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가 글이 많이 길어져 포럼으로 옮겼습니다.
기계식 키보드를 쓴 지는 좀 됐습니다. 10년경에 나온 제닉스 테소로 M7이 제일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그 때가 아마 이제 막 기계식 키보드라는 것이 국내에서도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을 겁니다.
미국 등지에서야 오래된 기계식 키보드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이야기이지요.
체리 MX라는 생소한 이름을 접했던 것도 그 때입니다.
이제는 다들 익숙하실 체리 MX의 내부 접점 구조입니다.
그때는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습니다. 흑축, 갈축, 청축. 하지만 그렇다고 선택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키보드 한 판에 15만원이라는 가격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둘 다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심사숙고 끝에 게임에는 리니어가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흑축을 구매했었습니다.
사실 첫 기계식 키보드는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외장 재질이나 디자인도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았고, ABS에 스텐실 도장을 뜬 키캡은 촉감이 영 아니올시다였습니다.
그래도 그 좋다는 체리 MX에 나름 15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을 합리화하며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결국 12년도에 다른 제품으로 넘어갔습니다.
FC750R은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인데, 이 전에 나온 것이 FC700R입니다.
지금은 87키 텐키리스 레이아웃이 104키 풀사이즈보다도 더 잘 나가는 모양이지만, 12년의 제겐 큰 혁신이었습니다.
87키는 당시에 동호회에서 주문제작 기판이나, 기존 기판을 썰어서 자작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국내에서는 '세이버' 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 같네요.
그 당시 게이머들 사이에서 흑축과 비슷하지만 반발력이 더 약한 적축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키를 바닥까지 치는 습관이 있는 편인데, 그렇다고 딱히 흑축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승률을 올려준다고 하니 냉큼 적축으로 구매했었습니다. 아마 13만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키보드인 PFU 해피해킹 2 먹각 훙내라도 내 보고자 블랙 무각을 선택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체리 MX 적축이 단종되었다가 이때 다시 살아나 지금까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물론 MX 레드는 스템의 선명한 빨간색도 매력입니다.
FC700R에는 해프닝이 한 번 있었는데, 예약구매를 해서 잘 사용하다가 청소를 하려고 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그러려면 키캡을 뜯어야 하는데, 어느 키였는지 뽑다가 키캡이 스템에 완전히 붙어버려 내장이 적출되어 버렸습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체리 MX 스위치의 내부 구조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A/S는 친절하게 잘 해 주셨고, 지금도 레오폴드 회사 및 제품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FC700R 초기 물량분에 이런 문제가 좀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한 번이나 두 번이 어렵지, 세 번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따로 글을 쓸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저는 RAZER 제품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금도 크게 싫어하지는 않네요.
지금과는 달리 게이머로서의 열정이 살아있던 시절이었던 만큼, 레이저가 기계식 키보드를 냈을 때 그것도 샀었습니다.
13년에 나온 87키 레이저 블랙위도우 토너먼트 에디션과 마찬가지로 13년에 나온 왼손용 레이저 오브위버입니다.
둘 다 레이저가 특별 주문한 체리 MX 청축 - 당시에는 레이저가 아직 체리 제품을 쓸 때입니다 - 을 썼었는데,기존 체리 MX 스위치보다 구동점을 조금 올려 반응속도를 높인다... 라는 것이 골지였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가, 나쁜 제품들이었냐고 하면 매몰차게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쓴 다른 기계식 키보드들과 비교하면 모자랐던 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얼마 안 쓰고 결국 놓아 주었던 제품들입니다. 이때 이후로 ABS 분체도장 키캡은 거들떠도 안 봐요.
오죽했으면 그랬는지, 결국 13년도 9월에 전환점이 되는 제품을 만났습니다.
대만의 Vortexgear/iKBC에서 나온 Poker 2였는데, 기존 87키 텐키리스보다도 더 줄인 60% 레이아웃의 키보드입니다.
87키가 넘패드를 잘라내는 정도로 그쳤다면, 60%는 한발 더 나가 커서키 부분과 기능키까지 싹 잘라낸 배열입니다.
노트북 키보드처럼 잘 안 쓰는 키들은 Fn 조합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입니다.
기존에도 일명 '미니 키보드'들이 있긴 했지만, 포커 시리즈는 기계식에서 60%를 본격화시킨 제품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포커 2는 사실상 규격화가 되어서 자작용 보드나 케이스도 같은 규격, 같은 나사홀 배치로 나올 정도니까요.
시장뿐만 아니고 저한테도 큰 충격을 준 제품이었습니다. 60% 애호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만난 포커 2는 적축으로 구매하여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녹이 슨 보강판은 재도색을 해 주고, 사무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스위치는 저소음 적축으로 교체해 주었지만요.
저소음축은 사진에 보이는 흰색 댐퍼를 부착하여 플라스틱끼리 맞닿아 나는 소리를 줄입니다.
지금 제 앞에 놓여있는 키보드는 포커 3 RGB입니다. 2016년에 나왔을 때 아마 직구까지 해서 구매했던 것 같네요.
투명한 하우징을 사용해 SMT RGB LED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체리 MX RGB 스위치를 쓴 제품입니다.
커세어와의 파트너쉽으로 14년도에 나온 스위치이지만, 대중에 풀린 건 나중 일이었습니다.
백라이트가 들어오는 키보드야 예전에 사용한 테소로나 레이저도 있었지만,
이쪽은 그와 다르게 ABS 이중사출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선택은 체리 MX RGB 순백축이었는데, 대강 흑축과 적축의 중간정도 되는 반발력을 가진 스위치입니다.
적축의 가벼운 반발력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변화를 주기 위해,
그리고 기존에 사용해본 적 없는 스위치인 만큼 순백축을 선택했었네요. 결과는 만족.
사실 지금까지도 포커 3 RGB에 특별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
몇몇 사소한 점이 걸리는 것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키보드입니다.
그럼 왜 지금 와서 몇년째 잘 쓰고 있던 키보드를 놔두고 또 돈을 쓰느냐, 하고 물으면...
뭐, 이제 정말 순수한 취미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 먹는 취미지만요.
(그래도 키보드는 생각보다 돈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예를 들자면, 카메라에 비해서...)
지금까지 써왔던 기계식 키보드들은 전부 체리 MX 스위치를 사용하는 제품들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갈축/차축/브라운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고, 청축은 잠깐뿐. 사실상 리니어 제품들만 사용했었지만요.
알프스나 Matias 스위치는 비주류였고, 이래저래 호환이 안 되는 만큼 당시에는 남 이야기에 불과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시장의 주류는 그때부터 쭈욱 체리 MX 계열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축, 갈축, 적축의 스템입니다. 어디서 누르는 감의 차이가 오는지 보이죠.
하지만, 특히 14년도에 체리 MX 스위치의 특허가 소멸된 이후 체리 MX 클론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이화/카일, 게이트론, 오테뮤, 그리텍 등... 특히 RAZER가 어느 순간 제조사를 카이화로 옮긴 게 꽤 이슈가 됐지요.
당시에 이런 카피 스위치들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말 그대로 카피품일 뿐이고,
체리 정품에는 비하지 못한다고, 보통 그렇게 이야기 되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렴한 카피 스위치를 사용한 키보드들의 만듬새가 그만큼 저렴했고,
그만큼 비교적 비싼 체리 정품 스위치를 사용한 키보드들이 신경써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마는.
물론 체리가 독일 회사고, 카피품이 대부분 중국에서 온다는 것도 무시할 요소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키보드를 자작하려고 보니, 2019년의 분위기는 옛날과는 사뭇 다릅니다.
체리 스위치가 나쁜 건 아닌데 옛날같지 못하고, 요즘은 오히려 중국 회사들이 시장을 선도해 나간다고 합니다.
음... 궁금증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 부품들을 시키면서 같이 샘플을 주문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 도착했습니다.
많습니다. 제가 쓰려고 70본씩 산 것도 있고, 샘플로 낱개구매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세어보니 종류가 총 56개나 됩니다. 몇종류만 더 모으면 60%에 필요한 61개가 다 완성될 것 같습니다.
사실 종류별로 이쁘게 찍어서 사진 게시판에 올리려고 했는데,
몇장 찍다보니 이건 평생 사진만 찍어야 할 것 같아서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궁금하실 수 있으니 표로 한번 만들어 봅니다.
체리 MX (청축, 갈축, 저소음적축, 적축, 순백축) |
노벨키즈 X 카일 프로 헤비 (리니어 베리, 택타일 플럼, 클릭 세이지) |
카일 PG1511 (청축, 갈축, 흑축, 적축) |
노벨키즈 X 카일 박스 Think Click 클릭 네이비 |
카일 프로 (리니어 버건디, 택타일 퍼플, 클릭 라이트 그린) |
카일 박스 (클릭 백축, 갈축, |
노벨키즈 박스 로얄 택타일 |
카일 스피드 (클릭 골드, 택타일 카퍼, 리니어 실버, |
게이트론 SMD (녹축, 청축, 갈축, 흑축, 황축, 적축, 백축) |
인풋클럽 하코 (트루, 클리어, 바이올렛) |
노벨키즈 X 카일 스피드 헤비 (리니어 다크 옐로, 택타일 번트 오렌지, 클릭 페일 블루) |
게이트론 저소음 (갈축, 흑축, 황축, 적축, 백축) |
틸리오스 v2 67g |
노벨키즈 X 카일 박스 헤비 (리니어 다크 옐로, 택타일 번트 오렌지, |
정리하면서도 느끼지만 많기도 합니다. 무서운 건 여기에 아직 없는 것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에 키보드 만들 만큼 가지고 있는 건 적축과 박스 네이비, 박스 로얄, 틸리오스, 카일 스피드 카퍼 정도네요.
적축은 포커 2에서 적출한 오래된 물건이고, 카일 스피드 카퍼는 국내에서 브론즈축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걸 구매.
각각 특색이 있는 스위치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산 것들이 특히 마음에 드는 것들이네요.
박스 네이비는 클릭감 하나는 끝내줍니다. 무슨 볼펜 버튼 누르는 소리와 촉감이네요.
박스 로얄은 넌클릭/택타일 중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스위치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둘이 실사용시에는 손에 얼마나 피로감을 줄지 조금 걱정되긴 합니다.
틸리오스는 체리 MX계열 리니어 스위치 중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이트론 리니어가 부드럽다고는 하지만 틸리오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 싶네요.
카일 스피드 카퍼는 특이하게도 스위치 맨 위에 걸리는 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눌러야 범프가 있지만요. 체리 갈축처럼.
사실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산 게 큽니다.
아쉽게도 아직 기판이나 보강판, 케이스 등이 도착하지 않아서 본격적인 제작은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요즘 납땜의 즐거움을 배우는 중입니다. 기판 하나는 수리를 맡기게 생겼지만요.
다음번에는 완성된 키보드 사진으로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위 사진에 찍힌 스위치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댓글로 물어봐 주세요.
바로 누르면서 대답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