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부터 자주 보이기 시작한 SSD는 출시 초기 상당한 고가에 판매되었으나, 이후 반도체 제조사들의 경쟁 아래에 끊임없이 가격 하락 기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러한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으나, 이제 그 속도가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한 때 1TB에 5~6만대까지도 떨어졌던 리테일 SSD 가격은 이제 1TB당 10만원 내외에 안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년 큰 폭으로 떨어졌던 가격이 다시 상승하여 유지되고 있는 만큼 낮은 가격대의 SSD 판매량이 다시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특이한 가격 동향을 보이는 제품이 등장했습니다. 제조사에서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시트 상으로는 꽤 준수한 성능이지만 낮은 용량으로 인해 기구하게도 다른 SSD에 대체되는 상황에 놓여, 노트북 적출상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스펙대비 상당한 저가에 시장에 나온 녀석입니다. 통칭 파이슨 ESO256GHLCJ-EL1(이하 파이슨 ESO256G)입니다.
본인은 배송비 제외 16000원(GB당 62.5원)에 구매하였습니다.
외관 및 사양

파이슨 ESO256G는 단면 제품으로, 한 면에 4개의 낸드를 실장할 수 있습니다. 256GB 기준 그중 2개의 낸드 공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노트북 등 두께가 제한된 공간에서 양면 실장형 대비 호환을 덜 탑니다.
컨트롤러는 파이슨 PS5021-E21-48으로, PCIe 4.0x4 디램리스 컨트롤러입니다. 같은 컨트롤러를 사용한 제품에는 커세어 MP600 core XT/MP600 GS, 팀그룹 MP44L, 실리콘 파워 UD90, KLEVV CRAS C910 Lite 등이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기판의 구성 면에서 거의 같은 형태를 보이는데, 이를 보아 같은 공장에서 OEM으로 제조되었거나 최소한 파이슨의 레퍼런스 디자인을 따른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팀그룹 MP44L의 경우 본사 측에서 OEM 제품을 유통하는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유통사 차원에서 다른 공장에서 제조된, 다른 디자인의 OEM 제품을 파이슨 컨트롤러가 탑재된 이 제품과 교환해준 이력이 있습니다. (출처 : https://quasarzone.com/bbs/qn_partner/views/1276517)
또한, 해당 컨트롤러는 Crucial P3/P3 plus에 사용된 적이 있으며 해당 제품에서 QLC 낸드와 함께 실장되었습니다. 다른 제품들은 대부분 TLC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기에, 해당 컨트롤러가 3D TLC/3D QLC 양 낸드를 모두 지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파이슨 ESO256G의 경우 하이닉스 176단 3D TLC 낸드가 사용되었습니다.
해당 정보를 종합해볼때, 이는 파이슨에서 OEM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파이슨 PS5021-E21T 또는 PS5021-E21TI와 제일 흡사합니다. 아래는 사양표로, 해당 솔루션의 공식 브로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출처 : https://www.phison.com/en/)
테스트
파이슨 ESO256G를 테스트를 위해 설치하였으며, ASRock X570 Taichi 메인보드의 M.2_3 슬롯을 사용하였습니다. 해당 슬롯은 X570의 PCIe 4.0x4 레인을 이용합니다. M.2_1과 M.2_2에는 각각 WD SN850X 2TB와 SK 하이닉스 BC901 256GB가 장착되었으며, 파이슨 ESO256G와 함께 메인보드의 기본 M.2 방열판을 공유합니다.
CrystalDiskMark8_0_6

벤치마크에 사용된 버전은 8.0.6이며, 설정은 NVMe, 프로필은 기본값입니다.
크리스탈 디스크 마크에선 용량 대비 꽤 괜찮은 점수를 보여줍니다. 순차읽기 4900MB/s, 순차쓰기 2750MB/s입니다. 랜덤 4kB 점수의 경우 읽기가 2000MB/s, 쓰기의 경우 저하 없는 2750MB/s의 수치가 나오며 이를 IOPS로 환산시 각각 읽기 500K, 쓰기 680K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해당 벤치마크의 랜덤 쓰기의 경우 조금 부정확한 면이 있고, 객관성 있는 수치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순차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가격의 다른 제품들 대비 상당히 높은 점수인 것은 확실합니다. 특히나 SSD는 고용량일수록 그 성능도 비례해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256GB의 낮은 용량으로도 이러한 성능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이에 근접한 성능을 내는 것은 똑같이 노트북 적출 품목으로 판매되고 있는 SK 하이닉스의 BC901뿐이며, GB당 가격으로 비슷한 가성비를 내려면 WD BLUE SN580 2TB같은 고용량 디스크를 구입해야합니다.
나래온 더티 테스트 6.0.4
그러나 표면적인 벤치마크상의 점수가 높다고 해서 그 속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SSD는 대용량의 파일 전송시 SLC 캐싱 구간을 지나면 성능이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이는 디램리스 SSD들이 기피되는 요인 중 하나로, 저가형인 제품군 특성상 SLC 캐싱과 메모리 버퍼의 지원이 없으면 하드디스크 수준의 속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잦기 때문입니다.
파이슨 ESO256G도 디램리스인 이상 그러한 구간이 오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파이슨 ESO256G는 대략 전체용량의 78% 즈음에서 SLC 캐싱이 끝나는 것으로 보이며, 이후 평균 3~400MB/s대의 속도를 보여줍니다. 중반을 넘어가면 잠깐잠깐 제 속도를 되찾는 경우도 있으나, 큰 영향을 주진 못합니다.
물론 SLC 캐싱 구간을 다 채울만큼 큰 데이터를 한번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가격대인 BC901의 캐싱 구간이 더 길게 잡혀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400MB/s로,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지는 속도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나마 하드디스크 수준으로 내려가진 않는다는게 위안이 될 순 없겠죠.
온도
온도의 경우 최대 부하에서 52도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미 2개의 NVMe SSD와 방열판을 공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이 온도의 경우 창문을 열어놓은 방에서 측정되었으며 실내 온도 15도 수준이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창문을 닫고 난방을 가동한 뒤에는 최대 62도까지도 오르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PCIe 4.0 SSD인만큼 방열판 사용이 권장되며, 일단 방열판이 있다면 발열 수준은 크게 걱정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총평
새 컴퓨터를 구입할때, 일반적으로 저장장치에 5~10만원대의 예산이 투입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현재 비싸봐야 보통 3만원대를 채 넘지 않는 256GB의 용량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용 보조 디스크, HTPC 등 세컨드 컴퓨터, 저가 사무용 빌드 등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대용량 단일 디스크가 필요치 않은 환경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용도로는 아직 값비싼 대용량 SSD보다 파이슨 ESO256G가 어울립니다.
다만 현재는 비슷한 가격대에 이미 하이닉스 BC901이 존재한다는 점이 관건입니다. 비슷한 속도에, 더 넓은 캐싱 구간과 캐싱 구간이 끝난 이후에도 더 높은 속도를 유지하는 BC901이 단돈 1000원 차이(작성 당일 기준)이고, 한창 노트북에서 적출된 재고가 많았을 시기에는 BC901 측이 더 낮은 가격을 형성한 적도 있으므로 그쪽을 고려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쓰고 나니 그냥 BC901 사라는 말처럼 보여요
추천 이유 :
+ 노트북 적출 벌크로 높은 가성비 (작성 당일 기준 GB당 62.5원)
+ 낮은 가격, 낮은 용량에 걸맞지 않는 높은 성능
비추천하는 경우 :
- 디램리스 SSD는 절대 사지 않는 분
- 캐시 구간 이후의 성능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시는 분
- 조금 더 대용량의 단일 디스크가 필요하신 분
- BC901의 재고가 늘어나 가격이 같거나 더 낮아질 경우 가성비가 애매해짐
- 노트북 적출 벌크 제품 특성상 보증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