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 국물에 싸구려 당면 순대를 넣어 먹고 싶어서 점심에 나갔습니다. 뽀얀 국물이야 집에 레토르트 식품이 있으니 순대만 사면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자주 가던 분식집이 쉽니다. 거긴 워라벨을 추구하는건지 껀수만 있으면 쉬더군요. 그래도 유지가 된다니 참 부럽습니다. 기글은 하루도 못 놀겠던데. 그래서 순대를 사러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이 동네 시장의 폐허를 떠올렸습니다. 재개발이 묶여서 9/10은 문을 닫았지만, 골목 중의 골목에서 꿋꿋이 순대를 파는 할머니가 계시거든요.
간판에 40년 동안 장사한 집이라고 써져서 신뢰감이 쓸데없이 올랐어요. 그래서 문 닫고 누워서 TV 보던 할머니가 부랴부랴 일어나려다 힘이 없어서 한 세번 재시도하고, 장판 위에 굴러다니던 칼을 도마 위에 올리려다 한번 놓치고, 손에 장갑도 안 끼고 씻지도 않고 바로 순대를 썰고, 그걸 또 집어서 먹어보라고 세번 건네주고, 한달 가스비 4만원이 아까워서 불을 꺼놓는다는 순대국물을 양산형 비닐봉지에 담고, 그 국물 안에 팅팅 불어터진 순대가 둥둥 떠다녀도 허허허 이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정이구나 했죠.
그리고 오후부터 상태가 살살살 안 좋아지다가 어질어질하네요. 중국에서 살 때는 자주 느꼈던것 같은데 이것 참 오래간만에 느껴보는군요. 뭘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것이 다이어트 맛집으로 그 순대집을 소개해 볼까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전혀 반갑지가 않네요. 이러다가 옆사람한테 옮길까 두렵고, 이번주에 비행기 타고 미국가야 하는데 그 전에는 나을 수 있을까 한번 더 두렵군요.
할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일거리로 나와서 계시는 것 같은데, 귀도 잘 안 들리는 분이 거기 계시는 게 안타깝지만 다음부터는 안 갈려고요. 할머니가 순대 써시는 동안 어디 사냐부터 시작해서 몇살이고 가족 관계는 무엇인지 호구조사를 줄줄이 하시다가, 며칠 전에 저랑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가 왔다고 말하시던데... 어째 그분들이 마지막 손님 아니었을까 싶어요. 손님들이 다들 저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말이죠.
포장이건 식사건 위생이 꺼름칙하면 거의 확정적으로 탈이 나더라구요. 아휴...