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라에는 인텔 본사가 있고, 그 옆의 로버트 노이스 빌딩 RNB 1층이 인텔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느 박물관과 비교하면 그리 크진 않습니다. 대신 입장료는 없음, 사진 촬영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1968년 7월 18일에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실리콘 밸리 지역의 일부)에 인텔을 세웠습니다. 산타 클라라와 거리도 10km 정도로 멀지 않죠. 위 사진은 1969년에 106명의 모든 직원이 모여 찍은 것으로, 2016년 12월 31일의 직원 수는 106,000명이니 17년 동안 직원 수가 천배 늘어난 셈.
인텔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회사이자, 세계 최대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업체지만, 처음 인텔의 목표는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아니었습니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커다란 자기 코어 메모리를 작고 얇은 반도체 메모리로 대체하는 것을 인텔의 목표로 삼았었지요. 그래서 인텔의 초창기엔 반도체 메모리 제품이 많으며, 이 글에서도 메모리만 뽑아내 소개하는 거.
인텔이 자기 코어 메모리를 대체하겠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첫 제품, 숏 키 바이폴라 RAM 3101(용량 64비트)과 3101이 들어있는 2인치 실리콘 웨이퍼입니다. 1969년 4월, 그러니까 창업한지 9개월만에 첫 제품을 개발한 것입니다.
다만 인텔은 당시 주류 제조 기술이었던 바이폴라가 아닌 MOS 공정이 주류가 될 것이라 판단, 3101로 돈을 벌어 최초의 MOS 프로세스 제품인 스태틱 RAM(SRAM) 1101을 1969년에 개발했습니다.
인텔은 1101이 세계 최초의 MOS 공정 제품이라고 설명하지만, NEC가 1968년에 144비트 MOS SRAM을 개발했으며, 1973년엔 일본 전신의 메인프레임인 DIPS-1에 채용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출시 자체는 1101이 가장 빠르긴 합니다.
SRAM은 이론적으론 논리 회로, 엄밀하게 말하면 플립 플롭이니 회로 기술은 혁신적이나 구조가 새롭진 않습니다. 정말 혁신적인 건 SRAM에서 트랜지스터 수를 크게 줄인 다이나믹 RAM, 줄여서 DRAM 되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DRAM은 인텔이 1970년 10월에 내놓은 1103인데, 이거야말로 자기 코어를 대체할만한 제품이 되겠습니다. 용량은 1024비트, 그러니까 1Kbit.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쓰이던 자기 코어 메모리와 같이 비교하면 DRAM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코어 메모리는 작은 자기 세라밍 링의 자기장에 정보를 저장하며,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건 비휘발성 메모리를 전시한 코너입니다.
인텔은 DRAM을 개발한 이듬해인 197년 9월에, 세계 최초로 내용을 지울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ROM(EPROM)인 1702를 출시합니다. 1702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전원을 꺼도 저장된 내용이 지워지지 않으며, 사용자가 외부에서 메모리 내용을 전기적으로 기록하고, 또 삭제하며 다시 쓰는 것이 가능한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메모리입니다.
이것은 저장된 내용을 지울 땐 자외선을 사용하기에 자외선 소거형 EPROM(UV-EPROM)이라고 합니다. 자외선을 실리콘 다이에 쬐어 저장된 내용을 삭제하기에, 일부만 지우진 못하고 전체를 지우게 됩니다.
UV-EPROM은 매우 많이 팔려 인텔을 지탱하는 핵심 사업이 됐지만, 2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저장된 내용을 지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는 건데, 1702가 얼마나 걸렸는진 알 수 없으나 1980년대의 일반적인 UV-EPROM은 내용을 지우는데 15~20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시간은 자외선의 강도에 따라 달라진다네요.
그리고 자외선을 쬘 창을 넣어야 하니 값비싼 세라믹 패키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전반까지 반도체 제품은 비싼 세라믹 패키지를 주로 사용하다가, 1970년대 후반에서 저렴한 플라스틱 패키지로도 충분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는데요. 덕분에 DRAM, SRAM,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저렴한 플라스틱을 패키지에 사용해 제조 단가를 낮췄으나 UV-EROM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일부 데이터만 지우진 못하고 데이터 전체를 모두 지워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당시의 DRAM이나 SRAM는 1바이트나 1비트 단위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인텔은 1980년에 저장 단위를 바이트 수준으로 줄인 프로그래머블 ROM(EEPROM) 2816을 개발했습니다. 16Kbit의 용량을 지닌 2816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같은 용량을 지닌 UV-EPROM에 비해 실리콘 다이 면적이 훨씬 커지면서 제조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 이래가지고서야 플라스틱 패키지를 써도 제조 단가 절감 효과가 크지 않지요.
사실 인텔의 EEPROM 사업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건, 인텔의 당시 주력 사업이었던 UV-EPROM과 팀킬할까봐 인텔이 주저했다는 점이 큽니다. UV-EPROM으로도 충분한 사업을 내고 있는데 위험 부담이 큰 EEPROM에 굳이 투자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후 1978년부터 1981년 사이에 UV-EPROM과 EEPROM을 비롯한 비휘발성 메모리 개발을 주도한 대다수 핵심 기술진은 인텔을 퇴사합니다.
인텔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1980년대 중반에 사업 계획을 수정합니다. 도시바가 1984년에 일괄 삭제형 EEPROM이라고 부르는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발표한데 착안하여, 인텔은 NOR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고 1988년에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 공식적으로 진출합니다. 이게 성과를 거둬 1991년엔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 주력하면서 UV-EPPROM 사업에서 철수, 1990년대 후반엔 NOR 플래시 메모리의 1위 기업이 됐습니다.
NOR 플래시 메모리를 처음으로 탑재한 카드형 스토리지인 인텔 플래시 미니카드. 용량 4MB, 1996년에 나왔습니다. 8Mbit NOR 플래시 메모리인 28F008SA를 탑재.
NOR 플래시 메모리의 기술인 StrataFlash의 전시. 1997년에 2비트/셀(MLC)을 실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NOR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인텔은 NOR 플래시를 하고 있다며니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진출이 늦어졌죠. 그래서 반도체 메모리 제조사인 마이크론과 제휴해 2005년 11월에 합작 회사를 설립,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다만 인텔의 낸드 플래시 점유율은 삼성, 도시바, 샌디스크 다음일 뿐.
25nm 공정과 3비트/셀(TLC) 기술로 상용화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 2010년에 생산. 전시된 제품은 64Gbit 실리콘 다이를 2장 넣은 29F16B08.
그리고 이곳엔 마이크론과 공동 개발해 2015년 7월에 발표한 비휘발성 메모리인 3D XPoint와, 이를 상용화한 옵테인에 대한 전시는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추가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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