. 500대면 1500만엔을 버니 여전히 적자군요.
PD-KB01의 실물 사진.
첫 모델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옻칠 모델. 비매품입니다.
처음엔 HHKB가 아니라 해피 해킹이란 로고가 있었습니다.
커넥터는 키보드 안에 수납.
아스키 배열을 채택했다는 점을 들어 미국 시장에도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애플이나 픽사에서도 주문을 했지만, 품질은 인정하면서도 3만엔이라는 가격이 비싸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저가형 모델을 만들기로 결정, OEM 공급이 가능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게 대만의 키보드 제조 회사인 Chicony 전자. 한달에 250만대의 키보드를 만드는 회사가 한달에 1000~2000개의 주문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으나 어쟀건 진행. 위 사진이 1999년에 나온 저가형 모델인 HHKB 라이트입니다.
그래도 미국 시장에선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명이 영업, 판매, 광고까지 하면서 차에 싣어가지고 다니며 홍보하는 식이었지요. 그러다 거래처에서 들은 말이, 바이러스와 웜 때문에 해킹이란 이름은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거였다네요. 그래서 자체적인 이름을 쓰게 됐습니다.
미국 시장에선 Palm에 키보드를 연결해서 쓰도록 해주는 해피 해킹 크래들이란 제품도 나왔습니다. 미국 잡지에선 꼭 사야 할 물건으로 높게 평가했으나, 정작 판매량은 별로라서 흑역사 취급.
2001년에 나온 HHKB 라이트 2는 스테디셀러 모델이 됐습니다.
맥 버전도 나왔습니다.
이렇게 미국 시장의 부진을 벗어나고PC/유닉스 외에 맥까지 지원하는 모델을 내놓고.
토프레와 협력해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을 채택(금형의 감가 상각이란 시행 착오가 있었음), 무각인 모델의 출시(개발진의 딸이 피아노 도레미 스티커를 붙였던 것에서 착안).
알루미늄 프레임을 쓴 HG.
한정판 옻칠 모델을 내놓았습니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키보드를 이렇게 실현한 듯.
이건 키 스트로크를 0.2mm로 줄여 소음을 최소화한 타입 S.
블루투스 모델도 올해 내놓았습니다.
헉 가격찾아봤더니 3만엔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