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와 함께 넷플릭스로 영화 '너의 이름은'을 봤습니다.
손그림으로 3D 모델링을 해버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영화의 감정선 다루기가 훌륭하고, 설정이 흥미로워서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구과학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혜성을 주요 소재로 하는 영화가 몬가 불-편한 부분이 있더군요.
하여, 오늘은 영화 '너의 이름은'의 천문학적 고증에 대해 케플러의 3가지 법칙을 중심으로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 및 그 이전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지구과학 1에, 2015 교육과정에서는 지구과학 2에 등장하는 내용이니, 해당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에게 스포일러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1법칙. 타원 궤도의 법칙 (혜성의 궤도)
케플러의 제 1법칙에 따르면,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더불어 혜성의 궤도는 항상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가집니다.
대부분의 혜성은 카이퍼 대, 혹은 오오트 구름이라고 하는 태양계 외곽의 미행성체(얼음과 먼지 덩어리) 군집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대에 있는 얼음과 먼지 덩어리도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큰 타원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이 궤도에서 미행성체가 이탈하게 되면, 가끔씩 태양 가까이 다가오는 길쭉한 타원궤도를 그리는 경우가 있고. 이런 천체를 우리는 혜성이라고 부릅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뉴스 영상을 보면, 혜성의 궤도를 표현한 그림이 나옵니다.
이 그림에서 혜성의 궤도 초점에는 아무 천체도 위치하지 않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지구과학만 배웠어도 이런 초보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을텐데, 문과라서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고증에 맞추어 제대로 궤도를 그린다면, 아래처럼 혜성이 태양 뒤편으로 지나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제 3 법칙. 조화의 법칙 (혜성 궤도의 긴 반지름)
왜 2 법칙은 건너뛰고 3 법칙이 먼저 나오냐 하면 2 법칙이 이 뻘글의 피날레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뉴스에서, 영화에 나오는 혜성의 주기가 1200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정보를 통해 혜성의 궤도 긴 반지름(장반경)을 알아봅시다.
케플러 제 3법칙에 따르면, 궤도운동을 하는 천체는 주기의 제곱이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하는 관계를 가집니다.
서로 같은 천체를 중심으로 도는 천체들 사이에는 이 관계를 통하여 서로의 주기나 궤도 장반경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혜성과 지구 역시 동일하게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기 때문에, 조화의 법칙을 활용하여 혜성의 공전 궤도 장반경을 구하면 (xAU)^3:(1200yr)^2=(1AU)^3:(1yr)^2 의 관계에서 혜성의 공전 궤도 장반경이 약 113AU라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AU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나타내는 천문단위입니다)
정확하게 혜성 궤도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심률(e)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영화 내 자료에서 궤도가 부정확하게 표현되어서, 이것을 통해 이심률을 구하면 오류가 생길 것으로 보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구하려는 결론에 이심률은 중요하지 않기도 하구요.
제 2 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혜성의 궤도속력)
케플러 제 2 법칙에 따르면,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가상의 선분이 일정한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타원 궤도의 근일점 부근에서는 궤도속도력이 가장 빨라지고, 원일점 부근에서는 궤도속력이 가장 느려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영화에 나온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갈 때 궤도속력은 얼마나 될까요?
케플러 제 2 법칙과 제 3법칙을 뉴턴 형식으로 표현하고, 두 식을 합친 다음 궤도속력 v에 대하여 표현하면. 소위 '활력 방정식' 이라고 부르는 궤도속력에 관한 공식이 나옵니다.
활력방정식은 타원궤도 운동을 하는 물체의 궤도속력을 표현한 공식이고, v^2=G(m1+m2)(2/r -1/a)로 정리됩니다.
자세한 것은 복잡하니 생략하고, 저 공식을 통해 물체의 질량, 물체간의 거리, 궤도 긴반지름을 알면 해당 거리에서의 궤도속도 v를 구할 수 있다는것이 핵심입니다.
처음 사용했던 짤을 과학적으로 다시 그린 아래 그림을 참조하여,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갈 때의 궤도속력을 구해봅시다.
mks 단위를 사용하여 표현했을 때
m1에 해당하는 태양질량은 약 1.99*10^30kg
m2에 해당하는 혜성의 질량은 태양질량에 비해 극히 미소하므로 생략
a에 해당하는 공전궤도 긴반지름은 113AU=1.69*10^13m
r에 해당하는 거리는 약 1AU=1.5*10^11m
G에 해당하는 중력상수는 약 6.67*10^-11 m^3/kg*s^2 입니다
이 값들을 활력 방정식에 대입하여 궤도속력을 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m/s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km/h로 쓴다면 151,110 km/h가 되겠네요!
결론. 미츠하가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통해 영화 내에서 혜성이 쪼개진 이후, 이토모리 마을에 운석이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알아봅시다.
먼저 첫 짤에서 보았던 혜성의 궤도 그림을 보면, 지구 옆에 달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확대해서 지구와 달, 지구와 혜성의 거리를 그림판으로 재보면 이렇게 됩니다.
가로세로 40*57px은 대각선 길이로 약 70px입니다. 혜성과 지구의 거리 108px과 비교해보면 혜성은 지구-달 거리의 약 1.54배 떨어져 있군요!
달과 지구의 거리는 평균적으로 385,000km정도 되니, 혜성은 약 593,000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이 지점을 지나가는 순간 혜성이 쪼개졌다고 하니, 운석이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지구로 떨어졌다면,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대피 시간은 593,000km를 운석의 속도로 나눈 시간만큼이 되겠네요.
이 상황에서 운석의 속도는 혜성의 속도+쪼개지는 순간 변화한 속도+지구 중력에 의한 가속도+지구의 궤도속도+지구대기에 의한 감속의 합으로 결정되는데요. 쪼개지는 과정에서의 가속도나 지구대기에 의한 감속까지 고려하면 계산이 너무 복잡해지니 이 두가지는 빼고, 혜성의 속도와 지구 중력에 의한 가속도, 지구의 궤도속도 세가지만 고려해보도록 합시다.
앞서 구한 혜성의 궤도속도는 151,110km/h=41.98km/s입니다.
지구의 궤도속도는 30km/s인데, 영화에서 운석이 충돌한 시점이 일몰 직후인 점, 그리고 위 그림에서 보여지는 위치관계를 고려해보면 지구 궤도운동을 쫒아오는 방향으로 운석이 접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구 중력에 의한 속도의 추가분은 포텐셜 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전환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계산하면 아래와 같이 나타납니다
결국, 혜성의 속도, 지구의 속도, 중력가속도 세 가지를 모두 합하면 41.98-30+1.17=13.15km/s의 속도로 운석이 낙하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혜성과 지구의 거리를 낙하속도로 나누면... 593,000km/13.15km/s=45095s
즉, 미츠하에게는 12시간 31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운석이 떨어지면 미츠하네 마을 뿐만이 아니라 일본 전체가 개작살이 나야 하는것이 맞지만, 그걸 떠나서 대피가 가능한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피하지 않은 것은 영화의 고증 오류라고 할 수 있겠군요!
만약 운석이 떨어진 시간대가 일몰 직후가 아니라 자정을 넘은 시간이였다면 충돌까지는 약 2시간 15분이 걸린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2시간 정도면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술 한잔 마시고 타임워프하는 영화에서 과학적 고증을 요구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어쨋든 재미삼아 분석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나중에 학교에 가면 수업 자료로 한번 써봐야겠어요.
이게 뭔 개소리인가... 하시는 분들을 위한 세줄요약
1. 문과이 마코토 감독이 혜성 궤도를 잘못 그렸다
2. 영화 내 설정에 따라 계산하면 혜성이 쪼개진 뒤 충돌하기까지 12시간 31분이 걸렸다
3. 이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