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일에 바로 시작해서 20시간 만에 엔딩 봤네요. 난이도는 보통 바로 위의 엄청난 폭력 난이도로 했습니다.
둠(2016)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둠 이터널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내용들 외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둠이란 게임은 FPS 게임을 논할 때 빠질 수가 없죠. 하지만 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초딩 때 울펜슈타인은 해봤지만 둠은 접할 기회가 없었네요. 그래서 2016년 리부트작이 둠의 첫 경험이었고, 이 리뷰는 둠(2016)과 비교하여 변경점들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1. 전투가 꽤 밀도 높게 바뀌었습니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이것 때문에 어렵다고 고통 받는 분들도 많구요. 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 FPS게임 트렌드는 리얼리스틱 지향이라 은엄폐는 기본이고, 캐릭터들은 한두대 맞으면 픽픽 쓰러지는 현실 사람이었죠. 반면에 둠(2016)은 고전 하이퍼 FPS로의 회귀를 모토로, 빠른 속도로 아레나를 휘젓고 다니며 악마들을 썰고 체력이 떨어지면 악마들을 썰어서 다시 채우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개발자들은 둠(2016)의 플레이에 대해, 전투 패턴이 단조롭고, 특정 무기가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해도 시간만 들이면 어떻게든 클리어가 가능한 재미없는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둠 이터널은 전작의 기본 문법을 더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동방식부터, 전작의 이단 점프는 처음부터 가능한 상태이고 거기에 대쉬와 슈퍼샷건에 달린 갈고리를 이용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이동 방식을 활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도 합니다..
추가로, 무기들의 분업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전작은 악마들이 특별히 약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로켓 런처가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에 다른 무기들을 거의 쓰지 않아도 클리어가 가능했습니다. 악마마다 특별한 약점이나, 부위파괴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각각 그 부분들을 공략하기에 적절한 무기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처럼 한가지 무기로 끝까지 진행하는 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악마에 따라 무기를 적절히 바꿔주지 않으면 클리어가 많이 힘듭니다.
주무기 뿐만 아니라, 보조무기들 또한 분업화를 이루어 필살기와 탄약/체력 수급 역할을 모두 담당하던 전기톱의 역할을 세분화해서, 필살기는 후반부에 얻을 수 있는 무기가, 탄약 수급은 전기톱, 체력 수급은 (관련 업그레이드가 된) 얼음 수류탄, 아머 수급은 화염방사기가 각각 맡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가 합쳐지면서, 수틀리면 생각 없이 전기톱으로 긁으면 됐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선 끊임없이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합니다. 빠르게 뛰어다니는 와중에, 현재 내 체력/아머 상황과, 잔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맵에 체력/아머, 탄약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지, 멀리 있는 강한 악마를 지금 처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다음 웨이브에 오는 강한 악마를 필살기로 처리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옵니다. 특히나, 전작에 비해 탄약 소지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특정 조건에서 무한탄약을 가능하게 했던 룬이 사라짐으로써 적재적소에 전기톱을 사용하는게 필수입니다.
대충 아래 영상과 같은 느낌으로 전투가 진행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전투 하나를 클리어했을 때의 성취감은 장난 아닙니다. 이동 경로를 어떻게 할지, 악마들을 어떤 무기로 공략할지, 보조무기들을 언제 사용할지 순간순간 판단하고 그 판단이 적중했을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다크소울처럼 플레이어의 실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투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보스전 같은 경우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둠(2016)에서의 3번의 보스전들은 온전히 보스와 플레이어의 1대1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가지고 있는 탄약으로 충분한 데미지를 주면서, 패턴을 파악하고 잘 피해야하는, 피지컬에만 좌우되는 게임이었지요. 어느 정도 초보자들을 배려했다고 보는게, 보스방에 입장하면 놓여있는 BFG 탄약 먹고 BFG만 잘 쏴줘도 보스한테서 체력과 탄약이 떨어지면서 보스를 못 잡는 상황은 별로 없었거든요.
본작에서는 보스와의 1대1 상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항상 보스방 안에는 전기톱에 갈리는 허약한 잡몹들이 있습니다. 보스 상대하면서 체력이나 탄약이 부족하면 얘네를 갈아서 쓰라는건데, 문제는 그렇다고 무시하고 보스만 잡기에는 수나 공격력이 무시할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둠 이터널의 보스전은 다른 전투들과 마찬가지로 후다닥 뛰어다니면서 보스한테 딜 넣고 길 가로막는 잡몹들도 잡고 그러다 탄 떨어지면 전기톱으로 갈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언제 앞에 있는 잡몹을 갈아야 할지, 당장 눈 앞에 있는 잡몹을 지금 잡을지 체력과 탄약이 모자랄 때의 보험으로 놔둘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종보스전은 좀 불만스럽더라구요. 자기들이 시간만 들이면 깰 수 있는 게임을 지양해놓고 왜 최종보스는 그렇게 만들어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정 약점을 노려야 하거나, 패턴 파악이 필요하거나 했던 이전 보스들과는 달리 피돼지를 만들어 놔서 깰 수 있는 어려운 보스가 아닌 짜증나는 보스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2. 플랫포밍 요소가 늘어났습니다.
둠(2016)은 기본적으로 아레나에 입장하여 전투를 치르고, 다음 아레나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아레나 간의 이동 시간이 지루해진다는 평가가 많았고, 둠 이터널에서는 이 부분을 이동 과정에서도 소규모 전투를 치르게 하는 방식과, 플랫포밍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취향이 갈리는 부분이죠. 저만 해도 악마를 찢고 죽이려고 이 게임을 산거지 점프킹을 하려고 게임을 산게 아니니까요. 또한 대쉬의 도입으로, 발판 간의 거리가 먼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직관적인 길찾기가 조금 어려워진 느낌이 다소 듭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어디로 가야할지 쉽게 판단이 안서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전투의 밀도가 늘어난 만큼 이동 과정은 그대로 심심하게 두어서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으로 놔두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한글화가 됐지만, 거슬리는 번역이 은근히 있습니다.
한글화가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번역 상태가 전반적으로 엉망입니다. 특히 옵션 메뉴의 번역은 당최 무슨말인지 알아보기 힘든것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울트라 옵션에 대해 나이트메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걸 그대로 악몽이라고 번역해서 이 옵션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안잡힙니다. 차라리 의역해서 울트라 옵션이라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게임 플레이 내에서도, 상당히 거슬리는 오역들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모든 대사가 번역체인 것은 넘어가더라도, 다음 사진을 한번 보시죠.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원문은 submit to them이라는데, 그들에게 바쳐라 내지 그들에게 굴복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번역기에 그대로 돌린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중간보스가 타고 다니는 일종의 호버크래트를 썰매라고 번역했습니다. 썰매란 단어 보자마자 내 앞에 있는게 짱쎈 악마가 아니라 눈썰매 타고 다니는 동심 가득한 악마찡이 된 기분이 들어서 맥이 탁 풀리더라구요. 설사 원문이 썰매였더라고 하더라도, 탈것이라고 번역하는게 맞지 않나 싶네요. rip and tear를 찢고 죽이다로 번역할 정도면 둠에 대한 지식이 없는 번역가는 아닌거 같은데, 번역가를 여러명 나눠서 작업해서 퀄리티가 들쑥날쑥 하거나 rip and tear만 신경쓰고 나머지는 싹 무시한게 아닐까 싶네요.
4. 스토리 관련
클래식 둠 개발자 존 카멕의 게임에서의 스토리 비중은 포르노에서 스토리 비중만큼 중요하다는 발언이 유명하죠. 비록 어느 정도 오해가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둠에서 스토리는 그렇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둠(2016)부터는 스토리에도 어느 정도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원 고갈로 인한 지옥 에너지 활용이라는 흥미로운 배경과, 그 안에서 UAC 책임자 새뮤얼 헤이든과 둠 슬레이어의 지옥에 대한 시각차라던가 지옥에 홀려가는 인간들의 묘사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지요. 둠 이터널에서는 스토리 관련 부분을 더 강화해서, 컷씬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스토리 흐름은 나쁘지 않은 편이고, 전작에서 묘사된 떡밥들도 나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마음에 안드는건 전작과 본편 사이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족합니다. 게임 시작 직후에 나오는 내용들만 언급하자면, 둠 슬레이어가 왜 이상한 함선에 타고 다니는지, 단순히 백업해갔던 베가는 언제, 어떻게 그 함선 시스템 내부에 들어가 있는지, 초반부 등장 인물들은 누구인지 등등입니다. 아무리 전작과 본편 사이의 내용이 싱글스토리 DLC로 나올 예정이러지만 게임 도입부에 컷신 삽입 정도는 했어야 허지 않나 싶습니다.
5. 인터페이스가 알록달록해졌습니다.
둠(2016)은 전반적으로 무채색 기반의 UI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둠 이터널은 스크린샷에서 보이듯 원색이 많이 도입되어 꽤나 알록달록해졌지요. 저도 출시전 플레이 영상 공개되었을 때는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이었지만, 막상 플레이해보면 그런게 눈에 들어올 새가 없고 정신없이 플레이 하는 와중에 원색으로 아이템들이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가시성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어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평점을 매기자면 전투의 만족감으로 인한 만점 5점에서, 플랫포밍 요소의 지나친 사용과 최종 보스전 때문에 0.5점 까서 4.5점, 한글판 한정이지만 번역 퀄리티 문제 때문에 4점이 될 것 같습니다.
전작을 개발자들 나름의 철학으로 잘 갈고 닦은 개선작이지만, 그 개선이 호불호가 많이 갈릴 영역에서 이루어져서 취향을 좀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둠(2016)을 재밌게 즐기셨다면, 그 게임의 대체제는 둠 이터널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 플레이를 권하고 싶네요.
대단한 게임인거 같지만, 안 죽으면 죽을때까지 패면 된다는 제 스타일엔 안맞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