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덕질하는 몇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폴아웃입니다.
음의 기운이 가득한 인간이라서인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더 맘에 들기도 하고 폴아웃3 이후의 게임 시스템이 워낙
매력적이기도 했죠. 그래서 기대가 컸어요.
이번 작은 정식 넘버링인지 아니면 외전인지 모르겠는 폴아웃 76입니다. 그냥 주인공 출신지 볼트를 제목에 박아 넣고
만들었네요.
일단 폴아웃 4에 이은 시스템 발전은 없습니다. 짜파게티에 고추가루 좀 뿌렸다고 짜빠구리라고 우길수는 없죵.
공돌이벤치 앞에서 헛손질하며 메뉴 안뜨는 버그나 폴리곤이 늘어지는 버그, 게임 다운, 엉성한 피격판정, 얼빵한 모션,
벽 뚫기 등등등 십수년 지난 엔진을 전혀 손보지 않은 듯한 모습은 정말 인상이 찌푸려지게 하네요.
전작이라면 개인모더들이 이것 저것 수정한 모드나 자작패치로 손보기라도 하겠지만 이건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
모드도 적용이 안되지요(...)
베데스다 게임이야 원래 그랬다치고 나름 방대한 퀘스트와 스토리도 한몫하는 게임이지만
이번 작은 그런거 없습니다. 지성을 가지고 플레이어에게 우호적인 인간형npc는 행상일을 하는 뮤턴트 말곤
없습니다. 얘도 퀘스트나 그런건 없고 그냥 돌아다니는 자판기 수준이에요.
대화를 나눌 상대는 전부 AI나 로봇이고 심지어 퀘스트 진행은 녹음 된 테이프가 진행하기도 합니다.
멀티게임이고 작중 시대배경이 몽창 몰락한 직후라 닝겐이 없다....면 멀티 중인 플레이어들끼리 즐길 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어요. 그냥 파티 맺고 몹 잡기 입니다. 와우류에서와 같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일반적으론
얻을수 없는 보상을 위해 여럿이 협력하는 시스템 같은건 없어요. 여럿이서 즐길 오락거리도 없고 심지어 채팅도
안됩니다.
근거리에서 마이크 달고 대화 하는 방법 밖엔 없어요. 물론 마이크 조작이 서툴러서 키보드 딸깍 소리만 계속 내는
매미 같은 플레이어나 트롤링을 위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음악을 볼륨 높여 틀어 놓는 잉겐도 있고요.
그렇다면 스토리라도 탄탄해야 하는데 그것도 영 아닙니다.
그냥 일직선 구조의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에 예전 작들과 이야기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 엉성한 레벨 스케일링으로
들쭉날쭉한 난이도, 폴아웃 4에서 지적 받은 점들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놓은 하우징 시스템에 현실성을 무리하게
의도한 나머지 게임진행을 지치게 만드는 무게시스템.
노가다성 플레이를 원치는 않지만 아예 작중 세력간의 알력타툼을 위한 팩션이나 여러 플레이어가 합심해서 요새를
만들어 pvp를 하거나 디펜스를 하는 이벤트 같은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없어요. 멀티라면서요.....
그런데 오묘하게 계속 손을 대게는 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아이템을 수리해야하고 음식을 먹여줘야 하다보니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며 잡동사니를 모으는 행동이 수집욕을 건드는 모양입니다. 뭐 그것도 파워아머와 무기를 다 맞추면
더 이상 게임을 할 욕구가 없어지지만요.
베데스다라는 메이저 제작사가 6만원(발매 몇주만에 30% 할인을 하고 있지만)이나 하는 가격의 물건을 요따위 베타판
비스무리하게 만들어서 출시할 줄은 몰랐네요.
요즘은 스타워즈도 그랬고 닥터 후도 스팀도 애플도 누구도 넘볼수 없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놈들이 스스로 자폭하는
계절인가봅니다.
핵폭탄은 좀 머쪘어요.
참, 이번 작에서 벌레들이 더욱 크고 혐오스럽고 다양하게 나옵니다. 멍멍이나 송아지만한 대형 바퀴벌레, 대형 모기,
대형 잠자리, 대형파리, 대형 진드기 하마만한 도룡뇽에 탱크로리만한 소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